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속 대화법 - 할 말 다하며 제대로 이기는
이정숙 지음 / 더난출판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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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말을 좀 잘하시네요, 라고 듣고 살기는 하지만 싸움의 기술에서는 늘 밀린다고 생각될 때가 있다. 잠이 들다가 벌떡 일어나 그때 이런 멋진 말을 남겼다면 지금 이렇게 분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후회가 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럴 때 적절한 멘트를 적어 놓고는 또 잊어버리며 살아간다. 그런 내게 이 책이 좀 더 일찍 찾아 왔다면 참 좋았을 책이다. 오랜만에 책에 밑줄도 그어가며 읽게 되었다.

 

 

분명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일에 상대방이 너무 깊게 물어보면 나도 모르게 주눅이 들고 말았던 때가 있었다. 감정 노동자로 일하는 지인은 이런 경우가 허다하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고객은 잘 알지 못하면서 응대를 하냐고 사람을 잡기 시작한다. 비슷한 경험을 한번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그 전화를 받고 나도 잠을 이루지 못할 만큼 마음이 분했었다. [실속대화법]에서 나오는 여러 지시 항목 중에 딱 맞는 부분들이 있을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 앉을때도 있었다.

 

 

[실속 대화법]은 4개의 Step으로 이뤄져 있다.

 

1. 가슴이 아닌 머리로 생각하라.

2. 너무 친절하지 마라.

3. 옳고 그름의 함정에 빠지지 마라.

4. 상대방에 대한 기대를 버려라.

 

 

그동안 읽은 자기 계발서의 어떤 목차에서도 몇 번 본것 같은 목록이라서 사실 새롭게 다가오지는 않지만 예들이 참신한 부분들이 많다. 무엇보다 가끔 이런 책들은 어떤 부분에서 실속 있게 얘기해 준다고 하지만 뜬구름 잡는 얘기들이 참 많고, 저자도 이런 부분들은 잘 설명하지 못하면서 왜 이런 챕터를 만들어 놓고 설명을 할까 한숨이 나오기도 하지만, 분명 실속 대화법의 내용은 묵직하고 괜찮은 부분들이 많다.

 

부하직원과 껄끄러운 논쟁을 해서 이기려면 말하는 방법을 잘 골라야 한다고 하는데, 상대방의 공격에 방어 할 수 있는 힘을 기르기 위해 정당성에 대한 확신을 만들어 상대방과 논쟁을 해야 한다고 한다.

 

이런 부분들은 어떻게 보면 화난다고 무턱대고 들이밀면 좋을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우선 누군가와 있는 분쟁은 해결해야 하고, 그 해결을 위해 제일 먼저 분노를 표출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말이 왜 틀린지 자료를 조사하고 시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부분 참 잘 알고 있지만, 성격은 이론을 이기지 못하는 것이 함정이라고 생각한다.

 

 

논쟁에서 이기지 못한다면 제일먼저 바꿔야 하는 것이 태도이다. 옛 말에 목소리 큰 놈이 이긴다고 하지만 생각해보면 더 무서운 사람은 큰 목소리를 들으며 조용하게 자신의 할 말을 눈 하나 까딱 안하고 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큰 소리에 주눅 들지 않고 할 말을 다 하고 자리를 떠나는 그는 진정한 고수인 것이다. 그처럼 논쟁을 이기기 위해선 감성에 흔들려 과장되고 큰 소리를 말할 것이 아니라 차분하고,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논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감정의 이입이다. 나의 감정을 이입시키지 않고 상대방의 말에도 감정을 이입하지 말고 차갑게 논쟁을 진행시켜야 나의 정당성을 말하는 것에 더 빛이 나는 것이다.

 

 

“힘이 잔뜩 들어단 공격적이고 높은 목소리에는 경계심이 생기지만 힘이 빠진 늦은 목소리에는 숨겨둔 마음을 끄집어내는 힘이 있다.” P 61

 

 

가끔 지인들이 어떤 문제가 있을 때마다 좋은게 좋은 것 아니겠냐며 그냥 이해하고 넘어가 주라고 할 때마다 나는 도대체 누굴 위해 좋은 것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좋은게 좋은 것이니 그냥 넘어갔다가 늘 내 속이 뒤집어 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친절하지 못한 사람인가 싶어 늘 마음이 괴로웠는데 책을 읽으며 우리가 누군가에게 늘 친절한 사람일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불친절하고 감정을 표출하며 살아가는 것은 아니겠지만 뭐든 적당한 거리가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물며 가족에게도 그런 거리는 필요한 것 같다.

 

 

인천 공항에서 리무진 버스를 타고 집으로 오는데 정말 너무 더웠다. 유독 올해 여름은 현기증이 날 정도로 더웠다. 에어컨을 틀어 놓았지만 밖의 열기에 소용이 없었다. 모두 더위에 허덕이며 가고 있는데 한 아저씨가 화를 내기 시작했다. 운전기사에게 더우니 에어컨을 최대한으로 킬 것을 종용하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 것이다. 참 무례한 승객을 태우는 기사님은 아주 낮은 소리로 지금 최고 단으로 놓고 가고 있으니 차를 세우고 확인하라고 하셨다. 당황한 아저씨가 그래도 왜 이렇게 덥냐고 소리를 질렀지만 아무도 아저씨의 얘기를 받아 주지 않았다. 만약 그때 그 자리에서 같이 화를 냈다면 어떻게 됐을까. 이런 무례하고 예의 없는 승객 많이 태워 이골이 났겠지만 아저씨의 저 단단한 뒷모습에 나는 참 많은 것을 생각했다.

 

남을 이기며 살아야 한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살아가는 것이 꼭 누굴 이기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단지 나의 얘기는 분명하게 하며 살아야 하니 이런 실속대화법은 때로는 필요하거나 필요하지 않을 때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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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 책이 내게 말을 걸어 왔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헌책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 어느 책방에 머물러 있던 청춘의 글씨들
윤성근 엮음 / 큐리어스(Qrious)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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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은 헌책만 사러 돌아다녔던 적이 있었다. 동대문역 주변에 헌책방이 많았기 때문에 학교 수업이 없는 대학생 시절에는 차비를 아끼며 걸어가 차비로 책을 사오기도 했다. 간혹 마음에 맞는 선배를 만나면 함께 걸으며 많은 얘기들을 하고 선배가 골라줬던 책을 읽고 며칠 후 진지한 얘기로 소주가 눈물이 되어 울었던 진지한 젊은 날도 있었다. 그때 가장 많이 읽었던 책들은 사회과학서적들이었다. 한때 감옥에 들어갔다 온 선배가 추천해준 책들이 전부 그런 책들이었고 나는 한참을 그 불구덩이 속에 갇혀 살았었다. 단골이 된 헌책방 주인과 밥도 먹는 사이가 됐었던 사당동의 어느 서점은 이제 찾아가지 않게 되었지만 아마도 그곳에는 습한 향기 가득한 책들이 더 이상 있지 않을 것 같다.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으로 유명한 저자 윤성근의 [헌책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는 그가 운영하고 있는 헌책방에서 그게 말을 걸어 온 책들을 엮어 놓은 책 에세이다. 그의 처음의 책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을 읽지 못해 그가 왜 젊은 나이에 헌책방을 운영을 하고 있는지 알수 없지만 그가 분명 이상한 헌책방의 주인인 것은 맞는 것 같다. 헌책방에 가면 가방 많이 보이는 책들은 대부분 문제집과 교과서였다. 그리고 전공 서적 관련한 책들도 많이 보이고 고등학교때 많이 읽었던 로맨스 소설도 많이 보였는데 그의 헌책방에는 이런 책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오로지 그가 읽어 보고 좋은 책, 그가 읽는 책들만 판다고 하니 이런 장인정신이 올바른 주인장이 어디 있을까. 먹어 보고 내가 맛있어야 판다는 식당 주인이라던가, 내가 입어보니 너무 편하고 좋아서 만들기 시작해서 판다는 옷 가게 주인들은 많이 보았는데 읽어보고 좋은 책만 판다니.

 

 

저자에 대한 정보는 몇 년 전 헌책을 찾다가 알게 된 그의 헌책방 소개 글을 읽어 본 것이 전부였는데 그의 이번 에세이를 읽으면서 저자의 해박한 지식에 사실 좀 놀랐다. 물론 책을 내기 위해 그도 많은 자료 조사도 했을 것이지만 그가 기억하는 80~90년대의 대학 서점가의 분위기를 듣고 있노라면 그 시절의 어린 모습이 떠오른다. 무작정 뭔가를 열심히 해야만 했었던 그 시절에 내가 읽었던 책들을 떠올리며 향수에 젖어 버렸다.

 

 

헌책방을 하는 저자이기 때문에 하루 종일 헌책과 생활을 할 것이다. 그가 누군가에게서 받은 책들은 많은 사연을 가지고 있다. 때로는 너무 깨끗한 요조숙녀 같은 모습으로 있는 책들이 있겠지만 대부분의 그가 누군가에 권하는 책들은 분명 손때 가득한 추억이 많이 있는 책들인 것 같다. 그런 책들은 간혹 책을 처음 구입한 이들이 적어 두었던 사연과 일기들이 있다. 나의 대학시절에는 대부분 동기들은 생일이라고 하면 선물을 못산 이들이나 많이 친하지 않던 친구들도 문학과지성사의 시집을 선물해주곤 했다. 그때 시집의 가격은 삼천원대였으니 학교 식당 점심값과 바꾼 선물인 샘이었다. 그때 시집의 표지에는 항상 짧은 자신만의 시를 써서 주었다. 그런 풍습 때문에 가끔은 일부러 시집을 몇 권 들고 다닐 때도 있었다. 그 시절의 우리는, 점심 한 끼 안 먹고 바꾼 그 시집이 참 행복했었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낭만이 없다. 서점에서 표지를 보고, 혹은 먼지 가득한 윗부분을 훅 불며 골라드는 책들도 구경을 할 수가 없고. 이런 낭만을 아는 나조차도 손쉽게 구입할 수 인터넷 서점을 이용하고 있으니.

 

 

“물질과 의식과의 관계는 어느 것이 일차적이냐는 것이지 어느 것이 더 중요하고 주된 것이냐가 아니다. _ 변증법적 유물론/ 빅토르 아파나셰프/ 백두/ 1988” P64

 

"나는 지금 나의 청춘을 매장하고 합장(合掌)하여 향(香)을 피우고 싶듯 경건한 마음을 지닌다. _ 사랑과 인식의 출발 / 쿠리다 하쿠조/ 창원사 / 1963“ P65

 

 

책을 읽은 사람의 고민과 마음의 모습을 느낄 수 있었던 이 내용이 적힌 책들도 꽤 어려운 인문과학서적이다. 문득 이 글을 적은 사람을 만나고 싶어진다. 오래전에 읽은 [밑줄 긋는 남자]라는 소설이 생각이 난다. 우연치 않게 읽게 된 책속에 적힌 문장 때문에 그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하는 그런 내용은 어쩌면 이런 멋진 문장의 끌림 때문에 호기심이 발동한 것이 아닐까.

요즘도 나는 중고서점에서 중고 책을 구입한다. 그럴 때마다 가끔 섬뜩하게 느껴지는 문장을 발견하고 만다. 책의 저자가 분명 아끼는 후배, 선배, 지인에게 줬을 싸인 본이 있고 편지까지 써준 속지가 그대로 중고서점으로 돌아 온 것을 발견할 때다. 분명 그 책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중고서점으로 넘어 왔을 테지만 책 속의 내용은 읽기라도 한 것인지 마음 애절한 내용의 어떤 소설가의 편지를 읽고 차마 그 책을 사올 수가 없었던 책도 있었다. 그들은 왜 그런 추억을 떠나보냈을까.

 

 

[헌책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를 읽는 동안 한동안 나의 서재를 뒤지며 놀 수 있었다. 내게 선물을 했던 그 책들의 표지들을 살피며 몇 번씩 읽고 선물을 주고 이제는 연락이 끊긴 그들을 떠올려봤다. 우리는 그때 왜 그토록 시집을 사랑하고, 책을 소중하게 간직하며 있었는지. 그들은 내가 밤새 쓴 편지를 동봉한 시집을 잘 간직하고 있을지 궁금하기만 하다.

 

 

 

 

 

 

 

한겨레 출판사에서 1992년 초판에 나온 [앵무새 죽이기]라는 책을 1994년에 헌책방에서 샀었다. 그런데 이 책은 어떤 남자가 여자에게 주는 러브레터로 가득한 글이 적혀 있었다. 이것 때문에 오해한 남자친구가 인기 많은 여자와 사귄다고 고생하며 한동안 잘해줬었던 에피소드가 있었다. 그 시절, 이 책을 받으신 그 여자 분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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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 - 영혼이 쉴 수 있는 곳을 가꾸다
헤르만 헤세 지음, 두행숙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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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함께 치유하는 시간들.

 

 

 

서울에서 태어나 삼십년이 넘게 단 한 번도 서울을 벗어나 살아 본적이 없다. 더욱이 아파트에서 살았던 날들은 인생의 절반이 넘는다. 그래서 늘 내게는 마당이 큰 집으로 이사를 가서 온갖 꽃들을 심어 놓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그렇다, 내게는 꽃을 심거나 나무가 있는 곳은 정원이라는 개념보다는 마당이라는 인식이 훨씬 강하다. 너희 집 정원이 있어? 라는 물음보다, 너희 집은 마당이 커라는 질문이 훨씬 자연스러운 대사 같다는 생각도 드는 걸 보면, 나는 큰 정원이 있는 집은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 것 같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문고판으로 읽었던 헤르만 헤세의 소설들은 충격적이었다. 사실 어려운 내용도 많아서 이해를 못했던 부분도 있었지만 19세기에 태어나 20세기에 세상을 뜬 독일 문호의 작품들은 뭔가 지성이 흘러넘칠 것 같은 내용들이 많았다. [데미안],[수레바퀴 아래서],[나르치스와 골드문트]을 통해 알게 된 헤르만 헤세이지만 역시 소설이 아닌 에세이를 읽으니 그가 어떤 사람인지 마음에 와 닿는 문장들이 훨씬 많다.

 

 

 

정원이라고 하면 타샤 할머니가 떠오르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많은 것을 가지려고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존중하며 살아가는 타샤 할머니의 모습에서 헤르만 헤세의 모습이 오버랩 된다. 그는 왜 거처를 옮길 때마다 정원을 가꾸었을까. 밀짚모자를 쓰고, 깡마른 몸으로 정원을 돌보는 그의 모습엔 즐거움도 있지만 어딘지 모르게 쓸쓸함이 보인다.

 

 

 

“농부가 된다는 것은 놀이처럼 재미로 할 때는 멋있는 일이지만 습관이 되고 점점 더 일이 많아져 의무가 되어버리면 그 즐거움은 사라져버린다. P23 "

 

 

 

이런 그에게 정원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재미가 습관이 되고 의무가 되어 그가 원하는 즐거움이 사라져버리는 것을 그는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사소한 즐거움을 놓치지 않았다.

 

 

 

 

 

“적당한 즐거움이야말로 두 배의 즐거움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또 ‘사소한 기쁨들을 간과하지 마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절제하는 것이다.” P70

 

 

"이런 기쁨들 가운데 가장 으뜸이 되는 것은 우리가 매일 같이 자연을 접할 때 느끼는 기쁨이다. 특히 우리들의 눈, 너무 많이 혹사당하고 너무 많은 일을 해야 하는 현대인의 눈은 마음만 먹는다면 무한한 즐거움을 누릴 능력이 있다.” P 71

 

 

 

 

수천가지의 사소한 일들에서 우리는 작은 기쁨들을 찾아내 밝게 꿰어서 우리의 삶을 엮어갈 수 있다. 작고 사소한 것들을 놓치지 않고 살아가려고 했던 헤르만 헤세는 그간 많은 중요한 역사에 놓여 있었다. 그는 제 1, 2차 세계대전으로 전쟁에 대한 환멸과 고민이 많았다. 평화주의자였던 그가 두 번의 세계대전으로 보았던 많을 사람들의 살생과 죽음의 고통으로 얼마나 괴로웠을까. 거기다 그는 유대인을 학살한 히틀러의 조국과 같은 국민이 아닌가. 그런 그에게 정원은 사라져가는 것들을 살리며 키우는 힐링 장소였다. 죽은 사람들을 살릴 수는 없지만, 죽어가는 꽃들과 나무를 살리며 살아가는 모든 것들을 사랑하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친구의 죽음에 이런 말들 남겼다.

 

 

 

“그는 비로소 안식을 찾았을 것이다. 그는 그리 자정하지 않은 이 세계로부터 떨어져 나간 것이다. 투쟁과 근심으로부터 떨어져 나가 다른 해안으로 들어선 것이다.” P134

 

 

 

떠난 친구에게는 이 세계로 떨어져 나간 것이 다행이라고 하지만, 죽은 나무는 그런 말조차 들을 수 없다는 것이 힘들기만 하다. 그는 평화와 자유의 세상을 꿈꿨지만 그가 살았던 시대는 전쟁과 공포의 시대였다. 그런 그를 유일하게 잡아줬던 정원이라는 공간에 문득 나에게는 어떤 것이 정원으로 존재하고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그에게 정원이 없었다면 분명 헤르만 헤세는 마음의 평안을 가지지 못하고 한번 저질렀던 자살을 또 했을지 모른다. 이름 없는 풀꽃들도 반짝이며 사라지는 것을 아쉬워했던 헤세였기 때문에 모든 것들이 살아 숨 쉬는 정원이 꼭 필요했을 것이다.

 

 

 

 

 

“만약 슬픔에 잠겨 당신이 가진 것들한테서 멀리 떨어져 있다면 이따금 좋은 구절을, 한 편의 시를 읽어보라. 아름다운 음악을 기억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당신의 삶에서 느꼈던 순수하고 좋았던 순간을 기억해보라! 만약 그것이 당신에게 진지해 진다면 그 시간은 더 밝아지고, 미래는 더 위안이 되며, 삶은 더 사랑할 가치가 있는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되리라!” P157

 

 

 

그가 사랑했던 정원에서 떠나버리고 난 후, 그는 친구에게서 말해줬던 것처럼 다정하지 않은 세상에서 떨어져 나가 비로소 안식을 찾았을까. 고국에서 살지 못하고 결국 스위스로 망명하듯 떨어져 나온 그의 삶은 분명 정원으로부터 위로 받으며 행복했을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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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더 스토리콜렉터 17
마리사 마이어 지음, 김지현 옮김 / 북로드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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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과 시대는 변해도 사상은 달라지지 않는 것일까.

 

 

 

제목이 [신더]이기에 혹시 신데렐라의 판타지 판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역시나 그렇다. 84년생이 쓴 판타지 판의 신데렐라의 얘기다. 루나 크로니클 시리즈 중의 첫 번째 소설인가보다. 앞으로 동화를 근간으로 한 판타지 소설이 나온다고 한다. 그중에 많이 알고 있는 [빨간 모자], [라푼젤], [백설공주]라고 한다. 동화로 시작해서 그동안 SD 애니메이션도 보았고 요즘은 3D판으로 내용이 각색이 된 애니메이션도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의 드라마들도 요즘 동화책의 내용을 소재로 빌려와 만들기도 하고, 전래 동화를 기반으로 한 영화도 만들기도 했다. 하늘 아래 더 이상 새로운 것은 없다고 했던가.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만들기 위해 발상의 전환을 많이들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 부분에서 본다면 [신더] 또한 판타지 말로 새롭게 만들어진 신데렐라의 이야기니 발상의 전환을 했다고 봐야 할 것인지. 너무나 뻔 한 발상의 전환이라서 다소 김이 빠진다.

 

 

 

[신더]의 책 속의 주인공이 제목과 같다. 그녀는 동화속의 신데렐라처럼 계모와 피가 다른 자매들과 함께 살고 있다. 더욱이 계모는 동화책속처럼 게으르고 표독하고 이기적이다. 자매들 또한 다르지 않다. 파티에 가기위해 마차를 고치듯 타고 갈 것들을 고쳐 놓으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신더는 한 쪽 다리는 기계로 개조한 사이보그 인간이다. 온갖 집안일을 했던 신데렐라처럼 신더 또한 집안일과 식구를 먹여 살리기 위해 시장에서 간판도 없는 후미진 곳에서 기계를 고치며 살고 있는 정비공이다.

 

 

 

그런데, 신더의 나이의 얼마나 됐을까? [신데렐라]에서는 그녀의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또, 그때는 그런 시대라고 치고 혼자 나가서 살 수 없었겠지만 신더는 기계를 고치며 사는 나름 전문직의 여성이 아닌가. 그런데 이런 전문직의 여성이 계모의 학대와 가장이 되어 왜 집안을 벗어나지 않고 있는 것일까. 아무리 수십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레투모시스의 전염병이 나라를 덮치고 있다고 한들, 그렇게 죽을 듯이 자신을 학대하고 전염병이 옮은 것 같다며 죄책감 따위 없이 검역소에 마루타로 까지 보내는 그런 엄마와 왜 살고 있냔 말이다. 법적인 보호자라지만, 그녀는 황태자의 안드로이드의 수리까지 하는 여자인데 뭐가 부족해서.

그런데 그녀의 한계를 만들어 준 것이 그녀가 사이보그라는 것에 있다. 그녀는 다리 한쪽과 손을 강철로 만들었다. 그것이 끝이 아니다. 머릿속으로 인터넷도 접속 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두되를 가지고 있다. 이런 그녀는 사이보그라 사회적으로 차별을 받는다. 이런 ‘루나 클로니클’의 세계에서는 그녀는 소유물로 인정이 되어 소유주가 있는 노예 아닌 노예가 되어 버렸다. 처음에 이런 전문직 여성을 왜 이런 설정을 했을까 했는데 작가의 나름 구성의 묘미가 있다.

 

 

사실 나는 동화 속에 나오는 계모들이 이렇게 다 표독하고 그악스럽게 나오는 것이 싫다. 이런 부분부터 변화를 주고 얘기를 시작했으면 참 좋겠다. 원래 신데렐라의 성인 버전은 훨씬 야하고 왜 12시까지 꼭 들어와야 하는지의 설명에 더 수긍이 갔다. 원래 신데렐라는 좀 노는 여자라서 밖에 나가면 남자들과 노느라 집에 들어오지 않아 집에서 걸어놓은 통금 시간이 12시라던가 그런 설정에 한참 웃으며 읽었던 책도 기억이 난다.

 

 

다만 다른 것은 신더가 레베나 여왕의 조카이고, 셀린 공주라니. 그러니까 그동안 많은 드라마에서 여자의 신분 상승을 위해 남자를 만나는 것을 신데렐라 이야기라고 한다면, 신더는 이미 공주라는 신분을 가지고 있으니 계급으로 따진다면 충분히 황태자와 결혼을 할 수 있는 상위 1%의 얘기로 내용이 달라진다고 볼 수 있다.

 

 

그동안 신데렐라는 동물 친구들 밖에 없었는데 그녀의 의붓동생인 피어니와의 모습은 많이 짠한 마음을 가지게 했다. 검역소에서 죽어갈 피어니를 찾으러 다시 간 신더가 피어니와의 대하들은 책속에서 가장 따뜻한 장면으로 기억된다.

 

 

 

신데렐라는 한쪽 구두를 잃어버렸다. 그리고 잃어버린 구두의 주인을 찾으러 다녔던 왕자는 신데렐라를 만나서 행복하게 잘산다는 동화의 내용과 달리 신더는 잃어버린 구두가 아니라 다리 한쪽을 잃어 버렸고, 사이보그가 되었다. 그런 그녀가 어떤 운명을 맞이할지 궁금하다. 마지막 장면은 역시 여자는 그냥 찾아오는 남자를 만나서 행복했습니다로 끝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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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 정유정 장편소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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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정은 상복이 많은 사람이다.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로 세계청소년 문학상을 수상했고, [내 심장을 쏴라]로 세계문학상을 받았다. [7년의 밤]은 어쩌면 그녀의 수상 이력의 효과를 보며 주목 받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용의 치밀함과 재미가 빠졌다면 시들했을 텐데 그 해에 읽지 못했지만 내게 정유정이라는 작가를 각인시키기에 큰 작품이었다. 그녀의 굵직한 장편들이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단편을 잘 쓰지 않는 그녀의 선 굵고 듬직한 그 책 두께에 더 마음에 들었다고 할까.

 

 

500페이지에 달하는 그녀의 작품 [28]은 읽는 동안 지루할 틈이 없다. [7년의 밤] 또한 그랬다. 그녀의 간결한 문체, 사전 자료 조사에 감동하며 읽을 수밖에 없는 작품이었다. [28] 또한 그렇다. 몇 년 동안 치밀한 사전 조사를 이루고, 써내는 작품의 질과 농도에 감탄을 자아낸다.

 

 

그녀가 설정한 가상의 도시 “화양”이라는 곳에서 벌어지는 28일 동안의 얘기는 생동감 있다. 그녀의 작품 [내 심장을 쏴라]와 [7년의 밤]이 영화화 된다고 하던데 [28]일은 어쩌면 영화에 더 잘 맞아 떨어지는 내용일 수 있겠다. 이렇게 조직적이고 치밀한 묘사에 어떻게 영화 생각을 못할까. 28일 동안 인간이 어디까지 추락 할 수 있는지, 얼마나 빨리 사랑에도 빠질 수 있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삶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 여실하게 보여준다.

 

 

가상의 도시 “화양”이라는 곳에서 ‘인수공통전염병’이 창궐하기 시작한다. 처음 비위생적으로 관리된 개번식업자가 자신의 개에게 전염되기 시작하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눈이 충혈 되기 시작하면서 온몸의 구멍이란 구멍에서 피를 쏟는 이 병의 치유 방법은 당연히, 없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인수공통전염병’에 걸리지 않는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는 이들이 당연히 주인공이다. 이 이야기의 시작이자 끝인 서재형은 한때 ‘아이디타로드’에 출전한 최초의 한국인 머셔였다. 일면 썰매개들을 이끌고 생명을 담보로 달리는 죽음의 경주라고 한다. 첫 출전한 서재형은 악천후 속에서 자신의 개들을 모두 늑대에게 잃고 말았다. 충전 자격을 영구 박탈당한 재형은 한국에 돌아와 자신이 잃어버린 그 개들을 찾듯 유기견을 보호하고 치료해주는 유기견 구조센터 “드림랜드”를 운영한다. ‘인수공통전염병’이라는 것이 개에게서 비롯되었고 그로인한 그의 도시의 이름 같은 불같은 소용돌이에 다시 한 번 갇히게 되었다. 어쩌면 재형이 링고와 스타를 만나지 않았다면, 그는 화양에서 그런 생을 마주보지 않았을 것이다.

 

 

재형을 주축으로 그의 기사를 쓰고 결국 그의 옆을 지키게 된 김윤주와 119 구조대원인 기준, 그리고 기준에게 특별한 간호사 수진. 주변 인물들에게 재앙과 슬픔을 모두 가져다 준 동해, 그들을 도와주는 주환등 많은 인물이 주축으로 이뤄진 이 소설은 인물들도 많다. 동해의 아버지, 엄마, 동생을 뺀다면 큰 가계도는 없다. 재형과 수진이 한 축을 이루고 동해와 대립관계에 놓인다. 그리고 그들의 주변인물들은 주인공이 되거나 혹은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이들보다 훨씬 중요한 스타와 링고, 썰매개였던 그들의 얘기가 중요하다. 어찌 보면 사람들의 얘기보다 그들의 대화와 내용이 가장 감동적이고 가슴 아팠던 부분이 있다. 그래서 였는지 링고의 마지막 행적을 따라가는 부분이 가장 섬뜩하고 긴장되었다.

 

작가는 구제역으로 살생처분 되는 살아있는 돼지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 소설을 쓰기로 했다고 한다. 구덩이 속으로 살아 있는 돼지들이 쏟아지고 영문도 모르게 끌려와 깊은 구덩이 속으로 던져진 자신이 왜 이곳에 있는지 모르겠다며 살려달라고 울부짖었던 그들의 모습처럼 화양의 도시에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작가가 그렸던 모습을 고스란히 엿볼 수 있는 장면들이 너무도 많다.

 

 

현실은 이유를 알 수 없는 살인을 저지른 사이코패스들의 기사들을 쏟아낸다. 그런데 내가 생각했던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동해가 어린 시절 당했던 폭력이 그를 이렇게 가혹한 사이코패스를 만들어 냈다고 하기엔, 동해의 캐릭터를 풍부하게 만들어 줄 이유가, 부족하다. 동해는 그냥 나쁜 인물이기만 할까. 동해의 행동에 악행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를 이끌어줄 동아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많이 들었는데 좀처럼 작가는 냉정하기만 하다. 좀처럼 곁을 내주지 않는다. 그런 부분에서 동해라는 인물을 살리는 부분은 실패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화양은 다섯 개 산과 열두 개 봉우리 안에 들어앉은 분지 도시였다. 재형은 도로 하나로 서울 북쪽과 내통하듯 몸을 맞댄 이 도시의 하늘이 갑갑할 때가 있었다.” P114

 

 

정유정이 만들어낸 화양이라는 도시를 설명하는 부분을 보더라도 그녀는 뭔가 허투루 만들어 낸 것이 없다. 분명 이런 도시가 어디쯤 있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자세하고 치밀하게 짜여 놓았다. 유독 그녀의 소설은 긴 문장이 없다. 간결하게 읽히는 것이 이 소설의 특징인데 그래서인지 감정선도 짧게 끊긴다. 지난번 그녀의 소설을 읽고 느낌 감정은 다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일까.

 

 

하지만 재형이 윤주에게 자신의 쉬차(썰매개들)을 눈보라 속에 늑대들의 밥이 되어 자신을 더 이상 찾지 않도록 멀리 달아나 줬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하는 부분에서는 가슴이 많이 뜨거워졌다. 살려는 의지를 가지게 했던 그는 윤주에게도 자신의 지난날을 얘기하며 가슴 아파했다. 동해에 대한 적대감이 강해질수록 재형에게는 연민이 주고, 윤주에게는 사랑을 주고 있는 것 같다.

박노해는 말했다. 사람만이 희망이라고. 그 희망인 사람들이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것일까. 소설을 읽고 사실 작품의 좋고 싫음을 떠나 나는 이런 생각을 많이 했다. 희망이라는 우리가 대체,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이기적으로 살아가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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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쥐 2013-09-13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한 작가가 갑자기 유명해지면 그 작가의 초기작품을 찾아 읽는 버릇이 있어요. 그래서 최근에 읽었던 책이 정유정 작가의 <마법의 시간>이었죠. 구성도 단편적이고 결말 부분을 서둘러 끝낸 흔적이 있는 약간은 아마추어 냄새가 나는 작품이었죠. 그러나 정유정 작가를 조금은 알게 된 것 같아서 좋았어요. 이제는 본격적으로 작가의 베스트 셀러 작품도 읽어보려구요. ㅎㅎ 리뷰 잘 읽었습니다.

오후즈음 2013-09-13 17:43   좋아요 0 | URL
아, 마법의 시간이라는 단편이 있군요. 저는 정유정이 장편만 쓴줄 알았어요.
그동안 그녀의 장편 3권은 모두 읽었는데 이번에 나온 소설이 가장 흥미가 떨어지네요. 하지만 작가의 자료 조사 능력은 탁월한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