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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클베리 핀의 모험 ㅣ 북로드 세계문학 컬렉션
마크 트웨인 지음, 북트랜스 옮김 / 북로드 / 2014년 7월
평점 :

요즘은 왜 이런 정겨운 만화를 안 해주는 것일까 궁금한, 명작 만화들을 좀 봤다면 익히 알고 있는 [톰 소여의 모험]의 두 번째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두 이야기가 다르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닮아 있다. 앞의 얘기를 몰라도 허클베리 핀의 이야기가 이해가 되며, 허클베리 핀의 이야기를 안 읽어도 두 소년의 우정과 모험은 상상 이상으로 흥미롭게 엔딩을 맺을 것 같다.
미국의 대 문호 마크 트웨인의 작품이라는 것을 모르고 읽었던 문고판 [톰 소여의 모험]이나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아주 오랜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이런 명작들이 만화로 방영되어 이른 아침 졸린 눈을 비비며 봤던 내 어린 시절을 기특하게 여기고 싶을 정도로 참, 매력적인 내용이다. 물론 자세한 내용이야 생각이 많이 안 나지만 대부분의 굵직한 줄거리는 말 할 수 있을 정도니, 아직 기억력이 죽지 않았나보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시작 하기전 작가 또한 [톰 소여의 모험]을 읽지 않아도 괜찮고, 읽어도 상관없다며 너무 쿨하게 시작하시기에 흥, 뭐 그 정도는 나도 감안해서 읽어 볼게라고 생각했는데 쿨한 응대가 대충은 맞아 떨어지게 습득이 된다.
미망인 더글라스 부인에게서 양자로 들어가게 된 허클베리 핀은 자유로움을 떨칠 수가 없다. 매일 밖에 나가 땀 흘리며 놀러 다녀야 하는데 더글라스 부인의 규정과 단속에 귀가 아플 지경이다. 그런데 이런 더글라스 부인이 문제가 아니라, 술 취한 날이 멀쩡한 날보다 훨씬 많은 고주맹태이며 자식을 자식으로 생각하지 않고 매일 매질을 하는 아버지가 더 큰 문제였다. 톰 소여의 모험이 끝나는 부분에 두 소년은 엄청난 부자가 되는데, 그 돈을 가지게 된 것을 안 아버지는 허클베리 핀을 찾아오는걸 보면, 막장 얘기는 이미 고전에 다 있었던 것 같다. 부자가 된 자식, 그것도 아직 성년이 안 된 아들의 돈으로 술을 마시고 살고 싶어 아들을 찾아와 돈을 내 놓으라고 때리고, 협박을 한다. 심지어 아들이 정말로 돈을 주지 않자 돈을 받기 위해 섬으로 아들을 데리고 들어가 감금한 채 생활을 하는 장면은 눈물이 난다. 왜 이런 아버지들은 오래전부터 있었던 것일까. 자식을 부양하지 않더라도 학대로 가슴에 응어리지는 트라우마를 남기는 아버지는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구나. 그런 아버지만 아니었다면 헉(허클베리 핀)은 도망가지 않았을 것이고, 짐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여전히 귀찮은 잔소리를 들으며 더글라스 아주머니와 함께 잘 살고 있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아버지로 인해 헉은 진정한 모험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면 참, 긍정적인 해석이 아닐까.
아버지의 학대를 피해 도망쳤던 헉이 만난 짐은 당시 노예로 사고팔았던 흑인이었고, 마크 트웨인이 소설을 썼던 시대는 흑백 논쟁이 심각했던 시대였다. 그런걸 따진다면 작가 또한 소설속의 주인공처럼 모험심이 막강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두 사람의 우정을 그린다고 하지만 소설속의 흑인 ‘짐’은 너무 모자라게 나온다. 뱀을 만지면 안 된다는 미신과 풍속을 가지고 있다. 물론 소설 속에서는 결국 그것 때문에 짐이 많이 다치기도 하지만, 짐에게는 현명한 대체가 많이 없고, 그런 짐을 도우는 것은 오로지 헉과 톰이여야 했다. 하지만 남들이 짐을 가두고 학대하며 매질을 해도 그를 믿으며 탈출을 도와주려 했던 사람은 결국 우정을 가진 헉이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소설을 쓴 작가 또한 백인이었을지라도 그들의 우정에 토를 달지 말아야겠다. 마지막 장에서 마크 트웨인은 그런 말을 하지 않던가. 이제 더 이상 쓸 것이 없다고, 그래서 홀가분하고 너무너무 기쁘다고. 그들의 우정에는 그냥 그 어떤 역사적 사실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어려운 모험을 함께한 친구로 남겨야 하지 않을까.
길고 길었던 어느 밤, 미시시피 강을 건너는 그 들의 모습을 생각해보면, 여전히 가슴이 뜨거워진다. 뗏목이 태풍으로 산산조각이 나고, 무서운 갱단을 만나서 목숨을 건지기도 어려운 상황을 함께 했던 동지이자 친구였던 헉과 짐의 우정이 그저 아름답기만 하다. 요즘 어디 그런 우정을 쌓을 아이들이 얼마나 있을까. 절대로 그런 환경이 주어지지 않으니까.
상당히 많은 양의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쉽게 읽혀서 이 책을 읽는 동안 가장 즐거웠던 부분 중에 하나다. 간혹 고전이 몸에 좋기는 한데, 재미있지는 않았던 기억이 많고 읽는 동안 힘들었던 과정도 생각이 났는데 그런 부분 없이 쉽게 읽혀서 고마웠던 소설이다. 참고로 이번 북로드의 고전문학 시리즈 표지들이 참 세련되어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