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오기는 한 번 마음 먹은 일은 반드시 한다'에 밑줄 쫙~입니다. 짜잔... 몇 달 전부터 완도에 오시겠노라 하더니 드디어 어제 토요일에 문학 기행팀을 이끌고 오셨거든요. 알라딘에서 순오기 님을 즐겨찾기한 일년여 동안 글로 보아 오면서 늘 이웃처럼 생각했던 분. 광주가 그래도 완도에서 가깝기는 하지요? 그래서인지 첫 만남인데도 어제 저녁을 같이 먹고 오늘 아침에 또 만난 언니처럼 하나도 낯설지 않았어요. 그리고 오프 모임하고 난 분들이 순오기에게 열광하는 이유를 저도 이젠 알았구요.
전 온라인에서 알고 지내던 사람을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고,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마음속에서 엄청 긴장을 하고 준비를 하곤 하지요. 역시나 전날 밤은 순오기 님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잠을 이루지 못했더랍니다. 그래서 눈가에 주름도 더 늘고 피곤에 지친 모습으로 순오기 님을 만나고 말았어요. 그것도 동네 버스 시간에 맞추느라 먼저 와서 기다리게 했구요. 요거이 해설하는 사람의 기본에 어긋나는 일인데... 그리고 늘 들고 다니던 카메라도 안 가지고 나가 순오기 님 사진 한 방 못 박아왔다는 게 넘 아쉬워요.
작년에 완도군문화관광해설가 과정을 공부하고 자격증을 받기는 했지만 실제 관광객을 대상으로 해설을 해본 건 열 번이나 될까 말까 한 왕초보 해설가인데, 나 놀러 다니기도 바빠서 남들에게 해설해 줄 시간이 없어요. 순오기 님이 오신다기에 안내하겠노라 덜컥 약속을 했네요. 내가 좋아하는 곳에 가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하지 뭐 그러면서 큰 부담도 갖지 않고 말이지요.
처음 계획을 세운 코스는 장보고기념관과 장도 유적지 - 신지도 명사십리 해수욕장 - 점심식사 - 국립공원 정도리 구계등과 방풍숲 - 완도수목원이었는데, 네비도 전날 밤 잠을 못 잤는지 기사님이 완도수목원 가는 길로 먼저 접어드는 바람에 완전 거꾸로 도는 코스가 되고 말았어요. 섬이다 보니 이래도 저래도 완도 한 바퀴 도는 건 마찬가지였지만.
완도수목원. 요즘 이곳에서 숲해설 공부를 하고 있지만 이론이 2/3 를 넘고 그나마 공부하면 할수록 더 헷갈리고 겁나는 게 식물인지라 세세한 나무 설명은 애초부터 안 하려고 굳게 마음먹었지요. 그래서 오솔길 산책이나 하자 했는데 학구열 넘치는 순오기 님은 요 나무 저 나무 물어봐도 모르쇠로 일관했으니 답답했을 듯해요. 하지만 완도에 그렇게 멋진 수목원이 있다는 사실에는 감탄하지 않으셨을라나... 실력을 더 쌓아 멋진 숲해설을 하고 싶지만 완도를 떠나야 함이 안타까워요.
정도리 구계등. 여기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곳이다 보니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곳 일순위예요. 바닷가에 쫙~~~ 펼쳐진 둥글둥글한 갯돌을 보는 순간 모난 마음은 모두 사라지는 곳이거든요. 모난 마음 때문에 이웃에 혹은 세상에 대한 불만이 많은 분은 꼭 한 번 다녀가라고 전해 주세요. 착해지는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정도리 구계등은 1996년 이상문학상을 받은 윤대녕의 <천지간>이라는 단편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해요. 이곳에 다녀간 후 읽어보면 문장, 단어 하나하나가 마음으로 느껴지는 걸 경험할 수 있어서 소개해 드렸답니다. 순오기 님, 읽으셨나요? 읽고 나면 정도리에 또 가고 싶어질 것 같은데...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섬 주도가 보이는, 추섬(주도의 옛이름)이라는 식당에서 점심으로 먹은 푸짐한 해물탕. 광주에서 아침도 못 먹고 일찍 출발했다는데 2시가 다 돼서 점심을 먹었으니 등이 꼬부라질 만했어요. 코스를 거꾸로 도는 바람에 시간이 늦어진 건 아시죠? 그리고 달콤새콤 맛나던 전어회 무침은 예약을 해서 특별히 준비해주신 메뉴라네요.
신지도 명사십리 해수욕장. 전에 올려놓은 사진을 보고 순오기 님이 가고 싶어했던 곳인데 마음에 드셨어요? 그렇게 곱고 깨끗하고 긴 모래사장은 아무데서나 구경할 수 없답니다. 완도살이 3년 만에 완전 완도매니아가 되어버린 소나무집. 날이 썰렁하니까 바닷물에 발을 담가 보겠다고 나서는 분은 아무도 안 계셨구요, 모두 멀찍이 서서 파도치는 것만 구경. 하지만 드라마 주인공처럼 이런 철 지난 바닷가를 걸어보고 싶지 않으셨나요? 비어 있는 그 풍경 안에 나를 채우고 싶은 마음이 들지는 않았는지...
마지막으로 간 장보고 기념관. 장보고는 완도의 대표 상품이에요. 어딜 가나 장보고가 빠지질 않죠. 장보고 마트, 장보고 공원, 장보고 모텔... 이곳은 자원 봉사를 여러 번 한 덕에 가장 자신 있는 곳이었어요. 물이 빠진 시간이었다면 실제로 청해진이 설치되었던 장도에 들어가서 목책도 찾아보고, 장보고의 기상도 느껴보고, 바다에 점점이 떠 있는 섬도 보여주고 싶었는데 좀 아쉬웠어요. 함께 오신 분들 슬슬 지쳐가는 모습이었으니 오히려 잘 된 일이었나요?
돌아다니다 보니 완도를 구석구석 구경하기엔 하루가 넘 짧다 싶더라구요. - 옆에서 이 문장 쓰는 걸 본 우리 아들은 엄마 없는 하루를 보내느라 엄청 긴 시간이었다네요. 하하하. (화가 났었기 때문에 빨강 글자로 하랍니다.) 그래서 순오기 님이 너희들 책선물까지 하셨잖니? - 어제 오신 분들 모두, 눈과 마음에 완도의 아름다운 풍경 가득가득 담아 가셨기를 바래요. 나중에 기회 되거들랑 청산도나 보길도 같은 진짜 섬으로 떠나는 문학 기행도 계획해 보시구요.
걷는 거 싫어하는 사람이 하루 종일 걸어다녔더니 너무 피곤해서 아이들 밥 먹이고는 바로 쓰러졌다가 아침 일찍 일어났어요. 순오기 님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