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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내게로 왔다 1 - MBC 느낌표 선정도서 ㅣ 시가 내게로 왔다 1
김용택 지음 / 마음산책 / 2001년 4월
평점 :
김용택 작가가 중앙일보에 연재했던 ‘시가 있는 아침’을 바탕으로 엮은 시집이다. 여러 시인들을 한번에 접할 수 있어서 좋았고, 김용택 작가의 코멘트를 통해 시인의 삶을 살짝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 어떤 시는 눈물 나게도 했고, 웃으며 읽은 시도 있었다. 앞으로는 이 시인들의 시집을 사서 읽어 보고 싶다. 나도 김작가님처럼 시집이 너덜너덜하게 되도록 들고 다니며 읽어 보고 싶다.
이 책을 읽으며 느낀 것은 어두운 시대일수록 그 정수인 시가 아름답다는 것이다. 그 시대를 상상할수록 얼마나 밝은 미래에 대한 소망이 간절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김작가가 통한한 것처럼 요즘의 시인들은 시대가 너무 좋아 정말 느슨해졌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시집을 사서 본 적이 거의 없었는데 이젠 내가 좋아하는 시인들의 시집을 하나씩 모으고 싶은 생각이 든다.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3/0626/pimg_762781103867831.jpg)
--본문 내용---
病床錄 -김관식
병명도 모르는 채 시름시름 앓으며
몸져 누운 지 이제 10년.
고속도로는 뚫려도 내가 살 길은 없는 것이냐.
肝, 心, 脾, 肺, 胃……
오장이 어디 한 군데 성한 데 없이
생물학 교실의 골격 표본처럼
뼈만 앙상한 이 극한 상황에서……
어두운 밤 턴넬을 지내는
디이젤의 엔진 소리
나는 또 숨이 가쁘다 열이 오른다
기침이 난다.
머리맡을 뒤져도 물 한 모금 없다.
하는 수 없이 일어나 등잔에 불을 붙인다.
방안 하나 가득 찬 철 모르는 어린것들.
제멋대로 그저 아무렇게나 가로세로 드러누워
고단한 숨결은 한창 얼크러졌는데
문득 둘째의 등록금과 발가락 나온 운동화가 어른거린다.
내가 막상 가는 날은 너희는 누구에게 손을 벌리랴.
가여운 내 아들딸들아,
가난함에 행여 주눅들지 말라.
사람은 우환에 살고 안락에서 죽는 것,
백금 도가니에 넣어 단련할수록 훌륭한 보검이 된다.
아하, 새벽은 아직 멀었나보다.
나무에 깃들여 -정현종
나무들은
난 대로가 그냥 집 한 채.
새들이나 벌레들만이 거기
깃들인다고 사람들은 생각하면서
까맣게 모른다 자기들이 실은
얼마나 나무에 깃들여 사는지를!
-김용택: 나무는 사람들이 건들지만 않으면 태어난 그 자리에서 평생을 산다. 나무는 공부도 하지 않고, 여행을 다니지도 않고, 태어난 제자리에 가만히 있어도 모든 것들이 찾아온다. 해, 비, 바람, 새, 달, 그리고 사람들. 나무는 그러면서 세상에 필요한 것들을 아낌없이 나누어준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집,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예술,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부, 아름다운 국가, 아름다운 삶.
-내 생각: 늘 접하는 우리 주변의 것들에 늘 감사하자.
입춘단상 -박형진
바람 잔 날
무료히 양지쪽에 나앉아서
한 방울
두 방울
슬레이트 지붕을 타고 녹아내리는
추녀 물을 세어본다
한 방울
또 한 방울
천원짜리 한 장 없이
용케도 겨울을 보냈구나
흘러가는 물방울에
봄이 잦아들었다.
수선화에게 -정호승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걷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검은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책 -김수영 金秀映
책을 한권 가지고 있었지요. 까만 표지에 손바닥만한 작은 책이지요. 첫장을 넘기면 눈이 내리곤 하지요.
바람도 잠든 숲속, 잠든 현사시나무들 투명한 물관만 깨어 있었지요. 가장 크고 우람한 현사시나무 밑에 당신은 멈추었지요. 당신이 나무둥치에 등을 기대자 비로소 눈이 내리기 시작했지요. 어디에든 닿기만 하면 녹아버리는 눈. 그때쯤 해서 꽃눈이 깨어났겠지요.
때늦은 봄눈이었구요, 눈은 밤마다 빛나는 구슬이었지요.
나는 한때 사랑의 시들이 씌어진 책을 가지고 있었지요. 모서리가 나들나들 닳은 옛날 책이지요. 읽는 순간 봄눈처럼 녹아버리는, 아름다운 구절들로 가득 차 있는 아주 작은 책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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