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를 그리다 - 올드독 작가 정우열과 반려견 소리 그리고 풋코의 동고동락 10년
정우열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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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올드독을 처음 만난 것은 네이버 블로그 스킨을 판매를 할 때부터였다. 그전에 다른 곳에서 글도 쓰시고 하셨다는데 블로그 스킨 제작이 없었다면 아마도 만나지 못했을 [올드독]이었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유료화가 아닌 무료로 블로그 스킨이 올라와져 있지만 한동안은 유료로 일주일 혹은 한달, 1년짜리로 블로그 대문을 장식할 스킨을 사서 쓰기도 했다. 그때 발견된 [올드독]의 풋코와 소리에게 빠져 간혹 블로그에 올라와 있는 사진을 보며 이런 종류의 개를 키워 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폭스 테리어종 소리와 풋코와 10년 동거 하면서 지나온 이야기를 담은 [개를 그리다]는 개를 키우면서 개를 그리게 된 정우열 작가의 이야기다. 개를 10년 동안 키웠다는 것보다 사실 한집에서 10년 살았다는 것에 깜짝 놀랐던 그의 집은 여자보다 훨씬 감각 있는 인테리어에 놀라곤 했다. 예쁜 것을 좋아하는 작가는 커튼도 핑크와 이케아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오디오도 내가 사려고 했던 엔틱 빨강 오디오가 있고. 집에 있는 소품들이 왜 이렇게 예쁜 것인지.

 

 

매우 시크 하지만 가까이 가면 배를 보여주며 복종할 줄 아는 개, 음악을 틀어 놓으면 자기 목청을 더 새워 노래 부르는 개, 사람들이 개를 싫어 할까봐 시즌이 지날 때쯤 찾아간 바닷가에서 저 재미나게 노는 개, 촛불집회에도 파란 스카프를 하고 참가하는 개, 창밖을 보면서 개똥을 그냥 두고 가는 행인들을 감시하는 개, 슬 취한 주인이 사온 이상한 옷도 참고 입어주는 개, 숙면과 멜라토닌 분비를 위해 안대를 제공을 받지만 마땅치 않아하는 개, 어쩐지 분홍색이 잘 어울리는 개, 창밖을 보며 일광욕을 하는 개, 한밤의 드라이브를 즐길 줄 아는 개, 주인이 하는 집안일에 옆에서 같이 있어주는 애교 많은 풋코, 그리고 무관심한 소리.

 

 

“ 분명, 세상에는 개를 키우는 것 말고도 더 가치 있고 훌륭한 여러 가지 라이프 스타일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개(와 고양이와 기타등등)와 함께 사는 것은, 우리의 삶은 어떻게 풍요로워질 수 있는지, 애정과 책임과 행복 간에는 무슨 관련이 있는지 배우며 살아가는 방법 중 한 가지인 것 같다.” P86~87

 

 

처음부터 소리를 키웠던 것은 아니었던 작가는 소리가 어떤 특정한 단어에 반응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 단어는 “오빠”였다. 소리를 처음 키웠던 부부중 아내가 남편에게 오빠라는 단어를 많이 섰고 그 애정이 담긴 목소리를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을 처음에 길러줬던 주인의 나직한 목소리로 불러줬던 그 단어, “오빠”. 간혹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그 단어에 유독 반응하는 소리의 모습에 가슴 찡했을 순간을 떠 올려보니 내가 그동안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하고 내 곁을 떠났던 개들이 떠올라서 울컥했던 페이지였다.

 

 

지난해 10년을 함께했던 집에서 이사한 풋코와 소리, 정우열은 제주도에 있다. 책의 끝말미에 이사하면서 끝이 났는데 앞으로 이사 한 뒤의 이야기도 많이 궁금하다. 다만, 이제는 함께 했던 소리가 더 이상 세상에 없다는 것만 달라질 것 같다. 간혹 트위터에 올라오는 풋코의 사진이 유독 외로워 보이는 것도 어쩜 소리의 부재 때문이겠지. 외롭겠지만 풋코의 사랑스러운 개짤을 계속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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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감정이 나를 미치게 할 때 - 상처받지 않는 감정 조절법
앤 크리머 지음, 문희경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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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 때문에 흠칫했다. 요즘 내 기분을 이렇게 딱 한 줄로 요약할 수가 있을까. “상처 받지 않는 감정 조절법”이라니. 더구나 책 표지에는 “직장에서 당신이 힘든 이유는 일이 아니라 ‘감정’ 때문이다!” 라고 적혀 있다.

 

그동안 내가 회사에서 퇴직을 하거나 이직을 했던 이유 중에 90%는 감정 때문이었다. 부당한 대우를 하는 상사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회사에서 주어지는 업무가 너무 과해서 그만두고 싶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부하 직원을 함부로 대하는 직장상사, 그것도 감정 분출을 물건을 집어 던지거나 폭언을 일삼는 상사에게 그만 무릎을 꿇었던 적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이 바뀌지 못하고 변하지 못하니 그럼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날 수밖에”라는 감정으로 회사를 떠났었다.

우리 회사에 20년째 근무를 하는 차장님에게 나는 어느 날 그런 얘기를 했었다. 대체, 당신을 그동안 이토록 힘든 이곳을 20년째 버티게 한 것은 무엇인가요? 차장님은 너무 간단하게 말씀하셨다. “자식 때문이라고”

 

하지만 자식이 없는 나 같은 사람은 어떠한 것으로 마음을 다 잡고 버텨 나가야 하는 것일까?

“ 이 책에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다루고자 한다. 직장 생활의 행동 규범을 다시 생각해보면서 남녀의 신경생물학적 차이와 문화적 차이를 받아들이는 것. 그렇게 받아들인 것을 좀 더 생산적으로 ‘활용’하여 새로운 행동 규범을 정립하는 것.” P30

 

이런 내용을 다룬다고 하여 나에게 얼마큼 적용이 될까 생각하면서 읽었지만 역시 책에서 내세우는 방법들은 매번 비슷한 내용들뿐이라 다소 실망스럽다고 할까.

 

“감정을 유리하게 이용하려면 다양한 환경에 대체하기 위한 여러 가지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이 책에서는 ‘감정 관리법’이라는 제목으로, 직장에서의 감정 문제에 대처하기 위한 갖가지 전략을 제시하려 한다.” P61

 

책에서 제시한 분노 관리법이 있다.

 

첫째는 관점을 바꾸기, 둘째 화를 내도 괜찮은 때 찾기, 셋째 상대에게 화난 사실 알리기, 넷째 부적절한 감정 표현 사과하기 다섯째 물러서는 법 배우기를 제시하고 있는데 제시한 것들 중에 우리 사회에서 가장 쉽고 가장 잘 받아들이기는 것은 물러서는 법을 배우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결국 조직 문화를 바꿀 수 없고 그 조직에서 내가 오너가 아닌 이상 나는 그 속에서 그저 발끈했던 주먹을 다시 펴고 앉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제가 분노하는 한 가지는 한 개인이 겪는 부당한 일, 그러니까 사람이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일입니다. 저는 늘 사람이 다른 사람을, 특히 스스로를 지키지 못하는 사람을 홀대하면 참지 못합니다.” P147

지난달에도 우리 회사에서는 이런 비슷한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자신의 밥줄을 놓고 대적하지 않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저 이상한 팀장, 대리가 발령이 나서 다른 곳으로 갔으면 좋겠다는 얘기만 할뿐이다. 누구하나 당신이 하는 말이 너무 지나치고 홀대하는 것이 옳지 않으며 생존권을 쥐고 흔들며 마치 사람의 약점을 잡듯 대하는 행동은 삼가 달라고 말하지 못하고 침묵하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이 아무것도 없는 12월의 들판 같다.

결국 회사도 사람이 운영을 하고 사람으로 이뤄져 움직이는 것인데 왜 이렇게 사람이 사람을 무시하는 일들은 계속 이뤄지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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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생생 트렌드 - 빅데이터와 인포그래픽으로 보는
타파크로스 지음 / 더난출판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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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경리단길을 한번 가자는 지인의 말에 따라나섰다가 후회를 했다. 정말 사람이 많았다. 모 티비 프로그램에서 소개한 가게들은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고 밥 한번 먹고 가는 일이 긴 기다림이 필요했고 막상 먹고 나니 흔한 맛에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어디든 매체에 노출되면 이렇게 사람이 많아지는 것을 발견할 때마다 마케팅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기업마다 큰 고민에 빠지게 될 것이다.

 

간혹 돈을 줄 테니 병원, 학원, 화장품, 맛집들을 소개 해 달라는 쪽지도 간혹 받는다. 이건 그나마 내가 뭔가를 하고 돈을 받는 것인데 블로그 자체를 임대해 달라는 쪽지를 받을 때도 있다. 그 쪽지에서 소개한 카페를 들어가보면 정말로 자신의 블로그를 임대 하겠다는 의뢰 덧글을 보고 사실 좀 놀랐다. 블로그의 힘, SNS의 힘이 참 무섭다는 생각을 져버릴 수 없다.

2015년을 이끌 트렌드를 알아보는 이 자료들은 대부분 2014년의 자료를 가지고 만들어졌다. 2014년을 이끈 트렌드가 2015년을 같이 이어질지는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트렌드는 한 시대를 같이 이어지거나 사라졌다.

 

너무 빨리 사라졌다 다시 생기는 시대의 흐름을 가장 많이 반영하고 있는 것이 SPA브랜드의 옷들이다.

“과거에는 시장 점유율을 높여야 유행을 선도한다는 공식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과거와는 많이 다르다. 현재는 소비자의 일상을 얼마나 차지하느냐가 브랜드의 미래를 좌우한다. 이러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적극 반영하는 브랜드만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라이프스타일 숍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P 43

개인의 일상이 그대로 드러나는 SNS를 통해 소비자의 욕구를 찾아내는 요즘, 가장 핫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패션은 SPA이다. 그들은 점점 새로운 것들을 추구하는 젊은 층을 빨리 접수했고, 낮은 가격에 많은 옷을 만들어내고 한 시즌을 차지했던 패턴들은 이제 더 이상 살아남지 못하게 됐다. 어제 사려고 했던 옷은 더 이상 매장에 남아있지 않고 다른 패턴의 옷이 새롭게 자리잡게 되었다. 흔히 찾는 화장품들 또한 더 이상 화장품 가게가 아닌 드러그스토어에서 살 수 있게 된 편리한 세상에 살게 되었다. 물론 아직 화장품점이 존재하지만 꼭 그곳에서만 화장품을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만물상처럼 차려진 곳에서 원하는 것을 어떤 것이든 구매 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긴 것이다.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지다 보니 당연히 대량의 물건을 사는 사람보다 소량의 물건을 구매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아이를 많이 낳았던 시대는 하나의 물건을 사면 대를 물려 사용했지만, 이제는 그럴 일이 없어졌기 때문에 렌탈을 통해 유아용품을 준비하기도 한다.

 

 

<미생>에서 오차장은 장그래에게 10만원을 주면서 물건을 팔아오라고 시킨다. 그날 장그래는 물건을 팔기위해 동분서주 했고 애쓰면서 깨달은 것은 어떤 물건을 누구에게 팔아야 할 것인지 확실한 목표가 없으면 물건을 팔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2014년의 트렌드 또한 아니 모든 해의 소비와 생산 또한 그럴 것이다.

“ 소비자들은 생각보다 더 빠르게 진화하고 그 어느 어느 때보다도 빠른 소비문화를 생산해내고 있다. 인터넷 혁명과 함께 구매 프랫폼이 다양하게 바뀌면서 소비자도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소비를 한다. 물건을 사고 평가를 하면 소셜네트워크로 퍼져 다른 사람의 소비에도 영향을 끼친다. 소비자는 더 이상 소비 주체만으로 살아가지는 않는다. 생산자 겸 소비자, 즉 프로슈머로서 강력한 집단을 형성하며 트렌드를 만든다.” P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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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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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꽃 꽃말을 생각해 본다. 언젠가 들었던 안개꽃 꽃말은 죽음이라고 들었다. 장미와 함께 있어야 더 아름답게 보였던 그 꽃말은 장미의 꽃말과 함께 죽을때까지 사랑한다는 뜻으로 아주 어릴 때 알았던 꽃말을 떠 올려봤다. 색마다 다른 꽃말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흰안개꽃은 죽음의 뜻도 가지고 있다. 안개꽃이 한가득 피어있는 표지가 있는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다 읽고 나니 안개꽃같이 작은 서글픔이 눈 속 가득 망울졌다가 뚝 떨어졌다. 작고 소중한 생명이 안개꽃처럼 피었다 사라진 죽음들의 아우성을 귀 막지 못하고, 그녀는 어쩌자고 이런 소설을 쓰게 되었을까.

 

1980년 5월, 어느 누구는 태어나기 전의 이야기, 혹은 알고 있어도 잘 알지 못하는 이야기, 혹은 잊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가 다시 세상 밖으로 나왔다. 1997년도에 출판된 임철우의 [봄날]도 광주민주화의 이야기였다. 총 5권으로 출판되었는데 마지막 권은 읽는 동안 많이 힘들었다.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이런 세상이었다는 것, 지옥 같은 날들을 만들어 놓은 인물이 대통령이 되고, 그는 지금도 아무런 죄의식 없이 잘 살고 있는 세상이 무서웠다. 대체 우리는 아무런 양심도 없이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그날, 열다섯 동호는 계엄군의 총에 맞아 쓰러져 죽은 정대를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정대를 찾아 나갔던 정대의 누나 정미 또한 동호의 책을 받아 공부를 더 해보려 했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동호의 집에 세들어 살고 있었던 두 남매는 그렇게 아무런 소리 없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동호 또한 열여섯 살이 되지 못하고 꽃피는 찬란한 오월에 사라졌다.

동호와 정대, 그리고 정대의 누나 정미가 사라졌던 그날 5월 18일 군인들은 80만발의 탄환을 가지고 광주로 내려왔다고 한다. 그해 광주의 시민들은 총 40만이었다. 광주 시민을 모두 한발씩만 쏴도 40만발이 남는 탄환이었다. “잔인하게 그 어떤 죄의식이나 망설임도 없는 한낮의 폭력, 그렇게 잔인성을 발취하도록 격려하고 명령했을 지휘관들-P206"은 지금도 너무 잘 살고 있는 것일까. 이런 명령을 내리고 그들은 그날 하루, 아니 일주일동안 무엇을 하며 있었을까.

“ 썩어가는 내 옆구리를 생각해.

거길 관통한 총알을 생각해.

처음엔 차디찬 몽둥이 같았던 그것,

순식간에 뱃속을 휘젓는 불덩어리가 된 그것,

그게 반대편 옆구리에 만들어놓은, 내 모든 따뜻한 피를 흘러나가게 한 구멍을 생각해.

그걸 쏘아보낸 총구를 생각해.

차디찬 방아쇠를 생각해.

그걸 당긴 따뜻한 손가락을 생각해.

나를 조준한 눈을 생각해.

쏘라고 명령한 사람의 눈을 생각해." P57

 

열다섯 동호는 자신이 열여섯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도 못하고 상무관에 남아 계엄군의 총에 맞은 시신을 닦는 일을 도와준다. 마치 언젠가 자신도 이런 모습으로 누워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던 것처럼. 그곳에서 동호는 자신과 함께 세상에서 살아질 누나, 형들과 함께 지독한 며칠을 보냈다. 동화와 정대, 정미는 고통스러운 날들을 뒤로하고 세상에서 사라졌지만, 지독한 날들을 겪어냈던 김은숙은 여전히 지독한 광주의 기억과 함께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하필 왜, 고3때 광주의 날들을 겪으며 대학 생활 내내 전두환 타도를 외치며 대모를 했지만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작은 출판사에서 교정을 보며 때로는 “일곱대의 따귀”를 맞으며 끝나지 않은 광주의 날들을 견뎌야 했다. 그녀뿐만이 아니다. 대모를 했던 임선주 또한 지독한 고문에 시달려야 했고 그녀의 고문은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다. 그녀가 멈추지 않는 하혈 때문에 고문이 끝날 수 이었다. 임선주와 함께 상무관에 있었던 김진수 역시 임선주와 버금가는 고문을 받았다. 손가락 마디에 “모나미 볼펜”을 꼽아 돌려 뼈와 살이 분리되고, 하루가 멀다 하고 성기 고문을 받았다. 그들이 그토록 모진 고문을 받아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상한 건,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P114

일곱 대의 따귀를 맞으며 한 대씩 자신이 따귀를 맞은 것들을 잊으려고 했지만 잊지 못했던 김은숙이나 고문으로 인해 결혼 후 남자와 관계를 할 수 없고, 누군가와 함께 살아갈 수 없는 임선주나 모나미 볼펜과 성기 고문으로 트라우마에 시달리다 결국 자살을 하게 된 김진수역시 그들이 지키고 싶었던 것은 그저, 양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누군가의 목숨을 그렇게 하찮게 여길 수 없다는 것. 누구나 존엄한 가치를 인정받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 고통스러운 일이었다고 하더라도 꼭 지켜 내야만 했던 그들이 지키고 싶었던 그, 양심. 그 양심이 지금은 누군가에게 의해 지켜지고는 있는 것일까.

나는 동호의 이야기장보다 동호를 떠나보냈던 어머니의 이야기가 있었던 여섯 번째 장에서 오열했다. 자식을 보내는 어머니의 그 무던하게 속삭여주는 마지막 문장에서 울었다. 1980년 5월 아들을 잃고 아들의 중학교 학생증에서 사진만 오려 지갑 속에 넣고 다니는 어머니. 죽은 줄은 알지만 혹시 어느 순간 문을 쾅하고 소리 내며 들어올지 몰라서 작은 인기척에도 “동호냐~”라고 불러도 보는 어머니. 형들이 학교에 가면 심심해서 어쩔 줄을 몰랐던 동호와 함께 걸었던 길들을 떠 올리며 어머니는 길을 걸어 나갔다. 나무 그늘이 햇빛을 가리는 것을 싫어했던 동호였는데 동호는 자꾸만, 왜 캄캄한 데로 가냐고, 저쪽, 꽃 핀 쪽으로 가라고 말하는 어머니의 마지막 얘기에 한참을 울었다.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P99"

어머니는, 자식의 장례식을 치렀음에도 불구하고 삶이 장례식이 되었겠구나. 그날, 그들을 떠나보내고 남겨진 사람들은 3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장례식처럼 하루가 밤 같고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겠구나. 새벽녘 한 도시의 사람들을 모두 죽이고도 남은 탄환을 가지고 내려와 세상에 빛도 보지 못한 생명도 엄마 뱃속에서 사라지게 했던 그 지옥 같은 일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점점 사라진다는 것이 어쩌면 이것이 우리의 장례식이 아닐까.

올해 내가 읽은 최고의 소설, 그리고 한동안 멀리 했던 한강의 소설을 다시 읽게 된 반가운 그렇지만 가슴 아픈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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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04 23: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오후즈음 2014-12-05 10:23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서니데이님.
북풀로 인해 이웃이 생긴것 같아 즐겁네요. ^^
다독가라기보다는 그냥 책을 많이 가지고 있는...그런 사람인것 같아요. 많이 읽고 싶은데 늘 부족한 독서량입니다.
추운 겨울, 자주 찾아갈게요 :)
 
날마다 하나씩 버리기 - 아무것도 못 버리는 여자의 365일 1일 1폐 프로젝트
선현경 지음 / 예담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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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부터 나는 버리는 것이 정리의 시작이 된 것 같다. 곤도 마리에의 정리 관련 책을 읽으면서 주변 정리보다는 어떻게 하면 더 많이 버릴까 고민하게 되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 때문에 물건을 사들이는 속도는 현저하게 떨어졌고 누군가 뭘 준다고 하면 넙죽 받아 왔었는데, 집에 들이면서 쓰레기로 변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고 집에 들이지 않는 일들이 생겼다. 뭔가 나에게 정리 관련 책이 준 변화는 나에게 와서 얼마나 효율적으로 쓰일 수 있는지 잠시나마 생각하게 됐다는 것이다.

 

 

 

[날마다 하나씩 버리기]는 만화가 이우일의 아내이자 동화 작가인 선현경이 쓴 정말 너무 유쾌한 물건 버리기 책이다. 저자는 어느 날 친구의 전화를 받고 <죽어도 못 버리는 사람들, 호더>라는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주변의 물건들을 바라보며 버리지 못하고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고 한다. 곤도 마리에의 책을 읽으면서 나도 실천을 해 보았던 물건 버리기를 저자는 매일 하나씩 버리기로 결심했다. 그냥 버리고 나면 물건의 이미지나 그것을 통한 그동안의 추억이 너무 짧게 사라지는 것도 있으니 저자의 장점을 살려 버리는 물건들을 그려 기록하기로 한다. 한꺼번에 많이 버리는 것이 아니라 하루에 하나씩 버리는 것이니까 부담이 없을 것 같지만 사실 이것도 만만찮은 작업이다. 저자 또한 어떤 날은 버리지 못하는 날이 있어서 괴로워하고, 버릴 물건을 찾아 집안을 헤집고 돌아다니기도 한다. 뭔가 일정하게 버리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닌 것이다.

 

 

 

정말 잘 깨지지 않아도 곤란한 그릇들이 있는데 그 그릇의 종류는 코렐 그릇들이다. 너무 안 깨져서 이 그릇만 쓰느라 다른 그릇을 써보지 못했다. 특히 머그컵을 좋아하는 나는 코렐 컵이 깨지지 않아 괴로울 때가 있었다. 깨져야 예쁜 머그컵을 살 기회가 생기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면 참 이상한 변명이겠지만, 그런 코렐 그릇에 대한 저자의 생각에 백프로 공감했던 그릇도 버리고, 누구에게서 받은 것인지 확실하게 보여주는 로고가 찍혀 있는 양말들을 버리고, 이제는 편한 신발을 찾아 신느라 더 이상 신지 않는 높은 굽의 신발들을 버리고 멕시코에서 산 액세서리를 버리며 그날의 추억은 간직하기로 한다. 그녀가 버리는 물건들은 그냥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것은 아니고 쓸 만한 물건들은 필요한 지인들이 가져가거나 벼룩시장을 통해 기금 마련으로도 쓰였다. 기금 마련으로 쓰인 물건들은 나름의 또 다른 생명을 가지게 되었다.

 

 

“다행히도 여기에 기록된 물건들은 전부 내가 버리는 것들이니 이것들이 필요하다면 누가 어떻게 사용하든 상관없다. 바닷가에 있는 조개껍데기처럼 말이다. 대신 물건과 함께 버려지기도 하는 잘못된 생각과 불필요한 감정은 아무도 가져가지 말기를." P249

 

 

나도 저자의 1일 1폐를 실행할까 생각해봤는데 한 달도 못할 것 같다. 그렇다고 주변에 물건이 없는 것도 아니다. 아직 떠나보낼 마음을 먹지 못한 물건들도 있고 쓰지 않는 물건이지만 언젠가는 꼭 필요할 것 같아 버리지 못하는 물건이 훨씬 더 많이 집안 곳곳에 방치되어 있다. 어쩜 이것은 저자의 말처럼 제각각 사연이 있고 이유가 있기 때문에 방치가 아닌 저장을 해 놓고 있다고 생각하나보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일단 무엇에든 한 번 정이 가면 쉽게 끊어지지가 않는다. 그런데 그게 정일까, 미련일까? 사람과의 사이만으로도 벅찬데 작고 사소한 것들에도 마음 쓰며 살아가자니 이 고생이다. 하지만 무엇이든 버려서 그것과 연관된 기억까지 잊힌다면 추억이 아니다. 추억이라고 착각했을 뿐이다. 추억이라면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 않을 테니까.” P21

 

 

계절이 바뀌면서 옷장 정리를 하며 버려지는 옷들을 모아 놓고 지난번 옷을 많이 버려 추려 놓고 정리 했음에도 불구하고 어찌하여 이렇게 또 많은 옷을 버리는 것일까 생각해 보니 내가 가지고 있는 물건대 대한 애착이나 쓸모에 대한 생각이 아직 부족한 것은 아닐까 반성했다.

 

“ 프랑스 철학자 미셀 퓌에슈는 버리는 일을 최대한 피하려면 물건을 다르게 생각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우리가 끝까지 책임질 수 있도록 수리와 유지가 가능한 물건들을 만들어야 한다고, 오래 유지하는 관계의 소중함을 느껴야 한다고 말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 내 낡은 물건들을 다독인다. 같이 잘살아보자, 물건들아!” P49

 

 

같이 잘 살기위해서 나를 다독이는 일도 중요하다. 오래되면 고칠 게 생기기 마련이고 덜 고장이 나도록 수리도 잘 해야 하고 관리도 잘해야 하는데, 하물며 이것이 물건에만 해당되는 일이겠는지. 나도 나를 아끼며 사랑해야 하는데 간혹 버려지는 물건에 대한 마음만 생각하다보니 나를 아끼는 일에는 그동안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 같다.

 

 

저자는 1일 1폐를 하면서 일단 소비를 최대한 절제하고 뭔가를 사야 할 때는 아주 신중해졌다고 한다. 곧 다시 버려질 물건을 사들이는 일은 없어야 하니 몇 번씩 생각하고 집에 있는 물건들을 떠 올려보며 대체 할 물건들을 생각해보는 습관도 생겼다고 한다. 그리고 값이 싸서 사거나 쉽게 살 수 있는 물건들은 쉽게 버릴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직고 되도록 질 좋은 물건을 찾게 된다고 한다. 그녀의 하루에 하나씩 버리는 일은 그녀의 마음속의 군더더기도 가지런한 신발장처럼 정돈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의 버리기 일기 속에서 내가 가장 크게 가슴에 와 닿았던 부분은 그녀가 같은 아파트에 살았던 앞집 언니에게서 받은 핑크빛 도는 살구색 마 통바지를 버리면서 떠올렸던 생각들이었다. 어쩌다 우연히 한 아파트에 살게 되면서 친하게 지내게 된 사이의 이웃. 가까워지면서 좋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흐뭇했지만 다시 이사 한 뒤 멀어지고 나니 몇 번 만나고 난후 점점 소원해지고 지금은 무덤덤해진 사이가 되었다고 한다.

“관계란 이런 걸까? 서로 궁합이 잘 맞아 영원히 친할 것만 같지만, 알고 보면 그냥 우연찮게 가까이 있어서 그럴 뿐인 사이. 멀어지면 끝인 사이”P270

 

 

어쩌면 내가 버리지 못하는 물건들은 어쩌면 이런 이유의 것들이 있는 것은 아닐까. 어쩌다 나의 눈에 맞아 사왔던 물건들. 그냥 옆에 두고 있지만 사실은 찾지 않는 물건들이 훨씬 더 많이 있고 그들을 버리고 나도 어쩌면 아무렇지도 않고 그냥 무덤덤하게 잊힐 것 같은 그런 물건들을 너무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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