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클베리 핀의 모험 북로드 세계문학 컬렉션
마크 트웨인 지음, 북트랜스 옮김 / 북로드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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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왜 이런 정겨운 만화를 안 해주는 것일까 궁금한, 명작 만화들을 좀 봤다면 익히 알고 있는 [톰 소여의 모험]의 두 번째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두 이야기가 다르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닮아 있다. 앞의 얘기를 몰라도 허클베리 핀의 이야기가 이해가 되며, 허클베리 핀의 이야기를 안 읽어도 두 소년의 우정과 모험은 상상 이상으로 흥미롭게 엔딩을 맺을 것 같다.

 

 

미국의 대 문호 마크 트웨인의 작품이라는 것을 모르고 읽었던 문고판 [톰 소여의 모험]이나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아주 오랜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이런 명작들이 만화로 방영되어 이른 아침 졸린 눈을 비비며 봤던 내 어린 시절을 기특하게 여기고 싶을 정도로 참, 매력적인 내용이다. 물론 자세한 내용이야 생각이 많이 안 나지만 대부분의 굵직한 줄거리는 말 할 수 있을 정도니, 아직 기억력이 죽지 않았나보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시작 하기전 작가 또한 [톰 소여의 모험]을 읽지 않아도 괜찮고, 읽어도 상관없다며 너무 쿨하게 시작하시기에 흥, 뭐 그 정도는 나도 감안해서 읽어 볼게라고 생각했는데 쿨한 응대가 대충은 맞아 떨어지게 습득이 된다.

 

미망인 더글라스 부인에게서 양자로 들어가게 된 허클베리 핀은 자유로움을 떨칠 수가 없다. 매일 밖에 나가 땀 흘리며 놀러 다녀야 하는데 더글라스 부인의 규정과 단속에 귀가 아플 지경이다. 그런데 이런 더글라스 부인이 문제가 아니라, 술 취한 날이 멀쩡한 날보다 훨씬 많은 고주맹태이며 자식을 자식으로 생각하지 않고 매일 매질을 하는 아버지가 더 큰 문제였다. 톰 소여의 모험이 끝나는 부분에 두 소년은 엄청난 부자가 되는데, 그 돈을 가지게 된 것을 안 아버지는 허클베리 핀을 찾아오는걸 보면, 막장 얘기는 이미 고전에 다 있었던 것 같다. 부자가 된 자식, 그것도 아직 성년이 안 된 아들의 돈으로 술을 마시고 살고 싶어 아들을 찾아와 돈을 내 놓으라고 때리고, 협박을 한다. 심지어 아들이 정말로 돈을 주지 않자 돈을 받기 위해 섬으로 아들을 데리고 들어가 감금한 채 생활을 하는 장면은 눈물이 난다. 왜 이런 아버지들은 오래전부터 있었던 것일까. 자식을 부양하지 않더라도 학대로 가슴에 응어리지는 트라우마를 남기는 아버지는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구나. 그런 아버지만 아니었다면 헉(허클베리 핀)은 도망가지 않았을 것이고, 짐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여전히 귀찮은 잔소리를 들으며 더글라스 아주머니와 함께 잘 살고 있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아버지로 인해 헉은 진정한 모험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면 참, 긍정적인 해석이 아닐까.

 

 

아버지의 학대를 피해 도망쳤던 헉이 만난 짐은 당시 노예로 사고팔았던 흑인이었고, 마크 트웨인이 소설을 썼던 시대는 흑백 논쟁이 심각했던 시대였다. 그런걸 따진다면 작가 또한 소설속의 주인공처럼 모험심이 막강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두 사람의 우정을 그린다고 하지만 소설속의 흑인 ‘짐’은 너무 모자라게 나온다. 뱀을 만지면 안 된다는 미신과 풍속을 가지고 있다. 물론 소설 속에서는 결국 그것 때문에 짐이 많이 다치기도 하지만, 짐에게는 현명한 대체가 많이 없고, 그런 짐을 도우는 것은 오로지 헉과 톰이여야 했다. 하지만 남들이 짐을 가두고 학대하며 매질을 해도 그를 믿으며 탈출을 도와주려 했던 사람은 결국 우정을 가진 헉이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소설을 쓴 작가 또한 백인이었을지라도 그들의 우정에 토를 달지 말아야겠다. 마지막 장에서 마크 트웨인은 그런 말을 하지 않던가. 이제 더 이상 쓸 것이 없다고, 그래서 홀가분하고 너무너무 기쁘다고. 그들의 우정에는 그냥 그 어떤 역사적 사실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어려운 모험을 함께한 친구로 남겨야 하지 않을까.

 

 

 

 

길고 길었던 어느 밤, 미시시피 강을 건너는 그 들의 모습을 생각해보면, 여전히 가슴이 뜨거워진다. 뗏목이 태풍으로 산산조각이 나고, 무서운 갱단을 만나서 목숨을 건지기도 어려운 상황을 함께 했던 동지이자 친구였던 헉과 짐의 우정이 그저 아름답기만 하다. 요즘 어디 그런 우정을 쌓을 아이들이 얼마나 있을까. 절대로 그런 환경이 주어지지 않으니까.

 

상당히 많은 양의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쉽게 읽혀서 이 책을 읽는 동안 가장 즐거웠던 부분 중에 하나다. 간혹 고전이 몸에 좋기는 한데, 재미있지는 않았던 기억이 많고 읽는 동안 힘들었던 과정도 생각이 났는데 그런 부분 없이 쉽게 읽혀서 고마웠던 소설이다. 참고로 이번 북로드의 고전문학 시리즈 표지들이 참 세련되어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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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교황입니다
슈테판 폰 캠피스 지음, 전진만 옮김 / 더난출판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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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한 성문이 열린 느낌을 받았다 [안녕하세요, 교황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나라 바티칸. 많은 수십만 명이 살지는 않지만 그곳에 가면 꽉 차 보이고 성스러운 느낌을 받아서 도시에 머물렀던 날들이 너무 아름다운 시간이었다고 그곳을 여행 갔었던 지인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비록, 이탈리아 로마에도 바티칸에도 못 가봤지만, 그리고 비록 비 종교인이지만 17대 교황의 선출된 배경을 읽는 동안 드라마틱한 이야기에 몰입되었다. 사실 나에게는 17대 교황이 유럽인이 아닌 비 유럽의 첫 번째 교황이었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모른다. 다만, 그가 이렇게 작은 나라 심지어 천주교보다 타 종교를 믿는 신앙인이 많은 이 나라에 방문을 한다는 그의 마음을 엿 보니 그가 그 동안 형식적으로 방문하려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대관식에서도 입어야 할 옷들보다 평범하고 편한 옷을 원했던 그의 성품이 아닌가.

 

비 종교인이 이 책을 읽기란 쉽지 않은 시간이라는 부분은 확실하다. 다만 종교인을 대하는 나의 주관적인 느낌을 다시 한번 느꼈던 시간이라서 그 시간이 많이 고단하지는 않았다.

 

신부와 수녀님, 스님들은 모두 종교를 모시는 분을 위해 결혼을 하지 않는다. 그런 삶을 살기 위한 그들의 선택이 궁금할 때가 있다. 분명 누군가를 사랑했던 순간도 있을 것이고 가슴 아픈 이별도 했을 텐데 모든 순간들은 그들의 기억 속으로 남겨 놓고 오로지 신을 모시는 그들은 대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프란치스코 교황의 어린 시절부터 성인으로 자라 그가 사랑했었던 한 여자의 남편이 아니라 성당으로 자신의 삶의 터전을 옮기는 과정까지 드라마틱한 삶이라서 읽는 동안 그의 선택에 때로는 가슴이 울리고 때로는 울컥거리기도 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신부였던 프란치스코, 험한 시골길을 걸어 가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던 신부, 어머니와 함께 요리를 하는 것을 즐겼다는 신부의 소탈한 모습을 보면 그가 앞으로 어떤 마음으로 교황의 자리에 앉아 있을지 짐작이 가지만, 그 마음이 오래도록 유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세상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다. 미국에서 단 한번도 흑인이 대통령이 될 수 없었지만 이미 버락 오바마는 성공하지 않았던가. 권위적이고 폐쇄적인 아카데미에서 여주, 남우 주연상은 흑인들에게 돌아가지 않았지만 이미 그 한계를 넘은 배우들이 있지 않던가. 그리고 비 유럽권에서 단 한번도 바티칸에서 교황이 탄생하지 않았지만 단단한 유리 벽을 넘은 이번 프란치스코 교황을 시작으로 세상의 단단한 편견이 사라졌으면 좋겠다.

 

이틀 전 보궐선거가 있었다. 비록 나의 지역에서는 해당이 없었지만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면서 마음이 착잡했다. 세계는 이렇게 바뀌는데 우리는 왜 이토록 어려운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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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팻 캐바나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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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끝나도, 삶은 시작된다.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벌써 20주년이 되었다. 아버지가 떠났던 날들을 생각해 보면 처음에는 아버지께서 돌아가시면서 벌어진 일들을 해결하기 위해 가족들은 삼 사 년 동안 미친 듯이 일을 했고 일을 해결해 나갔다. 대학교에 입학을 하면서 나는 더 정신 없이 지내다 어느 날 사귀던 남자친구가 아버지가 유독 좋아 하셨던 그린 색 폴로 티셔츠와 비슷한 옷을 서 입고 나를 기다리는 모습을 보는 순간 장례식장 이후로 단 한번도 흘리지 않았던 몇 년 동안의 눈물이 한꺼번에 쏟아지고 말았다. 처음으로 누군가 내 곁을 떠 났고, 더 이상 세상에 존재 하지 않는 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토록 좋아했던 그린 폴로티셔츠를 입을 수 없으며 달달한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킬 수 없고, 유난히 고기 기름이 많이 들어간 김치 찌개를 먹을 수 없으며, 초여름 마늘 종을 짤라 고추장에 찍어 찬물에 말아 먹고 시원한 거실에 앉아 낮잠을 잘 수 없는 것이다.

 

아버지가 떠났어도 우리 가족의 삶은 계속 유지 되었고, 간혹 떠난 사람의 모습을 기억하며 홀로 있을 때 눈물을 흘리거나 좋아했던 노래를 들으며 자신이 만들어 낸 우물에 갇혀 슬픔을 다독여야 했다. 사랑했던 사람들이 떠 났어도 살아 남겨진 사람들의 삶은 모질게 어이지는 것에 서러워할 수도 없다. 몇 달 전 일어난 세월호 참사로 인해 어린 아이들을 잃은 부모들의 모습을 담은 다큐를 보면서 한 시간 동안 눈물을 같이 흘렸던 것은 그들의 남겨진 시간이 얼마나 외롭고 쓸쓸한 것인지 충분히 공감하기 때문이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로 너무도 유명한 줄리언 반스는 이런 공황상태에 놓여 있다. 30년 동안 그의 옆을 지켰던 그의 아내가 2008년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30년 동안 단 한번도 사랑을 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던 그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나 공허 했을까? 그의 소설을 읽으면서 참 까칠한 남자라고 느꼈던 적도 있었는데, 그에게 이토록 지고 지순한 애정이 있었다니. 금술 좋았다는 그들의 사랑은 나만 몰랐나 보다.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를 처음 읽으면서 책의 소개를 이미 알고 있어서 시작이 어떻게 될지 짐작을 하고 읽었는데 한동안 읽으면서 당황스러웠던 부분은 이 책의 시작이 20세기가 아닌, 19세기의 실존 인물이라는 프레드 버나비와 여배우 사라 베르나르, 사진 작가 나다르의 이야기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처음을 시작하는 열기구를 타고 하늘에 오르려 했다는 프레드 버나비와 여배우 사라 베르나르의 이야기를 혹시 두 사람의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그것은 아니었고 두 사람의 이야기를 통한 자신의 얘기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이제껏 하나인 적이 없었던 두 가지를 하나로 합쳐보라. 그러면 세상은 변한다. 사람들이 그 순간을 미처 깨닫지 못 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럼에도 세상은 달라졌기 때문이다.  P11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의 원래의 제목은 [Levels of Life]이다. 줄리언 반스인 아내인 팻 캐배나가 세상을 떠났어도 그의 사랑은 끝나지 않는다는 너무나 당연한 얘기의 줄기로 제목이 정해졌겠지만, 원래의 제목을 생각해 봐도 사랑을 떠나 보낸 그의 삶이 단계가 어떻게 달라졌을지 짐작을 할 수 있다.

 

나는 아내를 다시 보게 되리라고 믿지 않는다. 보고, 듣고, 만지고, 안고,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함께 웃을 날은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아내의 발소리가 들리기를 기다리거나, 아내가 문을 여는 소리를 듣고 미소를 짓거나, 그녀의 몸이 내 몸에, 내 몸이 그녀의 몸에 꼭 맞물리는 날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나에겐 우리가 물질을 초월한 형태로 다시 만나리라는 믿음도 업다. 죽은 건 죽은 거라도 나는 믿는다. P128

 

 

 

그녀를 떠나 보내고 자살까지 생각도 해 봤던 그였지만 그녀를 떠나 보내고 남은 심정은 매우 담담하거나 때로는 너무나 단호히 그녀의 부재의 믿음이 보인다. 이것은 그가 자살을 하지 않기 위해 늘 자살을 할 도구까지 생각하며 하루를 견뎠다는 것과 비슷한 마음이 아닐까. 그녀의 죽음을 이해하지만, 마음은 그녀의 부재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가 없음으로 인해 삶이 풍부하지 않을 것이다. 있었던 것이 없어지므로 겪는 아픔은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절대 이해 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남은 시간의 쓸쓸함의 시간을 달래보지 않은 사람은 그 마음의 빈 곳에 불어 오는 바람이 얼마나 차디찬지 모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아침을 맞는 한 삶은 계속되는 것이다. 소멸된 사랑하는 사람들의 시간에 더 이상 아파하지 않고 그녀와 함께한 행복한 시간을 기억하며 남은 시간이 반짝이길, 그렇게 빌어 본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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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 라디오 - 오래 걸을 때 나누고 싶은 이야기
정혜윤 지음 / 한겨레출판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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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일곱 번째 오렌지를 가지고 있나요? [마술 라디오_ 정혜윤]

 

 

 

 

 

언제부턴가 나는 라디오를 듣지 않게 되었을까. 외부로 많이 돌아다니는 일을 하면서 뭔가 진득하게 앉아 들을 수 없는 환경이 되었다고 나 스스로 생각할 때쯤, 아마도 라디오를 듣지 않게 되었던 것 같다. 오랜 시간 집중을 하면서 공부를 해야 했던 고등학교 시절에 독서실에서 몰래 들었던 음악도시와 인연이 끊긴 후 라디오가 아직도 나오고 있다는 것에 깜짝 놀라면서 마치 나는 디지털 세대로 모든 세상이 끝이 났다고 생각했었나보다.

 

 

한 일 년쯤 퇴근을 같이 했던 동료의 차를 얻어 타고 집으로 오는 시간은 약 40여분이 걸렸다. 그때 늦은 밤 틀어 놓은 라디오 속에 흘러나오는 추억의 가요를 들으면서 우리는 지나간 젊은 날을 회상하곤 했다.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날이 좋으면 좋은 대로, 눈이 내리면 그날의 향수대로 흘러 나왔던 지나간 가요가 모두 나의 추억의 한편을 자리 잡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너무 드라마틱한 기분에 취해 그날은 라디오를 끄고 집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라디오는 사람들에게 이렇듯 지나간 향수를 불러오는 것 같다. 저자이며 라디오 피디인 정혜윤이 그동안 다큐 라디오 프로그램을 만들며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도 어쩌면 지나간 시간의 향수와 추억의 한편을 들춰내는 것은 아닐까.

 

그녀가 그녀의 직업으로 인해 만난 사람들의 열 네 명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몇 번은 가슴이 뜨거워 졌다가 눈가에 힘이 들어갔다가 이내 긴 한숨을 토해 낸 곳도 있었다.

 

 

 

“나는 그동안 내가 나에게 너무 관심이 많았다는 것을 깨달았어. 즉 나의 괴로움, 내 삶의 무게, 나의 성장, 나의 미래에 너무 많은 시간을 썼어. 나는 내가 사랑하는 것에 헌신한 게 아니라 자아에 헌신 중이었던 거지. 그러느라고 24시간 내내 무척 바빴어. 내게도 제3의 밧줄이 있었던 셈이야. 소득 + 지출+ 자아. 로맹가리의 행복한 세상과는 반대였지.”P 32

 

 

 

로맹가리는 친구들 앞에서 여섯 개의 오렌지를 돌리는 모습을 보여주며 늘 일곱 개의 오렌지로 보여 주고 싶어 연습을 했다고 한다. 그에게는 그 어떤 이상보다 일곱 개의 오렌지가 필요 했던 것이다. 일곱 개의 오렌지를 곡예를 하며 그것으로 인해 자신의 어머니와 함께 행복하게 살고 싶었던 로맹가리의 욕망의 일곱 개의 그 오렌지를 떠 올리며 나 또한 내가 필요했던 오렌지가 어떤 것이었나 생각해 본다. 무엇보다 저자 자신이 자신에게만 오로지 집중하며 살았던 그 시간에 나도 모르게 나를 들여다보게 되었다.

 

라디오를 틀어 놓으면 오랫동안 음악만 틀어 주는 프로그램이 있다. 나는 라디오 디제이가 게스트들과 잡담을 하며 웃는 코너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가끔은 이렇게 한가지의 주제를 가지고 노래를 10곡정도 틀어주는 코너를 가지고 있는 어떤 한 채널을 알아 가끔 시간이 맞으면 그 프로를 들으면서 생각에 잠기곤 한다. 라디오는 그런 힘을 가지고 있다. 내가 알아서 틀어 놓은 플레이어가 아니라서 가끔 나의 발목을 잡는 음악이 흐를 때는 주저하지 않고 눈물을 흘리곤 한다. 그녀가 만난 사람들도 어쩌면 길가다가 걸려 넘어지는 돌부리 같은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버섯을 파는 한 상인이 사람들을 버섯 종류를 비유하며 말하는 부분에서는 절대로 상상하지 못했던 부분을 깨닫게 되고 반성하게 될 것이다. 그녀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던 마지막 잎새의 생각은 나도 반성하게 된 부분이 많다. 누구나 나를 위해 누군가 마지막 잎새의 그림을 그려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 누군가를 위해 마지막 잎새를 그려줄 대상을 찾지 않는 것이다. 마지막 힘을 내서 병실의 그녀를 살리려 그려 냈던 마지막 잎새의 화가는 어쩌면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이겠지만, 희생을 할 생각도 못하는 것이다.

 

유난히 그녀가 만난 사람들은 라디오 속의 아날로그적인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더 정감이 가고 마음이 훈훈하다. 시골로 귀향을 하여 살게 된 부부의 얘기는 더 그렇다. 그 두 부부가 마을 사람들과 함께 잘 지낼 방법을 찾다가 집마다 있는 [논어] 읽기를 하며 마을에서 책모임을 가졌다는 것도 얼마나 아름다운 아날로그 모습인가. 그리고 아내를 먼저 세상에서 보내고 아내를 생각하며 마을 사람들과 오랫동안 함께 읽은 [논어]를 새로 써서 아내의 영전에 바쳤다는 부분에서는 어찌나 마음이 울렁거리던지.

 

 

 

 

“나는 이제 오로지 내 가슴속에만 살아 있던 이야기들을 꺼내서 들려주려고 해. 나는 이 이야기들의 마술에 도취되어 살았던 것도 같아.” P53

 

 

 

그녀가 마술에 도취되어 들려줬던 이야기를 통해 나는 그간 나만 바라보며 살았던 삶의 마술에서 깨어 난 것 같다. 이제 나도 삶을 더 윤택하게 만들 누군가를 만나 마술을 부리고 싶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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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어의 도시 1 스토리콜렉터 23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서유리 옮김 / 북로드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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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처음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을 재미있게 읽은 사람들이라면 이름은 들어 봤을 넬레 노이하우스. 그녀의 처음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알 수 있게 된 그녀의 데뷔작이 나왔다. [상어의 도시]는 그녀가 소설을 쓰기 시작한 처음을 보여준다. 그동안 그녀가 쓴 시리즈 장르 소설을 읽을 수 있는 기회가 되어 대부분의 소설을 읽었기 때문에 그녀의 데뷔작도 그런 장르 소설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그녀의 장르 소설에 익숙했었는지 읽으면서 다소 당황스러웠던 부분이 없지 않아 있다.

 

 

소설의 내용은 성공을 위한 알렉스 존트하임이라는 여 주인공이 사랑에 빠지고, 그 성공의 그림자 뒤에 있는 욕망의 그늘에 허우적거리며 만나는 마피아 세르지오와의 관계를 어떻게 빠져 나갈지, 그리고 그녀에게 진정한 사랑과 성공이란 어떤 것인지 나름의 의미를 가지는 소설이라고 볼 수 있다. 이야기의 줄거리는 이렇게 간단한데 소설 속에 나오는 인물이 너무 많아서 사실 머릿속에 그림을 그리며 읽다가도 이 사람은 또 누구였나, 앞을 다시 보면서 읽었던 부분도 있다.

늘 주인공을 중심으로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누군가는 죽어서 의문을 풀어내야 했던 기존의 소설을 생각해 보면 나는 주인공 알렉스가 언제 죽을지 걱정인 부분도 있었고, 만약 그냐가 죽는다면 누구의 손에 죽을지 나오는 인물마다 신경을 곤두서며 읽었다. 중반부까지 읽었을 때, 그녀가 죽지 않아서 다행이었지만 뭔가 허전했던 이유는 뭘까.

 

 

 

소설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소설을 이끄는 이야기의 줄기와 구성도 중요하겠지만 나는 인물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소설속의 여 주인공이며 극을 풀어 나가는 알렉스 존트하임이라는 인물을 생각해 보면 그녀의 마지막 차분하고 인내하는 모습을 감동적일 수 있겠지만 그냥, 예쁘다고 쓰고 나면 예쁜 그런 인물은 소설 속에서 반짝이지 않는다.

 

 

텔레비전의 드라마는 예쁜 얼굴의 여배우를 가져다 놓고 눈물 흘리게 하고 울게 하면서 우연의 연속을 만들어 주인공 남자와 사랑에 빠지게 하지만 그게 뭐, 예쁘지 않다면 주인공 남자가 좋아 했겠냐는 반문을 가질 그런 억지 설정도 참 많지 않나. 요즘 드라마들 볼 때마다 많이 짜증나는 부분들이 그런 부분인데.

 

 

그런 면에서 본다면 알렉스라는 여주인공을 세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녀는 대단한 대기업의 팀장이며, 엄청난 연봉을 받으며 남들이 못 따내는 일도 하는 그런 여자다. 그런데, 그런 여자가 매력적이게도 몸매도 좋고 예뻐서 자기 나이보다 조금 어린 아들이 있는 남자이며 심지어 유부남인데도 마음과 몸을 허락하며 사랑에 빠지고 만다. 이 부분에서 나는 주인공에게 실망했다. 그가 제공해 주는 것은 오로지 돈과 상류 사회의 모습만 보여 주었고 그것에 마음이 끌려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 물론 그 사랑이 끝까지 가지 않았지만 그녀를 사랑했던 남자들은 왜 모두 다들 대단한 사람들인지.

 

그녀가 세르지오를 마지막 뒤통수치는 부분이 없었다면 사실 이 두 권 짜리 소설을 다 읽는 것이 힘들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녀에게 끌리는 남자들이 소설 밖에는 많이 존재하지 않을 것처럼 여겨졌고, 나 또한 냉정한 독자의 한 사람으로 남았을 것이다.

제목을 생각해 봤다. [상어의 도시]속에 살고 있는 지금 나의 직장 생활도 생각해 봤다. 언젠가 개그맨 신동엽이 후배 개그맨들에게 했던 말도 생각이 났다. 방송이라는 것이 마치 물속에 던져진 물고기와 같다고. 뭔가 먹을 것이 있을 때 사정없이 다가와 다 먹고 나면 앙상한 가시만 남으면 모두 떠난다고.

 

 

이해관계가 득실대는 빌딩 속, 그것은 마치 거대한 깊은 바다와 같다. 상어가 헤엄치는 이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한 나름의 모습들을 생각해 보니, 어느 날 여의도 빌딩가에서처음 길을 헤맸을 때가 떠오른다. 모두가 상어의 밥이 되지 않고 살아가길 바라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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