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징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또 하나의 다른 세상을 열어주는창문과 같다.

결정적인 것은 우리가 언제나 신비로 가는 길 위에 있다는 점이다. 여기 지상에서는결코 우리에게 완전히 인식되지 않을, 우리가 하느님을맞대고 볼 때야 비로소 그분의 꾸밈없는 광채 안에서 환히 빛나게 될 그 신비로 가는 도정에 있다는 것이다.

우선 엠플레포emplepo이다. 대체로 ‘누구의 속을 들여다보다‘, 다른 이의 근본을 보다‘라는 의미로 쓰이는 말이다. 요한은 이 단어를 세례자 요한에 대해 말할 때 사용하는데(요한 1,36), 바로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을 보고그분 안에서 세상의 죄를 없애는 어린 양을 알아보았다고 말할 때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속)를 바라보시고 그 안에서 온갖 약점에도 불구하고 바위, 곧 그의 진정한 본질을 알아보셨다는 것을 이야기할 때 똑같은 말을 선택한다(요한1,42).

또 다른 말은 테아스타이that이다. 이 말은 테오스 whees,
하느님이라는 말과 어원이 같다. 진정한 바라봄은 우리가 관찰하는 모든 것 안에서 궁극적으로 하느님을, 곧 모든 존재의 본래의 근거인 하느님을 보는 것이다. 나는 피조물의 아름다움 안에서 하느님의 아름다우심을 본다.나는 인간 예수님을 바라보며, 그분 안에서 하느님 자신이 나와 만나신다는 것을 깨닫는다. 예수님께서 필립보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요한 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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