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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 뮤지컬 - 전율의 기억, 명작 뮤지컬 속 명언
이서희 지음 / 리텍콘텐츠 / 2022년 10월
평점 :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지금껏 살아오면서 뮤지컬을 공연장에서 직접 관람하였던 건 손으로 꼽을 정도로 그 수가 적다. 이렇게 된 데에는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없었던 개인적 차원의 문제도 있겠지만 지금처럼 뮤지컬이 활성화되지 않았던 과거의 초라한 무대 세트와 어설픈 무대 연출,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관람료 등 뮤지컬 분야의 구조적인 원인도 한몫했을 것으로 보인다. '뮤지컬 한 편의 관람료면 영화 몇 편을 볼 수 있는데...' 하는 단순 계산 때문인지 어쩌다 손에 들어오는 공짜 티켓이 아니면 뮤지컬 공연장으로으로 향하는 자발적인 발걸음은 좀체 없는 일이 되고 말았었다.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고등학교 동창 모임의 송년 모임 레퍼토리가 바뀌면서 뮤지컬 관람은 하나의 정기 행사로 편입되었다. 촌놈들이 모인 자리에서 뮤지컬 관람이라니... 그것은 마치 '개발에 편자'처럼 꽤나 어울리지 않는 조합처럼 여겨졌지만 해가 거듭될수록 호평이 이어지는 기이한 결과를 낳았다. 부어라 마셔라 하던 음주 일색의 송년 모임이 뮤지컬 관람과 간단한 식사로 대체되면서 부부 동반이나 가족 전체가 모임에 참가하는 기이한 현상도 적지 않았다.
영영 기회가 없을 줄 알았던 뮤지컬과의 인연이 이렇듯 우연한 계기로 인해 나의 삶에 자연스레 녹아든 것은 내 삶에 있어 하나의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이와 같은 배경에는 물론 뮤지컬 업계의 성장과 경제 발전에 따른 뮤지컬 관객의 증가와 같은 사회적 변화에 편승한 우연 아닌 우연이 작용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뮤지컬 애호가가 아닌 입문자의 수준에 머물러 있고, 귀에 익지 않은 낯선 제목의 뮤지컬 공연은 거들떠도 보지 않는 편견이 심한 관객에 불과하다. <방구석 뮤지컬>을 쓴 이서희 저자 역시 나와 비슷한 경험을 말하고 있다.
"이 책을 펼쳐 든 여러분께서 어느 순간 공연장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뮤지컬이 품고 있는 배경과 서사를 생동감 있게 담아내고자 노력했습니다. 아름다운 가사와 무대 영상을 덧붙여, 문자가 가진 한계를 보완했고요. 공연장에서 직접 느낀 감동과 전율을 전달하려 했습니다. 프로덕션에 따라 달라지는 뮤지컬의 구성과 넘버는 되도록 제가 직접 감상한 공연을 기준으로 정리하였습니다. 아직 한국에 소개되지 않은 뮤지컬은 여러 자료를 통해 천천히 알아갔습니다." (p.5 '프롤로그' 중에서)
뮤지컬 <노트르담 파리>를 시작으로 순식간에 뮤지컬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게 되었다는 저자가 이 책에서 소개하는 뮤지컬은 서른 편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보고자 하는 뮤지컬의 무대 장치와 조명, 의상, 안무, 연출에 이르기까지 뮤지컬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요소를 알고 나면 우리가 알던 뮤지컬의 세계는 한층 다채로운 모습으로 다가올 것이다. 뮤지컬은 하나의 종합예술이기 때문이다. 단순한 줄거리 파악이나 유명 배우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는 뭔가 성에 차지 않았던 것도 그런 까닭이었는지도 모른다.
"시대와 운명이 배반하더라도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 나가는 뮤지컬 속의 인물들. 우리는 극장에서 그들의 용기와 의지를 엿봅니다. 그리고 중력을 거슬러 날아오른 엘파바처럼, 매 순간 조금씩 성장해가는 에반 핸슨처럼 나아갈 힘을 얻습니다." (p.358 '에필로그' 중에서)
그러나 접해 보지 않은 누군가에게 뮤지컬은 여전히 낯선 장르일 뿐이다. 그러나 처음이 어려울 뿐 일단 부딪쳐 보면 뮤지컬의 매력에 쉽게 녹아들 수밖에 없다는 게 많은 이들의 전언이다. 게다가 활동하기에 더없이 좋은 가을 저녁의 뮤지컬 관람은 생각만으로도 설레게 된다. 뮤지컬을 관람한 후 극장을 나설 때의 여운은 뺨에 닿는 가을바람처럼 신선하고 부드럽다.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도 잊은 채, 혹은 자신의 집이 어느 방향인지도 잊은 채 한동안 넋을 놓을 수밖에 없는 감동의 여진이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할지도 모른다.
"빵 하나를 훔친 죄로 5년의 징역을 선고받은 '장발장'. 그는 이후 탈옥을 시도하다가 19년으로 형량이 늘어납니다. 그곳에서 죄수들을 감독하는 이는 '자베르'입니다. 이후 장발장은 가석방 처분을 받게 되지만 가석방 처분의 규율을 어기고 도망쳐 '마들렌'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p.206)
돌이켜보면 삶의 시간들은 순간처럼 가볍다. 그렇다고 자신의 삶을 인위적으로 길게 늘일 수 있는 방법도 여전히 찾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 우리는 순간순간의 '지금'을 마냥 행복한 경험으로 채우는 것만이 자신의 삶을 온전히 즐기는 최선의 방책이라는 걸 앞서 살다 간 많은 이들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은 자신의 삶을 원하지 않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끌 때가 많은 것도 사실, 그럼에도 우리는 삶의 기쁨과 충만한 만족감을 향해 험한 가시밭길을 헤쳐 앞으로 나아가곤 한다. 뮤지컬은 그와 같은 우리의 여정을 그리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