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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이해
이혁진 지음 / 민음사 / 2019년 4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랑을 이해 한다는 것 [사랑의 이해_ 이혁진]
드라마 [사랑의 이해]를 보다가 가슴이 답답했다. 수영이를 이해 할 수 없었고 상수의 우유부단함이 거북했다. 사랑의 과정이 이렇게 지리멸렬하다면 수영이와 상수는 이어질 수 없겠구나 생각했다. 그들의 사랑이 이런 표현 밖에 없을까 생각되어 읽게 된 원작 [사랑의 이해]에서 수영이와 상수는 조금 달랐다. 소설을 읽을수록 수영이의 마음이 입체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상수가 수영이에게 마음이 있으면서도 미경이와 사귈 수 있었던 그 순간이 소설을 읽으면서 이해가 되었다.
[사랑의 이해]는 은행을 배경으로 네 남녀의 이야기로 드라마보다 소설이 훨씬 입체적이었다. 드라마에서 답답하게 여겨졌던 종현이의 모습도 좋았고, 미경이의 사랑도 나쁘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수영이가 상수를 좋아했는지 의문을 낳았던 부분도 확연하게 느껴지는 선을 볼 수 있었다. 드라마에선 같은 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부분이 확실하게 서로 다른 곳을 보고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상수의 옆 자리에 앉은 수영은 예뻤다. 그리고 상냥했다. 그녀의 그런 모습은 은행 대부분의 남자에게는 호감과 관심의 대상이었다. 그런 수영을 마음에 품고 있는 상수 역시 그랬다. 하지만 수영은 달랐다. 모든 이들의 관심을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 척, 때로는 이용하고 때로는 버리기도 했다. 외유내강의 수영은 주변에서 자신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상수의 관심이 싫지 않지만 그 연애가 어떻게 끝이 나는지 알고 있었던 것인지 쉽게 상수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았다. 상수는 은행의 정직원, 좋은 대학을 나온 인물 좋은 사람이지만 수영은 아니었다. 그런 부분에서 상수는 수영이게게 향하고 있는 마음을 직선으로 바꾸지 못했다. 그런 부분에선 상수도 주변의 남자들과 다르지 않는 그냥, 평범한 인물이었다. 예쁜 텔러 직원 한번 꼬셔 보고 싶은 마음, 밥 한 번 먹고 싶은 마음, 잠자리를 한번 가져 보고 주변에 뻐기고 싶은 마음이 늘 조금씩 자라다 사라졌다.
“ 관계를 더 발전시킬지 말지. 수영이 텔러, 계약직 창구 직원이라는 것, 정확히는 모르지만 변두리 어느 대학교를 나온 듯한 것, 다 걸렸다. 일도 잘하고 똑똑한 사람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랬다. 그 두 가지가 상수 자신의 밑천이었기 때문에, 상수가 세상에서 지금까지 따낸 전리품이자 직장과 일상생활에서 그 위력과 차별을 나날이 실감하고 있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P93
상수도 수영이의 미모에 그저 마음이 현혹이 되었지만 더 이상의 관계를 발전시키기에는 부담스러운 마음이 있었다. 그러니까 술자리서 같이 술을 마시다가 잠이나 한번 자는 걸로 충족을 시킬 그런 마음이 없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런 면에서 수영이가 훨씬 인간적이다. 수영이가 상수가 아니라 은행 청경으로 일하고 있는 종현이를 사랑하게 된것, 그리고 그의 관계를 계속 이어나간 것은 어쩌면 수영이가 부릴 수 있는 사치는 아니었을까. 나보더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종현을 거둬주는 일, 그것은 자신이 가진 화분들과 꽃들을 모두 내다 팔고 종현의 자리를 만들어 주는 것은 큰 희생이었지만 생색이 될 수도 있는 부분이었다.
은행의 청경인 종현은 수영이보다 더 심한 흙수저다. 고향의 부모님은 종현의 집 보증금을 다 가져가야 할 만큼 없는 집안이다. 아프면 굶어 죽을지도 모를 그런 집안의 종현이는 경찰이 되는 것이 꿈이고 그것을 위해 공부중이었다. 가진 것 없는 환경이지만 은행에서 가장 예쁜 수영이와 사귀고 있으니 그는 잃은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얻은 것도 있었다. 그 이유는 그도 반듯한 외모와 어린 나이를 가졌다는 것이다.
드라마보다 훨씬 종현이가 살아 있는 캐릭터라는 것을 느낀 부분은 그를 표현하는 묘사들이 때문이었다. 수영이가 왜 상수가 아니라 종현이를 더 그리워하고 사랑하고, 그만큼 미움을 덜어 낼 수 있었는지 묘사를 보면 알 수 있다. 이런 부분이 사랑의 이해였다고 할 수 있을까. 사랑이 이해되는 순간은 어느 부분에서 오는 것일까.
종현은 수영을 사랑했지만 그의 무겁고 낡은 시간들이 수영을 끝까지 이해하지 못하며 헤어졌다. 수영도 종현을 사랑했지만 견뎌야 했을 무거운 시간을 피하지 못했다. 또한 종현과 헤어지기 위한 마지막 선택은 상수에게도 이해 받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상수는 괜찮았나보다. 그런 부분에서 상수와 수영이 현저하게 다르게 문제를 보고 있다는 것은 두 사람이 다시 만나 서로의 관심을 다시 느끼는 부분이었다.
상수는 미경이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수영과 새로운 시작을 알리기 위해 각자의 현재 연인과의 관계를 정리하자고 말했다. 수영도 고개를 끄덕였다. 버스가 떠나고 상수는 그때 미경과의 헤어짐 이후 다시 시작될 수영과의 관계의 미래를 그리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관계를 정리하자고 했던 그 관계가 종현과의 관계가 아니라 상수와 수영과의 관계가 되었다. 수영은 사라졌다. 그때, 두 사람이 바라보고 있던 그곳이 서로 다른 지점이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여자와 남자의 큰 차이는 공감과 이해의 차이가 있다는 어떤 칼럼을 읽은 기억이 난다. 똑같은 문제가 생기더라도 남자는 이해의 측면이, 여자는 공감의 측면이 많아 서로 다르게 볼 수밖에 없다는 얘기. 그 부분으로 본다면 수영과 상수를 이해 할 수 있는 얘기들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나의 사랑은 이해 할 수 있지만 타인의 사랑을 이해 할 수 있을까. 그들의 마지막 만남이 다시 이별이 될지라도 두 사람의 애틋한 사랑이 꼭 한번은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