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선생님, 6개월 안에는 뵐 수 있을까요?
니콜 드뷔롱 지음, 박경혜 옮김 / 푸른길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전립선암으로 수술을 받고 관찰 중에 있습니다. 근무하고 있는 병원에서 전립선 항원검사를 하고 있는데 값이 내려갔다가 다시 오르는 바람에 걱정이 되어서 수술을 해주신 의사선생님을 만나려고 외래예약을 하렸더니 2달 뒤에나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1년이 넘어서야 만날 수 있다는 다른 의사선생님보다는 나은 편입니다만 그래도 2달씩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입니다.


우연히 읽게 된 <의사 선생님, 6개월 안에는 뵐 수 있을까요?>에서 프랑스 파리에서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고는 쓴 웃음을 짓게 되었습니다. 유명하다는 의사선생님의 진료를 받으려면 6개월을 기다려야 하는데, 친구의 친구의 친구의 친구를 통하면 금세 만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정말?’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병원에는 아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실감하던 시절 말입니다. 지금은 김영란법 때문에 누군가의 소개로 진료순서가 바뀌기라도 하면 난리가 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의사 선생님, 6개월 안에는 뵐 수 있을까요?>를 통하여 파리의 병원 사정을 고자질한 주인공은 잘나가는 작가입니다. 그래서 작가의 경험을 책으로 쓴 것이 아닐까 싶고, 그러다보니 파리에서 아프면 큰일이겠구나 싶기도 했습니다. 이 책의 주인공은 손주가 있는 할머니 작가입니다. 시골에 있는 집에서 양 축사를 개조한 서재에 들어갔다가 전등이 고장 나는 바람에 더듬거리다 키 높이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사고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파리로 돌아와 병원 응급실에 갔지만 텅 빈 응급실에서 무조건 15분을 기다려야 진료를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응급실을 찾는 환자들 가운데 외래진료를 받아도 될 환자가 적지 않아서 응급환자 진료가 늦어지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특히 그런 환자들은 진료가 늦는다고 갑질을 한다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습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 역시 시골집에서 툴루즈를 경유해서 파리로 돌아온 다음에 응급실을 찾았다고 하는 것을 보면 응급상황은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응급실을 찾아 이러저런 검사를 해본 결과 관절과 심장에 이상이 발견되어 수술과 검사까지 받아야 하는 오랜 병원순례가 시작됩니다. 수술을 받고 재활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에 오래 입원하게 되는데 의사선생님은 얼굴을 보기 어렵고, 의료진은 환자를 존중해주는 구석이라고는 전혀 없다는 생각이 들 지경입니다.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는 몇 년 전부터 환자경험평가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병원에 입원했던 환자가 적절한 대우를 받고 있는지 평가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책의 주인공이 입원했던 병원이라면 평가에서 꼴지를 했을 것 같습니다.


어떻든 주인공이 유명 작가인 까닭인지 아니면 발이 넓은 까닭인지 진료 순서도 쉽게 바꿀 수 있고 해를 넘겨서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프랑스의 건강보험이 우리나라와 다소 차이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면 치료비의 일정부분만 환자가 병원에 내면 되지만, 프랑스에서는 일단 환자가 전체 진료비를 병원에 내고, 그 명세를 공단에 제출하면 공단부담금을 환자에게 돌려준다고 합니다. 보험료를 청구하는 주체가 우리나라의 경우 병원인데 반하여 프랑스는 환자가 되는 셈입니다. 각각의 장단점이 있을 듯합니다.


어떻거나 <의사 선생님, 6개월 안에는 뵐 수 있을까요?>는 파리의 병원에서 벌어지는 불합리한 장면들을 고발하는 느낌이 들지만 주인공 역시 상황을 빠져나가기 위하여 이리저리 손을 쓰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책을 읽은 프랑스 독자들은 너무나도 우스워 의료보험공단으로부터 항우울제 명분으로 환불을 받아야 할 소설이에요!”라고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그런 모습이 우습기도 하지만 씁쓸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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