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 아이들 학교에서 반장 선거가 있었다. 앞으로 나서는 걸 병적으로 싫어하는 딸을 컴컴한(?) 방으로 불러 후보에 안 나가면 한 학기 용돈도 없다는 말로 협박을 했다. 내가 이렇게 나쁜 엄마가 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딸의 이중 생활에 대한 불만 때문이다.
옛어른들 말씀에 '횃대 밑에서 호랑이 잡는다'는 말이 있는데 바로 우리 딸이 그랬다. 집에서는 왕수다꾼 노릇 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선생님 눈에 벗어날 행동이나 언사를 지나치리만치 삼가하니 선생님한테 이름 불릴 일이 없는 모범생이다. 어찌 보면 투명 인간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딸아이의 경우 학년이 바뀌면 선생님과 아이들의 기억 속에서 가장 먼저 사라져 버리는 스타일이다. "그런 얘가 있었나?"
얼마 전 같은 반 친구들이 집에 와서 던진 말 때문에 더 충격이었다. "선우는 학교에서 거의 말도 안 하고 책만 읽어요." 와, 정말 싫다. 나는 딸내미가 선생님한테 걸리기도 하고 다양한 추억거리도 만들어가길 바라는데 완전 내숭 떨며 학교 생활을 하고 있는 게 확실했다. 그래서 내린 처방이 반장 후보에 나가는 거였다. 하지만 우리 딸이 내린 결론은? 용돈 같은 거 안 받아도 된다며 그 날 아침 가쁜한 기분으로 학교에 갔다.
반면에 아들은 반장 후보에 나간다고 할까 봐 아이 앞에서는 반장 이야기 같은 건 꺼내지도 않았다. 아들의 후덕하지 못한 성격 탓에 후보에 나간들~ 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들은 엄마의 바람을 무시하고 세 번이나 후보(회장 후보는 안 나갔는데 그 이유가 회장은 회의 진행을 잘 해야 하는데 자기는 말을 약간 더듬기 때문에 자격이 안 되는 같아서였단다.)에 나갔다가 죄다 미끄러지고 왔다. 마음속에서 치솟는 '그러게 그걸 왜 나가'라는 말을 꾹 참고 비록 떨어지긴 했지만 '후보로 나간 너의 용기가 대단하다'며 과장까지 섞어 칭찬을 해주었다.
아들이 여기서 이야기를 끝냈다면 난 이런 글을 쓸 마음이 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야기가 다 끝난 줄 알고 아들 곁을 떠났는데 중얼중얼 등 뒤에서 들리는 말이 있었다. "엄마, 마지막 부반장 투표할 때 갑자기... 코끝이 찡했어요. 그리고 갑자기... 눈물이 찔끔했어요." 오우,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코끝도 찡해지고 말았다. 반장 부회장 다 떨어지고 마지막 투표 순간이 되니 또 떨어지면 어쩌나 싶어 나름 걱정도 되고 속상한 마음도 들었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 순간 돌아서서 또다시 눈물을 머금고 있는 아들을 정말 꼭 안아주었다.
한참 아이의 속상했던 마음을 들어주고 왜 반장이 되고 싶은지 물어보았다. 아들은 반장이 되면 자신이 변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반장은 공부도 잘 해야 하고, 친구들도 잘 도와줘야 하고, 말썽을 피워도 안 되기 때문에, 자기도 그런 아이가 되고 싶다고 했다. 더듬더듬 이런 말을 늘어놓는 아들이, 늘 어리고 믿음직스런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는데 갑자기 믿음직스러워 보였다. 그래서 까칠한 너의 성격을 고치고 친구들을 배려해주다 보면 2학기 때는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말해주었다.
나는 아들과 딸이 꼭 반장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극성을 떠는 엄마는 아니다. 앞으로도 그저 아이들의 선택에 맡기고 지켜볼 생각이다. 혹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받는 상처가 있다면 그로 인해 더 단단한 아이가 되길 바라면서.
반장 선거를 치루는 두 아이의 반응을 지켜보면서 문득 떠오른 생각. 학창 시절 단 한 번도 반장 부반장 같은 거 해본 적 없는 내가 고3까지 한 번도 안 빼놓고 반장을 한 남편을 만나 잘 살고 있다는 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