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루시 바턴 루시 바턴 시리즈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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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예컨대 말이나 글로, 혹은 행동이나 몸짓으로, 또는 악보나 그림으로, 또는 이제껏 아무도 꿈꾸지 못했던 자신만의 발명품으로, 우주의 비밀을 푸는 수식이나 이론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남긴다. 그리고 우리는 미처 다 읽지 못한 세상의 많은 이야기들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그 이야기에 자신의 이야기를 덧붙여간다. 그러고 보니 세상은 온통 이야기의 바다, 이야기의 천국인 셈이다. 나 역시 그동안 내가 읽었던 많은 이야기들을 회상하거나 어떤 의미였을까 해석하면서 특별하지 않은 나의 이야기를 덧붙여간다. 나의 삶이 시간의 수직선상에 나열된 작은 한 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비로소 나는 더없이 마음이 푸근해지고 저으기 안심하게 되는 것이다.


"책이 내 외로움을 덜어주었다. 이것이 내 말의 요점이다. 그래서 생각했다. 나도 그런 사람들이 외로움에 사무치는 일이 없도록 글을 쓰겠다고!"  (p.34)

"외로움은 내가 맛본 인생의 첫맛이었고, 늘 그 자리에, 내 입안의 틈 속에 숨어 있다가 자신의 존재를 일깨워주었다."  (p.53)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소설 <내 이름은 루시 바턴>을 읽고 잔잔한 감동을 느꼈다는 이들의 마음은 다들 나와 비슷한 삶의 방식 혹은 인생관을 가진 사람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소설에서 루시는 소설을 쓴 작가인 동시에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히 들려준다. 1980년대 중반 소설의 화자인 루시는 간단한 맹장수술을 받고 원인도 알 수 없는 고열에 시달린다. 직장과 집안일로 바쁜 남편은 결국 자신의 장모인 루시의 엄마에게 SOS를 보냈고, 입원한 뒤 삼 주쯤 지났을 무렵, "안녕, 위즐." 하는 어릴 적 애칭과 함께 오랫동안 인연을 끊고 지냈던 엄마가 나타났다. 아무도 없는 일인용 병실에서 남편과 어린 아이들을 그리워하며 외로움과 씨름하던 루시. 엄마라는 존재는 파편화된 어린 시절의 기억을 하나하나 끼워 맞추어 주기 위한 소중한 사람이었다.


"아마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도 이렇듯 반쯤은 알게 반쯤은 모르게, 사실일 리 없는 기억의 방문을 받으면서 세상을 이런 식으로 어찌어찌 통과해나갈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공포라는 감정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다는 듯 자신만만하게 보도를 걸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내가 다른 사람들이 어떤 마음인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삶은 아주 많은 부분이 추측으로 이루어진 듯하다."  (p.21~p.22)


루시에게 있어서 그녀의 어릴 적 기억은 따뜻하거나 아름다운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녀의 엄마는 고향 사람들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풀어놓는다. 그렇게 들먹여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매개로 루시 역시 자신의 기억들을 하나 둘 되살린다. 종조부의 차고에서 지내며 추위와 배고픔과 외로움에 떨던 날들, 부모님의 억압과 간헐적인 폭력이 이어지던 날들, 친구들과 이웃들로부터의 차별과 따돌림, 그녀에게 고향인 앰개시는 남들이 상상할 수 없는 고통과 무지의 기원이자 사회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외로운 섬과 같은 곳이었다. 남편과 결혼하여 그토록 동경하던 뉴욕에 정착하여 아이를 낳고 소설가가 된 지금까지의 여정이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었음에도 그녀의 엄마는 결혼도 하지 못한 채 늙어가고 있는 오빠와 다섯 아이의 엄마가 되어 생활고에 시달리는 언니에 비하면 루시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다 이루었다고 믿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나는 진정, 냉혹함은 나 자신을 붙잡고 놓지 않는 것에서,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 것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이게 나야, 나는 내가 견딜 수 없는 곳-일리노이 주 앰개시-에는 가지 않을 거고, 내가 원하지 않는 결혼생활은 하지 않을 거고, 나 자신을 움켜잡고 인생을 헤치며 앞으로, 눈먼 박쥐처럼 그렇게 계속 나아갈 거야!,라고. 이것이 그 냉혹함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p.204~p.205)


루시는 옷가게에서 우연히 만났던 소설가 세라 페인의 워크숍에 참가한다 세라 페인은 '섬약한 연민에 기우는 스스로를 잡아 세우지 못하'는 작가, '무대에 능한 작가'라는 혹평을 듣기도 하지만 루시에게 세라는 '뉴욕이 그녀를 좋아하지 않는 것일 뿐'이라며 세라에 대한 지지를 버리지 않는다. '작가의 일이란 인간의 조건에 대해 알려주는 것, 우리는 누구이고 우리는 무슨 생각을 하고 우리는 어떤 행동을 하는지를 말해주는 것'이라고 했던 세라 페인에 대한 지지를.


“나는 우리가 아이였을 때 품게 되는 아픔에 대해, 그 아픔이 우리를 평생 따라다니며 너무 커서 울음조차 나오지 않는 그런 갈망을 남겨놓는다는 사실에 대해 내가 아주 잘 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것을 꼭 끌어안는다. 펄떡거리는 심장이 한 번씩 발작을 일으킬 때마다 끌어안는다. 이건 내 거야, 이건 내 거야, 이건 내 거야.”  (p.217)


이 소설에는 루시 곁을 스쳐갔던 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그들과의 인연은 그리 길지 않았다. 우리의 삶은 어쩌면 가장무도회처럼 짧았던 수많은 인연들의 총합일지도 모른다. 얼굴을 달리하여 나타났던 수많은 천사들 덕분에 우리의 삶이 유지되는 것은 물론 마지막에 이르러 자신의 삶이 아름다웠노라고, 꽤 행복한 삶이었다고 고백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의 행복은 스스로의 노력이 아니라 스치듯 지나쳤던 수많은 사람들의 친절 덕분이었음을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는 독자들에게 잔잔히 말하고 있다. 소설 <내 이름은 루시 바턴>을 통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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