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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인의 반란자들 - 노벨문학상 작가들과의 대화
사비 아옌 지음, 정창 옮김, 킴 만레사 사진 / 스테이지팩토리(테이스트팩토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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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년이 있었다.

500년 이상의 장구한 세월 동안 한 왕조에 의해 통치된 조선왕조를, 수천 년 단일민족을 유지한 한민족을 왜 자랑스러워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찾을 수 없었던 한 소년.  자신의 조상은 단 한 번도 조선의 통치자가 된 적 없고, 그 권력층에 빌붙어 국정을 논한 적도 없는데 왜 그것이 위대하고 자랑스러운지 소년은 도통 그 까닭을 찾을 수 없었다.  어쩌면 그것은 맹목적 충성을 가르치던 획일적 교육에 묵묵히 순응하며 용기 없음의 대명사 딱지를 덕지덕지 붙인, 치욕적인 조상들이 소년에게 유산으로 물려준 굴욕감의 상징일런지도 몰랐다.

 

우리가 갖고 있는 감정의 주머니에서 가장 제멋대로인 '분노'라는 놈은 예측할 수 없는 부지불식의 순간에 불쑥불쑥 나타나곤 하는데, 그런 연유로 나는 감정의 집합에서 '분노'는 예외적인 원소로 치부하곤 한다.  그런 면에서 소년과 나는 하나이며 시간의 벽을 걷어 치운다면 서로를 구분할 수 없는 하나의 몸일 수도 있겠다.

 

조상들로부터 '용기 없음과 신념의 부재'라는 심드렁한 DNA를 물려 받은 소년도 조상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변한 것이라곤 '암클'이 '국어'로, '중국어'가 '영어'로, 유교 이데올로기가 반공과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로 바뀌었을 뿐, 학교 앞 문방구에서 수없이 보았던 형형색색의 것들을 세세히 보여준 후 학생 스스로에게 선택권을 부여하는 그런 교육은 단 하 번도 받아보지 못했다.  다양성이 존재하지 않는 획일적 교육에서는 좋고, 나쁨이 존재할 수 없었다.  좋고, 나쁨의 선택적 기준이 없다보니 신념은 고사하고 시류에 편승하여 안일무사를 추구하는 잔재간만 늘었다.

 

80년대 초부터 노벨 문학상 수상작을 빼놓지 않고 읽었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윌리엄 골딩, 야로슬라프 세이페르트, 클로드 시몽, 올레 소잉카, 조지프 브로드스키, 나기브 마푸즈 등등.  90년대에 들어서면서 그마저도 그만두었다.  신념과 상상력이 없는 사람은 노벨 문학상 수상작을 읽기 어렵다.  읽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글자와 행간의 무질서를 조화롭게 바로잡을 수도 없었다.  소년은 자신이 그야말로 글자를 읽을 수 있으되, 이해하지 못하는 제2의 문맹임을 자각하게 되었다.

 

군부 독재가 무너지던 어느 날, 사람들은 서울 시청앞 광장에 앉아 "자유가 너희를 진리케 하리라."고 외쳤다.  소년도 노벨 문학상 작품들을 다시 이해할 수 있겠거니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문민 정부는 "선착순 다섯 명!"을 외치며 '뺑뺑이'를 돌리듯, '경쟁'이라는 또 다른 무기로 감정의 보따리를 앗아갔다.  소년은 이제 생각의 기능도 거세당한 무기력자가 되었다.

 

다양성을 경험하지 못하면 신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신념은 분노를 낳고, 분노는 변화를 낳고, 변화는 상상력을 낳고, 상상력은 용기를 낳고, 용기는 다시 무한대의 영역으로 도전하게 한다.  그것이 인류를 발전케한 원동력이며 부패한 삶에 생기를 불어 넣는 창조자의 숨결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연쇄고리를 끊고, 그렇게 길들여진 사람을 '착하다'고 말한다.

 

소년도 자라서 어른이 되었고, 그도 이제 도무지 그의 삶에서는 신념도 용기도 찾아볼 수 없는 '착한' 사람으로 불린다.

킴 만레사가 사진을 찍고 사비 아옌이 기록한 <16인의 반란자들>.  노벨문학상 수상자 16인을 만나기 위한 3년여의 대장정.  나는 이 책을 읽고 노벨문학상 수상작을 다시 읽게 되었다.  하나의 대안을 놓고 찬,반을 결정하는 그런 사회가 아닌, 누구나 다양함 속에서 스스로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존재하는 사회를 꿈꾸게 되었다.

 

귄터 그라스는 말한다.

"<양파껍질을 벗기며>만큼 독자들의 편지를 많이 받아본 적이 없어요.  독자들이 뭐라고 한 줄 아시오?  드디어 손자들과 혹은 조부들과 전쟁에 대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고 합디다.  결국 우리는 모든 논쟁을 견뎌냈어요.  우리는 반드시 얘기해야 해요.  치명적인 트라우마까지, 그 모든 것을.  지금까지 나로서는 할 수도 없었고 알 수도 없었지만, 기왕에 이렇게 된 것에 대해 무척 만족하고 있소.  내가 겪었던 젊은 시절은 얘기하는 게 썩 유쾌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렇게 하기로 결심했어요.  우리 세대는 이 문제를 결코 뛰어넘을 수 없고, 어떤 종지부도 찍을 수 없을 거요.  그러나 나는 그것에 관해 계속해서 쓸 거라고 약속할 거요.  나는 계속해서 입을 열 것이고, 나의 적들은 참을 수밖에 없을 거요."  (P.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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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자 잡혀간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꿈꾸는 자 잡혀간다 실천과 사람들 3
송경동 지음 / 실천문학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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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관 시인의 시집을 주문하며

 

평생 단 한 권의 시집을 낸

한 시인의 이야기에 나는 울었다

그 시인의 유고시집을 주문하며

나는 또 울었다

시집의 가격은 단돈 칠천 원

그마저도 박박 지우고

할인하여 달랑 오천구백오십 원

 

아! 한 시인은 삶은,

죽어서 유골이 된 그의 한평생은

단돈 오천 원

 

피로, 눈물로, 한숨으로 짓고

한편생을 한(恨)으로 고쳤을

그의 시가

 

제 손으로 쓰고

제 손으로 거둘 그의 시는

이제는 누구 한 사람 돌보지 않는

추도시로 남아

독자리뷰 한 줄 없는

제문(祭文)이 되었구나

 

시인은 알았을까?

단돈 칠천 원

그마저도 할인하여

달랑 오천구백오십 원

 

덤을 주어도 시원찮을

그의 한평생에

누군가가 매겨놓은 판매가 칠천 원

산 자들은 그마저도 아까워 오천구백오십 원

 

구만 리 황천길에

노잣돈이 되어버린

그의 삶은

산 자의 눈물을 더하여

오천구백오십 원

 

아무도 찾지 않는 그의 시집을

'옛소, 잘 가시오' 주문하며

나는 울었다. 

 

생가 앞에 노제를 차리고 그 앞에 영정을 가져다 두는데, 한 사람의 삶이란 뭔가 하는 슬픔이 몰려왔다.  "엄마"하며, 이 길을 뛰어왔을 배고픈 아이 하나가, 엄마는 들에 나가고 없는 집에서 두려움에 떨었을 아이 하나가 저 들녘을 넘어 서울로 가고, 청년이 되고, 어른이 되고, 이젠 외로운 유골 한 상자가 되어 맨 처음 출발했던 그 시골집으로 다시 돌아온다는 게 뭘까 하는 생각에 사무쳤다.  (P.84)

 

이제는 '희망버스'로 더 잘 알려진 송경동 시인의 산문집을 읽었다.  비슷한 시대를 살아 온, 군부 독재의 서슬이 퍼렇게 살아 있던 그 시절의 칼날 앞에 베이고 찢기고 상처 입으면서도 영혼만은, 양심의 가치만은 꼭 지키려 했던 작가의 몸짓이 아프다.  나는 어쩌면 내 삶의 이면과 그 속에 감추어진 비겁의 고백들을 한 줄 한 줄 끄집어 내며 내 가슴에 아픈 생채기를 남기려 했는지도 모른다.  동시대의 사람이, 동시대의 다른 누군가를 향해, 단지 소수라는 그 이유만으로, 또는 지금은 때가 아니라는 변명으로 그들의 시선을 애써 외면하며 살았던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냉정함이 유난히 시린 2012년 2월의 겨울 끝자락에 고드름으로 맺힌다.

 

넥타이에 걸린 나의 양심이 자꾸 목에 걸려 책을 읽을 수 없다.

일제 강점기도 아닌 21세기에, 군부 독재도 아닌 민주 시대에 '운동','저항', '인권',' 노동' 등의 옛 단어들이 닫혀진 내 마음의 문을 열고 아무렇지도 않게 드나드는 오후.  바람이 몹시 불었다.  시인의 아픈 추억이 하나 둘 바람에 흩날리고 책장을 넘기는 나는 몸서리를 치며 추위를 견뎠다.

 

역사는 반복되는 것이라는데, 나는 먼(또는 가까운) 미래에 가해자의 편에 서서(또는 가해자보다 더 무서운 방조자의 입장으로) 시대의 양심을 위해 투쟁했던 그들의 매서운 시선을 피하며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을지도 모르겠다.

 

그날이 오면 나도 85호 크레인 사람들과 함께 맨 먼저 어머니의 묘소를 찾아뵙고, 어머니 생전에 그렇게 좋아하던 소주 한 잔과 담배 한 개비 올리고 싶다.  부끄러운 눈물 한 자락 올리고 싶다.  (P.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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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에는 고등학교 동창 모임에 참석했었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녔던 많지 않은 친구들이 모두 모였던 것이 이제는 그마저도 나뉘어 열네 명의 친구들만 만난다.  그것도 많은지 열네 명 모두가 한 자리에서 얼굴을 보는 경우는 극히 드문 예외적인 일이고 보면 고교시절 주말마다 만나 오전 한나절을 놀다가 땀냄새 풀풀 풍기며 한 친구의 집으로 우르르 들이닥쳐 라면을 끓여내라던 그 때가 마냥 그리워진다.

 

저녁을 막고 정치인을 안주삼아 술잔이 몇 순배 돌자 대화는 자연스레 아이들 교육 문제로 옮겨졌다.  그날 나왔던 친구들 중 외벌이는 나와 친구 한 명이 고작이었고 다들 맞벌이인지라 부모가 아닌 다른 사람의 손에 길러진 아이들의 문제가 화제의 중심이 되었다.  나와 친구는 그저 듣기만 할 뿐 반박하거나 주도할 입장은 아니었다.  술잔이 도는 횟수가 더할수록 그동안 꽁꼼 싸매고 숨겨놓았던 이야기들이 봇물처럼 터져 신세한탄으로 이어질 때까지 우리는 멍하니 듣기만 했다.

   

지방에서 상경해 대학을 마치고, 취직을 하고, 짝을 찾아 결혼을 하고, 하나 둘 아이를 낳고, 이제는 그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에서 삶의 낙을 찾는 나이가 되었건만 그마저도 뜻대로 되지 않았던지 신입사원 시절의 단정한 모습도, 야망과 오기로 똘똘 뭉쳐 빈 틈이 없어 보였던 그들의 삶도  술기운에 게게 풀린 몸뚱이처럼 세월의 흐름에 흐트러지고 있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부자의 대열엔 들어서지 못했지만 큰 어려움 없이 아이를 교육시키고, 자신들의 체면을 유지할 정도로 먹이고 입힐 수 있는 정도의 경제적 여건을 갖추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건만 부모의 사랑스런 눈길을 받으며 자라지 못했던 아이들은 게임 중독과 나태함, 방종, 반항 등 부모의 기대와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 그들의 고민이었다.  돈으로 할 수 있는 갖은 방법을 다 써보고, 어르고 달래도 보았으나 백방이 무효였다는 것이다.  무작정 방치할 수도 없는 노릇인지라 아이를 데리고 정신과를 찾기도 했었단다.  그러나 육체의 상처는 쉽게 아물지만 마음의 상처는 어떤 방법으로도 고쳐지지 않더라고 하소연했다.

  

부모의 체면, 경제적 편의, 또는 경쟁 의식에서 비롯된(맞벌이 부부 대다수가 부정하겠지만) 양육의 포기 또는 방치는 자녀의 미래를 그 댓가로 지불하곤 한다.  나는 아이들의 영혼이 부모의 시선을 먹고 자란다고 믿는다.  아이들에게 부모의 시선을 자양분으로 주지 못하는 처지라면 약간의 경제적 풍요는 오히려 아이들에게 치명적인 독으로 작용하는 것을 주변에서 종종 보곤 한다.  그런가 하면 배를 곯을 정도로 가난한 집 아이들은 부모의 방치에도 불구하고 일찍 철이 들어 고사리 같은 손으로 동생들을 돌보며 잘 자라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아이들의 영혼은 부모와의 사랑스런 눈맞춤, 또는 극한의 상황에서 얻어지는 생존 본능의 발현으로 이루어지는 듯하다.

 

부모들은 아이들의 동의도 없이 당연하다는 듯 경제적 편의나 자신들의 체면을 위해 맞벌이를 선택한다.  그리고 아이들이 잘못 성장했을 때 그 모든 책임을 아이들에게 돌린다.  "내가 너에게 못해준 것이 뭔데?"라며 항변하듯 외친다.  아이들도 과연 부모의 사랑과 경제적 편의 중에 경제적 편의를 선택하겠노라고 동의했던 것일까?

 

술을 먹지 못하는 나는 취하여 몸도 잘 가누지 못하는 친구 한 명과 함께 지하철을 탔다.

주말의 고단한 피곤이 덜컹거리며 승객들을 비웃고 있었다.  그렇게 한 주가 저물고 습관처럼 출근을 하면 자울거리는 시간과 또 어찌어찌 하루해가 저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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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2-02-15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꼼쥐님의 생각과 같은 사람 중 한 사람이고 그것을 실천하며 살려고 하는데, 별것 아닌 이 생각을 실천으로 옮기는데 '소신'이 필요하더라고요. 그 소신 지키며 살기가 참 쉽지 않다 싶습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시선을 먹고 자란다는 말씀, 참 마음에 듭니다.

꼼쥐 2012-02-16 22:46   좋아요 0 | URL
아이의 미래와 부모의 체면이나 경제적 편의, 무엇을 선택하느냐 하는 문제는 가치관에 따라 다르겠지요. 저는 물론 아이의 미래를 선택하자는 쪽이지만 쉽지 않은 문제인 것만은 확실한 듯싶어요.
 

하나의 현실에 푹 빠져, 내 주변에는 오직 하나의 현실만이 존재한다고 믿게 될 때, 나의 관심에서 밀려난 또 다른 현실은 마치 부모의 관심에서 멀어진 어린 아이가 자신의 존재를 잠시 잊고 있는 부모에게 토라져 이를 앙다문 채 복수를 다짐하는 것처럼 어떤 모습으로 내 앞에 등장할지 예측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 한 순간도 방심할 수 없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어쩌면 우리의 삶은 우리를 둘러싼 수많은 현실과의 끊임없는 의사소통 과정인지도 모른다.  나를 가운데 두고 각기 다른 현실들이 나의 관심을 조금이라도 더 뺏어내려고 다투는 그 치열한 현장에 내가 존재한다는 생각.  조직내에서도 어떤 자리에 오르기 전에는 내가 관심을 두어야 하는 여러 일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듯이, 내 주변에는 나의 관심을 필요로 하는 무수히 많은 현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려면 어는 정도의 나이를 먹었을 때에나 가능하다.  그리고 내가 잠시 등한시 했던 여러 일들이 마치 복수를 하듯 무대 뒤에서 등장할 수 있음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일만한 나이도 분명 존재하는 듯하다.

 

며칠 전 작년에 내가 가르쳤던 아이들 중 한 명의 졸업식이 있었다.

그날도 나는 여느 날과 다름 없이 새벽 칼바람을 뚫고 아침 운동에 나섰다.  부쩍 떨어진 기온과 매서운 바람이 몰아치는 새벽 거리에서 내가 그 아이의 졸업식에 참석해야 하나 하는 문제를 곰곰 생각했다.  나는 그 전 날 그 아이를 축하하기 위해 졸업식에 참석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소식을 그 아이의 친구에게서 들었다.  무릎 관절이 안 좋으신 할머니는 병원에 입원한 상태이고, 동생들은 학교에 가고, 늘 술에 취한 채 사는 그 아이의 아버지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내용이었다.  작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음에도 보란 듯이 서울의 모 대학에 장학생으로 입학했던 그 아이.  마음 같아서는 하루 휴가를 내서라도 맘껏 축하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내게도 고민이 있었다.  여학생인 그 아이가 남남이나 다름 없는 나의 축하를 선선히 받아줄 것인지, 가뜩이나 여러 친구의 시선을 의식해야 하는 학교에서, 게다가 휴대폰이 없는 그 아이와 만나려면 등교하기 전에 약속 시간과 장소를 미리 잡아야 한다. 

 

출근하기 전에 그 아이의 집으로 전화를 했다.

아이는 내 예상과는 달리 밝은 목소리로 와주시면 고맙겠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가벼운 마음으로 출근을 하여 사무실에는 점심시간 전에 잠시 외출을 하였다가 오후에 들어오겠노라고 전했다.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뽀얗게 먼지만 뒤집어 쓴 차를 몰고 그 아이의 학교로 향했다.  이상 한파 때문인지 꽃값은 부담스러울 정도로 비쌌다.  부모의 축하를 받으며 나오는 졸업생들.  그 왁자한 소음을 뒤로 하고 아이와의 약속 장소로 갔다.  약속 시간까지는 10여 분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아이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고 교정 곳곳에는 사진을 찍는 인파로 가득했다.

 

잠시 딴생각에 젖어 있던 나는 아이의 외침도 듣지 못했다.  준비해 온 꽃다발을 전하며 축하한다는 말을 건넸다.  낮인데도 여전히 차가운 바람이 몰아쳤다.  근사한 '꽃돌이'를 준비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너스레를 떨었더니 아이가 웃었다.  근처의 식당은 발 디딜 틈이 없을 듯하여 차를 몰아 시내를 벗어났다.  먹고 싶은 것 있으면 말하라고 하는데도 아이는 요지부동  아무거나 괜찮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부담감 때문이었겠지.

 

식당에서 아이는 조금 심각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자신이 오늘 나와의 만남을 선뜻 응했던 것은 내게 부탁이 있어서라며 그 속내를 털어 놓았다.  생각해 보면 자신이 고 3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것이 다 나의 격려와 조언 덕분이었다며 고맙다는 인사를 꼭 전하고 싶었다고도 했다.  그리고 자신처럼 힘들게 공부하는 후배들을 위해 시간이 되면 다시 공부방을 열어달라는 부탁도 했다.  수업을 하지 않아도 좋으니 나의 경험담도 들려주고 공부에 조금 나태해진 학생에게는 따끔한 질책도 해달라는 것이었다.

 

아이를 집에 데려다 주고 회사로 들어가는 내내 아이의 말이 귀에서 떠나지 않았다.

나를 둘러싼 여러 현실들이 나의 관심을 조금이라도 더 받으려는 듯 아귀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바람이 윙윙 차유리를 때리고 방관자처럼 멀찍이 달아나는 시간이 야속한 하루.  세월아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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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네가 태어난 이후 내게 1월은 예전보다 훨씬 선명한 색채로 다가왔단다.

마치 내 삶이 네가 태어나기 전과 태어난 후로 양분되듯이.

그럼에도 그 빛나는 1월에 나는 네게 단 한 통의 편지도 쓰지 못한 채 한 달을 무의미하게 흘려 보냈단다.  지나고 보면 언제나 후회와 아쉬움만 남곤 하지.

 

아들아

 

지난  며칠은 기록적인 한파가 이어졌었지.

내가 유일하게 돌보는 화분(군자란)이 그 한파를 견디지 못하고 얼어 죽고 말았지 뭐니.  정말 안타까운 일이었단다.  전화로 소식을 들었던 너도 진심으로 아쉬워했고.  잘 돌보지 못한 내 불찰이 컸단다.  지난 달인가? 네가 돌보는 금붕어에게 먹이를 너무 많이 주는 바람에 세 마리 중 두 마리가 죽었던 것이.   너는 슬퍼서 엉엉 소리내어 울기까지 했다는 소식을 네 엄마로부터 들었던 것이 오래지 않은데, 공교롭게도 나는 한파가 온다는 일기예보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물을 주지 않았다는 생각에만 사로잡혀 넘치도록 물을 주고 말았구나.

 

아들아

 

생각해 보렴.

너나 나나 모두 선의로 시작한 일이었는데 그 결과는 최악이었구나.  이것이 비단 우리가 기르고 돌보는 동식물에게만 일어나는 일이겠니?  그렇지 않단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이보다 더한 일들도 비일비재 하단다.  내가 비록 선의로 행한 일일지라도 누군가에게는 최악의 결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지.  나는 선의였으니 내 책임은 아니라고 항변할 수도 있겠다만 그렇다고 책임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것도 아니란다.

 

아들아

       

굶주림이 심할수록 굶주림을 참고 더 천천히 먹어야 탈이 없듯, 식물도 추위가 닥칠 때는 목마름을 참아야 한단다.  그렇게 대비하지 않으면 막상 추위가 몰려 올 때 곧 얼어 죽고 말 거야.  사람도 이와 같단다.  위기가 닥칠 것을 대비하여 자신의 욕심을 반쯤 내려놓지 않으면 어려움을 견딜 수 없는 법이란다.  갈증을 견디지 못한 식물이 추위에 얼어 죽듯, 욕심이 많은 사람은 위기에 직면해서 좌절과 분노를 견디지 못한 채 쉽게 파멸하고 말 거야.

 

아들아

 

오늘은 입춘.  나는 어느 시인의 시구를 내 가엾은 화초에게 들려주련다.

"해도 입춘이 넘으면 양지바른 둔덕에는 머리칼풀의 속움이 트는 것이다.
그러기에 입춘만 들면 한겨울내 친했던 창애와 썰매와 발구며 꿩 노루 토끼에 멧돼지며 매 멧새
출출이들과 떠나는 것이 섭섭해서 소년의 마음은 흐리었던 것이다.
높고 무섭고 쓸쓸하고 슬픈 겨울이나 그래도 가깝고 정답고 흥성흥성해서 좋은 겨울이 그만
입춘이 와서 가버리는 것이라고 소년은 슬펐던 것이다
."(立春/백석)

 

아들아

 

너와 나는 이 겨울 작은 미물을 통하여 소중한 가르침을 얻었구나.

욕심에 이끌리어 산다면 죽음이 가깝다는 것을.

그리고 생명을 돌보는 일에는 항상 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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