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동네 100호 - 2019.가을
문학동네 편집부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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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집스러운 계절을 살아내자면 때로는 나 죽었소 하고 우직하게 버티는 것도 필요할 터, 겨울은 우리에게 그런 시간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올 겨울은 날씨의 변화가 어찌나 심하던지 우직하게 버티는 것은 고사하고 시시각각 변하는 날씨 탓에 발 빠르게 적응하느라 진땀이 날 정도이니 인내를 배워야 할 계절에 도리어 변덕이 팥죽 끓듯 하는 기분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산다는 게 이렇듯 어찌할 수 없는 외부 요인에 따라 이리 흔들 저리 흔들 요동치는 걸 보면 인간의 자유의지란 한낱 뜬구름 잡기에 그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계간 문학동네(2019년 가을호)>에 실린 강화길의 소설 '음복(飮福)'은 우리가 속한 사회의 전통이나 문화가 구성원을 얼마나 옥죄고 끊임없는 자기 검열에 시달리게 하는가 하는 문제를 단편소설이라는 짧은 글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것은 사회 구성원에게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날씨라는 외부요인과는 확연히 다른, 가부장제 사회에서의 남녀 차별의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문화라는 이유로, 전통이라는 명목 하에 수백 년 동안 이어져온 우리 사회의 부조리한 민낯은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에게 부끄러움을 안겨준다.

 

"누군가를 미워해본 적도 없고, 미움받는다는 것을 알아챈 적도 없는 사람. 잘못을 바로 시인하고 미안하다고 말하는 사람. 너는 코스모스를 꺾은 이유가 사실 당신 때문이라는 걸 말하지 못하는 사람도 아니고, 누가 나를  이해해주냐는 외침을 언젠가 돌려주고 말겠다는 비릿한 증오를 품은 사람도 아니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 손을 잡을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아니지. 그런 얼굴을 가진 사람이 아니야. 그래. 그래서 나는 너를 사랑했다. 지금도 사랑한다. 때문에 나는 말하지 않기로 했다. 사실 네가 진짜 악역이라는 것을."

 

2020 젊은작가상 대상 수상작이기도 한 이 작품은 소설을 읽는 독자들에게 선명한 색채로 각인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등장인물도 많지 않고, 이렇다 할 친절한 설명도 한 줄 없는데 독자들은 마치 일간지 1면에 실린 메인 사진을 보고 있는 것처럼 소설의 구도와 주제를 선명하게 떠올리는 것이다. 더 이상 보태거나 뺄 것이 없는, 말하자면 군더더기가 없는 명징한 문장이 독자들로 하여금 한 컷의 사진과 같은 뚜렷한 이미지를 만들어내게 한다.

 

소설의 주인공인 '(세나)'7년여의 연애 끝에 결혼한 새색시이다. 결혼 후 첫 시댁 제사에 참석한 '''남편(정우)'. ''는 시조부의 제사상에 올려진 낯선 음식과 ''를 향한 시고모의 날 선 감정의 근원을 추적한다. 20년 넘게 간호사로 근무했던 시어머니는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 넘치고, 그에 반해 말씀이 없으신 시아버지, 치매를 앓고 있는 시조모 등 시고모의 입장에서 새 식구인 자신에게 적대감을 가질 만한 특별한 이유를 찾지 못한다. 제사가 끝나고 끝나고 음복을 하는 자리에서 듣게 된 시조모의 한마디로 인해 ''는 모든 상황을 이해한다. 공부도 잘하는 시고모의 딸 정원이 약대를 가기 위해 재수를 한다고 했을 때의 기억을 아직 잃어버리지 않고 있었던 시조모. ", 너 정원이 재수시키지 마라. 주제를 알아야지. 지가 무슨 약대를 간다고."

 

그랬다. 철저한 가부장제 전통을 유지하고 있는 시댁은 남편이 좋아한다는 이유로 낯선 음식을 제사상에 올릴 수도 있고, 남편의 기가 꺾일까봐 또래의 여자 사촌이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하도록 막을 수도 있었다. 남편(정우)을 향한 시고모의 적대감은 고스란히 내게 쏟아졌고, 남자라는 이유로 자신도 모르게 체득한 특권을 마음껏 누려온 남편은 타인의 눈치를 보았던 적도, 그럴 필요도 느껴보지 못했던 까닭에 고모의 차가운 시선도 감지하지 못한 채 그토록 해맑을 수 있었던 것이다. 타인의 감정쯤이야 몰라도 되고 무시해도 되는 권력, 우리는 그와 같은 무지를 '선택적 무지'라 부른다. 가정 내에서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는 무지한 권력자와 생존을 위해 언제나 권력자의 눈치를 살펴야 했던 피지배자의 삶은 어느 한 대에서 그치지 않고 끝없이 대물림된다. 전통이라는 명목으로.

 

많이 변했다고는 하지만 가정 내에서의 권력은 여전히 남자에게 쏠려 있다. 그것만은 사실이다. 우리나라 남성의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이유도 그와 같은 권력 구조에서 비롯된 '선택적 무지' 탓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폐습이 지속되는 이유를 남성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일정 부분 여성의 역할이 크기 때문이다.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는 말도 그러한 맥락에서 나온 듯하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성인지 감수성(혹은 젠더 감수성)이 높아지지 않는 한 이와 같은 불평등 구조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선택하는 것도 아닌데 성별에 의해 어떤 천부적 특권을 누린다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 게 아닌가. 변화의 시작은 언제나 잘못을 깨닫는 데서 출발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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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만 틀면 온통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관련 소식이다. 국내의 잡다한 소식들을 순식간에 빨아들이는, 말하자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뉴스의 블랙홀과 같은 역할을 하는 셈인데 일견 잘됐다는 생각도 들긴 한다. 들어도 그닥 도움이 되지 않는(때에 따라서는 기분마저 더러운) 잡다한 소식들이 한꺼번에 묻혀버리기 때문이다. 교수직을 박차고 나와 낄 때 안 낄 때 구분도 하지 못하고 횡설수설하는 진모 씨의 객소리도 뉴스가 되는 세상이니 그런 소식들이 뉴스에서 사라진다는 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게다가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던 검찰발 기소 소식도 아득히 먼 이야기인 양 아득한 과거로 만들어버렸으니 이 모든 게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위력(?)임을 감안할 때 고맙고 반갑기도 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 우려되는 점은 중국인에 대한 과도한 혐오 감정과 저만 살고자 하는 지나친 이기주의가 아닐까 싶다. 평화를 사랑하고 인류애를 지닌 한민족의 전통은, 유구한 역사 동안 면면히 이어오던 '()의 문화'는 작금에 이르러 한꺼번에 사라진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우한에 체류하던 교민의 귀국을 저지하기 위해 트랙터를 동원하여 진입로를 막았다는 소식도, 중국인의 입국을 막아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도 도대체 이 사람들이 제정신인가 하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는 소식이었다. 자신의 일가친척이라면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싶은 것이다. 길을 가던 길 잃은 강아지도 어디가 아파 보이면 병원에 데리고 갈 판에 같은 인간으로서 그들의 아픔쯤은 거들떠도 보지 않겠다는 심보는 도대체 뭔가.

 

자연을 파괴하고 인간의 영역이 넓어지면서 신종 바이러스는 계속하여 생겨날 터, 그때마다 우리는 발병지의 주민들을 통제하고 나 혼자만 잘살겠노라고 선언할 텐가. 세계 어느 나라도 하루면 닿을 수 있는 글로벌한 세상에서 그와 같은 발상을 한다는 건 철이 없어도 너무나 철이 없는 유아기적 행동이 아닌가. 그리고 그런 철부지 행동을 아무런 비판도 없이 대대적으로 선전하는 언론은 또 뭔가. 그러니 기레기 소리를 들을 수밖에. 기가 찰 노릇이다. 비싼 말을 사준 대가로 삼성 이재용의 이익을 위해 국민의 건강은 안중에도 없고 쉬쉬하며 숨기기에 급급했던 박근혜 정권의 메르스 사태 때도 우리 국민의 인간성이 이보다 더 심하게 망가지지는 않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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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2019 제43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김초엽 지음 / 허블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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궂은 날씨였다. 길지 않았던 설 연휴를 시샘하듯 온종일 지척지척 겨울비가 내렸고, 바람마저 사뭇 거칠었다내내 어두웠기에 실내에서도 하릴없이 불을 밝혔다. 안온한 우울이 축축하게 묻어나는 오후, 아슴아슴 쏟아지는 졸음을 억지로 쫓아가며 책을 펼쳤다. '그래, SF 소설을 읽기에는 더없이 좋은 날씨지.' 하는 생각이 슬몃 들었던 것이다. '미래를, 혹은 과학을 논한다는 건 언제나 황량한 느낌이 들게 마련이니까. 메마르고 거친 느낌을 중화하는 데는 역시 오늘처럼 비가 내리고 끈적끈적한 우울이 방안 가득 퍼지는 날씨가 좋지.' 가족들과 헤어져 숙소로 복귀했던 나는 그렇게 내처 책을 읽었다. 쓸쓸함을 넘어 청승맞은 느낌마저 감도는...

 

김초엽의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구매했던 건 열흘도 더 지난 일이었다. 메마른 날씨로 인한 건조한 분위기 탓이었던지 아니면 일이 바쁘다는 핑계가 발목을 잡았던 것인지 좀처럼 독서에 속도를 붙이지 못했던 나는 두 자리 숫자의 페이지를 겨우 넘긴 채 책상 위에서 이리 뒹굴 저리 뒹굴 위치만 바꿔놓고 있었다. 그렇게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할 듯한 위기를 겨우 막았던 건 어제의 궂은 날씨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우울한 감정이 덕지덕지 달라붙는 그런 날씨에 혼자라는 외로움과 커피 한 잔이 더해져 나는 그만 우울함에 취해 정신마저 몽롱해진 기분이었다.

 

"소비가 항상 기쁨에 대한 가치를 지불하는 행위라는 생각은 이상합니다. 어떤 경우에 우리는 감정을 향유하는 가치를 지불하기도 해요. 이를테면, 한 편의 영화가 당신에게 즐거움만을 주던가요? 공포, 외로움, 슬픔, 고독, 괴로움…… 그런 것들을 위해서도 우리는 기꺼이 대가를 지불하죠. 그러니까 이건 어차피 우리가 늘 일상적으로 하는 일이 아닙니까?" (p.214 '감정의 물성' 중에서)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는 표제작인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비롯하여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스펙트럼', '공생 가설', '감정의 물성', '관내분실',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 등 일곱 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포스텍 화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생화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는 김초엽 작가는 1993년생이라는 어린(?) 나이에 비해 지극히 세련되고 정제된 문장과 자신의 전공을 십분 살린 전문적 과학 지식을 바탕으로 독자들에게 멋들어진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장르소설로 분류되는 SF소설은 몇몇 마니아 집단을 제외하면 독자층이 그닥 두껍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SF소설이라는 형식을 빌려 인간 존재의 문제를 근원적으로 파헤치는 테드 창과 같은 걸출한 작가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나 역시 테드 창의 작품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SF소설 마니아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SF소설이라면 기본적으로 우리가 살아보지 못할 세상, 다음 세대나 그다음 세대나 겨우 살아볼 수 있는 세상을 지금 세대가 겨우 맛보기로 미리 앞당겨 살아보는 것이기에 인간 생명의 유한함에 대한 한탄 혹은 인생 자체의 덧없음을 말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고를 철학적 전제로 하는 SF소설은 소설 전반에 흐르는 감정이 '우울'일 수밖에 없고, 나 역시 비슷한 성향의 인간이고 보니 SF소설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게 당연할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슬렌포니아에 갈 수 있지 않을까, 일말의 희망을 기다리는 것이지. 언젠가는 이곳에서 우주선이 출항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언젠가는 슬렌포니아 근처의 웜홀 통로가 열리지 않을까……. 자네에게는 흘러가는 시간이 붙잡지 못해 아쉬운 기회비용이겠지만, 나 같은 늙은이에게는 아니라네." (p.177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중에서)

 

김초엽의 소설은 SF소설의 기본적인 특성을 잘 살린, 말하자면 기본기에 충실한 소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만 하더라도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안나는 냉동 수면의 '안티프리저'라고 불리던 유기물질 혼합 용액을 연구하던 과학자로서 남편과 아들을 먼저 외계 행성인 슬렌포니아로 떠나보내고 혼자 지구에 남아 남은 연구를 계속하다가 과학의 발전으로 슬렌포니아로 가는 항로가 영영 끊겨버려 가족들과 생이별을 하게 된 불쌍한 노인이다. 자신이 개발한 딥프리징 기술을 통해 동결과 해동을 반복하면서 슬렌포니아로 가는 우주선이 출발할 날만을 손꼽아 기다려왔던 안나는 오늘도 폐기 예정인 우주 정거장에서 슬렌포니아로 가는 우주선을 기다리고 있다. 삶의 영역이 우주로 확장되었지만 인간의 생명이 유한한 것도, 과학의 발전이 인간에게 반드시 기쁜 일만 선사하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 책을 읽는 독자들을 우울하게 만든다.

 

이와 같은 분위기는 다른 작품에서도 감지된다. '스펙트럼'에 등장하는 할머니 과학자도, 공생 가설에 등장하는 류드밀라도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잊혀진 과거에 대한 그리움과 동경을 잊지 않는다. 과학이 비록 인류에게 희망과 가능성을 제공하고는 있지만 사랑과 그리움의 정서를 되살리지는 못한다는 것을 곰곰 되새기면서.

 

"순례자들은 누구를 사랑했을까. 그들은 남미에, 서부 미국에, 인도에, 모두 흩어져서 살겠지. 그들은 아주 다채로운 모습으로 여러 방식의 삶을 살겠지. 하지만 그들이 어떤 모습이건 순례자들은 그들에게서 단 하나의, 사랑할 수밖에 없는 무언가를 찾아냈겠지." (p.53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중에서)

 

SF소설이라는 게 본디 과학을 통해 한계 너머의 세상을 갈구하면서도 사랑, 희망, 그리움 등 인간 존재의 기본적인 속성을 이해하려 드는 것처럼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고자 하는 것과 한계 내에서 안주하려는 이중적인 속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므로 SF소설을 재미있게 읽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날씨가 중요하다고 믿는다예컨대 맑고 건조한 날씨에는 SF소설에 손이 가지 않다가도 어제처럼 추적추적 겨울비가 내리는, 방안 가득 우울이 내려앉은 날에는 내가 닿을 수 없는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멀고 먼 원시 과거의 누군가를 향해 따뜻한 악수를 청하고 싶은 것이다. SF소설은 그렇게 쓰이고, 또 그렇게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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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최대 명절인 설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1월에 맞는 이른 명절이어서인지 사람들의 반응은 대체로 시큰둥하다. 명절이니까 어쩔 수 없다는 식의, 반쯤은 시류에 떠밀려서 치르게 되는 명절인 셈이다. 아무 데도 가지 않고 집에서 그냥 밀린 잠이나 잤으면 좋겠다는 사람들부터 못 본 영화나 실컷 다운로드하여 밤 새 영화나 보았으면 좋겠다거나, 차를 몰고 몇 날 며칠 바닷가 일주를 했으면 좋겠다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명절에 바라는 작은 소망은 제각각이지만 그들도 어쩔 수 없이 부모님을 찾아뵙고, 의례적인 덕담을 주고받고, 더러 꼰대 소리를 들을 법한 위험한 발언을 서슴없이 내뱉기도 하고, 누구는 부동산으로 큰돈을 벌었다더라 하는 '카더라 통신'을 듣게도 되고, 이따금 정치 이야기로 얼굴을 붉히기도 하고, 느끼한 제사 음식에 신물이 날 즈음이면 명절 연휴는 크게 한 일도 없이 끝을 맺게 된다.

 

법무부의 정기 인사가 있었던 오늘, 내가 아는 모 검사도 자리를 옮겼다. 대한민국의 성인이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선출직 공무원은 임기 내에 자신이 이룬 성과에 의해 지지와 후원, 당선과 낙선이 가려지지만 임명직 공무원은 자신의 업무에 대한 인사고과에 의해 승진이나 유임을 할 수도 있고, 명퇴를 종용받기도 한다. 사실 최근에 있었던 일련의 사태를 보자면 임명직 공무원인 검사들 대부분이 좌천이나 감봉을 당해야 마땅하다고 보는 이들이 많다. 패트 사건만 보더라도 조사를 하는 둥 마는 둥 시간만 끌다가 자기들 멋대로 기소를 하고서는 결과랍시고 발표를 하는 꼬락서니는 그야말로 가관도 아니었다. 검찰총장으로 원숭이를 앉혀놓아도 그보다는 더 잘하지 않았을까 싶다. 채이배 의원 감금 사건에 적극 가담했던 여상규 의원을 불기소한 것은 물론 의안 접수 과정에서 골절상을 입었다는 이유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김승희·최연혜 의원 등 어떤 원칙도 없이 소위 꼴리는(?) 대로 법의 잣대를 들이댄 게 아닌가. 항간에서는 도둑질을 한 범인에게 도둑질 과정에서 조금 다쳤다는 이유로 검사가 기소유예 처분을 내린 꼴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적절한 예일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그뿐 아니다. 각종 의혹으로 10번이나 고발을 당한 나경원 의원에 대해서는 조사조차 하지 않은 채 시간만 끌고 있다. 게다가 생기부 불법유출을 한 주광덕 의원과 있지도 않은 사실을 시도 때도 없이 발표하는 곽상도 의원의 범죄에 대해서도 조사조차 하지 못한 이와 같은 업무 성과를 내고서도 승진을 바라는 자가 있다면 그야말로 도둑놈 심보가 아닌가.

 

명절을 앞두고 서울에서 지방으로 발령을 받은 검찰 인사들은 지방의 맑은 공기를 마시며 자신의 행위를 곰곰 되새겨볼 일이다. 양심에 비추어 잘못한 일은 없는지 말이다. 잘못된 인사라느니, 인사 파동이라느니 하면서 남 탓만 할 게 아니라 가슴에 손을 얹고 자신을 되돌아볼 시점이다. 인사 파동이 아니라 국민들의 기대에는 훨씬 못 미치는 미약하기 짝이 없는 인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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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잔상들
장혜령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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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브로 당신의 기억이 나의 기억 속으로 조용히 스며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은 서로의 기억과 기억이, 당신의 과거와 나의 과거가 서로의 갈피 속으로 거부감 없이 갈무리되는 것임을 증명하는 일입니다. 사랑에 무지했던 우리는 온 정성을 다해 상대방의 기억을, 흔하지 않은 과거를 서로의 기억 속에 더함으로써 살아가면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사랑이 더욱 풍성해질 수 있다는 걸 회상과 되새김을 통해 배우곤 했습니다. 아직 오지 않은 계절에 대한 살풋한 기대와 떨림이 알 수 없는 불안을 억누르는 동안 우리의 곁을 스쳐갔던 여러 계절들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오늘처럼 어둡고 이따금 물기 없는 눈이 흩어지듯 내리는 날, 장혜령의 에세이 <사랑의 잔상들>을 읽는다는 건 꽤나 운치 있는 일이지만 현실로 통하는 여러 통로들을 차단한 채 무작정 혼자가 되고 싶은 감정에 휘말리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현실로부터 한발 비켜선 듯한 느낌은 내가 마치 투명 망토를 입고 거리를 오가는 행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는 것 같기도 하고, 하늘 높이 두둥실 떠올라 까마득한 곳에서 현실 세계를 내려다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도 합니다.

 

"단 한 번도 지우개를 가진 적이 없었다. 생의 핵심을 그린 적도 없었지만 지우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지울 수도 없었다. 그런데 그걸 그린 캔버스는 어디에 있을까. 분명 우리는 매일 쉼 없이 어딘가를 오갔는데 그건 어떤 지도에도 표시된 적이 없다. 눈길 위에 새겨진 바퀴 자국, 차창에 부딪힌 새의 주검. 분명 우리는 지운 적이 없었다." (p.60)

 

학습을 통해 억지로 주입하거나 세월을 대가로 어렵게 얻어진 것들만이 우리의 기억 속에 있는 전부라고 믿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기억이 사랑이라는 전파를 타고 무한대의 용량으로 밀려와 내 기억 속에 너무도 쉽게 스며들었을 때, 그것은 마치 하나의 기적처럼 기억에 대한 나의 편견을 부숴버렸습니다. 단 몇 차례의 눈길과 작은 관심만으로도 그 많은 기억들이 내게 옮겨질 수 있었다는 사실이 나를 놀라게 했고, 처음으로 사랑에 눈 뜬 풋내기는 비로소 사랑의 기적을 믿게 되었습니다.

 

"사랑을 통해 우리는 타인의 한 점과 또다른 타인의 한 점이 만나는 이미지를 목격한다. 개별적인 삶을 살아왔던 것으로 보이는 두 개의 사건(언제나 축적된 시간 속에서, 그를 통해 존재한다는 점에서 인간은 곧 사건이다), 그러나 맞닿는 순간 서로의 과거를 포용한다. 포용한다는 것은 서로의 속내를 듣고 이해하거나 존중한다는 차원이 아니다. 두 개의 사건이 맞부딪친다는 것은 그런 차원을 넘어선다. 설령 물리적으로 과거가 공유되는 지점이 없다고 해도 말이다." (p.186~p.187)

 

작가 장혜령은 우리가 경험했던(혹은 경험했음직한) 보편적인 것들, 예컨대 여행, 사랑, 이별, 비밀, 독서, 영화, 사진, 그림 등을 자신만의 시선으로 기록함으로써 우리가 무심코 흘려버렸을 만한 것들을 가치 있는 어떤 것으로 승화시킵니다. 여행하는 사람/ 기다리는 사람/비밀을 가진 사람/ 칼을 놓는 사람/ 이별하는 사람/ 기억하는 사람/ 사랑 이후의 사람, 총 일곱 개의 챕터로 구성된 이 책은 출간이 기약되지 않은 채 습관적으로 써내려갔을 많은 글들이 경계와 틀을 허물고 세상 밖으로 나옴으로써 우리에게 스며들게 될 작은 기억들일지도 모릅니다.

 

"흔히 표현은 나로부터 먼 곳에서,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지점을 건드리는 데서 도래한다고 한다. 나는 그 말을 생각하며 표현에 다가가고자 했다. 내가 느낀 것을 쓰는 게 아니라 내가 본 것을 씀으로써 읽는 사람이 그 장면을 느낄 수 있으면 했다. 보는 것은 나이지만, 내 감정을 지우고 이미지를 남길 때 그 표현은 비로소 시에 가까워졌다. 그것은 나라고 적을 주어 자리에 타인이 머무를 자리를 마련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p.217)

 

예정에도 없었던 삶을 우리는 등 떠밀려 사는 격이지만 우리가 얻고 가는 한 줌의 기억들은 한낱 덤으로만 여겨지지는 않습니다. 기억은 곧 자신의 삶이라는 등가가 우리를 숙연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장혜령의 <사랑의 잔상들>을 읽는 순간, 작가의 십 년 세월이, 그 기억들이 우리의 기억 속으로 스며들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랑이라는 전파를 타고 무한대의 용량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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