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매일 글 쓰기 [아직 어른 되기 멀었나]




7월 첫 주가 중고등 아이들 시험이었다. 그 시험을 위해 3주 정도 토요일과 일요일 모두 출근해 시험 대비를 했다. 시험을 잘 봐야 아이들이 학원을 계속 다닌다고 생각하니 주말 반납을 아쉬워하면 안됐다. 중학교 때는 매번 백점을 받다가 고1 올라가 처음 치른 중간 고사때 3개를 틀린 회원이 속상해 했었는데 기말은 1개를 틀렸다. 오른 성적에 좋아했는데 그건 나만의 생각이었다. 성적이 올라 다행이라며 올영 기프티 카드까지 보내며 아이를 격려했다. 그렇게 삼일이 지나고 회원 모가 전화가 왔다. 학원을 그만두겠다고.



나는 당황스러웠다. 성적이 떨어졌으면 당연히 학원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 할 텐데 성적도 올랐는데 왜 그만두는 것일까. 무엇보다 왜 그만두는지 회원모도 모른다고 했다. 무조건 안 다니겠다고 했다고. 아니 이렇게 무조건 안가겠다고 생각한다면서 내가 보내준 기프티 카드는 왜 받았지? 성적 올라 너무 좋다. 방학에는 2학기 준비 더 잘하자 했는데, 알겠다고 대답할 때는 대체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자신은 그럴 마음이 없는데 학원 쌤은 혼자 흥분하면서 말하고 있다고 생각했을까? 선생님 헛물켜지 마세요. 아니 선생님 왜 혼자 난리? 뭐 이런 느낌이었을까?




일주일의 시간이 지난후 나름의 이유를 찾아보았다. 그 학원생과 같이 다니는 한 학원생이 떠올랐다. (우리 학원은 국영수 모두 하는 학원이다) 걔는 영어만 다니는 회원인데 국어 시험은 늘 백점이라고 했다. 가끔 걔가 자긴 국어 공부 안 해도 공부 잘한다고 얘기를 하고 다녔고 그 회원이랑도 이런 얘기를 많이 했었다. 그때 나는 걔와 친한 회원이 자신은 공부를 해도 백점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 차라리 공부를 하지 않고 지금의 점수를 받는 것이 나을것 같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나 생각해 보았다. 난 공부 안 해도 이정도 점수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어깨 뽕을 받고 싶은 것은 아니었을까? 이런 얘기를 동료 학원 쌤들과 하며 나름의 통찰력을 지녔다며 잘난 척했다.





아니었다. 나의 오해였다. 학원을 그만두는 그 회원은 나 때문에 그만두는 것이었다. 어느날, 지정된 시간에 와야 하는 회원은 학교에서 탁구를 치다가 늦게 온 적이 있었다. 국어 수업이 끝나고 영어 수업으로 교실 이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회원에게 오늘은 국어 수업을 조금만 하고 영어 교실로 이동하라고 얘기했었다. 내가 늦어지면 영어 쌤도 수업이 늦어지기 때문에 늘 신경이 쓰였던 부분이라 내가 조금만 하고 영어 수업을 더 하라고 보냈다. 그때 회원은 생각했었다고 한다. 우리 부모님이 주시는 귀한 수업비에 맞춰 수업을 하고 가야 하는데, 저 학원 쌤이 다 가르쳐주지도 않고 자신을 다른 교실로 보냈다고. 이런 얘기를 영어쌤과 하는 것을 원장이 들었고 그 얘기를 오늘에서야 나에게 전달되었다.




본인이 늦게 오고 본인의 시간만 중요하고, 시험대비 때마다 한 달 정도를 주말에 나와 수업을 해주는 그 시간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그 마인드에 화가 났었다. 그러다 생각했다.


아, 참 부끄럽구나. 동료 쌤들에게 학원을 그만두는 이유에 나는 포함은 하지 않고 다른 이유들만 찾으며 얘기 했구나. 왜 나 때문이라는 생각은 안했을까. 책을 많이 읽으면 뭐하나, 이렇게 성찰도 못하는 지적 허영심을 가져 뭐하나. 어제 잠을 못 잤다. 사실 그 불면에는 나를 반성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회원의 원망과 이 얘기를 안 해 주고 내 잘못은 생각도 안하고 회원 책임 얘기 할 때 가소롭게 나를 보았을 영어 쌤에 대한 원망이 있었다. 그러니까 책을 읽으면 뭘 하냐고. 내 잘못은 생각도 못하면서.




얼마전에 끝난 드라마 [졸업]을 보면서 나름 가슴에 와 닿는 대사가 있었다.




“애들은 시험을 잘 봐도 학원을 그만둬, 왜? 본인이 잘나서. 시험을 못 봐도 그만둬. 왜? 선생이 무능해서”

학원 선생을 하겠다는 위하준에게 정려원의 충고였다. 학원생들에게 정을 주지 말라며. 그 이야기에 한숨이 길게 나왔다. 부끄럽고 화도 나고 분노도 이는 이 감정으로 휴가가 시작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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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이 늦어지니 뭘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뭘 하게 되면 잠을 늦게 자게 되고 조금만잠이 부족해지면 너무 피곤해진다. 암 수술 후 수면이 건강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느끼게 된다. 암 수술을 한지가 벌써 2년이 흘렀지만 앞으로 3년 동안 잘 관리해야 해서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업무를 하고 있지만 나도 잊고 있고 내 주변인들도 잊고 있다. 내가 아직 암환자라는 걸.



더 이상 암 추적 검사를 하지 않고 더 이상 소견이 없을때 ‘완전관해’라고 하는데 그 상태가 오기까지 나는 3년을 더 조심하면서 살아야 한다. 하지만 먹고 사는 날들에 ‘완전관해’를 바라며 살아가기가 쉽지 않다. 그중 육체적 고단함보다 정신적 스트레스 관리가 너무 힘들다. 그 스트레스와 글쓰기가 무슨 상관인가 싶지만, 스트레스를 받으면 아무 생각이 안 난다. 누군가는 화를 글 쓰는 걸로 푼다던데, 나는 그런 능력이 없다.





어쨌거나 뭔가를 쓰고 싶은 마음은 늘 굴뚝같지만 하루가 다르게 늙어선가 노트북 전원 하나 켜는 것도 왜 이렇게 힘든 걸까. 무엇보다 뭔가를 쓸 만한 이야기가 없다는 것이 더 큰 좌절이긴 하지만. 읽지는 않지만 사고는 있는 책들을 진열하는 일은 그만하고 싶다. 사는 족족 다 읽어 버리고 싶다. 아무튼, 이제 뭐라도 쓰기 시작이다.





우리 루키는 잘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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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4 17: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7-27 17: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24-07-15 0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재취업 해서 공장에 다녔을 때 책 펼치는 것이 힘들었어요. 책은 읽고 싶은데 글자 눈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책을 안 봐서 글을 못 썼어요. 지금 그 시절을 생각하면 몸이 무거워지네요. 제가 지금 출근해야 해서 현재 기분 상태가 그런 것일 수도 있고요. ^^;;

오후즈음 2024-07-27 17:10   좋아요 0 | URL
어느날부터 사이러스님 글이 없어서 궁금했었습니다.
저는 정신이 육체를 늘 이기지 못하더라고요. 늘 퇴근후 쓰러져 자는게 다입니다. 정말 너무 너무 힘듭니다. ㅎㅎ 무더운 여름 잘 보내셔요~~
 
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지음, 홍한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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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 사소함을 간직 한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 - 클레어 키건]

오래된 복도형 아파트의 젤 끝집에 살고 있는 나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세 곳의 집을 지나고 나서야 집으로 들어 갈 수 있다. 늦은 퇴근이라 각자의 집에 도착한 택배 상자를 거의 못 보는데 늘 첫 집은 그 다음날까지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가끔은 이틀 혹은 삼일도 더 걸려서 택배 상자가 없어지곤 했다. 짐작하건데 그 집의 세입자는 이곳에 매일 거주하는 것이 아니라 주말이나 한번 오는것 같았다. 오래 방치 된 택배 상자를 보면서 요즘은 집에 오지 않는가하는 의문을 가지고, 집에 오지도 않는데 왜 물건을 주문했을까 생각하며 지나쳤었다. 그런데 쉽게 지나치지 못하게 된 것은 택배 상자 중 하나가 무슨 김치라는 스티커가 크게 붙어 있는 아이스박스였다. 저렇게 오래 두면 발효 돼서 되어 신 김치가 될 텐데, 얼른 냉장고에 넣어야 할 텐데. 거슬렸던 그 김치를 담은 아이스박스가 늘 거슬렸던 날이 열흘이나 지났을 때, 무슨 일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벽에 날카롭게 쇠를 자르는 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졌다. 잠옷 바람으로 현관문을 열고 무슨 일인가 보았다. 경찰관 두 분이 서 계시고, 한 아저씨가 잠긴 문을 열기위해 전동드릴을 돌리고 있었다. 그 소음이 복도형 아파트를 휘감고 있을 때 옆에 서 계신 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흔들리는 눈빛으로 지금 이 상황이 무슨 상황인지 짐작을 할 수 있었다. 처음으로 주변 이웃이 고독사로 사망했다는 것이 충격이었다.

출근 하면서 여전히 집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아이스박스가 눈에 들어왔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첫 번째 집의 세입자를 위해 애도의 마음을 보냈다. 팽창되는 김치를 담은 비닐처럼 무언가 죄스러운 마음도 함께 팽창되어 일주일 정도는 마음이 힘들었다. 퇴근을 하며 집으로 들어가기 위해 늘 지나쳐야 했었던 그 집 앞,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던 며칠의 날들. 나는 내 주변의 어떤 사소함을 놓치고 있었던 것일까.

소설 <이토록 사소한 것들>은 실제 인물을 기반으로 하지 않은 허구라고 하지만 1996년에 문을 닫은 아일랜드의 막달레나 세탁소에서 일어난 일을 연상시킨다. 사실 이 부분에대 해한 기억이 크게 있지 않아서 나무 위키로 다시 찾아보았다.

<1922년 아일랜드에는 일명 막달레나 세탁소로 불리던 가톨릭 수녀회가 있었는데 가톨릭교회에서 지은 사회시설로, 이름과 같이 세탁소 같은 형태로 운영되는 곳이었다. 오늘날과 같이 세탁기가 발명되기 전이어서 오늘날의 일반 세탁소오 같은 호텔이나 정부기관, 군 관련 세탁물을 위탁받아 처리하는 방식으로 운영된 일종의 외주업체였다. 이곳에 있었던 많은 미혼모와 고아들을 무보수, 무휴일로 강제 노역을 시킨 것은 물론이고 미혼모들의 자녀들을 돈을 받고 입양을 보내기도 했다. 매질을 당하는 것은 예사였고, 최악의 경우에는 성추행까지 당하는 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식사도 제공되지 않아 굶주린 채로 착취당했고, 수많은 여성들이 인권을 철저하게 유린당하면서 죽어 갔다. 충격적인 사실은 이러한 만행이 비교적 최근은 1996년 9월 25까지 약 74년 동안 계속되었다는 것이다. (나무위키 발췌) >

2002년 영화 [막달레나 시스터즈]는 그곳의 실상을 보여줬다. 베니스 국제 양화제에 출품되어 감춰진 많은 일들이 들어났고 대대적인 진상조사가 벌어지며 아일랜드 총리가 사과를 하게 되었다. 사소하게 지나칠 수 있었던 작은 부분이 커다란 구멍을 만들고 모두가 들여다보게 만들었다.

아일랜드의 소도시 뉴로스에 살고 있는 ‘빌 펄롱’은 석탄을 파는 석탄장이다. 그는 아버지가 누군지 모른다. 그의 어머니는 펄롱이10대때 돌아가셨다. 그런 그를 외면하지 하지 않은 미시즈 월슨 때문에 1985년 실업과 빈곤에 허덕이는 시절에도 석탄을 팔며 딸 5명과 함께 살아갈 수 있었다. 열여섯에 자신을 낳은 어머니를 받아 준 것도 미시즈 월슨이었다. 무심하게 지나칠 수 있었던 것들을 놓치지 않은 월슨은 두 생명은 살려준 사람이었다. 미혼모를 모른 척 하지 않았고, 고아가 된 펄롱을 거둬주었다. 누군가에게 은혜를 입었다고 생각한 펄롱은 그날 만난 소녀를 잊기 어려웠을 것이다. 크리스마스를 앞 둔 날 석탄을 수녀원으로 배달간 펄롱은 창고에 맨발로 헐벗겨져 있는 소녀를 보고 그녀에게 벌어진 일이 무엇인지 짐작만 하게 된다. 수녀원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모른 척 하고 자신의 밥벌이가 끊길 수 도 있는 일들에 선뜻 나서기 힘들었다. 자신의 딸들이 다섯 명이나 있고 그 딸들이 갖고 싶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마련해야 했다. 그가 놓인 1985년은 아일랜드에서 혹독한 현실에 눈을 질끈 감고 모른 척 했어야 했다. 소녀가 아이를 낳았고 그 아이가 어떻게 되었는지도 모른척 했어야 했다. 그냥 사소한 것들이라고 치부하며 석탄을 배달하며 집으로 돌아가 안락한 시간을 가졌어야 했다.

“펄롱을 괴롭힌 것은 아이가 석탄광에 갇혀 있었다는 것도, 수녀원장의 태도도 아니었다. 펄롱이 거기 있는 동안 그 아이가 받은 취급을 보고만 있었고 그 애의 아기에 관해 묻지도 않았고 - 그 아이가 부탁한 단 한 가지 일인데- 수녀원장이 준 돈을 받았고 텅 빈 식탁에 앉은 아이를 작은 카디건 아래에서 젖이 새서 블라우스에 얼룩이 지는 채로 내버려두고 나와 위선자처럼 미사를 보러 갔다는 사실이었다.” P99

펄롱이 다시 소녀를 찾으러 갔을 때쯤, 나는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본 어느 한 청년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만 18세가 되면 보호아동 종료가 되어 독립을 해야 하는데, 어찌 된 이유인지 그는 부천에서 광주 시설로 옮겨지고 그곳에 계속 남게 되었다. 어려운 사람을 돕고 싶다던 유군은 대학에 입학해 사회복지사 꿈을 꾸었다고 한다. 봉사 생활도 했다던 그가 2학기 개강을 앞두고 잠긴 강의동 문을 열고 옥상으로 올라가 주저 없이 뛰어 내렸다고 한다. 열심히 살아 사회의 일원으로 남고 싶었던 그 청년은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그 사소한 것들을 발견해 주었다면 그 청년을 살릴 수 있었을까.

펄롱은 차디찬 바닥에 있었던 그 소녀의 손을 잡고 다른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왔을 것이다.

책을 읽으며 이토록 마음이 불편했던 것은 나는 펄롱처럼 행동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비굴함, 마음과 다른 위선이 늘 주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나는 어떤 어른으로 남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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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목련 2024-03-16 08: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후즈음 님, 잘 지내시죠? 환한 봄 맞으시길 바라요!

오후즈음 2024-03-16 11:07   좋아요 1 | URL
자목련님 오랜만이예요. 그동안 몸도 아프고 이런 저런일로 이제야 책도 읽을 시간이 있네요. ㅋ 늘 한결같으신 자목련님 따뜻한 봄 맞으세요!!
 
미칠 수 있겠니
김인숙 지음 / 한겨레출판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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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수 없을것 같아 [미칠 수 있겠니- 김인숙]

“미칠 수 있겠니, 이 삶에

대답이, 아직도 어렵다. 그래도 어떻든, 결국에는 한꺼번에 다 타올라 소멸해버릴 삶이니, 많은 부분에 용서가 되거나 위로가 된다.” P301

쓰나미의 현장에 그 여자와 그 남자의 만남은 이상하지 않았다. 지진으로 모든 것이 무너진 그 공간에 남겨진 두 남녀가 서로를 찾게 되는 상황은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남편과 같은 이름을 가진 그 여자 ‘진’은 남편이 정착하려는 섬을 찾아 지진을 경험했고 혼란의 시간에 갇히게 된다. 그 섬에서 드라이버로 살고 있는 이야나는 약혼자 수니와 헤어지고 그간의 날들에 고통스러워했다. 그런 이야나가 만나게 된 진은 다른 세계에서 날아온 사람 같은 느낌이었을 것이다. 두 사람의 만남이 이 소설의 주된 틀이라고 생각했는데 주변 인물들, 만이나 그의 이복 어머니의 얘기들도 주인공 이야나의 갈등의 폭을 증폭시키기도 한다.

그래도 두 사람의 얘기에 집중 하게 되면 그런 의문이 생긴다. 이들의 사랑이, 혹은 이런 만남 때로는 그런 하루가 왜? 어쩌라고? 그런 생각들이 길을 걷는 순간 떠오르게 된다.

“ 당신은 닫힌 문 앞에 있다고 힐러는 말했다. 그 문을 내가 열어줄 거라고, 내가 그렇게 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그는 또 말했다. 그 문이 열리면 당신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 기억하게 될 겁니다. 그러나 또한 반드시 기억해야만 할 것도 기억하게 될 겁니다. 기억해야만 할 것이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 지우게 될 겁니다. 내가 당신을 도와주겠습니다. ” P46

어쩌면 진은 남편이 있는 그 섬으로 가게 된 것은 이런 부분 때문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소설을 읽는 동안 답답했던 그들의 이야기가 저 닫힌 문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 문을 열아야 진의 과거가 나올 테고 잊고 싶었던 7년 전 살인사건을 마주 할 것이고 그것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야나 또한 그렇지 않을까. 자신을 무시했던 수니의 집안과 결국 이여지지 않았지만 그 내면의 상흔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 상흔의 문턱에 늘 고통스러웠지만 문을 열고 나오지 못했으니까. 지진과 해일이라는 자연재해에도 살아남은 이야나는 알게 된다. 그가 이제야 문 밖에서 나와 있었다는 것을. 진과 함께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 되었지만 그것은 또 다른 문을 여는 일이었다.

“문에서 문으로 가는 길이 낙엽으로 뒤덮여 온통 붉은빛이었다. 진이 그 낙엽을 한 잎 주었다. 열대의 섬에서 사는 남자, 이야나로서는 알지 못할 가을날의 낙엽이었다. 생명의 물기가 다 빠져 주름으로만 남은 낙엽, 그러나 그 마른 잎에서는 여전히 향기가 남아 있었다. 뜨겁던 여름날의 기억이 주름져 있는 낙엽을 들여다보는 진의 얼굴에 다시 바람이 지나갔다. 이야나의 생일이 곧 가까워오고 있었다. 진은 이야나의 선물 속에 그 낙엽을 끼워놓기로 한다. 누군가의 선물이 될 낙엽이 온몸을 흔들어 향기의 기억을 마지막까지 내뿜었다.” 299

지진과 해일을 겪고 살아남은 진과 이야나, 그리고 유진이 낙엽처럼 주름진 기억들을 가지고 잘 살아 나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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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피닷 2024-01-01 0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사랑의 이해
이혁진 지음 / 민음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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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이해 한다는 것 [사랑의 이해_ 이혁진]

드라마 [사랑의 이해]를 보다가 가슴이 답답했다. 수영이를 이해 할 수 없었고 상수의 우유부단함이 거북했다. 사랑의 과정이 이렇게 지리멸렬하다면 수영이와 상수는 이어질 수 없겠구나 생각했다. 그들의 사랑이 이런 표현 밖에 없을까 생각되어 읽게 된 원작 [사랑의 이해]에서 수영이와 상수는 조금 달랐다. 소설을 읽을수록 수영이의 마음이 입체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상수가 수영이에게 마음이 있으면서도 미경이와 사귈 수 있었던 그 순간이 소설을 읽으면서 이해가 되었다.

[사랑의 이해]는 은행을 배경으로 네 남녀의 이야기로 드라마보다 소설이 훨씬 입체적이었다. 드라마에서 답답하게 여겨졌던 종현이의 모습도 좋았고, 미경이의 사랑도 나쁘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수영이가 상수를 좋아했는지 의문을 낳았던 부분도 확연하게 느껴지는 선을 볼 수 있었다. 드라마에선 같은 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부분이 확실하게 서로 다른 곳을 보고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상수의 옆 자리에 앉은 수영은 예뻤다. 그리고 상냥했다. 그녀의 그런 모습은 은행 대부분의 남자에게는 호감과 관심의 대상이었다. 그런 수영을 마음에 품고 있는 상수 역시 그랬다. 하지만 수영은 달랐다. 모든 이들의 관심을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 척, 때로는 이용하고 때로는 버리기도 했다. 외유내강의 수영은 주변에서 자신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상수의 관심이 싫지 않지만 그 연애가 어떻게 끝이 나는지 알고 있었던 것인지 쉽게 상수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았다. 상수는 은행의 정직원, 좋은 대학을 나온 인물 좋은 사람이지만 수영은 아니었다. 그런 부분에서 상수는 수영이게게 향하고 있는 마음을 직선으로 바꾸지 못했다. 그런 부분에선 상수도 주변의 남자들과 다르지 않는 그냥, 평범한 인물이었다. 예쁜 텔러 직원 한번 꼬셔 보고 싶은 마음, 밥 한 번 먹고 싶은 마음, 잠자리를 한번 가져 보고 주변에 뻐기고 싶은 마음이 늘 조금씩 자라다 사라졌다.

“ 관계를 더 발전시킬지 말지. 수영이 텔러, 계약직 창구 직원이라는 것, 정확히는 모르지만 변두리 어느 대학교를 나온 듯한 것, 다 걸렸다. 일도 잘하고 똑똑한 사람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랬다. 그 두 가지가 상수 자신의 밑천이었기 때문에, 상수가 세상에서 지금까지 따낸 전리품이자 직장과 일상생활에서 그 위력과 차별을 나날이 실감하고 있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P93

상수도 수영이의 미모에 그저 마음이 현혹이 되었지만 더 이상의 관계를 발전시키기에는 부담스러운 마음이 있었다. 그러니까 술자리서 같이 술을 마시다가 잠이나 한번 자는 걸로 충족을 시킬 그런 마음이 없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런 면에서 수영이가 훨씬 인간적이다. 수영이가 상수가 아니라 은행 청경으로 일하고 있는 종현이를 사랑하게 된것, 그리고 그의 관계를 계속 이어나간 것은 어쩌면 수영이가 부릴 수 있는 사치는 아니었을까. 나보더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종현을 거둬주는 일, 그것은 자신이 가진 화분들과 꽃들을 모두 내다 팔고 종현의 자리를 만들어 주는 것은 큰 희생이었지만 생색이 될 수도 있는 부분이었다.

은행의 청경인 종현은 수영이보다 더 심한 흙수저다. 고향의 부모님은 종현의 집 보증금을 다 가져가야 할 만큼 없는 집안이다. 아프면 굶어 죽을지도 모를 그런 집안의 종현이는 경찰이 되는 것이 꿈이고 그것을 위해 공부중이었다. 가진 것 없는 환경이지만 은행에서 가장 예쁜 수영이와 사귀고 있으니 그는 잃은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얻은 것도 있었다. 그 이유는 그도 반듯한 외모와 어린 나이를 가졌다는 것이다.

드라마보다 훨씬 종현이가 살아 있는 캐릭터라는 것을 느낀 부분은 그를 표현하는 묘사들이 때문이었다. 수영이가 왜 상수가 아니라 종현이를 더 그리워하고 사랑하고, 그만큼 미움을 덜어 낼 수 있었는지 묘사를 보면 알 수 있다. 이런 부분이 사랑의 이해였다고 할 수 있을까. 사랑이 이해되는 순간은 어느 부분에서 오는 것일까.

종현은 수영을 사랑했지만 그의 무겁고 낡은 시간들이 수영을 끝까지 이해하지 못하며 헤어졌다. 수영도 종현을 사랑했지만 견뎌야 했을 무거운 시간을 피하지 못했다. 또한 종현과 헤어지기 위한 마지막 선택은 상수에게도 이해 받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상수는 괜찮았나보다. 그런 부분에서 상수와 수영이 현저하게 다르게 문제를 보고 있다는 것은 두 사람이 다시 만나 서로의 관심을 다시 느끼는 부분이었다.

상수는 미경이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수영과 새로운 시작을 알리기 위해 각자의 현재 연인과의 관계를 정리하자고 말했다. 수영도 고개를 끄덕였다. 버스가 떠나고 상수는 그때 미경과의 헤어짐 이후 다시 시작될 수영과의 관계의 미래를 그리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관계를 정리하자고 했던 그 관계가 종현과의 관계가 아니라 상수와 수영과의 관계가 되었다. 수영은 사라졌다. 그때, 두 사람이 바라보고 있던 그곳이 서로 다른 지점이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여자와 남자의 큰 차이는 공감과 이해의 차이가 있다는 어떤 칼럼을 읽은 기억이 난다. 똑같은 문제가 생기더라도 남자는 이해의 측면이, 여자는 공감의 측면이 많아 서로 다르게 볼 수밖에 없다는 얘기. 그 부분으로 본다면 수영과 상수를 이해 할 수 있는 얘기들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나의 사랑은 이해 할 수 있지만 타인의 사랑을 이해 할 수 있을까. 그들의 마지막 만남이 다시 이별이 될지라도 두 사람의 애틋한 사랑이 꼭 한번은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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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19 05:0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