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일본과 미국에서 경험한 야구는 조금 달랐다. 이곳에 와서 가장 크게 배운 것이 있다면 ‘엄격함‘과 ‘절실함‘은 동의어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프로 야구는 1군과 2군의 차이가크지 않다. 그러다 보니 1군에 올라오는 것도 다른 나라에 비해 어렵지 않고, 1군에 한번 올라오면 더 노력하기보다는 그 자체로 만족해버리는 일들도 종종 있다. 엄격함은 있었지만 절실함은 부족했다.

하지만 일본과 미국을 거쳐 오면서 후배들을 대하는 내 태도도조금 달라졌다. 긴장하고 위축된 선수는 절대 창의적인 플레이를할 수 없고, 창의적으로 플레이하지 못하는 선수는 결코 일정한 벽을 넘어설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애초에 야구는 놀이다. 한 팀을 이루는 구성원들이 진심으로 돕고 의지하지 않으면 긴 시즌을 치르며 마주하는 어려운 상황을 이겨나갈 수 없다. 야구는 아주 미묘하게 구성된 분업의 경기이며, 무엇보다도 팀 스포츠이다. 늘 전쟁을치르듯 엄숙하게 경기에 임했던 한국을 벗어나 마치 장난치듯 연습하다가도 필요할 때는 무서울 정도로 집중하는 일본과 미국 선수들에게서 배운 야구 철학이었다.

많은 이가 야구를 인생에 빗대어 이야기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진부한 말이지만 야구는 인생을 퍽 닮아 있다. 2017년 시즌 전 분명 나는 자신감으로 차 있었다. 하지만 이 자신감이 곧 우리를 우승으로 이끌어주지는 않았다. 어쩌면 내가 야구장에서 배운가장 큰 가치는 ‘겸허함‘일지도 모른다. 최고를 꿈꾸지만 모든 것을내 뜻대로 이룰 수는 없다는 것, 올라갈 때가 있으면 내려올 때도 있다는 것, 무엇보다 야구는 혼자 하는 스포츠가 아니라는 것을 이 시기에 더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거칠고 혈기왕성했던 20대를 지나커리어의 절정을 찍고 선수 생활의 황혼을 향해 달려가면서 그렇게나는 개인의 기록으로 드러나는 야구가 아닌 팀으로서의 야구를 더깊이 체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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