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루시 바턴 루시 바턴 시리즈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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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예컨대 말이나 글로, 혹은 행동이나 몸짓으로, 또는 악보나 그림으로, 또는 이제껏 아무도 꿈꾸지 못했던 자신만의 발명품으로, 우주의 비밀을 푸는 수식이나 이론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남긴다. 그리고 우리는 미처 다 읽지 못한 세상의 많은 이야기들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그 이야기에 자신의 이야기를 덧붙여간다. 그러고 보니 세상은 온통 이야기의 바다, 이야기의 천국인 셈이다. 나 역시 그동안 내가 읽었던 많은 이야기들을 회상하거나 어떤 의미였을까 해석하면서 특별하지 않은 나의 이야기를 덧붙여간다. 나의 삶이 시간의 수직선상에 나열된 작은 한 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비로소 나는 더없이 마음이 푸근해지고 저으기 안심하게 되는 것이다.


"책이 내 외로움을 덜어주었다. 이것이 내 말의 요점이다. 그래서 생각했다. 나도 그런 사람들이 외로움에 사무치는 일이 없도록 글을 쓰겠다고!"  (p.34)

"외로움은 내가 맛본 인생의 첫맛이었고, 늘 그 자리에, 내 입안의 틈 속에 숨어 있다가 자신의 존재를 일깨워주었다."  (p.53)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소설 <내 이름은 루시 바턴>을 읽고 잔잔한 감동을 느꼈다는 이들의 마음은 다들 나와 비슷한 삶의 방식 혹은 인생관을 가진 사람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소설에서 루시는 소설을 쓴 작가인 동시에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히 들려준다. 1980년대 중반 소설의 화자인 루시는 간단한 맹장수술을 받고 원인도 알 수 없는 고열에 시달린다. 직장과 집안일로 바쁜 남편은 결국 자신의 장모인 루시의 엄마에게 SOS를 보냈고, 입원한 뒤 삼 주쯤 지났을 무렵, "안녕, 위즐." 하는 어릴 적 애칭과 함께 오랫동안 인연을 끊고 지냈던 엄마가 나타났다. 아무도 없는 일인용 병실에서 남편과 어린 아이들을 그리워하며 외로움과 씨름하던 루시. 엄마라는 존재는 파편화된 어린 시절의 기억을 하나하나 끼워 맞추어 주기 위한 소중한 사람이었다.


"아마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도 이렇듯 반쯤은 알게 반쯤은 모르게, 사실일 리 없는 기억의 방문을 받으면서 세상을 이런 식으로 어찌어찌 통과해나갈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공포라는 감정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다는 듯 자신만만하게 보도를 걸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내가 다른 사람들이 어떤 마음인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삶은 아주 많은 부분이 추측으로 이루어진 듯하다."  (p.21~p.22)


루시에게 있어서 그녀의 어릴 적 기억은 따뜻하거나 아름다운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녀의 엄마는 고향 사람들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풀어놓는다. 그렇게 들먹여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매개로 루시 역시 자신의 기억들을 하나 둘 되살린다. 종조부의 차고에서 지내며 추위와 배고픔과 외로움에 떨던 날들, 부모님의 억압과 간헐적인 폭력이 이어지던 날들, 친구들과 이웃들로부터의 차별과 따돌림, 그녀에게 고향인 앰개시는 남들이 상상할 수 없는 고통과 무지의 기원이자 사회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외로운 섬과 같은 곳이었다. 남편과 결혼하여 그토록 동경하던 뉴욕에 정착하여 아이를 낳고 소설가가 된 지금까지의 여정이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었음에도 그녀의 엄마는 결혼도 하지 못한 채 늙어가고 있는 오빠와 다섯 아이의 엄마가 되어 생활고에 시달리는 언니에 비하면 루시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다 이루었다고 믿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나는 진정, 냉혹함은 나 자신을 붙잡고 놓지 않는 것에서,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 것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이게 나야, 나는 내가 견딜 수 없는 곳-일리노이 주 앰개시-에는 가지 않을 거고, 내가 원하지 않는 결혼생활은 하지 않을 거고, 나 자신을 움켜잡고 인생을 헤치며 앞으로, 눈먼 박쥐처럼 그렇게 계속 나아갈 거야!,라고. 이것이 그 냉혹함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p.204~p.205)


루시는 옷가게에서 우연히 만났던 소설가 세라 페인의 워크숍에 참가한다 세라 페인은 '섬약한 연민에 기우는 스스로를 잡아 세우지 못하'는 작가, '무대에 능한 작가'라는 혹평을 듣기도 하지만 루시에게 세라는 '뉴욕이 그녀를 좋아하지 않는 것일 뿐'이라며 세라에 대한 지지를 버리지 않는다. '작가의 일이란 인간의 조건에 대해 알려주는 것, 우리는 누구이고 우리는 무슨 생각을 하고 우리는 어떤 행동을 하는지를 말해주는 것'이라고 했던 세라 페인에 대한 지지를.


“나는 우리가 아이였을 때 품게 되는 아픔에 대해, 그 아픔이 우리를 평생 따라다니며 너무 커서 울음조차 나오지 않는 그런 갈망을 남겨놓는다는 사실에 대해 내가 아주 잘 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것을 꼭 끌어안는다. 펄떡거리는 심장이 한 번씩 발작을 일으킬 때마다 끌어안는다. 이건 내 거야, 이건 내 거야, 이건 내 거야.”  (p.217)


이 소설에는 루시 곁을 스쳐갔던 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그들과의 인연은 그리 길지 않았다. 우리의 삶은 어쩌면 가장무도회처럼 짧았던 수많은 인연들의 총합일지도 모른다. 얼굴을 달리하여 나타났던 수많은 천사들 덕분에 우리의 삶이 유지되는 것은 물론 마지막에 이르러 자신의 삶이 아름다웠노라고, 꽤 행복한 삶이었다고 고백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의 행복은 스스로의 노력이 아니라 스치듯 지나쳤던 수많은 사람들의 친절 덕분이었음을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는 독자들에게 잔잔히 말하고 있다. 소설 <내 이름은 루시 바턴>을 통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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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우연들
김초엽 지음 / 열림원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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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작가 김초엽의 등장은 우리 문단에 꽤나 신선하고 강한 인상을 남겼다. 테드 창의 작품 외에는 SF 소설에 그닥 관심이 없던 나도 작가의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구해 읽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게다가 내가 읽고 꽂아 둔 책을 아들이 이어 읽은 후 김초엽 작가의 팬이 된 것을 보면 요즘 젊은 세대만의 공통분모가 작가의 작품 속에 완벽히 녹아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한국 문단에 혜성처럼 등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김초엽 작가의 인기는 신인 작가 치고는 무척이나 놀라운 것이어서 작가에 대한 독자들의 궁금증은 그동안 과도하게 증폭되고 축적되어 온 것 또한 사실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 속에서 작가의 산문집 <책과 우연들>이 출간된 건 어쩌면 시기적절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작가에 대한 독자들의 궁금증을 해소하고 앞으로 나올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감을 높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김초엽 작가의 산문집 <책과 우연들>은 총 3장으로 구성되었다. 1장 '세계를 확장하기'에서 작가는 'SF란 무엇인가?'와 같은, SF 소설을 쓰는 작가이지만 선뜻 대답할 수 없는 기자들의 질문 세례를 통해 SF 장르 소설을 쓰는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게 되고 데뷔 후 김원영 작가와의 협업으로 논픽션 <사이보그가 되다>를 쓰면서 겪었던 많은 어려움 등을 세밀하게 기록하고 있다. 2장 '읽기로부터 이어지는 쓰기의 여정'은 자신이 겪었던 뒤죽박죽의 독서 여정과 우연처럼 찾아온 소설 쓰기의 과정을 다루고 있다. 3장 '책이 있는 일상'에서는 책방과 독자, 과학과 작업실에 관한 여러 에피소드를 들어가며 독자들이 궁금해했을 소설가로서 자신의 일상을 솔직하게 들려주고 있다.


"2015년의 어느 날 나는 소설 쓰기에 대한 작법서 한 권을 읽고 지인들과 함께 있던 채팅방에서 "작법서를 읽었는데 재밌더라. 취미로 소설 써볼까?" 가볍게 말문을 텄는데 별안간 "그래, 다 같이 한번 써보자!" 하고 몇몇이 동조하며 뜬금없이 창작 모임 하나가 급조되었다."  (p.120)


어느 날 야구장을 찾았던 무라카미 하루키가 외야석 잔디밭에 누워 생맥주를 마시며 야구 경기를 관람하던 도중에 야쿠르트의 한 선수가 경쾌하게 2루타를 치는 소리를 듣고 우연히 '그래, 나도 소설을 쓸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일화처럼 김초엽 작가의 소설 쓰기는 아주 가벼운 우연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기억하는 세계사의 중요한 일들 대부분이 그렇듯 그 발단이나 시발점을 쫓아가면 픽 하고 헛웃음이 나올 정도의 작고 가벼운 것들이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어느 날 작업실에 앉아 책장을 쭉 둘러보는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예전 같았다면 존재조차 몰랐을 책들이 눈에 잔뜩 들어왔다. 작가가 되지 않았다면, 필요해서 사들인 게 아니었다면 살면서 한 번도 들춰보지 않았을 책들이 책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순수한 애정과 즐거움 대신 글을 쓰기 위해 책을 읽는 독자가 되었지만, 그래서 그게 일종의 직업병이라며 투덜대고 있었지만, 혹시 이 불순한 독서가 나의 세계를 확장하고 있는 게 아닐까? 잘못 탄 버스가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도시의 낯선 장소로 나를 데려가주는 것처럼."  (p.160)


소설가나 시인의 산문집은 대개 독자들의 요구와 이를 수용하는 출판사의 영리 목적이 결합하는 지점에서 성사되곤 한다. 작가에 대한 궁금증은 몇몇 기자의 질문을 통해 일부 해소되기도 하지만 인터뷰라는 형식의 딱딱하고 건조한 느낌, 산발적이며 즉흥적인 질문과 답변 등으로 인해 독자들의 읽기 욕구를 강하게 자극하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작가의 유년 시절을 포함한 읽기의 여정, 작가로 등단하기까지의 과정, 감명 깊게 읽었던 책들 등 독자들이 알고 싶어 하는 일반적인 내용들을 한 권의 책으로 엮어 출간하는 것은 작가에 대한 독자들의 관음증적 욕구를 해소하는 한편 소설이나 시에서 보였던 문장과는 완전히 다른 문장들을 접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꽤나 매력적이다.


그러나 나는 우리나라 작가들이 내놓는 이런 형태의 산문집에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먼 북소리>와 같은, 자신의 일상이나 경험을 일부 포함하면서도 세상을 보는 견해나 가치관 그리고 지금 작가가 보고 듣고 느끼고 있는 것에 대한 인상 깊은 묘사 등 작가로서 독자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품격 있는 작품을 산문집에 담지 못한다면 작가의 산문집은 빵점에 가깝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그것은 마치 이제 막 이성에 눈을 뜨기 시작한 청소년에게 적나라한 신체의 사진을 보여주는 것과 하등 다르지 않다. 그와 같은 행위는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나 궁금증을 자극하지도, 매력이나 호감도를 증가시키지도 못한다. 독자들이 궁금해하는 사항을 일률적으로 나열하고 기술하기보다는 예술적 가림막에 의해 적절히 가려지고 통제될 때, 작가에 대한 매력과 호기심이 증가하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 그것이 바로 예술로서 산문집이 가져야 할 미덕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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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드 - 제2회 넥서스 경장편 작가상 대상 수상작 넥서스 경장편 작가상
권석 지음 / &(앤드)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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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다. 시간에 의해 마모되는 세상의 모든 것들에 대한 연민과 동병상련의 쓸쓸함을 느끼게 되는 계절. 우리의 곁을 스쳐갔던 숱한 것들에 대한 기억을 더듬더듬 반추할 때마다 나는 기어코 한 권의 책을 손에 잡고야 만다. 쓸쓸함에 대한 가장 적절한 위로는 쓸쓸함의 언어인 것처럼 사라져 가는 기억에 대한 가장 적절한 보상은 사라진 것에 대한 기록일지도 모른다는 헛된 기대를 품고 한 권의 시집이나 한 권의 소설을 손에 들고 펼쳤을 때의 기분은 마치 저무는 가을의 저녁 햇살처럼 정겹다. 그럼에도 나는 해가 뉘엿뉘엿 기우는 해거름녘의 서늘함과 성큼 다가올 삭막한 계절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가 없다. 익숙한 것에 대한 안도와 아직 오지 않은 계절에 대한 불안이 교차하는 느낌. 내가 권석 PD(이제는 작가라고 해야겠지만)의 장편소설 <스피드>를 읽기 시작했을 때의 분위기는 그러했다.


"건물 입구 위에 붙어 있는 누런 글자 세 개. 처음엔 금빛으로 번쩍였을 '水泳場(수영장)' 글자도 이제는 허옇게 색이 바래 추레해 보였다. 현관 앞에는 커다란 청동상이 생뚱맞게 서 있었다. 학교의 상징인 참치였다. 수산 시장도 아니고 학교의 상징 동물이 참치라는 게 이상했지만 청동상도 나름대로 수난을 겪는 중이었다. 피뢰침 같은 주둥이를 위로 한 채 'C'자형으로 허리를 말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통째로 기름에 튀긴 것 같았다. 몸통은 돌에 맞았는지 옴폭옴폭 패었고 눈은 무언가에 까맣게 그을려 흉측했다. 한때 학교의 자랑이었을 수영장은 봄이 왔어도 겨울잠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동면 동물처럼 산속에 조용히 엎드려 있었다."  (p.14~p.15)


작가는 소설의 배경이 되는 속초 바다고등학교의 수영장을 그렇게 묘사하고 있다. 기울어가는 수영장의 위세처럼 바다고등학교의 자랑이었던 수영부 역시 한 치 앞을 가늠하기 어려운 실정이었다. 소설의 주인공인 욱이 바다고등학교에 전학 온 것은 한 달 전. 속초에서 태어나 서울로 이사를 갔던 욱은 3년 만에 자신의 고향인 속초로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고향 친구였던 성수의 꼬임에 빠져 바다고등학교 수영부의 회원 명부에 이름을 올린다. 사실 바다고등학교 수영부의 기존 멤버는 9명으로 욱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채 열 명이 되지 않는 해체 위기 직전의 상태였었다.


"감독이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아직도 숨이 가쁜 욱은 무안해서 꾸벅 인사를 했다. "그래도 태호에게 졌는데요." 감독은 허리를 굽혀 욱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너는 아직 미완성이야. 그게 네 가능성이다." 감독의 말이 욱의 마음속에 여운을 남겼다."  (p.127)


사실 욱의 아버지인 박두하 역시 바다고등학교 수영부 회원이었으며, 한때는 모든 경기에서 금메달을 휩쓸기도 했던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그랬던 그는 금지약물 투약으로 자격정지 3년을 받고 수영계에서 은퇴하였다. 대학 졸업 후 건설회사에 입사하였던 그는 아프리카 건설현장에 파견을 나갔다가 그곳에서 물에 빠진 학생을 구하다 그만 젊은 나이에 죽고 말았다. 그때 욱은 은행원이었던 엄마의 배 속에 있었다. 아빠의 얼굴도 모른 채 태어난 욱은 엄마를 따라 서울로 갔다가 다시 자신의 할아버지가 있는 속초로 돌아왔고, 그 후의 이야기는 주인공인 욱을 중심으로 두 축으로 펼쳐진다. 아버지인 박두하 선수의 금지약물 파동에 대한 사건의 전말을 밝히는 하나의 축과 바다고등학교의 수영부 해체를 막기 위한 속초 하늘고와의 수영 대결 준비에 박차를 가하는 과정을 그리는 또 하나의 축이 그것이다. 물론 고등학생인 욱의 달달한 로맨스와 사내들의 거친 우정 그리고 바다고등학교 수영부를 살리겠다는 뜨거운 열정 등은 소설을 읽는 독자들을 위한 하나의 덤으로 작용할지도 모르겠다.


"삶의 나이테가 두꺼워져도 내 안에는 아직 '어릴 적의 나'가 살아 있습니다. 칭찬받고 이해받고 싶어 하고 쉽게 삐치고 질투심도 많은 변덕스러운 아이입니다. 네버랜드에 사는 피터 팬처럼 나이를 먹지 않는 이 아이는 제게 뮤즈 같은 존재입니다. 어리다 보니 유치하고 미욱합니다. 하지만 그만큼 순수하고 가볍습니다. <스피드>는 내 안의 그 아이에게, 그때를 지나고 있는 지금의 청소년들에게, 그리고 내 안에 있는 그 위대한 유치함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어른들에게 들려주고픈 이야기입니다."  (p.278 '작가의 말' 중에서)


나이가 어리다는 것만으로 순수하다거나 어리숙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반드시 그렇게 연결되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지나간 모든 것들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하거나 현실보다 크게 부풀려서 말하거나 추억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어쩌면 사라져 가는 모든 것들에 대한 연민과 그리움에서 비롯되는지도 모른다. 다시 또 가을! 반복되는 이런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 자신의 마음속에 품을 수 있는 포용의 임계치를 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죽음을 생각하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신인작가의 작품이니 만큼 때로는 덜컹덜컹 아귀가 맞지 않는 듯한 느낌도 들고, 단출한 인물 구성과 예측 가능한 결말이 다소 아쉬운 부분으로 느껴지기도 했지만 누구나 첫 숟갈에 배부를 수는 없는 법 권석 작가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지는 이유도 그런 게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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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고바야시 서점에 갑니다
가와카미 데쓰야 지음, 송지현 옮김 / 현익출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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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상당히 주관적인 글이 될 수 있다. 물론 지금껏 써왔던 대부분의 글이 주관적이었지만 이 글은 특히 더 주관적으로 흐를 수 있다는 얘기다. 일본 작가가 쓴 소설 중에는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는 동화와 같은 소설이 많고, 나는 그런 류의 소설들에 한없이 매료되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는 물리적인 나이만 먹었지 심리적으로는 여전히 어린애의 수준에 머물러 있는지도 모른다. 피터팬 증후군을 앓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서점에서 정말 있었던 마음 따뜻해지는 이야기'의 저자인 가와카미 데쓰야가 쓴 <오늘도 고바야시 서점에 갑니다>는 위안과 희망을 주는 따뜻한 동네서점을 다룬 책이다. 일본 전역의 서점을 취재할 정도로 서점을 사랑하는 작가로 정평이 나 있는 가와카미 데쓰야의 소설답게 스토리는 고바야시 서점의 실제 이야기와 픽션을 결합한 구성으로 읽는 이에게 잔잔한 울림을 준다.


소설의 주인공인 오모리 리카는 도쿄 출신의 전형적인 도시내기로서 집을 나가고 싶다는 마음을 한 번도 가져 본 적 없음은 물론 여행도 좋아하지 않아 일 년에 한 번 부모님과 함께 하코네 온처에 다녀오는 것으로 충분했다. 그랬던 그녀가 '출판유통회사'인 다이한에 입사하여 오사카 지사 영업부로 발령을 받았다. 책이나 독서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고 출판유통이라는 단어조차 들어 본 적 없었던 리카. 오사카로 팔려 가는 송아지 같은 심정이었다는 그녀가 1년 반 만에 도쿄 본사로부터 능력을 인정받아 '신업태 서점 개발부'의 1호 직원으로 발탁되어 다시 도쿄로 복귀하는 것은 물론 오사카에서 우연히 만난 다케루와 결혼하게 된다는 내용의 이 소설은 사실 그 구성이나 전개 면에서는 하나 특별할 게 없는 흔하디 흔한 소설일 수도 있겠다.


"애초에 왜 제가 오사카 지사입니까? 왜 영업부예요? 왜 다이한에 들어왔는지 서점 직원한테도 말해 주지 못하는 제가 왜 여기 있는 걸까요? 저보다 잘 맞는 사람도 많을 텐데. 왜 제가 다이한에 왔고, 왜 제가 영업부고, 왜 이런 장소에 있는지 모르겠어요. 알려주세요."  (p.61)


자신의 직속 상사 앞에서 눈물을 쏟으며 이렇게 내뱉었던 리카가 마음을 잡고 자신에게 내재된 능력을 한껏 발휘할 수 있게 되었던 건 순전히 아마가사키시 다치바나 상점가에 있는 고바야시 서점의 유미코 씨 덕분이었다. 인적 드문 곳에 위치한 평범한 동네서점인 고바야시 서점이 70년 동안 한 곳을 지켜올 수 있었던 비결을 조곤조곤 들려주며 마음을 잡지 못하는 사회초년생 리카를 다독이며 용기를 북돋워 주는 유미코 씨. 유미코 씨를 만난 이후로 리카는 고민이 있을 때마다 고바야시 서점을 찾았고, 유미코 씨는 그런 리카를 딸처럼 보듬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리고 자신이 겪어 온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상황에 맞는 적절한 사례를 들려주며 용기를 북돋웠다.


"물론 나를 향한 것만은 아니었을 거야.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쉬지 않고 성실히 일한 부모님. 언제나 묵묵히 배달 다니는 남편. 이 아마가사키 다치바나 상점가에서 30년 동안 계속 가게를 열어 온 고바야시 서점에 대한 신용이야. 이 신용만큼은 지켜야 한다고 굳게 다짐했어. 그저 우리가 팔고 싶으니까 파는 게 아니라 손님도 사길 잘했다는 마음이 드는 물건만을 제대로 설명한 다음 팔아야겠다고."  (p.132)


대지진을 겪고 다 무너져 가는 서점을 살리기 위해 우산 장사를 겸했으며, 서점의 규모가 작아 베스트셀러 할당량이 턱없이 부족했던 까닭에 다른 작은 서점들을 불러 모아 현대를 형성함으로써 평소에는 팔 수 없었던 놀라운 성과를 일궈내기도 했다. 다이한에 결제할 돈을 모두 도둑 맞고 시름에 잠겨 있을 때 다이한의 직원들과 친구 및 선후배들이 십시일반 도와줘서 위기를 무사히 넘겼던 이야기 등 우리 주변에서 있을 수 있는 감동적인 이야기들을 고바야시 서점의 유미코 씨는 한 편의 영화처럼 실감 나게 들려준다.


"사실은 여기에 소개한 것의 몇 배가 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의 흐름에 맞지 않아 쓰라린 마음으로 생략했습니다. 다른 에피소드나 그 후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부디 직접 고바야시 씨 본인에게 이야기를 들어 보세요. 다만 이야기가 길어질 수 있으니 다음 일정은 잡지 않기를 권합니다."  (p.254 '작가의 말' 중에서)


우리 주변에도 고바야시 서점과 같은 동네서점들이 있다. 그러나 모든 게 대형화되고 플랫폼 기업으로 흡수됨으로써 동네서점의 수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편리함의 추구는 서점 주인과 단골 고객 사이의 따뜻한 우정마저 끊어놓았다. 코로나 시국을 거치면서 확대된 비대면의 활성화로 우리는 과연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은 것일까. 삶의 온기는 당신의 손을 직접 잡아 보았을 때 비로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감정임을 책은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엔 당신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작가는 고바야시 서점을 통해 전달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쓸쓸하거나 외롭다고 느끼는 당신에게도 고바야시 서점의 유미코 씨는 언제나 한 줄 위로의 말을 건넬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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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 뮤지컬 - 전율의 기억, 명작 뮤지컬 속 명언
이서희 지음 / 리텍콘텐츠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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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지금껏 살아오면서 뮤지컬을 공연장에서 직접 관람하였던 건 손으로 꼽을 정도로 그 수가 적다. 이렇게 된 데에는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없었던 개인적 차원의 문제도 있겠지만 지금처럼 뮤지컬이 활성화되지 않았던 과거의 초라한 무대 세트와 어설픈 무대 연출,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관람료 등 뮤지컬 분야의 구조적인 원인도 한몫했을 것으로 보인다. '뮤지컬 한 편의 관람료면 영화 몇 편을 볼 수 있는데...' 하는 단순 계산 때문인지 어쩌다 손에 들어오는 공짜 티켓이 아니면 뮤지컬 공연장으로으로 향하는 자발적인 발걸음은 좀체 없는 일이 되고 말았었다.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고등학교 동창 모임의 송년 모임 레퍼토리가 바뀌면서 뮤지컬 관람은 하나의 정기 행사로 편입되었다. 촌놈들이 모인 자리에서 뮤지컬 관람이라니... 그것은 마치 '개발에 편자'처럼 꽤나 어울리지 않는 조합처럼 여겨졌지만 해가 거듭될수록 호평이 이어지는 기이한 결과를 낳았다. 부어라 마셔라 하던 음주 일색의 송년 모임이 뮤지컬 관람과 간단한 식사로 대체되면서 부부 동반이나 가족 전체가 모임에 참가하는 기이한 현상도 적지 않았다.


영영 기회가 없을 줄 알았던 뮤지컬과의 인연이 이렇듯 우연한 계기로 인해 나의 삶에 자연스레 녹아든 것은 내 삶에 있어 하나의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이와 같은 배경에는 물론 뮤지컬 업계의 성장과 경제 발전에 따른 뮤지컬 관객의 증가와 같은 사회적 변화에 편승한 우연 아닌 우연이 작용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뮤지컬 애호가가 아닌 입문자의 수준에 머물러 있고, 귀에 익지 않은 낯선 제목의 뮤지컬 공연은 거들떠도 보지 않는 편견이 심한 관객에 불과하다. <방구석 뮤지컬>을 쓴 이서희 저자 역시 나와 비슷한 경험을 말하고 있다.


"이 책을 펼쳐 든 여러분께서 어느 순간 공연장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뮤지컬이 품고 있는 배경과 서사를 생동감 있게 담아내고자 노력했습니다. 아름다운 가사와 무대 영상을 덧붙여, 문자가 가진 한계를 보완했고요. 공연장에서 직접 느낀 감동과 전율을 전달하려 했습니다. 프로덕션에 따라 달라지는 뮤지컬의 구성과 넘버는 되도록 제가 직접 감상한 공연을 기준으로 정리하였습니다. 아직 한국에 소개되지 않은 뮤지컬은 여러 자료를 통해 천천히 알아갔습니다."  (p.5 '프롤로그' 중에서)


뮤지컬 <노트르담 파리>를 시작으로 순식간에 뮤지컬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게 되었다는 저자가 이 책에서 소개하는 뮤지컬은 서른 편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보고자 하는 뮤지컬의 무대 장치와 조명, 의상, 안무, 연출에 이르기까지 뮤지컬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요소를 알고 나면 우리가 알던 뮤지컬의 세계는 한층 다채로운 모습으로 다가올 것이다. 뮤지컬은 하나의 종합예술이기 때문이다. 단순한 줄거리 파악이나 유명 배우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는 뭔가 성에 차지 않았던 것도 그런 까닭이었는지도 모른다.


"시대와 운명이 배반하더라도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 나가는 뮤지컬 속의 인물들. 우리는 극장에서 그들의 용기와 의지를 엿봅니다. 그리고 중력을 거슬러 날아오른 엘파바처럼, 매 순간 조금씩 성장해가는 에반 핸슨처럼 나아갈 힘을 얻습니다."  (p.358 '에필로그' 중에서)


그러나 접해 보지 않은 누군가에게 뮤지컬은 여전히 낯선 장르일 뿐이다. 그러나 처음이 어려울 뿐 일단 부딪쳐 보면 뮤지컬의 매력에 쉽게 녹아들 수밖에 없다는 게 많은 이들의 전언이다. 게다가 활동하기에 더없이 좋은 가을 저녁의 뮤지컬 관람은 생각만으로도 설레게 된다. 뮤지컬을 관람한 후 극장을 나설 때의 여운은 뺨에 닿는 가을바람처럼 신선하고 부드럽다.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도 잊은 채, 혹은 자신의 집이 어느 방향인지도 잊은 채 한동안 넋을 놓을 수밖에 없는 감동의 여진이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할지도 모른다.


"빵 하나를 훔친 죄로 5년의 징역을 선고받은 '장발장'. 그는 이후 탈옥을 시도하다가 19년으로 형량이 늘어납니다. 그곳에서 죄수들을 감독하는 이는 '자베르'입니다. 이후 장발장은 가석방 처분을 받게 되지만 가석방 처분의 규율을 어기고 도망쳐 '마들렌'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p.206)


돌이켜보면 삶의 시간들은 순간처럼 가볍다. 그렇다고 자신의 삶을 인위적으로 길게 늘일 수 있는 방법도 여전히 찾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 우리는 순간순간의 '지금'을 마냥 행복한 경험으로 채우는 것만이 자신의 삶을 온전히 즐기는 최선의 방책이라는 걸 앞서 살다 간 많은 이들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은 자신의 삶을 원하지 않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끌 때가 많은 것도 사실, 그럼에도 우리는 삶의 기쁨과 충만한 만족감을 향해 험한 가시밭길을 헤쳐 앞으로 나아가곤 한다. 뮤지컬은 그와 같은 우리의 여정을 그리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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