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쪽 전망대 내부 - 그랜드캐년
꼭 들러야 하는 비지터 센터 - 그랜드캐년 3

윌리엄스에 도착한 시간은 밤 11시 무렵. 중간에 휴게소에서 저녁을 먹긴 했지만 예상보다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숙소를 예약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방 하나쯤 없겠나 싶은 심정으로 Inn 의 문을 밀고 들어갔다. 하지만 좀 괜찮다 싶은 곳은 빈 방이 없었다. 여기저기 기웃대다 동네 제일 끄트머리에서 좀 허름하긴 했지만 빈 방을 만날 수 있었던 것만도 감사.   


윌리엄스는 순전히 그랜드 캐년 때문에 생긴 작은 마을이다. 동네 이름은 서부 개척 시대에 길 안내자였던 빌 윌리엄스의 이름 따서 지은 것이라고 한다. 캐년 안에도 숙박 시설이 있긴 하지만 이미 3~4 개월 전에 예약이 끝났고, 거의 A 급 호텔 가격이라고 하니 우리 같은 사람들은 그랜드캐년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주변 도시에서 숙박을 하고 아침 일찍 들어갈 수밖에 없다.


우리 가족이 묵었던 숙소. 1층 오른쪽 끝에 있는 방. 허름해 보이지만 아침도 안 주면서 숙박비는 세금 포함 70달러나 했다. 우리가 아침에 숙소를 나선 시간이 9시 전이었는데 주차장을 가득 채웠던 차가 한 대만 남아 있다. 여행자가 되면 부지런해야 하는데 우리는 늘 밤늦게 도착해서 지각 출발을 하곤 했다.   



그랜드캐년으로 가는 길. 양 옆으로 나지막한 소나무숲이 이어진 도로는 끝나지 않을 것처럼 길었다. 평지 같아 보이지만 해발 2000 미터가 넘는다. 1950 미터인 한라산 정상보다도 더 높다는 얘기. 


매표소를 멀찍이 두고 만난 그랜드캐년 랜드마크. 말로만 듣던 그랜드캐년에 온 게 실감이 나는군! 그랜드캐년(홈페이지 바로가기)은 애리조나 주 북쪽에 있는 엄청난 크기의 협곡으로 1919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1979년에 일찌감치 유네스코 자연유산으로 등록된 곳이기도. 마일로 된 걸 우리가 익숙한 평수로 계산해 보면14억 평 정도라네... 그랜드라는 이름이 왜 붙었는지 알겠다.  



매표소에 차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오른쪽에 있는 회색 차가 우리가 렌트한 차. 차 안에서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으니 남편이 내려서 찍으라고 하는 바람에 우리 차가 사진에 나오는 영광을.  

현재 우리나라 국립공원은 입장료가 없지만 미국 국립공원은 입장료가 상당히 비싸다. 각 국립공원마다 입장료가 조금씩 다른데 그랜드캐년의 경우 차 한 대당 25달러였다. 차 안에 타고 있는 사람 수와 상관 없이 무조건 차 한 대당 입장료를 계산한다. 이 티켓 하나를 끊으면 일주일 동안은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다고. 한 공원만 갈 거라면 25달러 내고 들어가는 게 싸지만 네 군데 이상을 여행할 계획이라면 80달러짜리 연간 회원권을 끊는 게 더 싸다. 우리는 물론 이 연간 회원권을 끊어 가지고 다녔다.


도로를 달리다가 처음 만난 포인트에서 차를 세우고 몇 발자국 걸어가니 바로 이런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처음 보는 계곡의 모습에 놀라 온 가족이 와~ 와~ 하루 종일 그랜드캐년에서 내지른 경탄의 소리는 헤아릴 수가 없다. 하지만 그랜드 캐년의 진면목을 보려면 계곡을 걸어 내려가야 하는데 제일 짧은 트래킹 코스도 내려가는 데 하루, 올라오는 데 하루 해서 이틀은 걸린다고 하니 하루 일정으로 간 우리는 뷰포인트만 돌기도 바빴다.


나바호 포인트에서. 전날 조슈아트리 국립공원에서는 봄날씨였는데 그랜드캐년은 우리의 2월 날씨쯤 되었다. 있는 대로 옷을 다 껴입었는데도 추위가 느껴졌을 정도. 여행을 하면서 만난 미국 얘들의 옷차림은 진짜 제멋대로였다. 한 장소에서 두꺼운 점퍼를 입은 사람과 나시티에 반바지 차림의 사람들을 동시에 만나곤 했다. 땅이 워낙 넓어 사람들마다 온 곳이 다르다 보니 자기 식대로 옷차림을 하는 것 같았는데 옷차림을 보고 신기해하는 사람은 우리밖에 없었다. 우리도 나중에는 이런 모습에 덤덤해졌지만.  

그랜드캐년 동서남북 중 우리가 간 곳은 사우스림(South Rim)이다. 림(Rim)은 계곡의 가장자리를 말하는데 이 림을 따라 곳곳에 우리 식으로 하면 전망 좋은 곳, 즉 뷰포인트(View point)가  있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가는 곳은 사우스림의 캐년 빌리지 부근인데 우리는 여기서 한 시간 정도 더 들어가는 동쪽 전망대(Watchtower)까지 들어갔다가 되돌아왔다.   



전망대가 있는 곳으로 가다가 공원 내 숲이 불에 타고 있는 걸 발견했다. 이게 왠일인가 싶은데 남편의 말에 의하면 공원 직원들이 일부러 낸 불이라고 했다. 내 상식으로는 숲에 불을 낸다는 게 이해가 안 되는데 미국은 생태계 유지를 위해 일부러 숲을 태운다고 했다. 한마디로 숲이 너무 빽빽해지면 살아갈 수 없는 식물과 동물들에 대한 배려라고.  


국립공원 초기에 돌로 지은 전망대. 모두 일일이 돌을 쌓아서 만든 거라고 한다. 전망대 내부 소개는 여기를 클릭.  

  전망대에서 줌~해서 찍은 콜로라도 강줄기의 모습이다. 바로 이 강물이 드넓은 콜로라도 평원을 수십억 년 동안 깎아서 거대한 협곡으로 만들어놓았다. 저 계곡까지의 깊이가 1500 미터이고 너비도 좁은 곳은 6 킬로지만 넓은 곳은 30 킬로나 되는데 지금도 계속 깎여서 조금씩 깊어지고 있다고 한다. 자연의 위대함이여!!! 
 





마더포인트에서. 마더는 미국의 국립공원청(NPS)을 만든 사람이란다.  



그랜드캐년 비지터 센터. 규모가 엄청나다. 비지터 센터는 여기를 클릭.  

 
그랜드캐년에는 빌리지가 있는데 그곳에 있는 숙박 시설(Lodge)이다. 



역사 박물관을 겸한 기념품 판매장이다. 건물에서 오래된 느낌이 난다. 그래 봐야 백 년도 안 되었지만 미국은 이런 건물도 문화재로 지정해서 보호하고 관리를 했다. 옛날 미국 사람들은 여기까지 마차를 타고 올라와서 구경을 하고 간 모양이었다. 설명판에 붙어 있는 사진을 보니. 


빌리지 내 랏지(Ladge) 앞에서 바라본 풍경. 



그랜드캐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호피 포인트에서 내려다 본 풍경. 한쪽에선 구름이 몰려오고 한쪽엔 햇살이 비쳐 신비로운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여기는 승용차 출입을 통제하고 셔틀 버스만 타고 갈 수 있다고 했다. 이때 시간이 오후 4시가 넘어서 한 시간 정도면 돌아 나오겠지 하고 셔틀 버스에 올라탔다. 그런데 중간 중간 내려서 구경하다 보니 두 시간이 넘게 걸리고 말았다.  



구름이 슬슬 몰려오기 시작하더니 날씨가 점점 추워졌다. 그리고 처음엔 거대한 계곡 앞에서 놀라워 입이 딱 벌어졌지만 하루 종일 아찔하고 무시무시한 계곡만 내려다 봤더니 지겨운 생각도 들더라는 말씀. 더구나 계곡 아래로 걸어 내려가 보질 않아서 그런지 자연과 교감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고 한없이 작아지는 느낌만 들었다. 



 


돌아가는 셔틀 버스를 탔다가 이산 가족이 될뻔한 에피소드. 돌아가는 셔틀 버스를 탔는데 한 정거장 가서 멈추더니 운전 기사가 뭐라뭐라 하면서 한참을 서 있었다. 남편은 여기서 좀 오래 머문다니까 내려서 구경을 더 하고 오라고 했다. 마침 남편은 잠든 아들을 안고 있느라 모녀만 차에서 내렸는데 열 발자국도 걷지 않아서 갑자기 버스가 붕~ 떠나버리는 게 아닌가! 알고 보니 앞에서 한 말은 다 잘라먹고 구경하라는 마지막 한마디만 알아들은 남편이 우리에게 내리라고 한 것이었어! 

이런 황당... 버스를 쫓아가면서 소리소리 질렀지만 이 놈의 버스가 뒤도 안 돌아보고 가더란 말이지. 닭 쫓던 개마냥 서서 황당했던 모녀. 영어도 못하는 모녀가 그랜드캐년 미아 되는 줄 알고 아찔했던 순간. 나중에 만난 남편에게 왜 차를 안 세웠냐고 따졌더니 당황하니까 STOP! 이라는 말이 생각이 안 나서 멍하니 있었대나. 우리 가족의 영어 실력이 얼마나 꽝인지 드러난 사건. 이런 영어 실력으로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온 게 천만다행이 아니고 뭐야! 

버스가 여러 방향으로 다니기 때문에 잘 보지 않으면 반대 방향으로도 갈 수 있는 상황. 침착하게 빌리지행 다음 버스를 기다렸다가 30분 만에 주차장에서 남편을 만났을 때의 감격을 어찌 말로 다 하랴!   

  주차장 주변에서 마주친 생뚱맞기 그지없는 기차. 우리가 묵었던 동네 윌리엄스에서 그랜드캐년 사우스림 빌리지까지 왕복하는 관광 열차로 1901년에 개통되었다고 하니 이것도 놀라워라.  



주차장 옆에서 만난 엘크. 야생 동물인데도 전혀 사람을 무서워하는 기색이 없더라. 아, 벌써 그랜드 캐년에서 하루를 보내고 날이 어둑어둑해지고 있다. 떠날 시간이 되면 늘 아쉽다. 정~말 나중에 또 그랜드캐년에 갈 기회가 생긴다면 그때는 2박 3일쯤 머무르고 싶다.


구름이 몰려오더니 우리가 그랜드캐년을 빠져나가기도 전에 엄청난 눈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4월에 그랜드캐년에서 만난 반가운 눈이다. 빌리지 안에 있는 마트에서 먹을거리를 한 보따리 사 들고 출발한 시간이 7시가 넘었으니 예약한 호텔이 있는 라스베가스에는 12시 무렵에야 간신히 도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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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지터 센터 - 그랜드캐년 3
    from 소나무집에서 2009-07-02 11:03 
    미국의 모든 국립공원에는 비지터 센터(Visitor Senter)가 있다. 우리나라의 탐방 안내소와 같은 곳이다. 하지만 우리는 국립공원 내에 탐방안내소라는 게 있는지도 잘 모르고 바로 산으로 가기 바쁘다.    미국의 경우 국립공원을 방문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지터 센터에 들러 정보도 얻고 자신의 여행 계획을 짠다고 한다.
  2. 동쪽 전망대 내부 - 그랜드캐년
    from 소나무집에서 2009-07-02 11:04 
    동쪽 전망대(Watchtower)가 있는 곳은 단체 여행객은 없고 우리 같은 승용차 여행객이나 가는 곳인 듯했다. 전망대 안에 들어가니 아기자기하니 볼 것이 많았다.  차를 세우고 걸어가면서 본 전망대의 모습이 꼭 경주에 있는 첨성대랑 닮았다.   안에 들어가니 1층엔 기념품 매장과 서점이 있었다.    다양한 모양의 마그네
 
 
프레이야 2009-06-26 0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으로나마 잘 봤습니다.
엄청나게 내리는 4월의 눈, 돌로 만든 전망대, 그외에..
저런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면 와~ 입이 안 다물어지겠죠.ㅎㅎ

소나무집 2009-06-26 10:15   좋아요 0 | URL
뭐든지 너무 커서 사람을 지치게 만들고 또 주눅들게 만드는 곳이었어요.
오랜 세월 동안 형성된 지층을 하나하나 다 볼 수 있다는 게 제일 신기하더라구요. 눈도 정말 많이 내려서 금방 도로에 수북하게 쌓여서 겁이 날 정도였어요.

전호인 2009-06-26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지군요, 빤따스틱해요. ㅎㅎ
가보고 싶은 욕심 팍팍 ^*^

소나무집 2009-07-02 10:53   좋아요 0 | URL
멋지기에 앞서 정말 놀라웠어요.
꼭 가보세요.
아이들 지리 공부 팍팍 됩니다.

꿈꾸는섬 2009-06-27 0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멋져요. 그랜드캐년으로 가는 길, 가슴이 탁 터지네요. 소나무집님 덕분에 구경 잘 하고 있네요.ㅎㅎ
근데 정말 놀라셨겠어요. 이산가족 될뻔한 사건때문이라도 그랜드캐년을 더 잊지 못하시겠어요.^^

소나무집 2009-07-02 10:54   좋아요 0 | URL
이산 가족 첨엔 놀랐는데 나중엔 뭐 어찌 되겠지 하는 심정으로 ...
이젠 그랜드캐년 하면 풍경보다 그때 생각만 난다니까요.

느린산책 2009-06-28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햐아~ 파란 하늘 펼쳐진 하얀 구름, 손 내밀어 조금 떼어 먹고 싶네요 ㅋ 전망대 천장도 아기자기 재미있어 인상적이구요~ 그저 부러울뿐입니다 ^^

소나무집 2009-07-02 10:55   좋아요 0 | URL
맘껏 떼어 드세요.ㅎㅎㅎ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순오기 2009-07-02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로거뉴스 특종 타고 왔어요~ 뒤늦게라도 볼 수 있어 다행이에요.
정말 사람을 기죽게 하는 자연이군요.^^

소나무집 2009-07-02 10:56   좋아요 0 | URL
그죠?
미국 여행기 쓸 때마다 특종 되니 좀 미안하네요.
다 잊어먹기 전에 여행기 써야 되는데 여기저기 돌아다니느라 분주해서 언제 다 쓰려나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