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모른다
정이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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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고 나면 공지영의 <도가니>가 생각난다. 무진의 안개 속에 가려졌던 진실들이 서서히 걷히며 가려진 안개사이로 진실들이 보였다 사라지는 것처럼 한 가족의 비밀이 긴 터널을 뚫고 버리진 길가의 옷처럼 추레한 그들의 진실이 드러난다. 그들은 이제 고개 돌릴 수 없이 그것이 그들의 모습이라는 것을 인정하며 마주 보아야 하는 비밀 앞에 서 있다.


김상호, 진옥영, 김혜성, 김은성 그리고 김유지는 각각의 비밀을 가지며 가족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살고 있다. 여기서 은성만이 한 집에서 살고 있지 않을 뿐 그들은 법적으로는 가족이다.

장기 밀매업을 하고 있는 김상호는 가족들에게 자신의 직업을 숨기고 있다. 강남 외곽에 자리 잡은 사무실에 간판은 걸려 있지만 정작 그 안에서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다. 오로지 어떤 사업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한 장치일 뿐이다.

김상호의 아내 옥영은 화교출신이다. 그녀는 대만의 김상호보다 훨씬 오래전에 만난 애인이 있었고 간혹 그를 만나러 대만에 갔었다. 상호에게 친정에 간다고 했지만 그녀가 절대 떠나면 안됐던 날 남편 모르게 친정이 아닌 대만으로 밍을 만나러 갔다.

은성은 학교에 잘 다닐 것 같지만 어쩜 그녀는 모든 것을 놓은 채 살 것이라고 너무 자명하게 그녀의 삶을 묘사시켰지만 사귀는 사람들마다 문제가 있다. 허울 좋게 남아 있는 아버지의 사무실을 찾아가 월세를 받아 오는 것 말고 가족의 의미 없이 혼자 살아간다. 그리고 그녀의 새 엄마 옥영의 딸 유지를 안 좋게 해 볼까 하는 생각을 가졌었던 비밀을 가지고 있다.

혜성은 남들 다 가고 싶어 하는 의과 대학에 들어갔지만 한 학기도 다니지 않고 등록금만 받아 학생을 신분을 위장하며 살고 있다. 여자 친구와도 어떤 진도도 나가지 않고 그냥 하루가 길고 지루 할 뿐이다.

옥영의 딸 유지는 자신의 어머니가 화교 출신 이라는 것, 아버지의 두 번째 결혼 상대라는 것을 유치원과 학교에 다니면서 알게 된다. 그래서 아이들과 거리를 두며 철저하게 혼자 생활을 하는 것을 부모에게 알리지 않고 혼자의 힘으로 감당한다.

남들 다 하는 게임을 한다 던지 메신저에 가입해 음란행위를 요하는 아저씨를 사이버 상으로 만난 당황스러움조차 유지 혼자의 것이다. 복층으로 지어진 고급 빌라타운에 살고 있는 한 가족의 비밀은 서로만 알고 있고 모두가 서로 “너는 모른다 ”였을 것이다.


하지만 바이올린 영재 유지의 행방불명으로 너는 모르는 나의 비밀을 서로 공유하기 시작한다.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닌 김상호의 장기밀매업에 대해 옥영은 사실 모른 척 하고 있었다. 단지 그녀는 그가 가져다주는 돈으로 안락한 집안을 꾸미면 되는 것이었고 말갛고 뽀얀 피부에 바둑알 같은 눈을 가진 작은 얼굴의 딸 유지만 키우는 됐다. 남편의 비밀을 공유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혜성은 조작해서 만든 등록금 영수증을 아버지에게 내밀며 받아든 돈을 약간의 죄의식을 가지며 사용하지만 그 무거운 마음을 은성에게 털어 놓으며 비밀의 짐을 덜어 놓는다.

아버지의 재혼으로 멀어졌던 혜성과 은성은 새 엄마 옥영과 거대한 거리감을 느끼며 가족에게 멀어져 갔던 은성과 혜성은 어버지 때문에 가족을 잃어버렸던 그들의 자리에 아버지의 직업의 윤리상과 불법의 그림자로 다시 가족이 되어 만났다.


언제 다시 찾을 수 있을지, 살아 있는지, 있다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유지를 다시 만났던 그날, 은성과 혜성 옥영은 다시 가족이 되었다. 혜성은 잃어버린 유지를 찾기 위해 전단지를 만들어 돌렸었고 은성은 어느 날부터 유지를 만나기 위해 옥영의 집으로 온다.

이제 그들은 너는 모르는 그것을 우리는 알고 있는 것으로 한번 빠지면 나오지 못할 늪지 같은 어둡고 무거운 습기가 가득한 긴 터널을 함께 갈 것이다.


그간 말랑말랑했던 글을 써 온 정이현은 조금 다른 그녀의 모습과 맞닿게 했다. 정이현의 말랑했던 얘기들이 참 건조하게 느껴졌다.

정말 열심히 썼다는 작가의 진정성이 느껴질 만큼의 두꺼운 책이다. 그 두꺼운 깊이만큼 작가는 많은 고통이 있었을 것이다. 다만 그녀가 사람에 대한 느낌이 더 절실하게 다가왔으면 하는 아쉬움이 빨간 표지 속 여자아이의 모습이 절반 밖에 보이지 않은 아쉬움으로 다가온다. 또한 표지속의 여자가 유지일 것이라는 생각으로 다시 그 모습이 정이현으로 새로운 시작을 알리며 걸어가는 것 같다. 그녀가 원하는 길로 걸어가 다시 만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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