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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다정한 사람
은희경 외 지음 / 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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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그런 생각을 해 왔다. 나에게 일정 기간의 자유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어디로 여행을 할 것인가. 그럴 때 생각하지도 않고 말 할 수 있는 여행지는 번호 3번까지는 나올 수 있다. 첫째는 산티아고의 800키로가 넘는 길을 걷는 것이고, 둘째는 더운 인도의 길을 돌아다니는 것이고, 셋째는 스위스의 융프라우에 가는 것이다. 스위스를 빼면 나머지 여행은 한 달 이상의 시간이기 때문에 일주일 정도의 시간을 주며 선택하라고 하면 너무 많은 나라들이 줄지어 있어 쉽게 떠올려지지 않을 것 같다.

 

 

이런 고민을 안고 한 달에 한명씩 바통을 이어 태마가 있는 여행을 가게 해준 프로젝트로 책이 한권 나왔다. 한명이 떠났다 돌아오면 다른 한명이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일주일 정도의 여행을 떠나 그곳에서 자신만의 여행기를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매력적인 기획이 어디 있단 말인가.

 

이 여행기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설레는 사람들이 있는지. 은희경의 호주, 이명세의 태국, 이병률의 핀란드, 백영옥의 홍콩, 김훈의 미크로네시아, 박칼린의 뉴칼리도니아, 박찬일 셰프의 규슈, 장기하의 런던 그리고 리버풀, 신경숙의 뉴욕, 이적의 캐나다. 책을 읽는 것은 그들과 동그란 지구를 돌고 오는 것이다.

 

 

 

그중에 가장 먼저 여행을 시작한 은희경의 여행의 의미는 낯선 사람이 되었다가 다시 나로 돌아오는 탄력의 게임이라고 했다. 이런 의미가 담겨 있는 곳은 호주였다. 사실 조금 알려지지 않은 나라들의 도시를 탐색해 줬으면 했던 작가 중에 한명이었는데 그녀의 선택의 나라가 조금 시시한 것 같았는데, 그녀의 와이너리에 대한 얘기에 시시함이 사라졌다. 와인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추운 겨울날 마시는 뜨거운 뱅쇼는 좋아한다. 싸구려 와인을 넣었을 때와 조금 돈을 들인 와인을 넣었을 때의 뱅쇼의 맛을 아직 구분하지 못하지만, 뱅쇼 때문에 와인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은희경의 호주 얘기에는 흥미로운 와이너리에 대한 얘기보다 역시 그녀의 삶을 통한 글이 더 좋았다. 풍경을 더 보기 위해 헬기를 타고 웅장한 자연의 규모에 자신의 속의 어떤 공간을 더 넓혀 오는 느낌을 받아 오는 그녀는 이런 얘기를 했다.

 

 

“낯선 것은 매혹적이다. 그러나 낯섦을 느끼는 건 익숙함에 의해서이다. 그래서 낯선 것 가운데에 들어가면 간혹 내가 더 또렷이 보인다. 내 삶의 틀 속에서는 자연스러웠던 것들의 더러움과 하찮음도 보게 되고, 무심했던 것들에 대한 아름다움도 깨친다.” P42

 

 

 

거대한 자연 앞에서 너무도 작은 나를 발견하는 것, 낯선 나를 만나는 것일까. 그리고 작은 나 자신을 다독이며 다시 나로 돌아가 다시 갈아가는 것, 그것이 그녀의 여행의 이유였을까.

 

 

모든 이들이 여행지를 고른 이유 중에 사실 가장 마음에 들지 않았던 테마가 이명세였다. 그는 영화 준비를 하고 있었고 배경을 태국으로 선택했다고 한다. 그런 이유 때문에 태국으로 여행을 떠났다. 사실 이런 여행기속에 꼭 자기 성찰의 부분만 들어가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이유 없이 오로지 영화를 위한 답사로 선택된 태국에 이건 아니지 싶다. 마치 꿩 먹고 알 먹고 같은 느낌이랄까. 사전 답사는 자신의 돈이 아닌 남의 여력을 빌려 갔다 온 것 같아 그의 여행기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여행 블로그들이 워낙 많으니 조금만 찾아보아도 갔다 온 것 같은 여행기들이 많아 어쩌면 여행기속 사진들이나 나라들은 식상 할 수 있을 같다. 그런 부분에서 김훈과 박칼린이 선택한 나라는 최고였다. 이름도 어려웠던 김훈이 찾아간 미크로네시아. 그의 여행 태마는 또 얼마나 거대한지. 김훈에게 여행은 세계의 내용과 표정을 관찰하는 노동이라고 한다. 미크로네시아에서 인간이 얼마나 무력한지를 보여주는 심연의 바다는 심장이 단단해졌다. 심연 공포증이 있는 나는 이런 깊은 물 사진을 잘 못 본다.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그래서였을까, 인간이 참 무력 하다는 것 그 심연을 보는 순간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미크로네시아_ 깊은 우물같은 이 아름다움

 

 

그녀의 눈처럼 신비로운 해안의 색을 가진 뉴칼리도니아의 무인도. 박칼린의 자유분방한 모습과 많이 닮아 보였다. 그녀가 감독한 뮤지컬을 한편도 본적이 없지만, 그녀의 에세이 한권을 읽었기 때문에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짐작은 갈 수 있었는데, 그녀의 여행 준비가 나와 많이 닮았다. 여행을 가지전에 사전 작업을 많이 한다. 여행 갈 나라의 서적을 읽는 것은 기본이고 다녀왔던 블로거들의 여행기를 한 달 정도 찾아다니며 읽는다. 하지만 그렇게 준비 한다고 한들, 여행은 여행일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모든 것이 준비 되어 떠나는 것이 여행이 아니라 준비 되지 못함을 느끼는 것이 여행일 것이다. 그저 필요한 것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에게 여행이란 물이고, 시원한 생수고 수도꼭지라고 한다. 그 어떤 것도 땔 수 없고 때로는 어디든 있는 것이 물이고, 도착 후 간절하게 바라는 시원한 생수고, 감정이 닿으면 툭하고 쏟아져 내리는 눈물 같은 수도꼭지라고 나만의 그녀의 여행을 정리해 봤다.

 

뉴칼리도니아_ 그녀의 눈처럼 아름다웠던 그곳.

 

 

그녀의 여행지 선택도 그녀처럼 감각적이다. 바다로 가라고 바람이 말했다고 하지 않던가. 재치와 감각이 고스란히 자리 잡은 푸른 바다가 가득한 여행, 아름다웠다.

 

 

 

박찬일의 여행기가 없었다면 아마도 화룡점점을 찍지 못했을 것이다. 모름지기 여행이란 맛있는 음식도 함께여야 하니까. 그의 여행의 의미가 좋은 친구와 여행을 떠나서 맛있는 음식을 나누는 것이라고 하는데, 딱 맞는 여행지의 선택이다. 일본의 큐슈 에키벤 여행. 신칸센에서 먹는 도시락이라니. 얇은 대나무로 만든 도시락 통에 매실 장아찌, 연근, 은어 한 마리까지 들어있는 도시락을 먹으며 가는 기차여행은 낭만적이다. 이것이 하나의 관광 상품이 되어 기차를 타기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입가의 미소가 번진다. 마치 내가 그들의 마음을 읽고 있는 것 같다. 내가 먼저 기차를 타고 도시락을 먹으며 한번 여행을 떠나 온 것처럼.

 

신칸센의 도시락.

 

 

 

이 여행기속 가장 빛나는 글을 역시 모든 여행을 함께한 이병률의 핀란드 여행이다. 여행에 동행했던 작가들이 쓴 글들보다 일년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여행을 한 그의 내면의 마음이 가장 빛나 보였다. 물론 내가 가장 가고 싶은 나라중에 하나인 핀란드여서 더 눈이 반짝였는지 였을 수도 있다. 그에게 여행이란, 바람, ‘지금’이라는 애인을 두고 슬쩍 바람피우기라는 말에도 나에게 여행이라는 의미와 가장 비슷하다. 지금을 살고 있지만 마치 여행을 하고 있는 순간은 지금이 아니고 언젠가, 혹은 아주 오래전 때로는 미래의 어디쯤이라고 생각 될 때가 있다. 그래서 여행은 더 아련하고 가슴이 따뜻해지는 순간을 맞는 것이 아닐까.

 

 

 

그곳은 언제나 크리스마스 _ 핀란드

 

 

 

 

 

문득 나에게 여행의 의미를 물어 본다. 나에게 여행이란 무엇일까. 몇 년 전 해남을 갔다 오면서 나는 친구에게 이런 문자를 한통 보냈었다.

 

 

 

“새해, 여행을 했어. 나에게 여행은 있었던 자리의 소중함을 느끼는 것이었어. 지금 서울을 올라가.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있어 행복해. 여행은 돌아갈 곳이 있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인가 봐”

 

 

 

내게는 여행이란, 있었던 자리의 소중함을 느끼는 것이었다. 떠났던 자리에 다시 돌아 올 수 있는 곳이 있는 소중함을 느끼는 것은 감사하고 고마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누구나 여행을 하고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온다. 그리고 추억을 간직하며 지금의 자리를 더 견고하게 만들며 살아가는 것이 삶이라는 것을 느낀 것이 얼마 안 된다.

이런 나의 생각과 많이 맞닿아 있던 박칼린의 말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뚝 흘렀다.

 

 

 

“하지만 이런 말들이 내가 현실에 만족하고 있다는 증거라면 그런 것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행복한 모습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보다. 난 어느 날 멋진 뉴칼레도이나 남자를 만났고, 그의 멋진 등을 보며 상상의 세계를 다녀왔다. 그리고 돌아왔다.

참으로 다행이다. 내가 그 아름다운 곳으로부터 멀리 있다는 게.“ P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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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집 맏아들 - 대한민국 경제정의를 말하다
유진수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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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집 맏아들은 밑으로 동생이 두 명이 더 있다. 온 집안 식구들은 맏형이 잘 되길 바라며 희생을 강요당하거나 스스로 희생을 하며 세월을 보낸다. 부모는 맏아들이 유명한 대학에 들어가도록 뒷바라지를 멈추지 않았고, 동생들은 고등학교 이상의 학업을 포기하고 등록금과 생활비를 벌기위해 생활전선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맏형은 의사가 되었고, 병원 개업을 위한 비용을 동생들이 모아 놓은 돈으로 차렸다.

 

형은 예쁜 신부를 맞아 행복하게 살 때쯤, 둘째가 찾아와 가게 개업을 위한 금액을 요구했다. 형은 동생을 도와주어야 할까? 그리고 큰오빠를 위해 공장을 다니다 다친 막내 여동생은 집에서 부업으로만 생계를 꾸리고 있다. 이 또한 큰오빠는 셋째를 도와주어야 할까?

 

마치 80년대에 많이 있었던 드라마를 보는 느낌이다. 모든 가족의 희생으로 성공을 하였던 맏아들은 가족에 대한 의무에 대한 얘기를 우리나라의 기업, 정부가 지원한 구역의 역할까지 얘기하며 참 재미있게 책을 풀어냈다. 가난한 집 맏아들이 가족의 도움으로 성공을 이뤄 낸 부분에 대해 맏아들은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도덕적 의무를 가진다고 말한다. 동생들이 희생을 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의대를 지망, 다녔다면 막대한 등록금과 서울에서의 생활비까지 모두 맏아들이 감당해야 했다. 만약 동생들이 희생하지 않고 그들도 자신의 진로를 찾았다면 동생들이 20년 후 취할 수 있는 금액과 기회비용까지 계산해 놓은 표를 보면, 맏아들의 도덕적 의무에 대한 얘기에 수긍할 수밖에 없다.

 

 

물론 요즘 같은 세월에 어디 맏아들만 바라보며 나는 희생하며 큰오빠를 위해 열심히 일 해야해...할 그런 시대는 멀어졌다고 생각한다. 희생은 분명 존재하지만 나를 포기한 희생이 좀처럼 걸려들지 않을뿐더러 ‘개천에서 용 난다’는 얘기는 이미 호랑이 담배 피던 얘기로 생각해야 할 만큼 투자 없는 성공은 없어 보인다.

 

드라마속의 가난한 맏아들은 지금의 시대로 본다면 강남이라고 봐야겠다. 한국전쟁 이후 급격한 인구 증가로 인해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상경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며 정부는 강남의 개발을 추진했다. 물론 도시 내 특정 지역 개발은 강남 지역만을 대상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었다.(P142)

 

어쨌거나 중요한 점을 반복하자면, 강남 개발처럼 특정 지역의 개발과 투자로 부자가 된 사람들이 생겼고, 이들이 벌은 돈은 다른 지역 사람들의 희생 위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P142) 맏아들이 동생들과 부모의 희생을 통해 성공한것처럼 다른 지역 개발보다 더 많은 투자를 받은 강남은 많은 혜택을 받은 것이다. 아무것도 없던 강남의 땅이 무수한 자본이 들여 지금의 부의 땅으로 자라기까지 그곳에서 이득을 취득한 부자들은 정부의 지원속에 많은 지역의 희생으로 부자가 된 것이다.

 

맏아들이 밑에 동생들에 대한 도덕적 의무를 가지는 것처럼 특정 지역의 투자로 인해 개발되어 부를 축적하게 된 지역, 부자들은 희생의 대상이 된 사람들에게 보상을 해야 할 도덕적 의무를 가져야 할까?(P149) 꼭 어떤 물질적인 것이 아니랃 따뜻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위한 한국 부자들의 도덕적 의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가난한 맏아들이 동생의 희생에 대한 도덕적 의무를 져야 하는 부분은 크게는 나라와 나라 사이에도 존재한다. 공정무역으로 우리가 받은 도움을 개도국에 대한 도덕적 의무를 실행에 옮겨 작은 실천으로 물건을 사줘야 한다고 말한다. 사실 개도국을 돕기 위한 얘기로 꺼내졌지만 공정무역을 통한 물건이 조금 비싸지만 그런 물건을 사야 한다는 생각은 변치 않는다. 저임금에도 들지 않는 금액을 받으며 사는 그들을 위한 작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책의 내용이 가난한 집 맏아들이 누렸던 혜택에 좀 더 폭 넓은 예를 든 부분이 친일파에 대한 얘기가 있다. 친일파들은 일제의 수탈에 앞장서며 국민을 괴롭혔고 그때 일궈낸 재산은 많은 국민의 희생과 고통에 얻은 것이다. 일본을 통해 막대한 자금과 토지를 받아 재산을 불렸다. 그간 친일파에 대한 진상규명을 하며 그들의 재산을 압수하는 일을 했지만 그 일이 잘 진행되고 있는 것일까? 그들의 재산 몰수는 당연하고 그들의 후손들이 누리고 있는 재산 몰수도 당연한데, 그런 기사를 많이 보지 못했다.

친일파였던 분들이 많이 돌아가셨지만 친일파였던 부모 밑에서 많은 재산을 쌓아 부를 누렸던 그 후손들은 그 부를 누려도 마땅한 것일까? 그 후손들은 아직도 부와 권력을 누리며 잘살고 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피해를 주며 받아낸 특혜라는 것을 느끼지 못하며 살아갈 것이다.

 

문득 나는 누군가에게 도덕적 의무를 지며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나 스스로 열심히 일하며 노력하며 살고 있지만, 분명 어느 부분에서는 누군가의 희생으로 삶의 한 편이 채워지고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되겠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실제적인 피해를 입힌 적이 없는가? 다른 사람의 잘잘못을 묻기 이전에 나 자신을 먼저 돌아볼 일이다. P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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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럭 : 행운은 왜 나만 비켜 가냐고 묻는 당신에게
존 크럼볼츠 & 앨 레빈 지음, 이수경 옮김 / 새움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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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청담동 엘리스]를 재미있게 보고 있다. 보통의 드라마들은 신데렐라, 캔디형의 여자 주인공을 내세워 드라마 구성을 해 놓은 것이 인기도 있고 시청률도 잘 나온다. 진부한 내용이라고 말하면서도 사람들은 그 진부함을 거부하지 못한다. 이 드라마는 신분상승을 위한 신데렐라와 울지 않는 캔디도 있고 인생을 개척하려는 자아가 살아있는 여자 캐릭터가 드라마를 움직인다.

이야기는 이렇다. 여자 주인공은 융자를 얻어 산 아파트의 이자를 갚지 못하고 대기업의 빵가게 때문에 망하고 만 부모 밑에 있다. 또한 몇몇 대회에서 입상은 좀 했지만 유학을 갔다 오지 못했다는 이유로 입사도 어려운 환경에 처해있다. 어느 날 고등학교 때 자신보다 그림도 잘 못 그리고 공부도 못한 동기생이 어렵게 계약직 사원으로 들어간 회사의 사모님이라는 것을 알고 자신도 청담동 입성을 위한 계획을 세우고 노력하며 돈 많은 남자를 얻기 위한 고분부투를 시작한다.

 

 

이야기의 골격은 이렇게 잡아 놓고 아직 얘기가 진행 중이다. 아마도 그녀는 청담동에 입성을 할 것이고, 돈보다 사랑이 훨씬 중요하다는 진부한 개념을 내 놓고 끝날 수도 있다. 이 드라마에서 중요하게 봐야 할 내용은 그녀가 청담동 입성을 위한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를 봐야 한다. 그간 드라마에서 돈 많은 남자 주인공이 어쩌다 우연으로 만난 가난한 여자를 운명의 사랑이라는 거북한 내용을 내세워 그녀가 신데렐라가 됐다면, 이 드라마속의 주인공은 그동안 드라마 내용을 답습하지 않는다.

 

 

드라마 얘기가 길었다. <굿 럭>이라는 책이 그렇다. 어떤 이가 생각지도 않게 잘나가는 일을 잡았거나 우연히 만난 동료였던 사람이 혹은 동창이 나보다 훨씬 좋은 직장, 직업에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나보다 훨씬 못 났던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충격을 받거나 혹은 그들이 원래 잘났기 때문에 그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도 내가 생각하는 운 좋은 사람들이 아니라 운 좋은 일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이다.

 

드라마 얘기를 다시 꺼내자면, 드라마 속의 여 주인공 한세경은 프랑스 유학을 가고 싶어 프랑스어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리고 프랑스를 가면 어떤 일을 할 것인지 몇 년간 계획을 세우고 그림으로 지도까지 그려가며 꿈을 꾸었다. 비록 프랑스를 가지 못했지만 이런 그녀의 노력이 남자 주인공에게 매력으로 다가왔다. 또한 남자가 속한 회사에 프랑스 기업이니 상사를 만나 그녀의 노력한 프랑스어를 발휘하며 뽐낼 시간을 마련할 수 있었다.

 

<굿 럭>은 자기 계발서를 여러 권 읽어 본 사람들이라면 절반 정도 책을 읽고 나면 책의 내용의 끝이 어떻게 끝이 날지 알 것이다. 책의 소제목은 <행운은 애 나면 비켜 가냐고 묻는 당신에게>라는 말 때문에 사실 이 책을 선택했었는데, 그동안 읽은 자기 계발서와 큰 차이가 없다. 더구나 내용속의 에피소드들은 우리나라의 실정과 많이 달라 참고조차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드라마<청담동 엘리스>를 통한 교훈이 훨씬 쉽게 다가온다.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서는 그것에 따른 대가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노력해야 한다는 얘기가 이 책의 전부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얘기, 잘 알고 있지만 실패로 인해 생기는 상처를 단단하게 하는 시간 때문에 두려움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책 초반에 꿈에 대한 얘기가 참 많다. 어렸을 때 어떤 꿈을 꾸며 그것을 위해 노력했었나? 그 꿈을 위해 너무 큰 계획을 세우지는 않았었나, 그런 부분에 대한 세세한 항목은 조금 식상한 면이 있지만 지나친 부분들을 다시 들여다 보기위해 한 부분 발췌했다.

 

 

[@꿈을 이루었음에도 절망을 느꼈는가? 그렇다면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려라.

@ 한 번에 한 걸음씩 꿈을 향해 나아가라.

@ 잘못된 선택에 매달리지 말라.

@ 조언은 경청하되 결정은 스스로 내려라.

@ 상황이 변하면 우선순위를 재검토하라.

@ 열정은 행동에서 생겨난다.

@ 목표 직업에 스스로를 묶어두지 말라.

@ 다른 대안들도 고려하라. ] P 104~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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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하는 책읽기 - 나를 다독여주고 보듬어주세요
서유경 지음 / 리더북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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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어느 하루는 황량한 사막에 서 있는 것 같다. 존재감 없는 어느 날은 더욱더 아무리 걸어도 그늘 하나 없는 사막 고비에 서서 해도 지지 않는 하루만 맞이하는 것 같다. 밤은 절대 오지 않을 것이고 백야도 아닌 백야를 맞아 온 몸을 태우며 서 있어야 할 것 같은 그런 날. 그 때는 그늘보다 눈부신 현실을 잠시 가려줄 작은 손짓이라도 필요하다. 그것이 함께 나눌 수 없는 부재된 공감일지라도 그 순간을 위로 받았다고 생각하고 싶은 것이다.

 

 

어떤 이는 긴 시간이나 짧은 시간을 통한 여행으로 치유를 할 수 있고, 사랑은 또 다른 사랑으로 치유 할 수 있다는 말처럼 상처받은 사람들과 멀어져 나를 위로해주는 사람을 통해 상처를 보듬고 치유 받는 방법들을 찾는다. 첫사랑은 이뤄지지 않는다는 명제를 놓고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결론을 맞아 눈물 흘렸던 20대의 어느 날 나는 그 시간을 공유했던 음악을 통해 잃어버린 시간을 치유 받았다. 그리고 길거나 짧은 문장을 통해 울고 웃으며 힐링 받았다. 그런 이유에서 <치유하는 책읽기>는 당신이 혹시 상처 받았다면, 치유를 통한 마음을 회복하고 싶다면, 혹은 새로운 사랑을 단단하게 하고 싶다면 다시 한 번 읽어 보라고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보통은 하루 길게는 삼일정도 책을 나눠서 읽는 편인데 이 책은 참 오랫동안 읽었다.

7개의 chapter로 나눠져 있는 책속에는 반짝반짝 빛나는 한국 문학이 자리 잡고 있다. 그간 알려졌던 문학 고전이 주를 이루지 않고 김훈부터 김애란, 황정은, 이은조 신인 소설가부터 이재니의 시까지 그녀의 에세이와 함께 적절한 대목들의 얘기들 속에 문학의 얘기들이 길잡이를 해 주고 있다.

이 책을 오랫동안 붙잡고 있었던 이유는 책속의 나오는 소설들을 다시 마주하기 위한 노력도 있었다. 그녀의 방대한 독서는 한국 문학을 건너뛰며 읽은 나에게 추가 목록을 넣어준다. 읽고 싶었지만 어떤 책에 밀려 주문을 해 놓고 읽지 못한 책이라던가, 책이 출판 된걸 알았지만 지나치고 말았던 책들이 소개되고 부분 발췌 글이 소개 될 때마다 다음 내용이 궁금해져서 집에 있는 책이 있다면 찾아서 그 부분을 읽어야 했다. 물론 소장하지 않은 책들은 따로 구매를 한 책도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책들도 많다.

 

부지런 하지 못한 독서라서 늘 책장에 쌓아두기만 한 책들을 다시 펼쳐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줬다. 그래서 <치유하는 책읽기>는 더욱더 오랫동안 읽어야 했다. 그리고 마지막 책장을 닫고 잊고 있던 나의 잃어버린 상실감속의 사람들이 지나갔다.

편중된 책 읽기 때문에 끌리지 않는 작가의 책은 보지 않을 때가 많았던 독서였는데 이 책을 통해 김형경의 책을 읽고 싶어졌다. 그녀의 오랜 소설 <세월>을 읽으며 그녀의 삶을 너무 고스란히 담아 놓아서 안쓰러웠다가 비슷한 그녀의 처지를 비관하는 소설을 읽고 자신의 인생을 팔며 글을 쓰는 그녀의 글이 싫었다. 그래서 그녀의 신간은 관심이 없었다가 <꽃피는 고래>에 대한 부분을 발췌를 읽고 가슴이 먹먹해졌다.

 

 

아직도 어른이 되지 못한 나에게도 딱 맞는 제목 때문이었다. 우리는 상실을 통해 어른이 된다는 것. 어쩜 우리는 상실과 치유를 통해 과거와 헤어지며 현재를 살아가는 것일 테니 그 상실을 겁내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내게는 비가 오는 날을 참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비가 오면 나약하고 초라한 자신을 가려줄 우산을 쓰고 나가면 빗속의 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그녀에게는 그녀의 아픈 모습을 가려줄 우산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녀를 보듬어줄 위로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그런 그녀에게도 어쩜 글속의 위로들이 찾아와 빗속을 함께 걸어 나가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녀의 얘기들은 상실감이 많다. 그중에 가장 심하게 요동치며 공감했던 부분은 지인들의 연락처를 옮기며 사라지는 몇몇 번호들의 상실감을 얘기한 부분이다. 회사에서 어쩔 수 없이 스마트폰으로 바꿔야 하는 이유로 핸드폰을 바꾸면서 나는 일 년에 한 번도 연락이 닿지 않는 지인들의 번호를 과감하게 옮기지 않았다. 물론 일 년에 연락 한번 못하는 동창 녀석들도 있다. 그들의 번호는 그대로 옮겨 놓았다. 어쩌면 연락을 하고 안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연락이 닿지 않아도 인연의 끈을 놓고 싶지 않은 순서에서 밀려난 이들의 번호가 사라졌다고 해야 맞을 것 같다.

 

 

그녀가 옮겨 놓은 구절이 마음에 들었다가 깜짝 놀랄 때도 있다. 사실 김애란의 <두근두근 내인생>은 어떤 책갈피를 만들지도 못하고 단번에 읽어버린 책이라 어린 주인공이 물을 끓여 먹는 과정을 말하면서 살아가는 일이 보통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으며 주인공의 대견스러움을 말한다.

 

나는 주인공의 상황만 이해하며 읽었던 부분을 그녀는 그런 사소한 부분을 놓치지 않았다. 대견함을 찾아내고 안쓰러워해 주고 위로해주고 있다. 그렇게 똑같은 상황에 놓은 우리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위로 받을 것이다.

책속에 참 많은 책이 담겨 있다. 베스트셀러 작가부터 이름을 들어도 잘 모르는 신인 작가까지 참 많은 작품들 속에 수많은 감정들을 꺼내 놓았다. 참 부지런한 독서가 아니라면 이런 책이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작가의 끝임 없는 독서와 다신의 성찰, 감성의 치유까지 고루 스며있는 얘기들이다.

 

 

책을 읽으며 간혹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분명 그녀 또한 책을 통한 마음의 치유를 했을 것이다. 지금은 또 어떤 책으로 치유의 과정에 있을까. 문득 지금 내 앞에 놓인 책을 들여다본다. 그 속에서 나는 잃어버린 나의 기억을 치유 받을 수 있을까. 혹시 책을 통한 치유가 되지 않는다고 한들, 현실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책속의 세상으로 잠시 나를 던져 놓고 그 시간을 즐기면 될 뿐,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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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10 19: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1-14 14: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를 생각해
이은조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5월
평점 :
품절


책을 구입하는 여러 동기도 있겠지만, 여러 이유 중 잘 모르는 작가이지만 제목 때문에 혹해서 구입해서 읽게 되는 경우는 별로 없다. 내가 선택하는 기준은 오로지 출판사, 작가, 리뷰 서평을 읽고 흥미가 생기는 것들이 기준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을 구입했다는 것이 놀라운 것은 제목 때문에 동굴 같은 집으로 책이 들어 왔다. 책을 다 읽고 앞으로 즉흥적으로 제목에 홀릭 되어 책을 구입해야 하는 것일까 고민이 쌓였다.

 

<나를 생각해>라는 아주 단순하면서 감성적인 제목임에도 불구하고 자아 성찰적인 내용이 있을 것 같아서 읽고 싶다는 생각에 두꺼운 양장본을 좋아하지 않지만 (책을 진열하기에는 참 좋은) 펼쳤다. 그리고 무수히 낚이는 인터넷 찌라시 같은 기사들을 읽었을 때의 불편한 성질이 났다.

 

 

얼굴과 몸만 나이를 먹는 것이 아니라 작가는 문체도 나이를 먹는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지금은 환갑인 작가지만 20대에 쓴 작품에는 확실히 젊고 예리하게 날이 선 글들이 있다. 그래서 문체나 분위기만 읽다가 작가의 나이가 몇인가 표지를 펼쳐 볼 때가 있다. 그래서 이 책 또한 읽다가 작가의 나이가 몇인지 궁금해 표지를 다시 한 번 살폈다.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읽고 너무 감동 받아 원작을 찾아 읽었을때의 괴리감이라고 할까. 너무 늦게 우리나라로 번역된 그 책 속의 작가는 환갑이 넘은 나이였는데, 문체는 젊은 아네고 스타일이었다. 뭐 이런 것도 책을 구입하는 조건의 고정관념일 수 있다.

 

 

작가가 대학에서 극작을 공부했고 희곡이 신춘문예에서 당선되었으며 몇 년후 이름 있는 신문사에서 소설로 신춘문예 당선이 된 나름 글 좀 쓴다는 사람의 스펙을 가지고 있는 작가의 글 솜씨가 이상할리는 없다. 작가가 만들어 놓은 캐릭터들의 조합이 이상하게도 겉돌고 소설을 읽을수록 얇은 습자지 같은 깊이들만 가지고 있는 주인공과 주변인들은 조금만 물을 먹으면 찢어질 것 같은 조화 속에 있다. 발이 훤히 보이는 투명한 깊은 물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너무 얕아서 잘 보이는 냇물에 발을 담그고 있는 상황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그런 인물들을 이해하고 좋아하는 일이 쉽지 않다.

 

극단 ‘명우’의 직원이자 작가인 유안이 자신의 첫 작품을 올리기 위한 과정에서 5년째 사귀고 있는 애인은 매번 만날 때마다 모텔에 가는 일이 전부인 지지부진한 관계, 그리고 그녀를 둘러싼 가족과 대학 동기 또한 마치 그녀가 몸담았었던 극작가 시절의 한 부분을 도려내서 소설을 써내려 간 것 같다. 자신이 경험한 일을 제일 잘 쓸수 있기 때문에 작가가 몸담았던 곳에서 나오는 에피소드들을 피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긴 하지만 다소 안일한 선택은 아니었을까 생각해 봤다.

 

극단이 망할지 모를 상황에서 그녀의 대처법도 너무 시크하다. 그런 시크가 이해되지 않는다. 시대가 쿨 함을 요한다고 관계마저 시크하게 돌아설 필요는 없지 않는가. 그녀가 주인공인데.

 

 

나를 생각해하라고 해서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라는 말인 줄 알았는데 작품속의 주인공 유안은 자신을 잘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좀 더 들여다봤다면 많이 재미있게 읽어 줬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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