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네가 태어난 이후 내게 1월은 예전보다 훨씬 선명한 색채로 다가왔단다.
마치 내 삶이 네가 태어나기 전과 태어난 후로 양분되듯이.
그럼에도 그 빛나는 1월에 나는 네게 단 한 통의 편지도 쓰지 못한 채 한 달을 무의미하게 흘려 보냈단다. 지나고 보면 언제나 후회와 아쉬움만 남곤 하지.
아들아
지난 며칠은 기록적인 한파가 이어졌었지.
내가 유일하게 돌보는 화분(군자란)이 그 한파를 견디지 못하고 얼어 죽고 말았지 뭐니. 정말 안타까운 일이었단다. 전화로 소식을 들었던 너도 진심으로 아쉬워했고. 잘 돌보지 못한 내 불찰이 컸단다. 지난 달인가? 네가 돌보는 금붕어에게 먹이를 너무 많이 주는 바람에 세 마리 중 두 마리가 죽었던 것이. 너는 슬퍼서 엉엉 소리내어 울기까지 했다는 소식을 네 엄마로부터 들었던 것이 오래지 않은데, 공교롭게도 나는 한파가 온다는 일기예보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물을 주지 않았다는 생각에만 사로잡혀 넘치도록 물을 주고 말았구나.
아들아
생각해 보렴.
너나 나나 모두 선의로 시작한 일이었는데 그 결과는 최악이었구나. 이것이 비단 우리가 기르고 돌보는 동식물에게만 일어나는 일이겠니? 그렇지 않단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이보다 더한 일들도 비일비재 하단다. 내가 비록 선의로 행한 일일지라도 누군가에게는 최악의 결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지. 나는 선의였으니 내 책임은 아니라고 항변할 수도 있겠다만 그렇다고 책임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것도 아니란다.
아들아
굶주림이 심할수록 굶주림을 참고 더 천천히 먹어야 탈이 없듯, 식물도 추위가 닥칠 때는 목마름을 참아야 한단다. 그렇게 대비하지 않으면 막상 추위가 몰려 올 때 곧 얼어 죽고 말 거야. 사람도 이와 같단다. 위기가 닥칠 것을 대비하여 자신의 욕심을 반쯤 내려놓지 않으면 어려움을 견딜 수 없는 법이란다. 갈증을 견디지 못한 식물이 추위에 얼어 죽듯, 욕심이 많은 사람은 위기에 직면해서 좌절과 분노를 견디지 못한 채 쉽게 파멸하고 말 거야.
아들아
오늘은 입춘. 나는 어느 시인의 시구를 내 가엾은 화초에게 들려주련다.
"해도 입춘이 넘으면 양지바른 둔덕에는 머리칼풀의 속움이 트는 것이다.
그러기에 입춘만 들면 한겨울내 친했던 창애와 썰매와 발구며 꿩 노루 토끼에 멧돼지며 매 멧새
출출이들과 떠나는 것이 섭섭해서 소년의 마음은 흐리었던 것이다.
높고 무섭고 쓸쓸하고 슬픈 겨울이나 그래도 가깝고 정답고 흥성흥성해서 좋은 겨울이 그만
입춘이 와서 가버리는 것이라고 소년은 슬펐던 것이다."(立春/백석)
아들아
너와 나는 이 겨울 작은 미물을 통하여 소중한 가르침을 얻었구나.
욕심에 이끌리어 산다면 죽음이 가깝다는 것을.
그리고 생명을 돌보는 일에는 항상 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