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 오는 결정적인 이유는 집 바로 옆에 있는 공원 때문이었다. 공원에서 산책하며 운동도 하고 그런 낭만적인 시간을 원했기 때문에 상당한 언덕을 올라와야 집으로 들어 갈 수 있는 이 엄청난 집으로 이사 오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사 오던 달이 12월이라서 너무 추워 공원 산책과 운동은 할 수 없었고 이후에는 집과 회사를 오가는 노동력에 낭만적 주술을 불러왔던 공원 따위는 갈 수 없었다.
그렇게 4년이 지난 요즘 3주 동안 공원에서 운동을 하고 있다.
이번 스페인 여행이 그간 했던 여행 중 가장 긴 여행이고 나날이 일어나는 것조차 힘든 체력이라 약으로도 해결이 안 되는 나날들이 있음을 깨닫고 매일 1시간 이상씩 천천히 걷고 있다. 이런 저질 체력으로 무슨 한 달 반짜리 산티아고를 가겠다는 결심을 했었을까. 아, 물론 이번 여행은 산티아고는 아니다. 언젠가는 꼭 가보리라 결심만 하고 있다. 참, 그런데 왜 3주 동안 운동을 했는데 살은 안 빠지는 걸까? 나이드니 체력도 딸리는데 이제는 뭘 안 먹어도 살이 잘 안 빠진다. 왜??
공원 운동을 하면서 엄청난 후회가 쏟아졌다. 이렇게 좋은 공간을 두고 나는 이곳에 사는 4년 동안 뭘 한건지. 이렇게 돈 안들이고 운동을 하면서 산책도 하면서 기분도 전환도 하고, 무엇보다 공원에는 내가 좋아하는 고양이가 만날 나를 기다려 준다. 요즘 그 고양이와 노는 맛에 공원 운동도 잊고 놀다 올 때도 있다. 아, 그래서 살이 안 빠지는 걸까?
좋은 곳을 그동안 사용하지 않았다는 생각에 억울한 생각까지 들었지만 뭐 어찌되었든 이제 알았으니 이곳에서 이사 가는 동안까지 쭉 써보겠다는 생각으로 공원을 오늘도 돌고 오다가 문득 이렇게 좋은 것들을 놓치고 살아가는 것이 내 주변에는 또 뭐가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그중에 사람도 있다. 늘 나를 걱정해줬던 오래된 친구들과도 요즘 서로 사는 게 바쁘다는 핑계로 소식이 뜸하다. 이제는 전화도 아닌 카톡으로 안부를 묻는 게 전부라서 어쩌면 가슴에 남는 것이 더 없는 것도 같다. 내가 놓치고 있는 것들을 어제는 어떤 것이 있었나 생각하면서 오늘 도착한 열쇠들을 본다.
워낙 소매치기로 악명 높은 스페인이라서 거기에 더 치안 안 좋은 포르투갈까지 오가야 하니 내 가방들을 챙겨줄 열쇠들을 주문했다. 하나는 예전 체코 갔을 때 사온 열쇠였는데 그때는 그다지 필요 없어서 그동안 쓰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총 3개가 모두 동원되게 생겼다. 여행을 이렇게 꽁꽁 묶어 놓고 가야 하는 것인가 생각하면서 뭘 그렇게 많이 가지고 가는 것일까 의문도 해 본다. 아마도 가진 게 없다면 저런 열쇠는 다 필요 없을 텐데. 그래도 챙기고 있어야할 중요한 것들을 사수하기 위해 모든 열쇠의 비번을 일치 시키려다가 몇 개는 다르게 바꾸었다. 아, 비번들 잘 기억해야 할 텐데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