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가족 폐지론자들은 자기 가족을사랑한다. 흔히 어떤 사회 시스템에서 불쾌한 경험을했던 사람, 그리고 그 시스템에 대한 사랑만이 아니라다른 감정 역시 느끼는 사람들이 그걸 전복하는 운동을 시작한다는 건 물론 맞는 말이다. 하지만 "어린 시절이 불우했음에도 자기 가족을 사랑하는 건 (예비)가족 폐지론자들에게서 상당히 전형적으로 찾아볼 수있는 모습이다. 이를테면 가족 폐지론자는 자기 가족을 사랑하고, 그들의 행복을 빌고, 그들에게 절실한 돌봄을 제공하는 문제에 관해서라면 이 세상에 가능한대안이 거의 또는 전혀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자신과 자기 가족이 서로에게 유익하지 않음을 본능적으로 감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자기 가족을 사랑하는 건 누구에게든 문제일 수 있다. 가족을 벗어나고싶어하는 가정폭력 생존자들에게는 추가적인 족쇄가될 수 있고(특히 상업화된 주거에서 도망친 사람들에게 자본주의가 가하는 경제적 처벌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내가 보기에 가족이라는 종교는 가족이 앞으로 그런 역할을 하리라는 빛나는 희망을 중심으로 굴러가는 게 아닌가싶다. 우리는 확실한 소속, 신뢰, 인정, 충만의 가능성을 붙잡으려고 한다. 가족이라는 꿈은 안식처에 대한꿈과도 같다. 굶주림이나 구속과는 정반대되는 무언가. 관용적으로, 어떤 사람이 "가족 같다"는 말을 하는건 가능한 한 가장 강렬한 의미를 전달하려는 것이다.
"너는 내 거야, 나는 너를 사랑해. 우리는 운명이야."
이보다 더 강한 은유는 없다! 그런데 어째서 이 은유를 사용하는 걸까?
톨스토이는 "모든 행복한 가족은 고만고만하게 행복하고, 불행한 가족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는 그럴듯한 문장으로 자신의 역작을 시작한 것으로 유명하다. 어슐러 르 귄이 "훌륭한 첫 문장이라고 인정하듯이, 좋은 말이다. 너무나 많은 가족이 극도로 불행하다! 그리고 이 심각한 불행은 고유하게 체감된다. 자본주의의 구조가 그렇듯이, 그 구조적인 특징이 멀리서 보면 교묘하게 뭉개져버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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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만큼 보인다 : 한 권으로 읽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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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건축가가 건축을 보는 눈은 미술사가가 보지 못한 건축 본질에 관한 것을 건드린다. 미술사를 공부하면서 내가 절감하게 된 것 중하나는 평범한 작품은 그 작품의 유래를 따지게 하지만, 명작은 거기서받은 감동의 근원이 무엇인가 하는, 예술 본질의 물음에로 이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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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일본과 미국에서 경험한 야구는 조금 달랐다. 이곳에 와서 가장 크게 배운 것이 있다면 ‘엄격함‘과 ‘절실함‘은 동의어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프로 야구는 1군과 2군의 차이가크지 않다. 그러다 보니 1군에 올라오는 것도 다른 나라에 비해 어렵지 않고, 1군에 한번 올라오면 더 노력하기보다는 그 자체로 만족해버리는 일들도 종종 있다. 엄격함은 있었지만 절실함은 부족했다.

하지만 일본과 미국을 거쳐 오면서 후배들을 대하는 내 태도도조금 달라졌다. 긴장하고 위축된 선수는 절대 창의적인 플레이를할 수 없고, 창의적으로 플레이하지 못하는 선수는 결코 일정한 벽을 넘어설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애초에 야구는 놀이다. 한 팀을 이루는 구성원들이 진심으로 돕고 의지하지 않으면 긴 시즌을 치르며 마주하는 어려운 상황을 이겨나갈 수 없다. 야구는 아주 미묘하게 구성된 분업의 경기이며, 무엇보다도 팀 스포츠이다. 늘 전쟁을치르듯 엄숙하게 경기에 임했던 한국을 벗어나 마치 장난치듯 연습하다가도 필요할 때는 무서울 정도로 집중하는 일본과 미국 선수들에게서 배운 야구 철학이었다.

많은 이가 야구를 인생에 빗대어 이야기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진부한 말이지만 야구는 인생을 퍽 닮아 있다. 2017년 시즌 전 분명 나는 자신감으로 차 있었다. 하지만 이 자신감이 곧 우리를 우승으로 이끌어주지는 않았다. 어쩌면 내가 야구장에서 배운가장 큰 가치는 ‘겸허함‘일지도 모른다. 최고를 꿈꾸지만 모든 것을내 뜻대로 이룰 수는 없다는 것, 올라갈 때가 있으면 내려올 때도 있다는 것, 무엇보다 야구는 혼자 하는 스포츠가 아니라는 것을 이 시기에 더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거칠고 혈기왕성했던 20대를 지나커리어의 절정을 찍고 선수 생활의 황혼을 향해 달려가면서 그렇게나는 개인의 기록으로 드러나는 야구가 아닌 팀으로서의 야구를 더깊이 체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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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한 사람으로 보면, 나는 그저 20년 넘도록 지름이 100미터쯤 되는 조그만 그라운드 안에서만 맴돌다가 마흔이 넘어서야 세상으로 나온 미숙아이다. 야구가 인생의 축소판이라고는 하지만, 그축소판에서만 놀다 나온 나에게 인생과 세상은 새삼 낯설고 막막하다.

늦깎이 인간 이대호가 의지할 것은 야구장에서 익힌 노력과 성공의 방법들뿐이다. 제2의 인생을 시작할 출발점도 역시 야구 선수 이대호의 성공과 실패에서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기왕 입을열어 인사말을 전하는 김에, 내가 야구 선수로서 어떻게 인생을 시작하고 마무리했는지 한번 정리해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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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또 하나의 다른 세상을 열어주는창문과 같다.

결정적인 것은 우리가 언제나 신비로 가는 길 위에 있다는 점이다. 여기 지상에서는결코 우리에게 완전히 인식되지 않을, 우리가 하느님을맞대고 볼 때야 비로소 그분의 꾸밈없는 광채 안에서 환히 빛나게 될 그 신비로 가는 도정에 있다는 것이다.

우선 엠플레포emplepo이다. 대체로 ‘누구의 속을 들여다보다‘, 다른 이의 근본을 보다‘라는 의미로 쓰이는 말이다. 요한은 이 단어를 세례자 요한에 대해 말할 때 사용하는데(요한 1,36), 바로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을 보고그분 안에서 세상의 죄를 없애는 어린 양을 알아보았다고 말할 때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속)를 바라보시고 그 안에서 온갖 약점에도 불구하고 바위, 곧 그의 진정한 본질을 알아보셨다는 것을 이야기할 때 똑같은 말을 선택한다(요한1,42).

또 다른 말은 테아스타이that이다. 이 말은 테오스 whees,
하느님이라는 말과 어원이 같다. 진정한 바라봄은 우리가 관찰하는 모든 것 안에서 궁극적으로 하느님을, 곧 모든 존재의 본래의 근거인 하느님을 보는 것이다. 나는 피조물의 아름다움 안에서 하느님의 아름다우심을 본다.나는 인간 예수님을 바라보며, 그분 안에서 하느님 자신이 나와 만나신다는 것을 깨닫는다. 예수님께서 필립보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요한 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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