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저널리스트 : 어니스트 헤밍웨이 더 저널리스트 1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김영진 엮고 옮김 / 한빛비즈 / 2017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떤 소설가는 너무 유명해서 그의 작품이 오히려 진가를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말하자면 작가의 명성으로 인해 작품이 역차별을 받는 셈인데 그것은 어쩌면 독자들의 기대심리 탓인지도 모른다. 유명세를 타는 작가의 작품에는 여타의 작가와 구별되는 뭔가 다른 점이 있을 거라는 기대를 잔뜩 품고 책을 집어 든 독자는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실망만 커지게 마련이고 급기야 다 읽지도 않은 책이 책장에 꽂힌 채 먼지만 쌓이는 신세가 되고 만다. 고전의 범주에 드는 책들이 대체로 그런 신세를 면키 어려운 까닭도 다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싶다. 셰익스피어가 그렇고, 프루스트가 그러하며, 장 그르니에나 보르헤스가 그럴지도...

 

어니스트 헤밍웨이 역시 그와 같은 측면이 있다.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문장이 오히려 평범하다는 이유로 폄훼되거나 가치 절하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번역본이 아닌 영어 원본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작가의 진가를 새롭게 인식하게 되거나 작품 속에 숨겨진 매력을 재발견하곤 한다. 그리고 기자로 근무하면서 겪었던 다양한 경험들이 작품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음을, 전쟁과 같은 참혹한 현장을 누볐던 여러 경험들이 쌓여 작가 내면에 공고하게 다져진 인생철학이 작품 속에서 어떤 식으로 발현되는지 비로소 깨우치게 된다.

 

"머리 없이 몸뚱이뿐인 시신을 경찰이 무언가로 가려 덮는다. 가스관을 고칠 배관공을 부르는 모습까지 확인하고 호텔로 돌아와 아침 식사를 한다. 호텔 직원이 빨간 눈을 하고 복도 대리석 바닥의 핏자국을 지우고 있다. 죽은 사람은 나도 아니고 내가 아는 사람도 아니다. 엊그제는 과달라하에서 긴 하루를 보냈고, 어제는 상당히 추운 밤을 견뎌야 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아침 배가 고플 뿐이다." (p.142)

 

논객이지 저널리스트였던 샤를 페기는 "진실을, 모든 진실을, 오직 진실만을 말하라. 바보 같은 진실은 바보같이 말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진실은 마음에 들지 않게 말하고, 슬픈 진실은 슬프게 말하라."라고 썼다. 진실을 말한다는 건 어쩌면 저널리스트의 사명이자 행동강령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진실은 상당히 주관적일 경우가 많다. 사실에 대한 해석으로서의 진실이 저널리스트에게 주어지는 한 말이다. 그런 면에서 '모든 소설가는 거짓을 통해 세상에 관한 진실을 말하려고 애를 씁니다.'라고 했던 미국 작가 폴 오스터의 말에 비추어 보면 허구로서의 진실이 사실로서의 진실보다  진실에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 헤밍웨이 역시 진실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나 보다.

 

"글을 쓰는 사람의 고민은 변하지 않습니다. 작가 자신이 변할지언정 고민은 언제나 같습니다. 작가의 변치 않는 고민거리는 어떻게 진실만을 말할까, 무엇이 진실인지 깨달은 후에 이것을 어떻게 글에 녹여내어 독자의 삶 일부가 되게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p.233)

 

<더 저널리스트:어니스트 헤밍웨이>에는 고교 졸업 후 열여덟의 어린 나이에 기자 생활을 시작했던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약 25년 동안 작성한 400여 편의 기사와 칼럼 중 작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거나 인간적인 면모가 돋보이는 기사를 선별하여 실었다. 10대 후반이었던 1919년에 '캔자스 시티 스타'의 기자가 된 헤밍웨이는 1921년에 '토론토 스타' 특파원으로 유럽으로 건너갔고, 1936년 시작된 스페인 내전 당시에는 '북미 뉴스 연합' 통신원으로 활약했다. 기자 생활을 통해 익힌 직설적이고 간결한 문장, 대화체의 생동감 넘치는 문체는 그가 베스트셀러 작가로 발돋움하기 위한 밑거름으로 작용했다게다가 당시의 시대 상황을 통해 인간 사회의 불평등과 부조리,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인간의 고통, 파시즘에 대한 두려움을 확인하면서 작가로서 자신만의 철학을 정립했다.

 

"좋은 글이란 진실을 쓰는 거지. 작가가 인간의 삶에 대해 얼마나 많은 지식을 갖고 있고 얼마나 충실하게 삶을 살았는지에 비례해서 이야기가 더 진실되게 느껴지거든. 그래야 지어낸 이야기라 하더라도 진실에 가까울 수 있는 거야. 작가라면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는지 알아야지. 물론 몰라도 운 좋게 한동안은 버틸 수 있겠지. 판타지 소설을 쓰든가. 하지만 작가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대상에 대해 계속 글을 쓰다 보면 결국 가짜 글을 지어낼 수밖에 없어. 가짜로 지어낸 글을 몇 번 쓰다 보면 더 이상 양심적으로 글을 쓸 수 없게 되지." (p.245)

 

저널리스트로서의 경험이 작가가 되기 위한 필수조건일 수는 없다. 그러나 작가의 여러 덕목 중 다른 어느 것보다도 경험을 중시했던 헤밍웨이에게는 그가 경험했던 기자로서의 삶이 훗날 그의 작품 속에서 펼쳐지는 여러 장면들을 생생하게 되살리기 위한 필수 조건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경험으로 배우는 게 많아질수록 더 진실에 가깝게 상상할 수 있다."고 했던 그의 말은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우리는 인생에서 자신이 경험하고 깨닫는 만큼 성장하고, 성장한 만큼 삶은 가치와 보람이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 인정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헤밍웨이의 저널리즘 작품만 선별하여 소개하는 이 책은 헤밍웨이의 진실된 면모에 대한 독자들의 갈증을 조금쯤 풀어줄지도 모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른 건 몰라도 내가 다른 사람에 비해 화를 덜 내는 건 사실이다. 물론 전혀 화를 내지 않는 건 아니지만 남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화를 덜 낸다는 것이다그럼에도 이따금 참지 못하는 순간이 있다. 자신에게서 비롯된 잘못도 아닌데 부당하게 놀림을 받는 경우이다. 그런 모습을 볼라치면 나도 모르게 이성을 잃게 된다. 예컨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신체적 결함이나 질병, 가난 등 자신으로서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것들에 대해 무자비하게 공격하고 그것을 빌미로 타인을 굴복시키려 하는 행위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야비하고 저열하며 파렴치한 범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은 어차피 태어나면서부터 불평등하다는 건 인정하지만 그런 불평등을 지속적으로 배가시킨다는 건 도덕적으로 용납할 수가 없는 것이다. 약자를 보호하고 그들에게 뭔가 선의를 베풂으로써 불평등을 해소하려고 노력하지는 못할망정 그러한 불평등을 약점 삼아 자신을 드러내거나 편을 나눠 이익을 도모하려는 행위는 얼마나 비열한가.

 

최근에 숙명여대에 합격한 한 학생이 성 소수자라는 이유로 비난을 받고 놀림과 공격의 대상이 되는 바람에 결국 입학을 포기한 사례가 있었다. 나는 그 기사를 보고 우리 사회가 얼마나 잔인한지 다시 한번 느꼈다. 그 학생이 이성애자로 태어나기 싫어서 그렇게 태어난 것도 아니고, 성장하면서 소수자의 입장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이란 노력은 다 해보았을 터 그럼에도 소수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처지에 처했다면 우리 사회가 위로와 격려는 못해줄망정 적어도 그 학생을 놀리고 조롱하는 비열한 짓은 결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양심이나 도덕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그런 짓은 하지 말았어야 한다. 예컨대 얼굴이 조금 못생겼거나 선천적인 장애를 갖고 태어난 사람을 놀린다면 놀림을 받는 사람은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본인의 잘못도 아닌데 말이다. 그것도 다수자가 자신을 놀리고 조롱하는데...

 

내가 이따금 방문하는 도서관에도 나와 같은 애용자 중에 뇌성마비 장애를 갖고 있는 분이 있다. 도서관을 드나든 지 꽤나 오래된 탓에 도서관 직원이나 웬만한 애용자는 대개 낯이 익은 편인데, 그분도 내가 도서관을 들를 때마다 번번이 마주치곤 하여 우리는 서로 이름도 모른 채 가볍게 인사를 건네곤 한다. 그렇다고 내가 그분을 위해 대단한 일을 하는 건 아니다. 내가 먼저 문을 열고 들어가 그분을 위해 잠시 동안 문을 열고 기다려주는 게 고작이다. 나는 그분이 건네는 미소와 진심을 담은 인사를 받는 날이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겨우 그 정도의 작은 배려로 우리가 사는 사회가 완전히 바뀔 리는 없지만 적어도 이전보다 우리는 조금 더 따뜻한 사회를 만들어갈 수는 있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지금도 어느 곳에서는 그런 비열한 짓거리를 일삼는 사람들이 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이 마당에 중국에서 태어나고 싶어 중국에 태어났던 것도 아니고, 전라도에서 태어나고 싶어 그곳을 고향을 삼은 것도 아닌데 단지 그 지역 출신이라는 이유로 치료를 멈춰야 한다는 둥 갖은 놀림을 일삼는 이들은 정말 인간도 아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일컬어 '악마'라고 부른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붕붕툐툐 2020-02-09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글에서 정의로운 향기가 나는걸요~ 제가 얼마전 읽은 글에 윤회하면 자기가 어떻게 태어날지 모르니 어떤 이유에서건 타인을 무시하면 안된다는 글귀가 있었어요. 윤회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꼼쥐님을 화나게 하는 분들이 다시 태어나면 아마도 그 피해자가 되어 정신 차리지 않을까 싶네요~~

꼼쥐 2020-02-13 16:04   좋아요 0 | URL
반드시 그렇게 태어나라고 악담을 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이번 생에서 타인을 이해하고 배려함으로써 욕은 먹지 않는 게 잘 사는 삶이 아닌가 싶어요. 아무런 이득도 없는데 왜 그렇게 미워하고 못살게 굴려고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어요.
 
진주 - 장혜령 소설
장혜령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기억이 늘 옳았던 건 아니다. 제복을 입은 어느 경찰관 앞에서 했던 어눌한 진술처럼 기억은 언제나 자신이 없었고, 증명할 수 없는 어떤 것이었으며, 나와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어떤 이에게 내보였을 때 내게 올지도 모를 불확실한 미래였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임을 세 번 부인했던 베드로의 불안은 내 기억의 끄트머리에 달린 작은 물방울처럼 맺혔는지도 모른다. 땅을 향해 금방이라도 추락할 듯한 작은 물방울. 그런 불안. 적어도 나의 머릿속에 있는 기억은...

 

"빛이 잘 들던 어느 오후, 해가 다 저물도록 불 켜지 않은 방에 누워, 그 방 작은 창으로 들어온 태양빛이 사위어가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한 남자. 매해 봄꽃이 필 때면 코끝에 와닿는 그 향기, 눈부신 색채의 찬란함을 견디지 못해 빛이 다 사라질 때까지, 베란다에 있는 모든 화분에 불을 지르고는 타오르는 꽃의 혼을 킬킬거리며 바라보던 한 남자. 꽃이 재가 되어 흩날릴 때에야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쥐고 웅크린 채 고통스러워하던 한 남자.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채 스스로 문을 잠그고 그곳에 남아 있던 한 남자를, 나는 오래 기억하고 또 기억했습니다." (p.151)

 

어떤 소설은 이야기의 윤곽보다 시간에 따른 느낌의 변이만 선명하게 남는다. 온화한 갈색이었다가 새벽녘의 푸른빛이었다가 투명한 흰색이 되기도 하는... 장혜령의 소설 <진주>는 그런 책이었다. 학년 초, 가정환경조사서를 작성한 뒤 교실에서 그 내용을 발표할 때, "아버지는 나라를 위해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했다. 대학 시절부터 이십 년 남짓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에 매진했던 아버지를 둔 딸의 자전적 기록이기도 한 이 소설은 작가의 혼란스러움을 반영하듯 일인칭과 이인칭·삼인칭이 혼재되었고, 사건의 기록들이 시간 순서와 무관하게 등장하며, 삽화와 사진·그림 등 시각적 자료들이 텍스트의 중요한 일부로서 작용하기도 한다. 때로는 작가가 쓴 시가 묘사의 일부를 대체하기도 하고 그에 덧붙여진 날짜가 수감번호처럼 뜬금없게 만들기도 한다.

 

가정환경조사서 사건이 있은 후 작가는 엄마와 함께 난생처음 비행기를 타고 진주로 가서 감옥에 있던 아버지를 면회했다. 그로부터 이십여 년이 지난 20152, 어른이 된 작가는 다시 비행기에 올라 진주로 향했다. 그렇게 탄생된 소설 <진주>는 작가 자신에 대해서 쓴 이야기인 동시에 작가의 아버지에 대해 묻고 싶었던 질문들이며, 듣고 싶었던 대답이다. 감옥에 있어 부재했던 상태의 아버지가 그리움과 존경의 대상이었다면, 딸이 중학생이 되어 나타난 아버지는 '개인적인 삶'에 충실한 평범한 가장이 아니었다. 작가가 기다리던 아버지는 아버지의 존재가 건넌방에 상주하면서부터 완전히 사라진 셈이었다. 아버지의 동지였던 엄마가 "이제 그만 불의를 참아달라"며 눈물로 호소하는 그 순간에도 딸은 아버지에게 묻고 있다. 당신은 누구냐고.

 

안산의 노동자 상담소에서 어려운 처지에 놓인 노동자들을 상담하고 소식지를 만들던 아버지와 노동 교회가 운영하는 탁아소 선생님으로 근무했던 엄마. 노동자 자녀들과 함께 컸던 딸은 동요 대신 투쟁가와 민중가요를 불렀고, 경찰을 '짭새'라 부르기도 했다. 추리닝과 슬리퍼 차림으로 딸의 과제물을 들고 학교에 나타났던 아버지를 고개를 돌려 회피했던 딸은, 남편과 떨어져 옷 수선집을 하며 키운 딸은 자신의 이야기가 아버지에게 가 닿음으로써 비로소 자신의 이야기가 된다는 사실을 이제 알 것 같다고 말한다.

 

"시간이 지나면 잊힐 거라고, 괜찮아질 거라고, 삶은 그런 거라고 자신을 타이르려 했다. 그때까지 나는 틈만 나면 내 방 불을 끈 채 죽은듯 잠을 청했고, 화장실 가는 소리가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도록 유령처럼 걸어다녔으며, 아버지 어머니가 완전히 잠든 시각에 집에 들어오고서도 또다시 새벽까지 집밖을 배회했고, 아침이면 관성처럼 입속에 밥을 떠넣는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내 안의 누군가가 그러한 삶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그곳으로 가자. 그곳으로. 그 사람은 내게 진주로 가자고 했다." (p.279)

 

하냥 걸어온 저 시간들이 기억의 끄트머리에 달린 물방울처럼 문득 낯설어질 때가 있다. 그 물방울이 햇빛에 말라 공기 중으로 스러지거나 제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땅에 떨어지지 않는 한, 우리는 기억의 줄기를 타고 아득히 먼 과거를 향해 불안한 걸음을 내딛을 수 있다.  그것이 비록 원시를 향한 아득히 먼 여정처럼 보일지라도, 결코 닿을 수 없는 다른 차원의 우주처럼 여겨질지라도 우리가 불안을 딛고 나아가기만 한다면 우리는 결국 그곳에 닿을 수 있다. 작가가 진주로 향했던 것처럼.

 

장혜령의 <진주>를 읽고 나는 군더더기처럼 나의 기억을 덧대려 한다. 나의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였다. 술에 의지하여 세상을 살았고, 술에 취하지 않은 시간보다 취한 시간이 더 많았던 사람이다. 세상에 대한 불안을 술을 매개로 하여 잊어보려 한 셈인데, 당신의 시도는 번번이 실패했고, 그것에 대한 울분은 가족을 향한 폭력으로 풀었다. 당신의 습관적인 폭력과 중독 증세는 길게 이어졌던 병원 생활과 함께 끝났지만 가족 모두에게 심어준 그 암담했던 기억들을 다 주워 담을 수는 없었다. 나는 여전히 기억의 끄트머리에 대롱대롱 매달린 불안의 물방울을 보고 있다. 당신이 세상에 없는 지금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홍익출판사에서 발간한 유수진의 저서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말 아무에게나 쓰다>에는 눈길을 끄는 문장들이 제법 많았다. '제법 많다'고 말하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비슷비슷한 내용의 책들이 제목만 달리 하여 하루가 멀다 하고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통에 때로는 현기증이 날 정도인지라 책의 제목은 고사하고 인상 깊었던 문장도 이 책에서 읽은 것인지 아니면 저 책에서 읽은 것인지 헷갈릴 때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EBS의 펭수가 유행을 타자 수많은 짝퉁 펭수가 등장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러다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그렇고 그런 책들이 도매금으로 넘어가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책을 출간하는 저자는 나름 최선을 다하여 준비했을 텐데 말이다.

 

"말도 글처럼 기록이 된다면 우린 조금 더 신중하게 말하게 될까? 나는 펜과 종이를 쥐고 함부로 글을 쓰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아주 짧은 편지를 쓰는데도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몇 시간을 끙끙 앓는 사람들도 있다. 편지를 받은 사람이 편지를 버리지 않고 보관한다면 보관 기간 동안 편지 속에 적힌 말들은 죽지 않고 살아 있을 테니까. 나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했던 사람들도 글로 상처를 준 적은 없다. 그들이 써준 글은 오히려 눈물 나게 고맙고,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아마 그 글은 말을 할 때보다 훨씬 더 오랜 시간 고민해서 썼을 것이다." (p.88)

 

"우리가 서로를 알아가는 방법은 그저 계속해서 이 방향, 저 방향을 왔다 갔다 하며 바라보는 방법뿐이다. 너를 바라볼 수 있는 360도의 방향 중 오직 1도의 방향에서 바라본 모습만 가지고 너를 판단해왔던 건 아닌지, 내일은 또 다른 방향에서 너를 바라봐야겠다." (p.112)

 

"글 쓰는 일도 그랬으면 좋겠다. 매일 아침 부엌에서 들리는 밥 짓는 소리처럼 꾸준하고 성실했으면 좋겠다. 때로는 지루하고 재미없게 느껴질지라도 이제는 안다. 애초에 누가 시키지도 않았고 대가를 바라지 않는 일이란 것을. 그저 가족들이 오늘 하루를 든든하게 시작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평생 아침밥을 지은 엄마처럼, 나의 생각 조각들을 차곡차곡 문장의 형태로 쌓아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 왠지 오늘은 글을 쓰는 내 모습 위로 밥 짓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p.180)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말을 아무에게나 씀으로써 나는 덜 위험해지고 있다. 그렇게 조금씩 글 쓰는 일에 가까워지고 있다." (p.184)

 

시간은 하나, 둘 손가락을 꼽아가며 세어보지 않으면 그 흐름을 가늠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시간의 흐름을 지척에서 느껴보지 않으면 1년 단위의 큰 뭉텅이로 휙휙 내던져진 듯 여겨지곤 한다. 벌써 2월의 초순. 갑자기 추워진 날씨 덕분에 정신이 번쩍 든 느낌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eBook] 대범한 밥상 - 한국문학전집 003 - 박완서 대표중단편선 문학동네 한국문학 전집 3
박완서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 박완서 작가를 생각할 때마다 나는 작가와 작가가 쓴 글 사이의 거리를 어림하곤 한다. 작가가 세상을 떠난 지 벌써 만 9.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나는 여전히 20111월의 순간을 마치 어제의 일인 양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어쩌면 그것은 작가가 입버릇처럼 되뇌던 '전쟁의 상처로 작가가 됐다'는 말이 어느 것 하나 거짓이 아님을 그의 글이 증명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자신이 실제 겪었던 경험을 작품 속에 오롯이 투영하는 일은, 그렇게 함으로써 작품과 작가 사이의 간극을 좁히는 일은 현재를 살아가는 여럿 후배 작가들에게 무거운 숙제로 남겨졌을지도 모른다.

 

소설집 <대범한 밥상>에는 표제작인 '대범한 밥상'을 포함하여 총 열 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그중 내가 오늘 읽었던 작품은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이라는 제목의 소설. 1988년 남편과 아들을 연이어 잃었던 작가의 자전적 경험이 작품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는 이 소설은 가슴 저 밑바닥에 가라앉았던 슬픔이 어떤 사건을 계기로 표출되고 가식 없는 눈물과 울음을 통해 치유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아이를 잃은 슬픔을 노래했던 김현승 시인의 눈물에 나오는 시구 '/나의 가장 나아종 지닌 것도 오직 이뿐,/ 에서 제목을 따온 이 소설 제목의 의미는 '가장 마지막까지 갖고 있는 것'이다.

 

"건물이고 차들이고 형체는 지워지고 거기서 내뿜는 불빛만이 서로 얽히고설키는 게 마치 혼령이 너울너울 자유롭게 교감하는 것 같더라구요. 마음이 편안하고도 슬펐어요. 세상을 하직하면서 한평생의 헛되고 헛됨을 돌아보는 기분이 그런 거 아닐까요. 편안한데도 이상하게 위로받고 싶었어요." (p.295)

 

주인공인 ''가 손위 동서인 형님과 전화 통화를 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 이 소설은 상대편인 형님은 발화가 생략된 채 ''의 발화만으로 진행되는 까닭에 마치 한 편의 모노드라마를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게 한다. 실제로 나는 고 박완서 작가의 사후 1주기를 추모하여 연극 무대에 올려진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2012년의 어느 가을날 충무아트홀에서 본 기억이 있다. 연극인 손숙의 가슴 절절한 연기 덕분에 나는 주변을 의식하지 않은 채 눈물 콧물을 다 쏟았고, 연극이 끝난 후 허기진 가슴을 달래느라 애를 먹었었다.

 

"자식을 겉을 낳지 속까지 낳는 건 아니란 말도 그래서 생겨난 거 아니겠어요. 그런데 그게 왜 그렇게 중요하죠? 말끝마다 형님은 꼭 그런 소리를 하시더라, 마치 오금을 박듯이. 이럴 때는 전화로 얘기하고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아녜요, 전화로 말하면서도 전 형님의 시선을 느껴요. 대단한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이 그걸 모르는 사람을 바라볼 때의 기분 나쁜 눈길 말예요." (p.304)

 

소설의 내용은 힘든 시기를 함께 겪어온 형님에게 스스럼없이 꺼내놓는 ''의 한풀이도 있고, 자식을 잃은 어미의 슬픔을 몰라주는 형님과 주변 사람들에 대한 원망도 뒤섞여 있다. 그런 아픔을 꺼내놓기에는 세대가 같은 손위 동서가 적격이었는지도 모른다. '생때같은 목숨도 하루아침에 간데없는 세상에 물건들의 목숨은 왜 그렇게 질긴지, 물건들이 미운 건 아마 그 질김 때문일 거'라고 말하는 ''의 고백은 버려진 낙엽처럼 그저 쓸쓸하기만 하다. '즐거웠던 기억이 물건보다 속절없다'는 말도...

 

''는 친하게 지내던 동창 명애의 권유로 또 다른 동창 집으로 내키지 않는 문병을 가게 된다. 동창은 병든 아들과 단둘이 살고 있었는데, 몇 년 전 아들은 교통사고로 뇌와 척추를 다치고 나서 하반신 마비에다 치매까지 앓고 있었다. 동창이 맞나 싶을 정도로 파파할머니가 된 친구는 누워만 있는 아들이 혹여라도 욕창이 생길까봐 말라빠진 몸으로 기골이 장대한 아들을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는 걸 보면서 명애와 ''는 도와주려고 아들의 몸에 손을 대 보지만 아들은 괴성을 지르며 거부한다. 그 모습을 보고 어머니인 동창은 '이 웬수덩어리가 또 효도하네'라고 말한다. ''는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생명의 실체가 몹시도 부러워 끝내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고 만다.

 

"아니, 형님 지금 울고 계신 거 아뉴? 형님, 절더러는 어찌 살라고 세상에, 형님이 우신대요? 형님은 어디까지나 절벽 같아야 해요. 형님은 언제나 저에게 통곡의 벽이었으니까요. 울음을 참고 살 때도 통곡의 벽은 있어야만 했어요. 통곡의 벽이 우는 법이 세상에 어디 있대요." (p.321)

 

작가가 살아 있던 과거에 여러 매체에서 작가를 볼 때마다 나는 '저렇게 야리야리한 몸으로 어떻게 그 모진 세월을 건너왔을까?' 속으로 생각하곤 했었다. 작가에게 소설 쓰기란, 자신의 작품을 통해 얼굴도 모르는 독자와 만난다는 건 어쩌면 작가를 마음 놓고 울게 한 '통곡의 벽'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인간 박완서에게 글쓰기란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