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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무를 만질 수 있을까
김숨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10월
평점 :
얼마 전 이웃 블로그에서 김숨 작가의 책을 소개한 걸 보고 독특한 이름의 작가가 궁금해 도서관에서 책을 찾아봤다. 여러 작품이 있었어 세 권을 빌렸고 이 책이 그중 한 권이다. 처음에는 장편 소설인가 했는데 중단편 세 편을 모은 책이었다. 둘은 조금 연결되기도 한다. 생각보다 많이 어둡고, 약간은 정신적인 문제가 있어 보이는 사람들의 이야기여서 기분이 좋진 않았지만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한 마음에 계속 읽었다. 책을 평하신 분의 글에서 이 책은 '존재'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는데 평범한 나로서는 그 평가마저 어려울 정도로 심오한 내용이었다. 서사가 전개되는 것보다 어떤 사건에 대해 행동과 심리를 정밀 묘사하는 느낌인 책이다.
평소 낙관적인 성격을 지닌 나는 책 속 주인공이 어머니의 느림을 따르기 위해 빠른 발을 부끄러워하고 심지어 화분에 발을 넣어 뿌리내리고 싶다는 것을 보며 기함했다. 느린 것은 느린 것이고, 빠른 건 빠른 것인데 빠른 걸 싫어하게 되다니 이해할 수 없었다. 지붕에 구멍을 뚫고 그 속에 빠지고 싶어 한다는 것도 정말 철학적인 발상이다. 대놓고 판타지스러운 이야기가 아니라 미묘한 심리 묘사가 더 섬뜩함을 주고 환상적으로 만든다. 발에서 뿌리내리는 발상은 오래전 읽은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에서도 비슷하게 등장하였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생각지 못할 것을 작가는 생각하고 글로 쓴다는 것이 범상하다.
두 번째 이야기인 뿌리를 갈구하는 한 화가도 평범치 않기로는 마찬가지이다. 그런 남자 친구를 매일 보러 오는 주인공도 정말 독특하다. 뿌리에 대한 애착이 너무나 대단해서 나무를 뽑는 곳에 가서 싫어와 조금이라도 상할까 소중히 말리는 작가의 느린 일상이 펼쳐지는데 그의 어린 시절 화분에 발을 담은 적이 있다는 말이 앞 이야기와 연결 부분이다. 누군가가 어떤 것에 열광하면 옆에 있던 사람도 덩달아 같이 좋아하고 사랑하게 될까? 열정 하나만은 정말 대단한 주인공이다.
마지막 이야기는 셋 중 최고다. 어린 시절부터 엄마의 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어른이 되어서까지 엄마와 단둘이 살아가는 주인공의 이야기. 둘 사이의 미묘한 감정 묘사와 독특한 둘의 대화. 주변에 없을 것 같은, 그럼에도 어디에 한둘은 있을 것 같은 이들의 이야기가 궁금하고 신기하고 안타깝기까지 하다.
책이 영화보다 때로는 공포스러울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보이는 것보다 상상하는 것이 더욱 섬뜩할 때가 있다. 때로 귀신보다 사람의 내면이 무섭게 느껴지기도 한다.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와 어떤 면에서 닿아 있는 책이다. 작가의 다른 책들은 어떨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