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할수록 밝아지는 것들 - 혜민 스님과 함께 지혜와 평온으로 가는 길
혜민 지음 / 수오서재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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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자신의 과거는 판타지이고, 미래는 도박이라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물론 나의 생각이 전적으로 옳은 것은 아닐 테지만 말이다. 그러나 자신의 기억을 들추어보면 어느 것 하나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으며,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편집되거나 왜곡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 그러므로 개인의 과거는 대개가 판타지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미래는 어떤가. 아무리 용한 점쟁이도 한 치 앞의 미래도 알 수 없는 게 현실, 말하자면 우리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 다트 던지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운이 좋으면 자신의 다트가 높은 점수에 맞을 수도 있고, 운이 나쁘면 과녁 밖으로 벗어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타인의 삶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는 우리는 현실의 칼날 위에서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하고 있는 누군가를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새해가 되면 나도 모르게 마음을 가라앉히는 에세이나 명상 관련 서적 등 평소에는 잘 읽지 않던 책에 손이 가곤 한다. 새해가 되면 아무래도 들뜨고 거창한 욕심에 사로잡히게 마련, 이와 같은 책을 읽는다는 건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한 일종의 자구책일지도 모른다. 혜민 스님이 쓴 <고요할수록 밝아지는 것들>을 읽었던 것도 그런 맥락의 연장선이었다.

 

"지금부터라도 목표를 성취한 후에야 비로소 마음의 여유가 생겨 쉴 수 있을 것 같다는 그 생각을 내려놓자. 명상을 하듯 좀 더 현재에 집중하고 지금에 감사하면, 마음이 한결 덜 바쁘고 해야 하는 일의 과정도 즐기면서 할 수 있다. 행복하려면 먼 미래가 아니고 지금 여기서 행복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구하는 마음이 쉴 때 생각보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p.144)

 

6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1'나에게 집중하는 시간', 2'가족이라 부르는 선물', 3'삶을 감상하는 법', 4'우정의 여러 가지 면', 5'외로움에 관한 생각', 6'마음을 닦는다는 것' 등의 소제목으로 이루어져 있는 바장을 이루는 각각의 제목만 보더라도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대략적으로 짐작할 수 있을 듯하다. 책의 서문에서도 밝혔듯이 결국 스님은 책을 읽는 모든 독자가 '우리 안에 있는 고요함과 만나시기를 바라는 마음'인 것이다. 누구에게나 가장 가까우면서도 먼 존재는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고요함을 통해 ''와 만나고 진정한 ''를 발견한다는 건 새로운 삶을 개척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를 제외한 세상의 모든 사물은 ''의 눈을 통해 확인할 수 있지만 ''란 존재는 오직 생각과 관념만으로 파악할 수 있는 까닭에 진정한 ''를 발견한다는 건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살면서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은 어쩌면 내 문제점만을 지나치게 반복적으로 크게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 할수록 그 프레임 안으로 나를 더 견고하게 가두고 밖으로 나올 수 없게 만든다. 이런 땐 자기 생각에 빠져 있는 것보다 남에게 아주 작은 친절을 베풀어보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내가 쓸모없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나의 작은 도움으로 상대가 잘되는 모습을 보면 내 자존감도 올라가고 세상과의 연결감도 증가하게 된다." (p.169)

 

관찰이 아닌 생각과 관념만으로 ''를 객관적으로 이해한다는 건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자신의 생각과 관념의 틀로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한다. 그럼에도 내가 틀렸다는 생각은 잘 하지 않는다. 나의 시선이 비뚤어져 있거나 세상 사람들의 그것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면 궁극적으로 ''란 존재는 세상으로부터 소외될 수밖에 없다. 너무도 당연한 이치이다. 그러나 모든 잘잘못은 나의 외부에서만 찾을 뿐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려고는 하지 않는다.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마음을 어지럽히고 세상과 분리감을 만드는 주된 요인이 바로 생각입니다. 마음속에 올라온 생각에 집착하면서 그 속에 빠져 있으면 그 생각의 노예가 됩니다. 숨이 깊고 편안해질수록, 내 주위가 숨에 집중할수록 생각이 줄어들게 됩니다." (p.257)

 

수십 년을 겪어온 일이지만 번잡하고 시끄러운 것을 싫어하는 나로서는 연말 연초의 떠들썩한 분위기가 여전히 익숙하지 않다. 그럴 때면 나는 숲을 거니는 아침 산책 시간이 길어지곤 한다. 하루를 시작하는 청설모의 바쁜 움직임, 이따금 들리는 새소리, 산을 거슬러 올라오는 바람소리, 그리고 마음결을 따라 흐르는 여러 갈래 감정의 실타래... 이 모든 게 나를 통해 한꺼번에 발현된다는 게 때론 놀랍다. 해가 조금씩 길어지는 요즘, 산책을 마치고 돌아올 즈음이면 뿌옇게 여명이 밝아온다. 고요 속에서 또 하루가 시작되는 것이다늘 그런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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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든 개인이든 몰락의 시작은 무분별한 감정의 표출에서 비롯되는 듯 보인다. 미국이 이란에게 보여준 솔레이마니 사령관에 대한 표적 살인과 그에 대한 보복의 일환으로 취해진 이라크 미군기지에 대한 이란의 미사일 공격은 비단 어느 한쪽의 몰락으로 끝이 날 것 같지 않기에 하는 말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물론 서방 여러 나라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중동지역에서 미국의 전력이 최강이라고는 하지만 미국 본토와의 거리가 멀고 이란과의 핵합의 파기나 선제적인 공격에 대한 부당함을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가 공유하고 있는 만큼 동맹국에 대한 협조를 이끌어내는 것도 쉽지 않을뿐더러 중동지역에서의 반미감정이 확산되는 것도 미국에게는 불리한 점으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다혈질적인 면모를 그대로 드러낸 미국 최대의 실수라고 아니할 수 없다. 어쩌면 이번 사건으로 인해 미국과 이란 양국은 몰락의 길로 서서히 진입할지도 모른다.

 

그와 같은 예는 무수히 많지만 최근 국내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진중권 씨에 대한 논란도 한 예가 되지 않을까 싶다. JTBC 신년 토론회에 참여했던 진중권 씨는 자신의 몰락이 마치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 더 나아가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 의해 자행된 부당한 처우에서 비롯된 것인 양 세상에 대한 자신의 분노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말았다. 보기에 따라서는 부끄럽거나 참담할 정도로 추한 모습이었다.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시청자의 입장에서도 그러했으니 곁에서 지켜보던 유시민 이사장의 심정이야 오죽했을까. '인간이 이렇게도 처참하게 무너질 수 있구나!' 하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토론장에서 보여준 유시민 이사장의 태도가 꼭 옳았다고는 보기 어렵다. 자신을 공격하는 진중권 씨에 대해 적당히 화를 내고 맞장구를 쳐줘야 하는 게 옳은 태도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네가 어떤 말로 나를 공격해도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여유 있는 척, 자신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한껏 여유를 부린다는 건 감정을 표출하는 당사자의 심정을 더욱 참혹하고 수치스럽게 만들기 때문이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진중권 씨의 참담한 모습은 한 인간의 몰락을 여실히 보여준 안타까운 현장이었다.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절제하지 못한다는 건 자신의 감정에 그 사람의 이성이 통째로 잠식당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불교 경전 중 능엄경에 이르기를 "내가 손가락을 누르면 해인(海印)이 빛을 발하지만 그대가 마음을 움직이면 번뇌(煩惱)가 먼저 일어난다."고 했다. 인간이 오욕칠정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적어도 오욕칠정으로 인해 자신의 사람됨을 잃는다는 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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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영의 화해 - 상처받은 내면의 ‘나’와 마주하는 용기
오은영 지음 / 코리아닷컴(Korea.com)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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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한에 시작된 비는 하루가 지난 오늘도 이어지고 있다. 1월 상순의 일 강수량으로는 최고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는 소식. 물안개인지, 는개인지 뿌옇게 변한 하늘에서 종일 그치지 않고 비가 내렸다. 온화한 날씨에 보답이라도 하려는 듯 소란스럽지 않은 비가 말이다. 이렇게 부슬부슬 겨울비가 내리는 날엔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

 

내가 그를 만났던 건 지난해 늦가을의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오늘처럼 추적추적 비가 내렸고, 그는 난방도 잘 되지 않는 비늘하우스 안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있었다. 남자 혼자 하는 살림이야 늘 그렇듯 옹색하기 그지없는 것일 테지만, 그는 자신이 세운 나름의 원칙을 지키려는 듯 가재도구며 물건들을 하우스 가장자리를 따라 일렬로 줄을 맞춰 정리 정돈하려고 애를 쓴 흔적이 역력했다. 말하자면 그런 티가 났을 뿐 처음 방문한 나의 눈에는 가지런하다는 느낌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밖에는 비가 내렸고, 흙투성이가 된 그의 반려견이 겅중겅중 뛰는 통에 잠자리로 마련한 하우스 안의 장판 위에는 온통 개의 발자국으로 가득했고 손님이랍시고 찾은 내가 좁은 엉덩이 하나 마음 놓고 내려놓을 자리는 도무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먹던 밥과 반찬을 한쪽으로 치우는 동시에 반려견의 목줄을 채우느라 분주했다. 그리고 땟국에 전 걸레를 들어 미안할 정도로 여러 번 걸레질을 한 후 비로소 내게 자리를 권했다. 남양주에 살다가 귀향을 한 지 몇 달 되지 않았다는 그는 평생을 건설회사에서 일했다고 했다. 시골 생활을 꺼리는 부인은 어쩔 수 없이 남양주의 아파트에 살라고 하고 혈혈단신으로 귀향을 결심했다는 그는 슬하에 일남일녀를 둔 아버지이기도 했다. 장성을 하여 제 앞가림을 하는 자식들은 아버지의 결심에 그저 시큰둥할 뿐 별다른 의견은 내지 않았다고도 했다. 비닐하우스를 때리는 빗소리가 종일 이어졌다. 자신만의 비밀을 끝내 말하지 않던 그는 승진을 위해 영어 공부를 십 년, 이십 년 하다 보니 어느새 벌써 정년퇴직을 눈앞에 둔 나이가 되었더라며 시골에 내려와서 생각해보니 그 오랜 세월 동안 정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영어 공부에 왜 그렇게 죽자 사자 매달렸는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더라며 쓰게 웃었다.

 

그의 어두운 비닐하우스 한 귀퉁이에서 발견했던 책이 <오은영의 화해>였다. 책의 내용을 알 수 없었던 나는 책에 얽힌 그의 사연을 끝내 묻지 못했지만 정년 퇴임을 하기 전까지 부엌일이라고는 해본 적이 없다는 그가 누구의 도움도 기댈 수 없는 시골에서 몇 개월 동안 탈 없이 지낼 수 있었던 게 그저 신기할 뿐이었다. 그는 다만 자신의 아내와 자녀들을 언급할 때마다 얼굴에 언뜻언뜻 비치던 복잡한 심경을 객인 나에게도 결코 숨기지 못했다. 어쩌면 온종일 내리던 가을비 탓이었는지도 모른다.

 

"내일을 잘 살아가려면 오늘이 끝나기 전 ''를 용서하세요. '' 마음의 불씨를 끄는 것이 용서입니다. 오늘 생겨난 불씨를 오늘 그냥 꺼버리세요. 그 작은 불씨를 끄지 않으면, 불씨는 어느 틈에 불길이 되어 당신 마음의 집을 다 태워버릴지도 모릅니다." (p.318)

 

비가 시작된 어제부터 <오은영의 화해>를 읽었다. 정신과 전문의인 저자가 책을 읽는 독자에게 전하는 따뜻한 위로. 삶을 마감하지 않는 한 삶은 그저 살아지는 것이지만 인간이란 존재는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아서 우리는 때론 아무것도 아닌 일로 서로를 미워하기도 하고, 겉으로는 사랑한다면서 상대방을 원망하고, 진심이 아닌 이런저런 말들로 상처를 주기도 하고, 치유되지 않은 상처가 오래도록 자신을 괴롭히기도 한다. 정신과 의사는 어쩌면 인간의 불완전한 면을 조목조목 알려주는 사람들이 아닐까. 우리가 아는 그 누구도 완벽한 사람은 될 수 없는 까닭에 이따금 실수를 하고, 상처를 주고, 그 상처를 돌보지 않은 채 냉정하게 뒤돌아섰던 존재임을 저자는 말하고 있다. 그것이 설령 부모이거나, 다른 가족 구성원이거나, 존경하는 그 누구라 할지라도.

 

"당신에게 그런 말을 해 주고 싶습니다. 너무 힘든 것 잘 알아요. 충분히 지쳐 있을 겁니다. 하지만 나를 알아차리기 위해서 아주 조금만 힘을 내어 보세요. 지금은 상처 받았던 그 때가 아닙니다. 지금의 당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상처를 고스란히 받을 수밖에 없었던 어린아이가 아니에요. 말할 수 있고 행동할 수 있어요. 모든 것은 그때와 달라요." (p.177)

 

우리가 스스로도 몰랐던 아픔의 근원을 파고들다 보면 부모에 대한 해결되지 않은 수많은 상처들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부모에게 받았던 잘못된 시선이나 주체 의식을 가지고 평생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까닭에 한없이 자책하거나 스스로를 미워하면서 자신과는 영원히 화해하지 못한 채 아까운 생을 허비하는 건 아닌지 저자는 묻고 있는 것이다.

 

나는 저자의 진심 어린 충고에 이따금 눈물을 글썽이기도 하고, 따뜻한 위로에 충만함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큰 슬픔이 동반되는 자책이나 회한은 어떤 위로의 말로도 치유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안다. 가슴에 생긴 커다란 구멍이 가벼운 위로 몇 마디로 채워질 리 없기 때문이다. 오늘처럼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날이면 언뜻언뜻 생각나는 사람. 존재에 대한 기억만으로도 슬픔이 되살아나는 그런 사람으로 인한 상처는 생을 마감하는 그 순간까지 계속된다. 무한 증식하는 암세포처럼 슬픔은 또 다른 슬픔을 낳고, 회한은 또 다른 회한으로 이어진다. 남양주에 살았다던 어느 귀농인의 얼굴이 빗줄기 속으로 그저 아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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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밤새 뒤척였다. 한 해를 보내고 또 새로운 한 해를 맞는다는 게 그저 의례적인 행사일 뿐 내가 과거에 흘려보냈던 무수히 많은 나날들과 하등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래도 남들처럼 뭔가 근사한 새해 다짐도 하고 형식적으로나마 덕담도 나누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부담(그야말로 부담이다)이 아주 없지는 않아서 이런저런 고민이 나를 푹 잠들 수 없도록 만들었던 게 아닐까. 몇몇 새해 다짐인들 반드시 지켜진다는 보장은 없지만 말이다.

 

뒤돌아보면 지난 한 해 나는 시골에 사는 많은 어르신들을 만나면서 내 삶의 방향이 바뀌고, 울고 웃고 공감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그러나 그분들이 내게 들려준 이야기는 기쁘고 행복했던 기억보다는 슬프고 안타까웠던 일들이 훨씬 많아서 나 역시 그 절절함에 가슴이 젖었더랬다. 물론 새해 첫날부터 이런 이야기를 꺼낸다는 게 적절한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문제는 논쟁의 여지가 있겠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나는 지난해 내가 만났던 한 분 한 분 어르신들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내 삶을 어떻게 꾸려가야 할지 골똘히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고영순(가명) 할머니를 만났던 날은 겨울 햇살이 무척이나 따사로웠던 하루였다. 산간 지역이라 아침 기온은 낮았지만 낮이 되자 좁은 마당의 누렇게 메마른 잔디 위로 햇살이 한가득 쏟아졌다. 방문 앞에 놓인 허술한 평상에 믹스 커피 한 잔씩을 들고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었다. "앞으로 십 년이 고비가 아니겠어? 그쯤 되면 갈 사람은 다 갔을 테고 마을도 사라지겠지." 하면서 쓸쓸한 표정을 지으셨다. 방 안에는 점심을 함께 하기 위해 모인 어르신들이 가득했다. "저 사람들도 겉보기에는 멀쩡해도 속으로는 다 안 아픈 데가 없는 사람들이야. 골골 십 년이면 그것도 끝이 나겠지." 평상 옆으로 놓인 빈 항아리들이 쓸쓸함을 더했다.

 

오늘은 2020년의 첫날, 하늘은 끄물끄물 어둡고 나는 그날처럼 믹스 커피 한 잔을 책상 위에 놓고 있다. 삶이 부실해지는 이유는 내가 단단하지 못해서라고 자책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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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고양이 카페 - 손님은 고양이입니다
다카하시 유타 지음, 안소현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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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을 돌아다니다 보면 심심찮게 만나게 되는 게 개와 고양이이다사람만 산다면 온종일 적막강산이었을 마을이지만 개 짖는 소리로 인해 마을은 조용할 새가 없다. 한 마리가 짖기 시작하면 온 동네 개들이 전염병처럼 모두 짖게 되는 까닭이다그나마 고양이는 개처럼 요란하지도, 이방인을 위협하거나 귀찮게 굴지도 않는다. 그저 조용히 자신의 일에 관심을 둘뿐이다. 지난달에 방문했던 어느 시골집에는 노부부와 그들보다 한참이나 더 나이가 든 할머니, 말하자면 남편의 어머니이자 부인에게는 시어머니인 노 할머니 한 분이 살고 있었다. 그리고 몇 마리인지 파악도 되지 않는 고양이 식구들 여러 마리와 함께.

 

그런데 더욱 놀라웠던 건 죽은 쥐를 새끼 고양이의 장난감이자 간식으로 제공했던 것. 밖에 있는 화장실로 가던 중 길 한가운데 놓인 쥐의 사체를 보고 얼마나 놀랐던지... 그런데 안주인 할머니의 푸념을 들어보면 고양이를 키우는 일도 쉽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시골에는 여전히 쥐가 많아서 여러 마리의 고양이를 키우고는 있는데 그 사료값도 만만치 않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힘든 건 동네 주민들이 여기저기 쥐약을 놓는 통에 죽으라는 쥐는 멀쩡하고 애먼 고양이만 죽는다는 거였다. 이래저래 걱정이 많다는 할머니의 말씀을 듣고 있자니 '시골에서 하루 이틀 놀다 가는 건 좋지만 시골에 정착하여 산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던 순간이다.

 

얼마 전에 읽었던 소설 <검은 고양이 카페>는 그때 만났던 할머니를 떠올리게 했다. 고양이를 소재로 삼은 작품을 꾸준히 발표하고 있다는 다카하시 유타의 작품인 이 소설은 출판사에서 계약직으로 근무하던 마시타 구루미가 회사로부터 갑자기 정리해고를 당한 후 경제적으로 궁핍한 생활을 이어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그러던 어느 날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가운데 택배 상자에 담긴 검은 고양이 한 마리를 발견하고 구조 작업에 나선다. 주변에는 사람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고 고양이를 구조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그녀밖에 없었던 것이다. 실업급여도 끝나가고, 핸드폰 요금도 내지 못해 정지된 상태인 구루미는 월세마저 낼 길이 막막한 상태의 예비 노숙자 신세였다. 가까스로 고양이를 구한 구루미는 우산도 잃어버린 채 정신을 놓고 있는데 그때 마침 산책을 나왔던 가와고에의 유지 구로키 하나를 만나게 된다. 비에 젖은 몸을 말리기 위해 하나 씨의 카페에 들어선 구루미는 그곳에서 '카페 점장 모집(숙식 가능)'이라고 쓰인 모집 광고를 보게 된다.

 

"검은 고양이를 주운 다음에 구루미의 인생이 싹 달라졌다. 히카와 신사가 하나 씨의 카페와 인연을 맺게 해주었다. 앞으로의 인생에서는 틀림없이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 (p.49)

 

검은 고양이를 구해준 다음날, 구루미는 하나 씨에게 취업을 부탁하기 위해 카페를 다시 찾는다그러나 카페에는 하나 씨 대신 검은 기모노 차림의 잘생긴 남자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 남자의 이름은 '구로키 포'. 이 미남자의 정체는 바로 해가 지면 사람으로 둔갑하는 검은 고양이였다. 구루미와 포의 운명과 같은 첫 만남 이후 구루미에게 찾아온 놀라운 변화는 또 있었다. 고양이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은 물론 사람들은 구루미가 고양이의 마음을 읽는 능력까지 갖추었다고 믿게 된다.

 

"다음 날 아침에 구루미는 카페를 나섰다. 카페 바깥에는 전에 봤던 호랑이 무늬 어미 고양이와 새끼 고양이가 있었다. 외출하려고 차려입은 구루미를 보고 고양이들이 인사를 했다. "다녀오세요옹." ". 다녀올게." 대답하고 나서 구루미는 화들짝 놀랐다. 당연한 듯이 고양이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혀 위화감을 느끼지 않았다." (p.139)

 

구루미가 일하는 <커피 구로키>에는 검은 고양이 포가 점장으로 있고, 고양이와 대화가 가능한 구루미가 자리를 지키고 있는 바람에 커피를 마시러 오는 손님은 없고 다양한 사연을 가진 고양이와 집사들이 꾸역꾸역 모여들게 된다. 집사 메구미에게 생긴 스토커 때문에 신변에 위협을 느껴 가출한 삼색 고양이 마게타, 자신의 애완묘 유리가 밥을 먹지 않는 이유를 알고 싶어 찾아온 유미...

 

"세상에는 구루미가 알지 못하는 것이 잔뜩 있다. 고양이 세 마리를 보면서 구루미는 조그맣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구루미는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찔끔 나올 것 같아 조금 당황스러웠다. 계속 원하던 것을 이제야 찾아낸 것 같은 기분이었다. 자신이 머물러야 할 곳과 동료들." (p.315)

 

마치 한 편의 동화와 같은 이 소설은 우리네 삶이 우리의 상식으로는 미처 알 수 없는 미스테리한 것들로 가득 차 있음을 은연중에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한 순간의 결과만 보고 낙담하거나 좌절할 것도 아니고, 삶이 계속되는 한 검은 고양이 포를 만날 수 있는 기적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음을 믿으라고 말한다. 누구에게든 말이다. 경자년 새해를 몇 시간 남겨 놓은 오늘, 새해에는 검은 고양이 포의 허락 없이는 누구도 한 치의 불행도 용납할 수 없음을 온 세상에 선포하고 싶다.'나비야!' 하고 부르던 어느 시골집 할머니의 다정한 목소리가 가만가만 들릴 듯한 2019년의 마지막 날. 새해에는 조금 더 행복해지자, 마음 속으로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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