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 - 우리 시에 비친 현대 철학의 풍경
강신주 지음 / 동녘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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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와 철학: 진정한 삶을 복원하기 위해 친숙한 세계를 낯설게 하는 인문학의 본령에 충실한 것들"-이성복

 

  시와 철학을 연관지어 시 속에 담긴 철학을 이야기하고, 철학의 화두를 시를 통해 풀어낸다. 처음에 많이 어려울 줄 알았는데 부드러운 어조로 아주 쉽게 조근조근 설명하고 있어 이해가 잘 되었다. 나중에 보니 20회에 걸친 강의를 책으로 엮은 것이라고 한다. 교수님이 개인적으로 들려주는 강의를 들은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이 책을 읽고 나니 더 읽어야 할 책들이 많이 생겼다. 시인과 철학자들의 사고의 노력이 저자를 통해 반짝 빛나는 느낌이다.

 

 

-- 앞으로 내가 읽어야 할 책 --

 

기형도 <<기형도 전집>>

비트겐슈타인 <<논리철학 논고>>, <<철학적 탐구>>

김남주 <<사랑의 무기>>

레비나스 <<윤리와 무한>>, <<시간과 타자>>

하이데거 <<동일성과 차이>>

최영미 <<서름, 잔치는 끝났다>>

사르트르 <<존재와 무>>

김항 <<말하는 입과 먹는 입>>

한하운 <<나의 슬픈 반생기>>

 

 

-- 본문 내용 --

 

<<어떤 관료>>  -김남주

 

관료에게는 주인이 따로 없다!

봉급을 주는 사람이 그 주인이다!

개에게 개밥을 주는 사람이 그 주인이듯

 

일제 말기에 그는 면서기로 채용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근면했기 때문이다

 

미군정 시기에 그는 군주사로 승진했다

남달리 매사에 정직했기 때문이다

 

자유당 시절에 그는 도청과장이 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성실했기 때문이다

 

공화당 시절에 그는 서기관이 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공정했기 때문이다

 

민정당 시절에 그는 청백리상을 받았다

반평생을 국가에 충성하고 국민에게 봉사했기 때문이다

 

나는 확신하는 바이다

 

아프리칸가 어딘가에서 식인종이 쳐들어와서

우리나라를 지배한다 하더라도

한결같이 그는 관리생활을 계속할 것이다

 

국가에는 충성을 국민에게는 봉사를 일념으로 삼아

근면하고 정직하게!

성실하고 공정하게!

 

 

<<죽고 난 뒤의 팬티>> -오규원

 

가벼운 교통 사고를 세 번 겪고 난 뒤 나는 겁쟁이가 되었습니다. 시속 80킬로미터만 가까워져도 앞 좌석의 등받이를 움켜쥐고 어제 팬티를 갈아 입었는지 어떤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재빨리 눈동자를 굴립니다.

 

산 자도 아닌 죽은 자의 죽고 난 뒤의 부끄러움, 죽고 난 뒤에 팬티가 깨끗한지 아닌지에 왜 신경이 쓰이는지 그게 뭐가 중요하다고 신경이 쓰이는지 정말 우습기만 합니다. 세상이 우스운 일로 가득하니 그것이라고 아니 우스울 이유가 없기는 하지만.

 

 

<<전라도길-소록도 가는 길에>> -한하운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천안 삼거리를 지나도

쑤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 속으로 쩔름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리, 먼 전라도길.

 

-벌거벗은 생명들.. 동남아시아 출신의 노동자들, 종로 3가에 하는 일 없이 모여 있는 노인들, 을지로 지하철 역 안의 체념한 노숙자들, 취업을 하지 못하고 거리를 배회하는 젊은이들, 역사적으로 살펴보아도 이런 사례는 무수히 많습니다. 종군 위안부 할머니들, 광주의 시민들, 아우슈비츠의 유대인과 집시들, 한하운(한센병)의 시가 중요한 이유는 그가 바로 이런 모든 벌거벗은 생명들의 목소리, 다시 말해 배제된 자들의 울부짖음을 강렬하게 대변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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