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말들 - 나와 당신을 연결하는 이해와 공감의 말들
은유 지음 / 어크로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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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신변잡기나 독서 후기를 엮어 책으로 만드는 일은 마치 내가 어렸을 때 하루하루 그림일기를 쓰던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 그만큼 시간과 정성이 들어가야 하고 아무리 재능이 출중한 사람일지라도 단 며칠 새에 후루룩 뚝딱 지어낼 수는 없다는 것.  방학숙제로 내준 그림일기를 단 며칠 만에 다 쓰려면 날씨도 내용도 다 거짓일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신변잡기를 바탕으로 한 에세이나 독서 후기 형식의 글이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필요한 만큼의 시간이 축적되어야 한다는 것. 그렇지 않으면 어느 누구에게도 감동을 줄 수 없는 거짓의 글이 되고 만다는 것. 뭐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은유 작가의 글을 따습게 읽었다. 말하자면 책 속에 축적된 작가의 시간을 감사히 여기면서.

 

"계절이 두 번 바뀌고서야 구의역 참사 현장에 가 보았다. 노란 포스트잇 흐드러졌던 승강장은 꽃잎이 진 잿빛 풍경이다. 고인이 '끼인' 9-4 승강장을 시간에 '쫓긴' 이들이 오늘도 바삐 통과한다. 일할수록 닦달당하고 마모되면서 가난해지는데 너도 가고 나도 간다. 아들도 가고 엄마도 간다. 때가 되면 군인 엄마의 옷은 벗어도 재난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불안의 옷은 벗지 못할 것임을 나는 안다." (p.152)

 

 

은유 작가의 책을 읽는 건 참으로 오랜만의 일이다. 작가의 이름도 알지 못했던 대부분의 독자들이 <글쓰기의 최전선>이라는 다소 생소한 제목의 책이 입소문으로 알음알음 알려졌던 게 서너 해 전의 일이고 보면 내가 다른 작가의 글에, 혹은 내가 하고 있는 다른 일에 온전히 마음을 뺏길 만한 충분한 시간이 흘렀음에도 나는 여전히 작가의 글이 반가운 걸 보면 은유 작가는 마음으로 글을 쓰는 몇 안 되는 작가 중 한 명이라는 걸 알 수 있겠다. 글을 잘 쓰는 작가는 많지만 온 마음으로 글을 쓰는 작가는 드문 시대에 사는 까닭에 나처럼 작가에 대한 호불호가 명확하지 않은 사람도, 좋은 독자의 범주에는 처음부터 들지 못했던 어설픈 독자인 나에게도 은유 작가의 글은 이처럼 쉽게 읽히는 걸 보면 작가가 부제에서 밝혔던 '나와 당신을 연결하는 이해와 공감의 말들'이 책 속에 빼곡히 들어 있었던 모양, 그게 반가웠던 것이다.

 

"우리 엄마도 아픈 자식 얘기를 어디서든 후련하게 할 수 있었으면 울화가 풀렸을까. 조금 더 오래 살았을까. 동준 군 어머니 말씀에서 엄마가 감내한 외로움의 크기를 짐작한다. 피붙이인 나도 감정노동을 거부했다. 나 역시 인생 최대의 난국을 보내는 중이어서 같이 무너질까 봐 엄마를 더 피했다. 만약 어느 자리에서든 엄마가 위축되지 않고 괜찮은 척도 하지 않고 당당하게 자기 슬픔을 떠들었다면, 듣는 사람들이 동정이나 입막음이 아닌 토닥이는 눈길로 들어주었다면 적어도 "자신의 존재가 통째로 세상에서 삭제되는 '시선의 차별'"을 겪진 않았을 것 같다." (p.190)

 

할 말이 많아진다는 건, 역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기회도, 자유로이 말할 수 있는 시간도 넉넉하게 주어지지 않았음을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누가 억압하지 않더라도 나의 말을 들어줄 누군가가 옆에 있지 않았을 수도 있고,  차마 다 말할 수 없는 슬픔이 혀뿌리까지 치밀어 올라왔을 수도 있고, 억제할 수 없는 분노와 화가 나의 눈과 귀를 막고 급기야 손발이 덜덜 떨리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을 수도 있는 까닭에 글을 쓰는 일이 본업인 작가일지라도 글은 오래도록 정리되지 않고 오직 가슴에서만 맴을 돌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드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자신의 이야기가 봇물 터지듯 쏟아질 수도 있는 일,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게 우리네 인생이고 보면 작가와 나는 같은 인간으로서 공감하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비록 각자가 하는 일은 달라도 말이다.

 

 

"내 슬픔의 계보를 따져본다. 슬픔의 첫 습격은 5·18 민주화운동이다. 자료 사진을 보고 책을 읽고 망월동 묘역에 다녀오면서 소위 세상에 눈떴다. 당시 구 묘역의 황량한 무덤가에 놓인 영정 사진에 눈 맞추고 유가족이 써놓고 간 편지를 일일이 다 읽었다. 충격이 컸다. 그때부터 5월 광주를, 억울한 죽음을 잊지 않기 위해 애썼다. 0158 숫자를 암호 삼아 세상을 읽고 슬픔을 동력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p.204)

 

총 5부로 구성된 이 책은 각 부의 제목만 들어도 작가의 마음을 알 수 있을 듯하다. 1부 '나를 천천히 들여다보면', 2부 '당신의 삶에 밑줄을 긋다가', 3부 '우리라는 느낌이 그리울 무렵', 4부 '낯선 세계와 마주했을 때', 5부 '주위를 조금 세심히 돌아보면'이 그것이다.  총 300쪽이 넘는 이 책을 나는 따뜻함 한 쪽, 따뜻함 두 쪽... 이런 식으로 각각의 페이지를 살뜰히 세며 줄어드는 쪽 수에 조금은 아쉬운 마음을 곁들여 읽어나갔다. 어쩌면 우리가 책을 읽는다는 건 한 발짝, 두 발짝 작가의 마음을 향해 다가가는 행위나 진배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글은 정자세로 앉아 시간을 바치지 않으면 한 줄도 나오지 않는다. 목뒤부터 어깨를 타고 손끝까지 흐르는 저림을 겪으며 문장의 길을 터나가야 한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을 수 없는 직업이지만 그 미련스러움 때문에 내 일이 좋다. 새해를 맞아 순정하게 다짐해본다. "두부 장수가 두부를 만들듯이 성실하게 규칙적으로 아름다운 것을 써나가고 싶습니다."" (p.320)

 

겨울은 말과 글이 익어가는 계절이라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추위와 미세먼지로 인해 밖으로 싸돌아다닐 수 없으니 느는 건 독서와 사색의 시간뿐이기 때문이다. 오늘처럼 공기도 탁하고 을씨년스러운 날씨에도 밖으로 밖으로만 싸돌아다니는 족속이 있게 마련이지만 말이다. 아무튼 나는 은유 작가의 글에 온통 마음을 빼앗긴 채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 그렇게 하루가 훌쩍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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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전국의 시골이란 시골을 다 돌다 보면 정말 보기 힘든 게 어린아이인 듯합니다. 사실 어린아이는 고사하고 젊은 사람도 보기 힘든 게 현실이지요. 마을에서 젊은이 축에 끼이는 사람이 대개 50, 어느 마을에서는 70대가 젊은이로 불리기도 합니다. 그보다 더 무서운 건 할아버지보다 할머니 혼자 사시는 집이 열에 일곱 여덟은 된다는 사실입니다. 언제 어느 때 어떤 변고가 일어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현실이지요.

 

얼마 전 내가 들렀던 어느 집에서는 할아버지 한 분이 툇마루에 앉아 햇볕을 쪼이고 있었습니다. "추운데 왜 나와 계세요?" 하고 내가 여쭙자, "햇살이 좋아서." 하는 답변이 돌아왔죠. 군데군데 검버섯이 핀 얼굴, 쪼글쪼글한 주름살, 거동이 불편해 보이는 듯한 움직임 등 한눈에 봐도 적지 않은 연세임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커피 한 잔 타 줄까?" 하시기에 ", 주세요." 하며 웃었더니 방으로 들어가셨던 할아버지는 한참이 지나서야 나오셨습니다. 뜨거울까 봐 종이컵 두 개를 겹쳐서 가져오셨기에 밖의 컵을 빼서 드리려 하자 뜨겁다며 그냥 마시라고 손사래를 치셨습니다. 그런데 더 이상한 건 커피의 양이었습니다. 종이컵에 가득 차 넘칠 듯 찰랑거렸습니다. "양이 많지? 날이 차서 금방 식을까 봐 커피 믹스 두 개를 탔어. 다 못 마시겠으면 적당히 마시고 버려." 하시는 게 아니겠습니까. 따뜻한 마음씨에 왈칵 눈물이 솟을 뻔했습니다. 물론 나는 할아버지의 커피를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다 마셨지만 말입니다.

 

할아버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길게도 나누었습니다. 과학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의 일자리가 줄어드는 현실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인구가 급격하게 감소하는 추세를 짚으시면서 그런 현실이 오히려 다행이라고도 하셨습니다. 다만 젊은이가 부족한 게 문제라면서 똑똑하고 성실한 젊은 인재를 외국에서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도 하셨죠. 한민족이니, 단일민족이니 운운하는 건 오만함의 극치라는 말씀도...

 

"살아온 날들이 마치 꿈만 같아." 하시는 말씀을 끝으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석양빛을 따라 할아버지의 시선은 아스라이 멀어졌습니다. 우리는 결코 간단하지 않은 하루를 아주 가볍게 통과한 듯 생각하지만 그것은 마치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는 사실을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나 깨닫게 되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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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9-12-24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꼼쥐님, 2019년 서재의 달인 북플마니아 축하드립니다.
올해도 좋은 이웃이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크리스마스 되세요.^^

꼼쥐 2019-12-27 11:03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답글이 너무 늦었죠? 제가 이렇게 무심해서... 이따금 알라딘에 접속할 때마다 알라딘 서재 인기글에 올라온 서니데이 님의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저야말로 서니데이 님이 좋은 이웃으로 남아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다가오는 새해에도 좋은 글 많이 올려주세요.
 
김진애의 도시 이야기 - 12가지 '도시적' 콘셉트 김진애의 도시 3부작 1
김진애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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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김진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그녀의 괄괄한 목소리와 화통하고 시원시원한 성격이 아닐까 싶다. 물론 직접으로 대면한 적도 없고 그저 방송으로만 접하는 제한된 조건 속에서 주관적으로 유추하는 바이지만 나는 그렇게 느꼈고, 그녀를 방송에서 보았던 주변 사람들의 반응도 나와 비슷한 듯 보였다. 숨기는 게 없이 뭐든 다 드러낼 것 같은 그녀의 털털한 성격 탓에 공부에 있어서도, 일에 있어서도 허당기가 가득할 것처럼 보이지만 그녀의 말을 자세히 들어보면 웬걸 꼼꼼하기 이를 데 없고 철두철미한 성격이라는 걸 짐작케 한다. 30대에 미국 MIT 도시계획 박사 학위를 받은 것만 보아도 얼마나 치열하게 공부했을지 가늠케 되지만 말이다. 아무튼 겉으로만 보이는 그녀의 모습과 일과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드러나는 그녀의 성격이 이토록 천양지차로 다르다는 건 한 인간으로서 그녀가 갖는 매력이 차고 넘쳐난다는 걸 의미하며 다양한 스펙트럼의 사람들과도 격의 없이 지낼 수 있는 친화력을 지닌 인물임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책을 쓰는 나의 태도 역시, '어떻게 도시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서 관심을 끌어내느냐? 어떻게 많은 사람들이 도시 이야기에 흥미를 가지게 만드느냐?'. 사실은 전문가로서 내 평생 일관한 태도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흥미를 가질수록 좋은 도시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믿기 때문이다. 물론 도시 이야기에 담긴 사람 이야기가 얼마나 흥미로운지, 인간의 오욕칠정이 버무려진 도시 공간이 얼마나 즐거울 수 있는지, 때로는 얼마나 큰 재앙으로 치달을 수 있는지, 이야기 그 자체의 흥미만으로도 독자들을 사로잡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p.9 '프롤로그' 중에서)

 

이과 계통의 전문가가 쓴 책 치고 그 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책을 다 읽어내기도 힘들 뿐만 아니라 설사 다 읽었다 하더라도 읽은 후의 느낌이 재미있었다고 말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거의 없다고 보아도 틀린 말은 아닐 듯싶다. 그러므로 학교 교재나 도서관에 비치하기 위한 특정 분야의 참고용 도서가 아니라면 이과 계통의 전문가가 일반인을 상대로 자신이 전공한 분야의 책을 내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오히려 열악한 환경을 딛고 자신이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왔는가를 말하는 자기계발서를 쓰는 게 유리하다고 느끼고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그런 류의 책을 출간하곤 한다.

 

중언부언 서론이 길어지기는 했지만 결론적으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 책이 도시계획 전문가인 김진애 박사가 자신의 전공 분야를 다루면서도 일반인들이 읽어도 전혀 거부감이 들지 않을 정도의 가독력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스토리텔링으로서의 도시 이야기가 어떻게 설득력을 획득하는가? 하는 문제는 도시계획 전문가로서 저자 자신이 갖는 지식과 도시에 사는 일반 시민으로서의 다양한 경험과 다방면에 걸친 관심이 책의 곳곳에 녹아 있음으로 인해 책을 손에 든 독자들 역시 책을 쉽게 내려놓지 못하는 게 아닌가  싶다.

 

우리는 사실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에 대해 그닥 관심이 없다.  관심이 없다 보니 물론 아는 바도  없고, 자세히 알아보고자 하는 의욕도 없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도 있듯이 저자는 일반인이 도시를 체계적으로 알기 위한 방안으로 '도시적 콘셉트'12가지로 분류하고 각각의 콘셉트에 대해 자신의 직접적인 경험과  책에서 읽었던 간접적인 경험을 추가함으로써 독자들의 흥미를 더하고 있다. 저자는 다만 책에 등장하는 도시 공간들에 관해서 상세하게 설명하지 못한 점을 한계로 지적하기도 하고, 독자들이  '도시적 콘셉트'에 익숙해짐으로써 도시를 보는 눈에 좀 더 구조적 시각이 갖춰지리라는 기대를 드러내기도 했다.

 

"우리는 어디에 있든 폴리스를 만들며 살 것이다. 폴리스는 어디에나 있을 수 있다. 그래서 더욱 도시적 삶의 지속을 가능케 하는 '도시적 콘셉트'를 익혀야 할 것이다. 익명성, 권력, 기억과 기록, 예찬, 대비, 스토리텔링, 코딩과 디코딩, 욕망과 탐욕, 부패에의 유혹, 현상과 구조, 돈과 표, 진화와 돌연변이, 이 콘셉트들을 우리의 도시에서 어떻게 해석하고 녹여내느냐에 따라 우리의 도시 이야기는 풍요로워지고 우리의 도시적 삶은 풍성해질 것이다." (p.309 '에필로그중에서)

 

최근에 나는 시골 여러 곳을 다니면서 그곳에 정착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곳의 토착민과 외지인들과의 갈등, 화합에 대해 듣고 인간관계의 다양한 면을 분석하고 있다. 어찌 보면 이는 장기간 우리가 도시에 체류하면서 시나브로 체득한 도시적 사고방식과  삶의 태도, 문화적 습성 등이 원래부터 그곳에서 나고 자랐던 시골 사람들의 그것들과 충돌함으로써 발생하는 문화 충돌의 성격이 짙음을 실감한다. 예컨대 자신의 사생활을 반드시 지키고자 하는 외지인과 너나들이를 하면서 가족처럼 지내는 시골 토착민들과의 사고방식은 꽤나 큰 것이어서 마을 구성원 중 외지인이 많은 동네는 도시인들처럼 서로 반목하면서 지내기도 하고, 반면 토착민이 많은 마을에서는 외지인이 제대로 정착을 하지 못해 채 3년을 넘기지 못하고 떠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게다가 시골에 이사를 온 외지인이 집을 대궐 같이 지어 놓고 원주민들을 무시하는 듯한 고압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경우 눈꼴이 시어서 못 봐주겠다고 말하는 어르신들도 여럿 만났었다.

 

우리는 이따금 도시 생활에 싫증이 나거나 도시인들과의 관계에서 지나친 스트레스를 받을라치면 입버릇처럼 '시골에나 가서 살까?' 하는 말을 내뱉곤 한다. 그러나 정작 시골살이가 얼마나 힘들다는 걸 몸소 체험한 사람들은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도시인들이 자신의 태도나 사고방식을 바꾸지 않는 한 시골살이는 결국 실패로 끝날 확률이 높다는 사실이다. <김진애의 도시 이야기> 역시 그와 같은 맥락이 담겨 있다. 자신이 사는 도시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주거 기간이 아무리 길어진들 영원한 이방인으로 지낼 수밖에 없다는 사실. 그것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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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 밖에서 놀게 하라 - 세계 창의력 교육 노벨상 ‘토런스상’ 수상 김경희 교수의 창의영재 교육법
김경희 지음 / 쌤앤파커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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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실상부 창의력 교육의 최고 권위자이자 '영재교육'으로 유명한 윌리엄메리 대학교 종신교수이기도 한 김경희 교수의 저서 <틀 밖에서 놀게 하라>는 아이를 둔 부모라면 누구에게나 일독을 권하고 싶을 만큼 유익한 책이지만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과연 이 책을 읽은 부모가 자신의 아이들을 교육함에 있어 책에 적힌 방법대로 실천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부모가 과연 몇이나 될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하는 그런 책이다. 특히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교육열이 높은 한국에서 과연 이 방법이 통하기나 할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을 읽고 책에 있는 저자의 교육 방법을 따라 한다는 건 일종의 용기가 아닐 수 없다.

 

"아이는 틀 밖에서 놀아야 한다. 틀 밖에서 공부를 놀이처럼 해야 한다. 이미 구세대가 된 엄마의 틀, 육체적 활동의 틀, 정신적 사고의 틀, 주입식 교육의 틀 밖 말이다. 한국 교육제도의 '틀'은 교과서에 쓰여 있는 내용을 주입하고, 정답이 아니면 오답인 단순하고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을 필요로 한다. 대학 입시를 최종 목표로 향해 달리는 경주마 교육을 한다. 이러한 교육제도는 아이가 공부를 일처럼 하게 만들고, 그 틀 안에 갇힌 아이를 평생 '일'만 하는 사람으로 자라게 한다." (p.15 '프롤로그' 중에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우리 아이들의 창의력을 신장시키겠다는 일념으로 집필했다는 이 책의 주요 내용은 CAT 이론을 바탕으로 부모가 아이의 창의력을 키워줄 수 있는 '창의영재 교육법'에 집중하고 있다. 요즘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자주 듣게 되는 '4차 산업혁명'과 '창의력'은 우리가 전에는 겪어보지 못한 커다란 변화에 적응하고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적절한 방안이라는 건 잘 알고 있지만 아이를 위해 구체적으로 준비하고 하나하나 실천해가는 부모는 많지 않을 것이다. 저자는 이를 감안하여 창의력 교육에 대한 모든 것, 말하자면 창의력 교육의 'A to Z'를 소개한다. 'Part. 1 창의력을 키우는 햇살, 바람, 토양, 공간, Part. 2 멀리 보는 아이로 자라는 ION 사고력'의 2부로 구성된 이 책은 각각의 장마다 부모를 위한 요약과 팁을 제공함으로써 그동안 창의력에 대해 어설프게 공부했거나 숫제 들어본 적 없는 부모들이라도 어려움 없이 접할 수 있도록 배려한 점이 좋았다. 게다가 창의력 백과사전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자세한 설명과 예시가 곁들여져 있다.

 

"창작물의 가치를 위해서는 목표 의식적 태도와 철저한 태도를 포함한 바람 태도 및 토양 태도가 필요하다. 그리고 창작물의 색다름을 위해서는 튀는 태도와 당돌한 태도를 포함한 햇살 태도 및 공간 태도가 필요하다. 어느 태도 하나가 넘치거나 부족해서는 안 된다. 우리 아이를 창의영재로 키워내기 위해서는 이 책에서 설명한 27가지 창의적 태도가 모두 필요하다." (p.366 '에필로그' 중에서)

 

책에서는 주로 아이의 교육을 담당하는 엄마의 변화를 주문하고 있다. 주변 환경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는데 엄마의 태도나 학습법은 변한 게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엄마들의 교수법은 왜 수십 년째 변하지 않는가? 말하자면 틀 안에서의 교육만 고집하는 걸까? 나는 이것에 대해 몇 가지 이유를 말하고 싶다. 첫째는 주변의 대다수 부모들이 채택하는 교육 방법으로부터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그럴 만한 용기도 없고, '아이가 혹시라도 잘못된다면...' 하는 우려에 대해 책임질 만한 배짱도 없는 것이다. 둘째는 아이의 항변에 대비하기 위한 일종의 자구책으로서 기존의 방식을 답습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대다수 부모들이 아이에게는 철저히 속이고 있는 이유이기도 한데, 이를테면 아이가 자라서 성인이 되었을 때 부모의 잘못된 교육법을 탓하기라도 할라치면 그에 대한 방어 논리로 우리는 어려운 형편에도 불구하고 너를 위해 이런저런 학원도 보내고, 전문가의 상담도 받고 필요한 모든 것을 했노라고 조목조목 반박할 근거를 마련한다는 점이다. 셋째는 아이를 학원에 보내지 않고 엄마가 공부하여 취득한 학습법과 이를 바탕으로 작성한 나름의 스케줄에 따라 아이와 시간을 보내고 싶지만 그러자면 엄마의 시간은 온전히 아이를 위해 바쳐져야 하기 때문에 그것이 너무 힘든 것이다. 나는 사실 더 많은 이유를 말할 수도 있지만 나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아이를 키우고 있는 대한민국의 보편적 부모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까닭에 더 말해봐야 누워서 침 뱉는 격이 아닐 수 없다고 생각한다.

 

"창의력은 IQ와 상관이 없다. 자신이 아주 잘 할 수 있는 한 가지만 있으면 된다. 대단히 가치 있는 상상은 어느 날 갑자기 마법처럼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었을 때, 그 지식을 바탕으로 터져 나오기 때문이다." (p.264)

 

고등학교 1학년인 아들은 지난 금요일부터 기말고사를 치르고 있다. 부담이 될 줄 뻔히 알면서도 나는 궁금증을 이기지 못해 첫날 본 시험이 어땠느냐고 물었다. 국어 시험을 보았는데 난이도는 높지 않은 것 같았는데 서술형 답안을 작성할 때 시간이 부족했을 정도로 지문이 길고 복잡했었다는 아들의 대답이 돌아왔다. 학교에서는 몰랐는데 집에 와서 확인해보니 객관식 문제 하나를 틀린 것 같다는 솔직한 고백과 함께. 이런 환경에서 아이의 창의력이 길러질 리 없다는 걸 잘 알지만 당장 눈앞의 불을 끄고 싶은 게 부모의 욕심이기도 하다. 아이의 창의력을 높이는 교육은 사실 부모의 인내력과 용기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아이의 교육에 대한 지식은 차후의 문제라고 보아야 한다. 말하자면 교육에 대한 부모의 가치관이 정립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유익한 지식도 큰 도움이 되지는 못한다. 아들은 다음 주에 있을 시험공부를 한답시며 일찍부터 밖으로 나가고 없다. 나를 피하기 위한 일종의 자구책이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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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을 말해줘
이경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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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 직면한 가장 큰 위협을 평가하고 문명을 파멸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할지 검토하는 단체가 바로 어스 가디언즈이다. 그들은 이따금 조만간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10가지의 위협을 공개하곤 하는데 그중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게 바로 바이러스로부터의 위협이다. 2017년의 발표에 의하면 1위가 '인공지능의 폭주', 2위는 '합성 생물 공학에 의한 판데믹'으로 자기 복제 능력이 있는 바이러스의 '기능 획득'과 생명공학 연구소 직원의 실수 혹은 돌발행동에 의한 바이러스 유출을 심각한 위협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 외에도 3위는 'AI 무기를 소유하는 민병대', 4위는 '핵전쟁의 발발', 5위는 '극단적인 기후 변화로 인한 인프라의 황폐 등이 있으며 '기근으로 인한 식량 부족'이나 '폭군의 등장'도 있다.

 

물론 이러한 가능성은 반드시 일어난다기보다 일어날 가능성에 중점을 둔 연구 보고서이지만 실제로 중국에서 얼마 전에 있었던 페스트 환자의 발생이라든가 국내에서도 있었던 아프리카 돼지열병, 항생제가 잘 듣지 않는 병원 내성균에 감염돼 사망하는 환자의 수 증가 등 바이러스의 위협은 어떤 가능성의 차원이 아니라 상존하는 위협인 게 사실이다. 일본 국립국제의료연구센터병원 연구팀의 연구 보고서에 의하면 내성균 감염으로 인한 사망자수가 연간 최소 8000명에 이른다고 하니 결코 가벼이 취급할 위협이 아닌 것이다.

 

제13회 김유정 문학상을 받았던 이경 작가의 첫 장편소설 <소원을 말해줘>도 그와 같은 가능성에서 출발했는지도 모른다. SF소설이라는 게 모름지기 미래의 어느 시점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을 현시점에서 오직 작가의 상상력에 의존하여 펼쳐내는 이야기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장르소설에 대한 선호도가 빈약하고 작가층도 두텁지 않은, 말하자면 SF소설의 지지기반이 약한 우리나라에서 SF소설을 내놓는다는 건 일종의 모험이자 도전일지도 모른다.

 

"전설 속 거대한 뱀 '롱롱'을 찾아 나선 파충류 사육사 '그녀'와 방역 센터의 입소자들. 허물에 덮인 그들이 롱롱과 마주치는 순간, 도시를 움직이는 거대 제약 회사의 충격적인 음모가 드러난다. 작가의 압도적이고 독창적인 상상력으로 구축된 거대 도시. 재난과 질병에 포위된 인간의 극한 공포. 그리고 생존을 위한 단 하나의 간절한 '소원'!" (표지글)

 

소설의 주인공인 '그녀'는 파충류 사육사이다. 티셀 바이러스에 감염된 엄마로부터 태어난 그녀 역시 온몸이 허물에 덮이는 피부병에 시달리다 결국에는 치료 병동에 수감된다. 거대 제약회사가 지배하는 인구 50만의 기획 도시에 사는 '그녀'는 석 달전까지만 하더라도 파충류 사육사였지만 산사태로 동물원이 무너지면서 직업을 잃었다. '그녀'는 비단뱀을 찾아 D구역으로 간다. 뱀의 허물 같은 각질이 온몸을 뒤덮는 풍토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 피부병을 앓는 사람들이 자신의 몸을 드러낸 채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곳. 그곳 사람들은 전설 속 거대뱀 '롱롱'이 허물을 벗으면 세상의 모든 허물이 벗겨진다고 믿고 있다.

 

허물을 벗기 위해 입소했던 방역센터에서 '그녀'는 김과 후리, 뾰족 수염과 척을 만나게 되고 거대 뱀이 사는 곳의 위치를 알게 된 그들은 폐허가 된 궁의 아궁이에서 거대 뱀을 꺼내 D구역의 끝에 위치한 김의 재생타이어 가게로 간다. 그곳에는  항공 타이어가 긴 동굴처럼 이어져 있었고 그곳에 거대 뱀을 숨긴 채 허물을 벗을 때까지 기다리기로 한다. 그러나 그들이 마주하게 된 것은 도시정부와 거대 기업이 모의한 충격적인 음모였다.

 

"공포가 이념이 되고 , 이념이 공포를 강화시켰다. 그 불행한 순환 속에 유일하게 실재하는 건 허물 뿐이었다. 공 박사는 시민이 아니라, 시민들의 허물이 불행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p.277)

 

허물을 벗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망과 그 욕망에 판타지를 심어준 거대 기업과 도시정부의 음모. 그러나 그들이 마주한 진실 앞에서 인간의 적나라한 욕망의 실체가 드러나고 소설은 끝을 향해 가는데...

 

"롱롱에게로 흘러든 수많은 소망들, 롱롱의 몸속으로 들어간 엄마와 노파, 노파의 모친과 다른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들, 롱롱은 그 모든 것들이 살아 꿈틀거리는 장대한 몸뚱이였다.  시간의 지류 같은 이야기들이 흘러들어 가는 사이 허물이 생기고 허물을 벗고, 마침내 롱롱은 거대한 시간의 강으로 흘러야 했다. 마침내 세상의 모든 허물을 벗기는 신이 돼야 했다."

(p.294)

 

어쩌면 우리는 지금 이 시각에도 자신의 허물을 벗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신의 허물을 스스로 벗어던질 수 없는 우리는 우리를 대신할 거대 뱀 롱롱을 기다리면서 그 판타지 속에 우리의 욕망을 숨기고 잇는 것은 아닐까. 나는 소설을 읽는 내내 현대의 많은 사람들이 앓고 있는 아토피를 떠올렸다. 그 많은 사람들이 앓고 잇으면서도 이렇다 할 치료제는 내놓지 못하는 걸 보면 아토피는 일종의 문명병이 아닌가. 가려움으로 인해 피가 뚝뚝 떨어지는 걸 보면서도 밤새 자신의 피부를 긁어대는 무서운 병. 작가는 어쩌면 이 시대의 천형은 인간의 욕망이 빚어낸 거대 기업의 음모에서 비롯될지도 모른다고 추정하고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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