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산티아고, 혼자이면서 함께 걷는 길
김희경 지음 / 푸른숲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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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산티아고로 향하는 하나의 길을 걷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모두가 나가야 할 단 하나의 길이란 아예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각자 다 자신만의 길을 걷는다. 무엇이 최선이고 무엇이 가장 진정하다고 누가 말할 것인가. (158P)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 딱 10가지만 적어보라고 하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산티아고를 걷는 일을 적을 것이다. 독실한 크리스찬도 순례자도 아닌 종교와 신앙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오로지 800Km에 달하는 길을 걷고 싶을 뿐이다.


아직 주변에 산티아고를 다녀 온 사람이 없지만 우연하게 여행기 책을 계속 읽게 되고 있는 즈음에 만나게 된 김남희씨의 여행기속에서 산티아고를 알게 되었고 이 책을 통해 좀더 마음에 와 닿았다.


작년에 제주도 올레 길을 처음 혼자 걸으면서 생각이 더 들었던 길은 산티아고였다. 아, 지금처럼 내가 산티아고를 걸을 수 있을까. 그 속에서 나는 뭘 찾을 수 있을까 싶었다.


처음 제주도 올레 길에 가기로 하고 짐을 꾸리고 도착해 혼자 게스트 하우스 침대에 누워 혼자라는 생각에 눈물이 날 것 같아 비행기만 있다면 다시 집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저자도 산티아고로 가기위해 처음 알베르게에 갔을 때 느꼈던 그 순간의 후회가 너무도 절실하게 공감이 됐다. 나도 정말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자고 일어나 아침 안개를 맞이하며 걸었던 한 코스의 시작과 끝을 하고나서 어제 집으로 가지 않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은 함께하면 더 즐겁지만 혼자가 주는 여운은 더 깊은 맛이 있다. 여럿이 함께 걸었던 길보다 혼자 사색하며 걸을 수 있는 타임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는데 전적으로 공감한다.

하지만 여행 중에 만나는 이들과의 교류는 즐겁기는 하다. ‘베드 호퍼’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마틴을 만났던 일 (물론 나중에 좀 짜증이 났었지만 그래도 난 그를 이해하겠더라는..) , 처음에는 뭐 저런 애가 다 있어 했던 영적인 여행을 꿈꾸는 애런 그리고 자신들을 수호천사라고 말하는 조와 조지. 마지막 눈물이 날만큼 나도 좋았던 마농과 다시 산티아고에서 만나 조우했던 모습의 순간. 사려 깊은 베아르를 혼자만 있었다면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베아르가 말했던 말처럼 산티아고로 향하는 카미노 (길을 뜻한다.)에서는 딱 세 개 밖에 걱정할 일이 없다. 어디까지 걷고 어디서 잠을 자고 뭘 먹을 것인가 하는 단순한 세 개 걱정이면 카미노에서의 걱정은 더 이상 없다. 이렇게 세상을 사는데 단순하다면 얼마나 좋을 까 싶을 만큼 그녀의 그 말에 웃음이 나던지.


여행을 준비하기위해 이 책을 읽는다면 많은 도움을 받기는 힘들 것 같다. 저자 김희경의 산티아고는 그녀의 여행기에 충실한 여행기가 아니라 여행을 하면서 자신의 상황을 정리해 나가는 여행기다. 작가는 남동생을 잃고 그 공허한 마음에 여행을 결정하고 떠났고 그 남동생의 사진을 놓고 자신만의 의식을 치르고 목 놓아 울며 길을 걸으며 동생의 이름을 부르는 부분에서 나도 한참 멍하니 있을 수밖에 없었던 작가의 아픔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여행기라고 할 수 있겠다.


어떤 깨달음을 얻기 위해 산티아고에 꼭 가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것이 길 위에 놓여있고 모든 근심은 가벼운 웃음으로 깨어지고 국적을 뛰어넘는 교감과 소통이 있는 산티아고로 가기위해 걸어가는 것이지 않을까. 


낯선이의 친절로 하루하루를 이어갈 수 있는 카미노.

프랑스 생장피에드포르에서 스페인 산티아고로 끝이 나는 카미노의 긴 여정에 언제쯤 기차에 올라 시작을 알릴 수 있을까. 떠 날 수 있기는 한 것일까.

벌써 가슴이 뛴다. 순례자를 알리는 조개껍질이 배낭에 달려 있는 것만 같다.


세라피 루트(Therapy Route)'라고 불리는 산티아고의 카미노.

한쪽 방향을 향해 800키로미터가량을 걸어가는, 안전하고 단순한 길.

길을 헤맬 걱정도, 내일은 어디에 갈지 고민할 필요도 없이 배낭을 메고 걸어갈 체력만 있으면 그저 화살표를 따라 쭉 걱기만 하면 되는 길.

모두들 끊임없이 흔들리면서 자기 길을 걷고 있다. (작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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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28 23: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오후즈음 2015-03-02 14:29   좋아요 0 | URL
산티아고에 가지 않더라도 충분히! 재미있는 책이구요.
저자의 동생 얘기에서는 정말 눈물이 ㅠㅠ 감동적이었습니다.
 
너는 모른다
정이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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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고 나면 공지영의 <도가니>가 생각난다. 무진의 안개 속에 가려졌던 진실들이 서서히 걷히며 가려진 안개사이로 진실들이 보였다 사라지는 것처럼 한 가족의 비밀이 긴 터널을 뚫고 버리진 길가의 옷처럼 추레한 그들의 진실이 드러난다. 그들은 이제 고개 돌릴 수 없이 그것이 그들의 모습이라는 것을 인정하며 마주 보아야 하는 비밀 앞에 서 있다.


김상호, 진옥영, 김혜성, 김은성 그리고 김유지는 각각의 비밀을 가지며 가족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살고 있다. 여기서 은성만이 한 집에서 살고 있지 않을 뿐 그들은 법적으로는 가족이다.

장기 밀매업을 하고 있는 김상호는 가족들에게 자신의 직업을 숨기고 있다. 강남 외곽에 자리 잡은 사무실에 간판은 걸려 있지만 정작 그 안에서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다. 오로지 어떤 사업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한 장치일 뿐이다.

김상호의 아내 옥영은 화교출신이다. 그녀는 대만의 김상호보다 훨씬 오래전에 만난 애인이 있었고 간혹 그를 만나러 대만에 갔었다. 상호에게 친정에 간다고 했지만 그녀가 절대 떠나면 안됐던 날 남편 모르게 친정이 아닌 대만으로 밍을 만나러 갔다.

은성은 학교에 잘 다닐 것 같지만 어쩜 그녀는 모든 것을 놓은 채 살 것이라고 너무 자명하게 그녀의 삶을 묘사시켰지만 사귀는 사람들마다 문제가 있다. 허울 좋게 남아 있는 아버지의 사무실을 찾아가 월세를 받아 오는 것 말고 가족의 의미 없이 혼자 살아간다. 그리고 그녀의 새 엄마 옥영의 딸 유지를 안 좋게 해 볼까 하는 생각을 가졌었던 비밀을 가지고 있다.

혜성은 남들 다 가고 싶어 하는 의과 대학에 들어갔지만 한 학기도 다니지 않고 등록금만 받아 학생을 신분을 위장하며 살고 있다. 여자 친구와도 어떤 진도도 나가지 않고 그냥 하루가 길고 지루 할 뿐이다.

옥영의 딸 유지는 자신의 어머니가 화교 출신 이라는 것, 아버지의 두 번째 결혼 상대라는 것을 유치원과 학교에 다니면서 알게 된다. 그래서 아이들과 거리를 두며 철저하게 혼자 생활을 하는 것을 부모에게 알리지 않고 혼자의 힘으로 감당한다.

남들 다 하는 게임을 한다 던지 메신저에 가입해 음란행위를 요하는 아저씨를 사이버 상으로 만난 당황스러움조차 유지 혼자의 것이다. 복층으로 지어진 고급 빌라타운에 살고 있는 한 가족의 비밀은 서로만 알고 있고 모두가 서로 “너는 모른다 ”였을 것이다.


하지만 바이올린 영재 유지의 행방불명으로 너는 모르는 나의 비밀을 서로 공유하기 시작한다.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닌 김상호의 장기밀매업에 대해 옥영은 사실 모른 척 하고 있었다. 단지 그녀는 그가 가져다주는 돈으로 안락한 집안을 꾸미면 되는 것이었고 말갛고 뽀얀 피부에 바둑알 같은 눈을 가진 작은 얼굴의 딸 유지만 키우는 됐다. 남편의 비밀을 공유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혜성은 조작해서 만든 등록금 영수증을 아버지에게 내밀며 받아든 돈을 약간의 죄의식을 가지며 사용하지만 그 무거운 마음을 은성에게 털어 놓으며 비밀의 짐을 덜어 놓는다.

아버지의 재혼으로 멀어졌던 혜성과 은성은 새 엄마 옥영과 거대한 거리감을 느끼며 가족에게 멀어져 갔던 은성과 혜성은 어버지 때문에 가족을 잃어버렸던 그들의 자리에 아버지의 직업의 윤리상과 불법의 그림자로 다시 가족이 되어 만났다.


언제 다시 찾을 수 있을지, 살아 있는지, 있다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유지를 다시 만났던 그날, 은성과 혜성 옥영은 다시 가족이 되었다. 혜성은 잃어버린 유지를 찾기 위해 전단지를 만들어 돌렸었고 은성은 어느 날부터 유지를 만나기 위해 옥영의 집으로 온다.

이제 그들은 너는 모르는 그것을 우리는 알고 있는 것으로 한번 빠지면 나오지 못할 늪지 같은 어둡고 무거운 습기가 가득한 긴 터널을 함께 갈 것이다.


그간 말랑말랑했던 글을 써 온 정이현은 조금 다른 그녀의 모습과 맞닿게 했다. 정이현의 말랑했던 얘기들이 참 건조하게 느껴졌다.

정말 열심히 썼다는 작가의 진정성이 느껴질 만큼의 두꺼운 책이다. 그 두꺼운 깊이만큼 작가는 많은 고통이 있었을 것이다. 다만 그녀가 사람에 대한 느낌이 더 절실하게 다가왔으면 하는 아쉬움이 빨간 표지 속 여자아이의 모습이 절반 밖에 보이지 않은 아쉬움으로 다가온다. 또한 표지속의 여자가 유지일 것이라는 생각으로 다시 그 모습이 정이현으로 새로운 시작을 알리며 걸어가는 것 같다. 그녀가 원하는 길로 걸어가 다시 만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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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거짓말 창비청소년문학 22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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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날개 짓을 하는 나비가 있는 표지를 넘기면 덜컥 겁이 나는 문장이 들어온다.

  

내일을 준비하던 천지가, 오늘 죽었다.


몇 년전 처음으로 청소년 문학 소설을 읽은 것은 이경혜 작가의 <어느날 내가 죽었습니다.>였다. 그 소설 속에서도 주인공의 죽음으로 시작되고 죽음의 원인이 드러나며 안타까운 교육 현실과 교우 관계에 대한 본절적인 소통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 소설이었다.

<우아한 거짓말>역시 아이들이 느끼는 소통의 단절, 어린 마음으로 감당하기 힘든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였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한병태가 전학을 오면서 권력을 잡고 있던 엄석대에게 따돌림을 당하게 되는 것처럼 천지도 전학을 온다. 엄석대와 조금 다르게 아이들 사이에서 권력을 쥐고 있는 화연에게 함께인 것 같지만 그속 에서 혼자를 만들어 놓는 따돌림을 시작한다.

천지는 공부도 잘하고 외모도 예쁘고 성격도 좋은 괜찮은 아이였지만 천지를 물리적으로 괴롭히지는 않지만 심리적으로 왕따를 시키는 화연과의 관계에서 힘들어했다. 말 한마디로 교묘하게 천지를 반 전체에서 바보로 만들고 생일날은 일부러 한 시간 늦게 알리고 모두가 다 먹은 밥상에서 초라하게 앉아 있게 하는 화연의 모습은 악(惡)으로 보이기 충분하다. 중국집을 하는 화연은 외동딸이니 항상 돈이 많다. 그런 화연은 천지는 너무 쉽게 낚을 수 있는 먹잇감이 되었다. 모든 사람들에게 상냥하기까지 한 그녀는 그녀의 우아한 거짓말로 천지를 천치로 만들기도 한다. 그 우아한 거짓말이 천지에게는 얼음 송곳이 되어 결국 자살을 하게 되는 것이었을까. 


하지만 천지가 언제나 뜨고 있던 빨간 실, 그리고 그 실로 자살을 했던 천지의 빨간 실은 다섯 개의 주인을 찾아가면서 꼭 천지가 화연의 악랄한 모습 때문에 자살 한것이 아니라는 진실이 보인다. 첫 번째 붉은 실의 주인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중학교에 올라올 때까지 자신을 괴롭히는 화연에게 붉은 실 뭉치 하나를, 자신의 옆을 지켜준 언니 만지에게, 그리고 엄마에게....나머지 두 개는 생각하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갔다.


책을 읽다가 한숨이 절로 났다. 사람의 관계란 이렇게 변함이 없는 것일까...시간이 많이 흘렀어도 언제나 있던 문제들은 변치 않고 있는 것인가.

내게도 초등학교때 화연 같은 친구가 있었다. 너무 예쁘게 생기고 공부도 잘해서 선생님들이 참 좋아했고 반 남자 아이들은 한번쯤 마음에 품어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만큼 예쁜 그녀에게서 나오는 그 독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알 수 없었다. 웃으면서 뒤 돌아 오늘은 누굴 따돌려 볼까하며 친구들에게 전화하고 집으로 불러 자신이 정한 그 아이는 일주일이고 한달이고 말을 하면 안됐다. 참 어린 시절 어떤 권력이라는 것을 그녀는 알았을까? 하지만 이것도 딱 초등 6학년때 끝으로 중학교에 올라가서는 어림없는 얘기가 되어버렸고 결국 그녀 주변에는 그녀가 따돌렸던 사람들이 모두 외면했고 중학교 삼년 내내 혼자 다니게 되었던 그때의 기억이 떠 올라 책을 읽는 것이 참 힘들었다.

하긴 이런 일이 어린 아이들에게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회에 나오면 직장에서도 은근히 배어져 나오는 거리감을 상당히 두게 되는 어떤 이들의 무시 섞인 말로 사람을 괴롭히는 사람들이 없을까....


<완득이>이후 1년 만에 내 놓은 <우아한 거짓말>의 작가 김려령의 큰 장점은 몰입 할 수 있는 글을 쓴다는 것이다. 또한 그녀의 시리디 시린 대사들은 각 캐릭터들을 잘 살려준다. 우리 엄마가 쓰는 대사들, 내 친구가 했던 말, 내가 언젠가 어릴 때 했던 말들. 천지와 천지의 엄마, 만지에게서 각각 제 옷을 입은 대사들이 톡톡 튄다. <우아한 거짓말>을 읽고 <완득이>를 읽었는데 김려령은 <완득이>같은 박장대소할 수 있는 작품을 또 써 줬으면 좋겠다.



조잡한 말이 뭉쳐 사람을 죽일 수도 있습니다. 당신은 혹시 예비 살인자는 아닙니까? -23P


사과 하실 거면 하지 마세요. 말로 하는 사과는요, 용서가 가능 할 때 하는 겁니다. 받을 수 없는 사과를 받으면 억장에 꽂힙니다. 더군다나 상대가 사과 받을 생각이 전혀 없는데 일방적으로 하는 사과, 그거 저 숨을 구멍 슬쩍 파놓고 장난치는 거예요. 나는 사과 했어, 그 여자가 안 받았지. 너무 비열하지 않나요? 21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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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득이 - 제1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8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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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려령은 어떤 사람일까?

맘에 안 드는 담임을 죽여 달라고 기도하지만 따뜻한 가슴을 가지고 있는 완득이 같은 사람일까? 뭐든 포기하지 않고 자식을 지키듯 천대받아도 살기위해 뛰는 아버지 같은 사람일까? 은근히 성깔 있는 완득의 어머니 같은 사람일까? 아니면 잘나서 잘난체하는 윤하?

어떤 것이든 작가 김려령은 모든 캐릭터를 작품 안에서 잘 가지고 놀 줄 아는 작가라는 것, 그래서 읽는 독자들을 즐겁게 해 줄 수 있고 읽고 나서 뜨거운 가슴을 가지게 할 줄 아는 심성 좋은 작가일 것이다. 내 기준에는 말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읽어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벌써 34회 초판인쇄가 넘었을 것이고 (내 책 소유 날짜가 2009년 7월에 34회니 더 찍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중고등 학교에서는 권장 도서 중에 하나인 책이고 이미 연극으로 만들어진 <완득이>를 이제야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이 안타깝기까지 하다. 촌철살인적인 대사들, 누구하나 소중하게 만들어 놓은 완소 캐릭터들을 이제 만날 수 있었다니. 팔딱 팔딱 살아있는 물고기처럼 캐릭터들끼리 잘 맞은 옷을 입은 듯한 대사들을 뿜어내는 멋진 한편의 영화를 그냥 그려지는 완득이의 청춘을 이제야 볼 수 있었다니..


<제발 똥주좀 죽여주세요. 이번 주 안에 안 죽여주면 나 또 옵니다. 거룩하고 전능하신 하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니다. 아멘.>



<완득이>속의 도완득은 참 성질 더러운 아이다. 까칠하고 발끈하고 모든 것이 다 귀찮고 관심 밖이지만 기발한 상상력으로 써낸 작문숙제 때문에 소설을 써볼까 하고 , 자신의 아버지를 욕하는 사람들에게는 먼저 손부터 휙 날아가는 17세 소년이다. 하지만 담임에게 원치 않는 출생의 비밀을 듣고도 가출을 하지 못하는 웃기지도 않은 상황 속에서 열심히 살고 있는 아버지로 그 마음을 위로 받는 쿨한 완득이다. 이런 완득이를 가슴에 넣는 일은 아프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고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날지언정 따뜻하고 즐겁기만 하다.


<완득이> 책속에는 모두 슬픔을 간직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남들보다 한참은 더 윗 세상에 있지 못한, 남들에게 난쟁이라고 놀림을 당하는 키작은 아버지.

타국으로 와서 아이를 낳고 동남 아시아 이주 노동자들이 받는 손가락질을 다 받고 제대로 먹이지 못한 아들에게 대한 안타까움에 늦게 다시 만난 아들을 위해 열심히 먹을 것을 만들어 나르다 아들 경기에 안 보내준다고 화끈하게 식당을 때려치우고 경기에 온 멋진 베트남 어머니.

고등학교 교사지만 입에서 온갖 육두문자를 달고 사는 완득의 담인 동주, 하지만 동주보다 완득이가 부르는 똥주가 더 어울리는 사람. 옥탑방에서 완득이 챙겨 온 햇반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먹는 무개념 교사 갔지만 그에게는 외국인 노동자를 착취하며 돈을 버는 부자 아버지가 있고 그 아버지 때문에 이주 노동자들의 인권을 위해 몰래 일을 하며 아버지와 싸워 나가는 웃기지만 웃을 수 없는 교사 동주.

세상에서 가장 멋진 춤을 추지만 말을 더듬고 장애를 가지고 있는 민구삼촌.

세상에는 싸움을 위한 운동은 없다며 제대로 질 줄도 알아야 하는 것을 느끼게 만들고 완득이에게 진정한 주먹을 의미를 알려주며 자신의 킥복싱 장에서 완득을 마지막 회원으로 받고 문을 다는 킥복싱 관장.

전교 1등속에서 항상 어머니와 대립상태에 있지만 원하는 꿈은 꼭 이룬다는 의지가 있는 윤하.

이 모든 사람들과 한 발짝 성장해나가고 있는 우리의 도완득.

모두가 슬프지만 또 그 속에서 “희망”속에 살고 있다.


너무 늦게 다시 만난 완득의 어머니는 앞으로 아들을 계속 만날 수 있다는 희망, 외국인 노동자 인권을 위해 노동자들과 함께 움직이고 있는 담인 동주의 희망. 완득의 담임이 물주가 되어 교회가 춤 교습소로 바뀌어 차려진 곳에서 더 이상 지하철에서 장사를 하지 않고 5일장에서 망가져가는 티코를 타지 않고 단속과 깡패들에게 쫓기지 않아도 된다는 희망. 차가운 시건을 모두 버리고 완득의 아버지와 함께 교습소에서 그가 제일 잘하는 춤을 추는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다는 민구 삼촌의 희망. 언제든 완득의 경기에 하나님보더 더 무서운 엄마의 눈을 피해 갈 수 있다는 윤하의 희망.

그리고 언젠가는 꼭꼭 숨은 TKO승을 찾아내야 겠다는 완득의 희망.


완득이 속에는 외국인 노동자 문제, 청소년 이성교재, 학업 문제, 진로 문제들이 녹아져 있다. 완득이의 청춘에만 집중하고 있지 않고 완득이의 청춘에 어우러져 있는 사회적인 편견들을 함께 이야기하고 있다. 주변에서 너무 흔하지만 그 흔한 문제에 심각하게 생각하다가 너무 심각해 생각하기 싫게 만드는 것이 아닌 너무나 유쾌한 완득이의 대사들로 모두 이해하게끔 담아낸 작가 김려령의 노력이 가슴 벅차게 와 닿는다.


언젠가 좋은 작품은 작가의 좋은 심성에서 온다고 들었었다. 아마도 이런 유쾌, 상쾌한 작품을 만들어 낸 김려령이 그런 심성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완득이를 생각하면 완득이가 아직 못 찾은 그 꾀꼬리를 나도 찾아 봐야 할 듯 하다.

내가 못 찾는 그 꾀꼬리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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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28 23: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오후즈음 2015-03-02 14:28   좋아요 0 | URL
제가 김려령 작가님을 좀 좋아해서요~ 정말 좋아하는 분인데...이상하게 완득이 이후로 저의 마음을 끄는 책이 없어서 속상하네요. 하지만 우아한 거짓말은 그래도 완득이 이후로 좋았던 작품이예요~
 
55세부터 헬로라이프 스토리콜렉터 29
무라카미 류 지음, 윤성원 옮김 / 북로드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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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매년 다이어리를 장만하면서 다음해에 어떤 일정이 있는지 기록하면서도 정작 나의 나이가 어떻게 되는지는 적어 놓지 않는다. 대부분 다이어리에 이제 내가 몇 살이라고 적어 놓는 사람들이 있을까. 몇 살인지 생각하지 않으면 나이를 잊고 있다가 회사에서 치러지는 건강검진때 실질적인 나의 나이와 마주하게 된다. 그때, 나는 숨기고 싶은 비밀을 타인에게 발각되어 놀란 것처럼 화들짝 놀라는 수선을 떨곤 했다. 아, 벌써 나이가 이렇게 많아졌다며. 나는 뭐 하며 살아 온 것이냐며 우울해 하지만, 그것도 생물학적 나이와 마주하고 나서 아주 잠깐의 소란이다. 이내 곧 나이를 잊고 말다가 이런 책을 만나게 되면 점점 다가오는 중년의 무게를 어떻게 지나가야 하며 노후는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을 하게 된다.

 

 

그간 [오디션]이라는 영화 때문에 나에게는 충격의 작가였던 무라카미 류의 책이라는 것에 사실 반갑지 않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서 이렇게 착한 무라키미 류라니 믿기지 않는다고 할까. 무라카미 류의 소설은 폭력과 섹스만 강조된 엽기 소설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의 소설은 너무 착한 소설이었다. 그도 나이를 먹으니 변한 것일까. 그간 신문에 연재된 총 5편의 단편 소설을 묶어 놓은 [55세부터 헬로 라이프]는 이미 고령화가 심각하게 이뤄진 일본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황혼 이혼을 이후로 삶은 어떻게 될 것인가를 다름 [결혼상담소]는 읽는 동안 마음이 불편했다. 퇴직 후 집에 들어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남편과 이혼을 결심하고 마트에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다가 새로운 삶을 살고 싶어서 재혼을 위해 결혼상담소를 찾아간 시즈코는 여러 번 선을 보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남편에게서 받은 위자료는 점점 줄어들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견딜만하다고 생각하고 좋은 재혼 상대를 찾아보지만 현실은 마음처럼 쉽게 풀리지 않는 것이다. 만약 이때, 돈이 많은 상태의 남자였다면 황혼 이혼을 바라보는 시각은 어땠을까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주인공을 부인이 아니라 남편의 시각으로 풀어 봤다면 그동안의 아내의 소중함을 얘기하며 지금의 배우자와의 삶을 소중하게 생각하라는 교훈적인 내용으로 끝을 내지는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다섯편의 가장 좋았던 [하늘을 나는 꿈을 다시 한 번]이란 단편 소설이었다. 회사에서 정리해고가 된 후 주인공 안도 시게오는 끊임없이 새로운 직장을 찾으려 애를 쓰지만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고 어떤 작가가 말했듯이 노년에 접어든 사람들을 반갑게 맞이해주는 직장을 찾기가 어려웠다. 직장을 찾으며 그는 거리의 노숙자를 보면서 혹시 자신도 더 이상 취직을 하지 못하면 저런 상태로 되는 것은 아닐까 괴로워 할 때쯤 공사현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때 만나게 중학교 동창생과의 만남에서 같은 처지에 놓인 자신의 처지를 안타깝게 생각한다. 이 소설이 가장 좋았던 것은 얇은 지갑 속에 자리 잡은 몇 만원을 내 삶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삶을 위해 쓰이고 나면 나의 삶은 어떻게 될 것인가 걱정하게 되는 부분이었다. 두 달간 여관에 투숙하면서 더 이상 나가지 않고 있다며 그 친구가 나갈 수 있게 도와 달라는 전화를 받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부분은 친구의 생사가 아니라 그 친구의 두 달치 여관비를 대신 내야 할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간 몸이 아파 공사 현장에도 나가지 못하고 있고 그에게는 충분하게 쓸 돈이 없었다. 그런데 절친한 친구도 아닌 동창생의 전화에 두 달이나 밀린 여관비를 내러 가야 할 것인가 갈등하는 부분에서 나도 모르게, 짧은 탄식이 나왔다. 나였다고 해도 어쩜 잠깐이라도 정말, 그 밀린 여관비를 생각했을 것이고 빈 지갑을 떠 올리며 갈등했을 것이다. 친구가 지금 많이 아프냐고 물어 보는 것보다 밀린 여관비를 내줄 형편이 되지 않는 자신의 입장을 먼저 말했을 것 같아 우울했다.

 

 

 

나머지 세편의 소설도 노후에 벌어질 일들을 얘기하고 있다. 가족이 다 떠나고 두 부부가 새로운 가족으로 맞은 개가 세상을 떠남으로 인한 상실감을 다룬 [펫로스]나 이른 퇴직을 하고 그 돈으로 캠핑카를 사고 일본을 돌며 여행을 하고 싶은 주인공과 달리 자신의 노후의 삶이 있다며 거부하는 아내를 두고 고민하는 [캠핑카], 그리고 한 번의 이혼 후 혼자 살면서 내형 트럭을 몰다가 이제는 체력적으로 힘들어 그런 일을 못하고 헌책방에서 헌책을 사서 읽으며 시간을 보내다 만나게 된 여인과의 에피소드를 겪으면서 앞으로의 자신의 남은 시간을 어떻게 여행을 하며 보내게 될 것인지 다룬 [여행 도우미]의 이야기는 노년의 쓸쓸함이 있지만 이야기의 끝은 대부분 희망으로 끝이 난다.

 

 

결혼상담소의 여주인공은 헤어진 남편을 다시 만나서 다시 재결합을 생각해 보다가 앞으로 결혼상담소를 더 다녀보며 남은 인생을 함께 할 사람을 더 찾아보기로 하며 희망을 갖는다.

 

 

“ 분명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특히 절망이나 실의를 겪고 난 뒤에는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방식을 발견했다 고해서 단순히 제자ㅣ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없다고 믿는 사람이 순간순간을 더욱 소중히 여기며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P76

 

 

 

[하늘을 나는 꿈을 다시 한 번] 또한 동창생의 죽음을 알리는 동창생의 어머니에게서 받은 미네랄워터를 마시며 남은 삶의 희망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적어도 가족이 있고 아직 살아 있지. 맛있는 물도 마실 수 있고, 그리고 살아만 있으면 언젠가 다시 하늘을 나는 꿈을 꿀 수 있을지도 모르지.” P167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꼭 그때까지 살겠다는 생각은 없지만 이렇게 의미 없는 어떤 희망으로도 행복한 노후를 맞아야 하는 것일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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