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실수라는 게 항상 실수를 한 당사자의 약점이 되거나 두고두고 놀림감이 되는 건 아니어서 때로는 그 사람의 매력을 도드라지게 만들기도 하는 까닭에 나는 누구에게나 실수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한다. 말하자면 나는 실수 전도사인 셈이다. 특히나 나보다 어린 친구들을 만날라치면 실수의 중요성을 장황하게 말하곤 한다. 때로는 본의 아니게 장광설을 늘어놓는 바람에 꼰대(?)로 오인받기도 하지만 말이다.

 

예컨대 직장에서 실수를 거의 하지 않는 완벽주의자는 실제 성격은 그렇지 않더라도 냉정해 보이기도 하는데 아주 가끔씩 하는 가벼운 실수가 냉정함을 희석시키기도 하고 그동안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주지 못했던 인간미를 한껏 선뵐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간은 실수를 통해서 새로운 것을 배우곤 한다. 누구나 단 한 번의 인생을 사는 인생 신입생들이 아닌가.

 

고등학교 1학년인 아들도 한동안 손을 끊었던 게임을 다시 손을 대는 듯하다. 기말고사가 코앞인데 말이다. 어찌 말해야 기분 나쁘지 않게 내 뜻을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이다. 날씨는 점점 추워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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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업 - 하 - 반룡, 용이 될 남자
메이위저 지음, 정주은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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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업> 하권은 황궁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던 왕현이 모름지기 황궁의 수호자이자 대들보로 성장한 장면부터 시작된다. 선황이 붕어하고 황후였던 고모마저 중풍으로 쓰러지자 이제 왕현은 그들의 응석받이가 아닌 그들을 돌보아야 할 위치에 섰음을 실감한다. 그리고 조정에서 만인지상의 위치에 있던 아버지마저 모든 관직을 내려놓고 홀연히 떠나버렸다. 우울한 소식들이 이어지던 중 가깝게 지내던 송회은이 옥수와 결혼하여 시매부(媤妹夫)가 되고 오라버니의 시첩이 아들을 낳았다는 기쁜 소식도 전해졌다. 강보에 싸였던 어린 황상이 말을 하기 시작하여 왕현을 '고모'라고 부르기 시작했던 것도 기쁜 소식 중 하나였지만 그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본디 약하게 태어난 황상이 계단에서 실족을 하여 백치가 되고 남정을 떠나게 된 소기가 자담을 불러들인다. 소기는 자담을 평남대원수로, 송회은에게 그의 부장을 맡겨 강남 역당 토벌에 동참하도록 했다.

 

"가문이 내게 준 진정한 보물은 부귀영화가 아니라, 천하에서 가장 권세 있는 사내를 정복하고 천하에서 가장 충성스러운 용사를 정복할 타고난 지혜와 용기였음을. 자고로 사내는 천하를 정벌하고 여인은 사내를 정복하는 것이 만고불변의 진리였다. 지금의 왕현은 이미 지난날의 연약한 여인이 아니었다. 이제 나는 세상 사람들이 감히 나를 얕보지 못하게 할 것이며, 그 누구도 내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 없게 할 것이다." (p.67)

 

절대 권력을 누리던 낭야왕씨 가문은 이제 황권의 약화와 함께 쇠락의 길로 접어들고 경사에서 멀어졌던 남방의 왕족들이 세력을 키우면서 국민들은 도탄에 빠진다. 황권이 약해지자 북방의 변경에서도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무리들이 등장하고 정국을 안정시키기 위해 3황자 자담이 황제의 자리에 오른다. 그러자 안정되는 듯하던 정국은 금세 뒤숭숭해지고 모반과 암투, 변경에서의 끝없는 전쟁으로 소기와 왕현은 내우외환의 위기에 처한다. 결국 소기는 정벌을 위해 출정하고 궁궐에 홀로 남겨진 왕현은 믿엇던 사람으로부터의 배반과 거짓 정보에 좌절한다.

 

"정말로 두려운 것은 고통이 아니라 쇠붙이처럼 무겁게 짓눌러오는 고단함이었다. 고단함은 내 의지를 무겁게 짓눌러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게 만들었다. 이대로 포기하고, 이대로 깊은 꿈속으로 빠져들어 더는 고단함과 아픔에 시달리지 않고 마음 가는 대로 유유히 천지를 떠돌고 싶었다. 너무나 매혹적이고 간절히 원하는 일이었다." (p.323)

 

혼란의 와중에도 새 생명은 태어나는 법. 유산과 여러 번의 고초를 겪어 약해질 대로 약해진 왕현의 뱃속에도 아기가 들어서고 왕현은 쌍둥이를 출산한다. 믿었던 송회은의 반란과 남편 소기가 죽었다는 소문이 퍼지는데... 그럼에도 우리는 결국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가고 익숙했던 평화가 다시 찾아올 것임을 알지만 책을 읽는 내내 손에 땀을 쥐게 되는 것은 작가의 치밀한 구성이 독자들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요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고 하지 않던가.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권력을 향해 부나방처럼 뛰어드는 게 인간이고 보면...

 

"난리는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목숨이 오가는 난리를 함께 겪은 뒤 똑같이 고집 센 두 사람은 마침내 과거사에서 벗어나 새 삶을 맞았고, 서로를 지켜주게 되었다. 다만 두 사람은 평생 서로를 지킬 뿐 바로 곁에서 서로 사랑할 수는 없는 대가를 치렀다." (p.474)

 

그렇지 않은가. 제1야당의 대표는 자신들의 욕심을 위해 모든 민생법안을 올 스톱시키고, 제1야당의 한 의원은 미국 대사에게 북한과의 종전선언을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아무리 권력이 좋기로서니 나라를 팔고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을 짓이길 수 있단 말인가. 인간도 아니다. 그렇게 밖에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우리는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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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사람을 잃고 나면 우리들 각자는 자신의 삶을 좀 더 대범하게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자식들을 위해서 혹은 가족을 위해서 자신의 안위는 뒤로 한 채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아등바등하다가 정작 본인은 누려보지도 못한 채 아쉬운 삶을 마감했던 그리운 이들을 생각할라치면 '그렇게 갈 걸 뭐하러 그렇게 소심하게 살았어요?' 하는 공허한 질문을 허공을 향해 묻게 된다. 가까운 이의 죽음은 그렇게 산 자의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한순간에 모든 것을 과거로 변하게 하는 게 죽음이라면 무형의 영혼이 유형의 어떤 것으로 변하는 사물화의 과정 또한 죽음이다. 그러나 준비하는 과정이 힘들 뿐 모든 변화의 순간에는 쾌락이 존재한다고 나는 믿는다. 산 자는 결코 경험해 볼 수 없는 게 죽음의 순간이지만 말이다. 그러나 세포에 깃든 영혼을 죽여 자신의 뇌를 끝없이 사물화 시키는 마약 중독자들을 볼 때 우리의 죽음 역시 비슷하지 않을까 추정하는 것이다.

 

며칠 전에도 우리는 안타까운 죽음을 목격했다. 가수 설리 씨에 이은 가수 구하라 씨의 죽음. 그 배경이나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그렇게 쉽게 갈 거였으면 남들이 뭐라 하든 말든 싫은 사람을 향해 욕이라도 실컷 하고 개차반 소리를 들을지언정 분풀이라도 실컷 하고 갈 것이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우리는 때로 죽음을 통해 삶의 가치 판단을 새롭게 하고 삶이라는 한정된 시간 동안 우리가 꼭 체험해야 할 것들의 순서를 다시 정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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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30 23: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2-02 21: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제왕업 - 상 - 아름답고 사나운 칼
메이위저 지음, 정주은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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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적나라한 실체를 드러내기에는 궁중 암투를 그린 역사 소설이 어울릴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이야기를 쓰는 작가도, 책을 읽는 독자도 마르지 않는 샘처럼 끝없이 쓰고 또 읽는다. 질리지도 않고 말이다. 역사와 문화는 조금씩 다를지언정 국적 불문 역사 소설은 다 거기서 거기인 것처럼 느껴지는 건 왠지 모르겠다. 서양 작가가 쓴 책이건 중국 작가가 쓴 작품이건 혹은 우리나라 작가가 쓴 역사 소설이건 내게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따금 존경하던 사람에 대해 크게 실망했거나 철석같이 믿었던 사람으로부터 배반을 당했을 때 궁중 암투를 그린 역사 소설 한 편을 읽으면 그렇게 미웠던 사람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고 마음 한편에서 용서하는 마음이 싹트곤 한다. 모든 걸 다 용서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진정으로 소기를 믿은 적이 없다. 마찬가지로 소기도 아버지를 믿은 적이 없거니와, 아버지를 부를 때도 늘 '좌상'이라고 할 뿐 '장인'이라고 표현한 적은 거의 없었다. 그해에 내가 혼례복을 입고 재상부 대문을 나서는 순간,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혹시 그때부터 이미 나를 가장 친밀하고 믿을 만한 딸이 아니라 그저 맞수의 아내로 여기기 시작한 것은 아닐까? 아버지는 나를 소기에게 시집보냈을 때부터 막강한 병력을 가진 사위를 경계하기 시작해, 그의 곁에 자신의 눈과 귀를 심어두었을 뿐만 아니라 나까지 멀리했다." (p.389)

 

중국의 여성작가 메이위저(寐語者)의 소설 <제왕업>은 신예작가의 데뷔작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장대한 스케일에 치밀한 구성이 돋보이는 수작이다. 게다가 여성 특유의 섬세함이 인간의 사랑과 욕망, 권력을 향한 비정함과 서로를 속고 속이는 배반과 모략, 빠른 스토리 전개 등에서 탁월한 진가를 발휘한다. 2007년 출간된 후 10년간 다양한 판본을 거듭하며 500만 부가 넘게 판매되었고 온라인 조회수도 누적 10억 뷰를 돌파했다는 <제왕업>은 2017년 이미 드라마로 제작되어 2019년 말 제작이 완료된 상태이며 2020년 초 절강위성TV에서 방영되는 중국 최고의 기대작으로 손꼽힌다고 한다.

 

이야기는 궁중 최고의 가문인 낭야왕씨 집안의 왕현이 성인식(계례:筓禮)을 치르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황제의 누이이자 공주인 어머니와 황후인 고모, 좌상 직책의 아버지를 둔 왕현은 궁중의 모든 이들의 사랑과 보살핌 속에서 금지옥엽으로 자라난다. 그녀가 마음에 두었던 남자는 사 귀비 소생의 3황자 자담이었다. 그러나 사 귀비가 죽고 자담이 궁궐에서 내쳐지면서 왕현의 혼사는 예장왕 소기 쪽으로 빠르게 진척된다.

 

"나도 무척 사랑한 사람이 있었단다. 한때 그는 내 삶의 가장 큰 기쁨이자 또 슬픔이었지. 그 기쁨과 슬픔은 나 혼자만의 것으로, 그것을 얻든 잃든 오롯이 나 혼자 감당해야 했단다. 그러나 또 다른 얻음과 잃음은 나 혼자만의 기쁨과 슬픔보다 훨씬 깊고 중하며, 살아 있는 한 거기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었지. 그것은 바로 가문의 영예와 책임이었어." (p.57)

 

귀한 신분만큼이나 자신의 뜻대로 모든 걸 이룰 줄 알았던 왕현은 자신이 존귀한 존재가 아닌 한낱 가문을 위한 정략결혼의 도구일 뿐임을 깨닫는다. 게다가 보잘것없는 가문 출신의 소기는 오직 전쟁에서의 승리와 전공을 통하여 황제의 권위를 넘보는 위치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그러나 남편이 된 예장왕은 북방 변경의 급박한 상황으로 인하여 혼례를 치른 첫날밤도 함께 보내지 않고 떠나버린다. 가문을 지키기 위한 결혼의 대가 치고는 치욕도 그런 치욕이 없었다. 왕현의 불운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소기의 부대에 의해 일족이 몰살당하고 뼈에 사무치는 원한을 품게 되었던 하란잠에 의해 납치되기에 이른다. 그녀의 목숨이 바람 앞의 등불 신세가 되었을 때 소기가 극적으로 그녀를 구한다.

 

"시든 꽃은 미인처럼 박명(薄命)했다. 팔자를 잘못 타고났고, 길을 잘못 택했고, 사람을 잘못 만났다. 팔자를 잘못 타고나도 운명에 순응하고 자신의 처지에 만족하며 일생을 편안하게 보낼 수 있다. 가장 가엾은 것은 두 가지 경우다. 하나는 품은 뜻은 높지만 타고난 팔자가 더없이 기구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서 걸음마다 가시밭길이 펼쳐져 뚫고 나가지 못하면 그 자리에 갇혀 죽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p.238)

 

세상 물정 모른 채 나약하고 순진하기만 했던 왕현은 여러 번의 위기를 겪으면서 강인한 철의 여인으로 변모한다. 그리고 정략결혼으로 서먹했던 소기와 왕현 두 사람의 관계도 더욱 뜨겁고 단단해진다. 자신들 앞에 펼쳐진 위험을 극복하며 두 사람은 무사히 가시밭길을 헤쳐갈 수 있을지... 상권은 그렇게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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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불위의 권력' 하면 언뜻 떠오르는 게 검찰이 되겠지만 실상은 검찰이나 국세청, 경찰 등 우리가 알고 있는 권력기관보다 더 우위에 있는 권력층이 있다. 다른 나라에서는 모르겠지만 대한민국에서는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들은 다름 아닌 개신교 목사들이다. 일부 양심적인 목사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우리나라 대형교회의 목사들은 헌법에 명시된 대한민국의 어떤 권력기관보다 우위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권력기관의 장이 자신의 교회 신도이거나 장은 고사하고 그 조직의 고위직 간부만이라도 자신의 교회 신도가 될라치면 목사는 그들 위에서 아무 거리낌 없이 거들먹거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대한민국의 최고 권력기관인 대통령도 후보 시절에는 너나 할 것 없이 목사 앞에서 무릎을 꿇는 것은 물론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재임 중에도 목사 앞에서 무릎을 꿇었으니 목사의 권력이 하늘을 찌르지 않을 수 있었을까.

 

그렇다면 대한민국에서 목사의 권력은 마치 만인지상의 황제의 권위를 능가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던 건 나만의 착각이었을까? 아마도 그렇지는 않았으리라. 사전에 의하면 목사는 '예배를 인도하며 신도들에게 교의를 가르치는 성직자'라고 한다. 좀 더 범위를 넓혀 목회자라고 말할 때도 사전에는 역시 '교회 안팎에서 예배를 인도하고 설교를 하여 신도의 신앙생활을 이끌어 주는 사람'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전적 정의는 옳지 않은 듯하다.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말이다. 대한민국에서 목사는 신도와 동등한 입장에서 신앙생활을 이끌어주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 혹은 예수님과 동등한 위치에 서서 신도들에게 명령하고 지휘하는 사람인 것이다. 그러므로 목사는 신도들에게 성폭력을 저질러도, 내란 선동을 해도 목사란 직책은 유지되는 것이다. 사적으로 축재를 해도, 담임 목사라는 직책을 아들에게 세습을 하여도 목사는 누구로부터 비난을 받거나 처벌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다. 신도가 감히 하느님과 동등한 위치에 있는 목사에게...

 

살다 보면 인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이 더러 있다. 낮부터 욱신욱신 몸이 쑤시고 신열이 나서 얼굴이 벌게졌던 오늘, 목사님께 안수 기도나 부탁할 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종일 들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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