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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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꽃 꽃말을 생각해 본다. 언젠가 들었던 안개꽃 꽃말은 죽음이라고 들었다. 장미와 함께 있어야 더 아름답게 보였던 그 꽃말은 장미의 꽃말과 함께 죽을때까지 사랑한다는 뜻으로 아주 어릴 때 알았던 꽃말을 떠 올려봤다. 색마다 다른 꽃말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흰안개꽃은 죽음의 뜻도 가지고 있다. 안개꽃이 한가득 피어있는 표지가 있는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다 읽고 나니 안개꽃같이 작은 서글픔이 눈 속 가득 망울졌다가 뚝 떨어졌다. 작고 소중한 생명이 안개꽃처럼 피었다 사라진 죽음들의 아우성을 귀 막지 못하고, 그녀는 어쩌자고 이런 소설을 쓰게 되었을까.

 

1980년 5월, 어느 누구는 태어나기 전의 이야기, 혹은 알고 있어도 잘 알지 못하는 이야기, 혹은 잊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가 다시 세상 밖으로 나왔다. 1997년도에 출판된 임철우의 [봄날]도 광주민주화의 이야기였다. 총 5권으로 출판되었는데 마지막 권은 읽는 동안 많이 힘들었다.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이런 세상이었다는 것, 지옥 같은 날들을 만들어 놓은 인물이 대통령이 되고, 그는 지금도 아무런 죄의식 없이 잘 살고 있는 세상이 무서웠다. 대체 우리는 아무런 양심도 없이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그날, 열다섯 동호는 계엄군의 총에 맞아 쓰러져 죽은 정대를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정대를 찾아 나갔던 정대의 누나 정미 또한 동호의 책을 받아 공부를 더 해보려 했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동호의 집에 세들어 살고 있었던 두 남매는 그렇게 아무런 소리 없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동호 또한 열여섯 살이 되지 못하고 꽃피는 찬란한 오월에 사라졌다.

동호와 정대, 그리고 정대의 누나 정미가 사라졌던 그날 5월 18일 군인들은 80만발의 탄환을 가지고 광주로 내려왔다고 한다. 그해 광주의 시민들은 총 40만이었다. 광주 시민을 모두 한발씩만 쏴도 40만발이 남는 탄환이었다. “잔인하게 그 어떤 죄의식이나 망설임도 없는 한낮의 폭력, 그렇게 잔인성을 발취하도록 격려하고 명령했을 지휘관들-P206"은 지금도 너무 잘 살고 있는 것일까. 이런 명령을 내리고 그들은 그날 하루, 아니 일주일동안 무엇을 하며 있었을까.

“ 썩어가는 내 옆구리를 생각해.

거길 관통한 총알을 생각해.

처음엔 차디찬 몽둥이 같았던 그것,

순식간에 뱃속을 휘젓는 불덩어리가 된 그것,

그게 반대편 옆구리에 만들어놓은, 내 모든 따뜻한 피를 흘러나가게 한 구멍을 생각해.

그걸 쏘아보낸 총구를 생각해.

차디찬 방아쇠를 생각해.

그걸 당긴 따뜻한 손가락을 생각해.

나를 조준한 눈을 생각해.

쏘라고 명령한 사람의 눈을 생각해." P57

 

열다섯 동호는 자신이 열여섯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도 못하고 상무관에 남아 계엄군의 총에 맞은 시신을 닦는 일을 도와준다. 마치 언젠가 자신도 이런 모습으로 누워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던 것처럼. 그곳에서 동호는 자신과 함께 세상에서 살아질 누나, 형들과 함께 지독한 며칠을 보냈다. 동화와 정대, 정미는 고통스러운 날들을 뒤로하고 세상에서 사라졌지만, 지독한 날들을 겪어냈던 김은숙은 여전히 지독한 광주의 기억과 함께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하필 왜, 고3때 광주의 날들을 겪으며 대학 생활 내내 전두환 타도를 외치며 대모를 했지만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작은 출판사에서 교정을 보며 때로는 “일곱대의 따귀”를 맞으며 끝나지 않은 광주의 날들을 견뎌야 했다. 그녀뿐만이 아니다. 대모를 했던 임선주 또한 지독한 고문에 시달려야 했고 그녀의 고문은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다. 그녀가 멈추지 않는 하혈 때문에 고문이 끝날 수 이었다. 임선주와 함께 상무관에 있었던 김진수 역시 임선주와 버금가는 고문을 받았다. 손가락 마디에 “모나미 볼펜”을 꼽아 돌려 뼈와 살이 분리되고, 하루가 멀다 하고 성기 고문을 받았다. 그들이 그토록 모진 고문을 받아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상한 건,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P114

일곱 대의 따귀를 맞으며 한 대씩 자신이 따귀를 맞은 것들을 잊으려고 했지만 잊지 못했던 김은숙이나 고문으로 인해 결혼 후 남자와 관계를 할 수 없고, 누군가와 함께 살아갈 수 없는 임선주나 모나미 볼펜과 성기 고문으로 트라우마에 시달리다 결국 자살을 하게 된 김진수역시 그들이 지키고 싶었던 것은 그저, 양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누군가의 목숨을 그렇게 하찮게 여길 수 없다는 것. 누구나 존엄한 가치를 인정받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 고통스러운 일이었다고 하더라도 꼭 지켜 내야만 했던 그들이 지키고 싶었던 그, 양심. 그 양심이 지금은 누군가에게 의해 지켜지고는 있는 것일까.

나는 동호의 이야기장보다 동호를 떠나보냈던 어머니의 이야기가 있었던 여섯 번째 장에서 오열했다. 자식을 보내는 어머니의 그 무던하게 속삭여주는 마지막 문장에서 울었다. 1980년 5월 아들을 잃고 아들의 중학교 학생증에서 사진만 오려 지갑 속에 넣고 다니는 어머니. 죽은 줄은 알지만 혹시 어느 순간 문을 쾅하고 소리 내며 들어올지 몰라서 작은 인기척에도 “동호냐~”라고 불러도 보는 어머니. 형들이 학교에 가면 심심해서 어쩔 줄을 몰랐던 동호와 함께 걸었던 길들을 떠 올리며 어머니는 길을 걸어 나갔다. 나무 그늘이 햇빛을 가리는 것을 싫어했던 동호였는데 동호는 자꾸만, 왜 캄캄한 데로 가냐고, 저쪽, 꽃 핀 쪽으로 가라고 말하는 어머니의 마지막 얘기에 한참을 울었다.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P99"

어머니는, 자식의 장례식을 치렀음에도 불구하고 삶이 장례식이 되었겠구나. 그날, 그들을 떠나보내고 남겨진 사람들은 3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장례식처럼 하루가 밤 같고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겠구나. 새벽녘 한 도시의 사람들을 모두 죽이고도 남은 탄환을 가지고 내려와 세상에 빛도 보지 못한 생명도 엄마 뱃속에서 사라지게 했던 그 지옥 같은 일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점점 사라진다는 것이 어쩌면 이것이 우리의 장례식이 아닐까.

올해 내가 읽은 최고의 소설, 그리고 한동안 멀리 했던 한강의 소설을 다시 읽게 된 반가운 그렇지만 가슴 아픈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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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04 23: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오후즈음 2014-12-05 10:23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서니데이님.
북풀로 인해 이웃이 생긴것 같아 즐겁네요. ^^
다독가라기보다는 그냥 책을 많이 가지고 있는...그런 사람인것 같아요. 많이 읽고 싶은데 늘 부족한 독서량입니다.
추운 겨울, 자주 찾아갈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