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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서 한아뿐
정세랑 지음 / 난다 / 2019년 7월
평점 :
도서관에 갔다가 신간 코너에서 이 책을 보고 제목이 익숙해서 빌려왔다. 생각해 보니 지난달엔가 유튜브 한 편집자의 작가와의 인터뷰에서 소개된 걸 보았다. 책의 말미에 스물여섯에 쓴 것을 서른여섯에 수정해 다시 낸 거라고 하였다. 시대에 맞지 않는 일부 내용을 바꿨다는 작가의 말이 떠오른다. 이십 대에 쓴 글을 십 년의 시간이 흐른 후 수정하는 일이 쉽지 않았을 것 같지만 한편 재미있는 경험이었을 것 같다. 정세랑 작가는 <보건교사 안은영>이라는 책으로 먼저 만났다. 교사라는 말이 있어 읽기 시작했으나 중간에 벌어지는 황당한 일들로 오히려 책을 놓을 수 없었던 기억이 난다.
이 책 역시 시작은 평범했다. 지구를 사랑하는 환경주의자 한아는 많은 이들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유명 디자이너의 꿈 대신 지구 살리는 일을 하기로 마음먹는다. 업사이클링을 하는 빈티지 가게를 차리고, 집에서 쓰다 만 물건으로 새로운 걸 만드는 창의적이지만 다소 경제적으로 큰 이득은 없는 일을 한다. 가겟세를 나눠 내기 위해 친한 친구 유리가 가게 한쪽에서 동양화를 그리며 함께한다. 하루 종일 붙어 있으면 티격태격할 만도 하건만 둘은 사이가 참 좋다. 늘 행복한 한아에게는 한 가지 고민이 있었다. 오래된 남자 친구 경민이 자신에게 조금은 소홀하기도 하고, 아르바이트로 돈만 모으면 어디론가 떠나는 방랑자 기질 때문에 존중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돌연 캐나다로 떠나겠다는 결심을 하고, 한아는 말릴 수가 없다. 하지만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돌아온 경민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있었다.
유에프오도, 외계인의 존재도 믿지 않는 내가 이 책에 푹 빠질 수 있었던 것은 원래 이런 이야기이니 내가 어디까지 보여주나 보라며 나를 이끄는 작가가 쏟아내는 이야기에 홀렸기 때문이다. 지구를 사랑하는 한아가 남자 친구가 있음에도 외로웠던 것이 마음이 아팠는지도 모르겠다. 어렸을 때도 읽지 않았던 달달한 사랑 이야기가 이 나이에 끌리는 이유가 무엇일까? 아마도 평범치 않은 남자를 사랑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궁금했기 때문이리라. 책을 읽으며 사랑을 잃어버린 오랜 연인에 대해 생각했다. 예전에는 이랬는데 왜 지금은 그런 게 없지, 혹은 헤어질까 말까, 를 하루에도 수십 번 되뇌는 사람이 있다면 이 책 속에 나오는 완벽한 경민이의 모습에 열광할지도 모른다. 수많은 존재 중 오직 한아만을 위해 달려온 경민, 인생의 1순위를 한아라고 여기는 그는 아마도 이 책에만 존재하는 완벽한 연인의 모습인지 모른다. 이십 대의 작가가 꿈꾸던 이상형.
책을 읽으며 드라마를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건교사 안은영>도 책으로 읽고 얼마 되지 않아 드라마가 나왔는데 이 이야기도 혹시 지금 만들고 있으려나? 한 학교에 국한되었던 전작에 비하면 너무 우주적이라 조금 만들기 어려울 수도 있겠다.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이들에게 대리만족을 줄 수 있는 책이다.
* 목소리 리뷰
https://www.podty.me/episode/16526273
https://youtu.be/zNf1QzjeKE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