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는 고등학교 동창 모임에 참석했었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녔던 많지 않은 친구들이 모두 모였던 것이 이제는 그마저도 나뉘어 열네 명의 친구들만 만난다.  그것도 많은지 열네 명 모두가 한 자리에서 얼굴을 보는 경우는 극히 드문 예외적인 일이고 보면 고교시절 주말마다 만나 오전 한나절을 놀다가 땀냄새 풀풀 풍기며 한 친구의 집으로 우르르 들이닥쳐 라면을 끓여내라던 그 때가 마냥 그리워진다.

 

저녁을 막고 정치인을 안주삼아 술잔이 몇 순배 돌자 대화는 자연스레 아이들 교육 문제로 옮겨졌다.  그날 나왔던 친구들 중 외벌이는 나와 친구 한 명이 고작이었고 다들 맞벌이인지라 부모가 아닌 다른 사람의 손에 길러진 아이들의 문제가 화제의 중심이 되었다.  나와 친구는 그저 듣기만 할 뿐 반박하거나 주도할 입장은 아니었다.  술잔이 도는 횟수가 더할수록 그동안 꽁꼼 싸매고 숨겨놓았던 이야기들이 봇물처럼 터져 신세한탄으로 이어질 때까지 우리는 멍하니 듣기만 했다.

   

지방에서 상경해 대학을 마치고, 취직을 하고, 짝을 찾아 결혼을 하고, 하나 둘 아이를 낳고, 이제는 그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에서 삶의 낙을 찾는 나이가 되었건만 그마저도 뜻대로 되지 않았던지 신입사원 시절의 단정한 모습도, 야망과 오기로 똘똘 뭉쳐 빈 틈이 없어 보였던 그들의 삶도  술기운에 게게 풀린 몸뚱이처럼 세월의 흐름에 흐트러지고 있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부자의 대열엔 들어서지 못했지만 큰 어려움 없이 아이를 교육시키고, 자신들의 체면을 유지할 정도로 먹이고 입힐 수 있는 정도의 경제적 여건을 갖추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건만 부모의 사랑스런 눈길을 받으며 자라지 못했던 아이들은 게임 중독과 나태함, 방종, 반항 등 부모의 기대와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 그들의 고민이었다.  돈으로 할 수 있는 갖은 방법을 다 써보고, 어르고 달래도 보았으나 백방이 무효였다는 것이다.  무작정 방치할 수도 없는 노릇인지라 아이를 데리고 정신과를 찾기도 했었단다.  그러나 육체의 상처는 쉽게 아물지만 마음의 상처는 어떤 방법으로도 고쳐지지 않더라고 하소연했다.

  

부모의 체면, 경제적 편의, 또는 경쟁 의식에서 비롯된(맞벌이 부부 대다수가 부정하겠지만) 양육의 포기 또는 방치는 자녀의 미래를 그 댓가로 지불하곤 한다.  나는 아이들의 영혼이 부모의 시선을 먹고 자란다고 믿는다.  아이들에게 부모의 시선을 자양분으로 주지 못하는 처지라면 약간의 경제적 풍요는 오히려 아이들에게 치명적인 독으로 작용하는 것을 주변에서 종종 보곤 한다.  그런가 하면 배를 곯을 정도로 가난한 집 아이들은 부모의 방치에도 불구하고 일찍 철이 들어 고사리 같은 손으로 동생들을 돌보며 잘 자라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아이들의 영혼은 부모와의 사랑스런 눈맞춤, 또는 극한의 상황에서 얻어지는 생존 본능의 발현으로 이루어지는 듯하다.

 

부모들은 아이들의 동의도 없이 당연하다는 듯 경제적 편의나 자신들의 체면을 위해 맞벌이를 선택한다.  그리고 아이들이 잘못 성장했을 때 그 모든 책임을 아이들에게 돌린다.  "내가 너에게 못해준 것이 뭔데?"라며 항변하듯 외친다.  아이들도 과연 부모의 사랑과 경제적 편의 중에 경제적 편의를 선택하겠노라고 동의했던 것일까?

 

술을 먹지 못하는 나는 취하여 몸도 잘 가누지 못하는 친구 한 명과 함께 지하철을 탔다.

주말의 고단한 피곤이 덜컹거리며 승객들을 비웃고 있었다.  그렇게 한 주가 저물고 습관처럼 출근을 하면 자울거리는 시간과 또 어찌어찌 하루해가 저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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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2-02-15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꼼쥐님의 생각과 같은 사람 중 한 사람이고 그것을 실천하며 살려고 하는데, 별것 아닌 이 생각을 실천으로 옮기는데 '소신'이 필요하더라고요. 그 소신 지키며 살기가 참 쉽지 않다 싶습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시선을 먹고 자란다는 말씀, 참 마음에 듭니다.

꼼쥐 2012-02-16 22:46   좋아요 0 | URL
아이의 미래와 부모의 체면이나 경제적 편의, 무엇을 선택하느냐 하는 문제는 가치관에 따라 다르겠지요. 저는 물론 아이의 미래를 선택하자는 쪽이지만 쉽지 않은 문제인 것만은 확실한 듯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