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없으면 내가 없습니다
정호승 지음, 박항률 그림 / 해냄 / 2014년 6월

 

 정호승 시인의 글과 박항률 화백의 그림이 담긴 산문집이에요. 저는 시를 잘 읽지 않는 편인데, 이 책은 산문집이라고 해서 읽기 시작했어요. 첫 장을 펴서 읽었던 이야기가 참 소박했습니다. 전남 완도 시외버스터미널 부근에서 먹었던 찐빵 이야기로 자연스럽지만 정감있는 이야기였어요.

 

 좋은 글이 많았는데, 지금의 저한테 필요한 것 같아서 이 부분을 적기로 했습니다.  어중간히 줄이기가 쉽지 않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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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을 사는 청년 세대들이 인생의 쓴맛부터 먼저 맛보는 건 당연하다. 내일의 단맛을 맛보기 위해 오늘의 쓴 맛을 맛볼 기회는 참으로 소중하다. 오늘 내가 맛본 쓴맛이 내일 맛볼 단맛을 보장한다. 쓴맛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고 원망만 한다면 항상 쓴 맛만 보는 삶을 살게 될 지도 모른다.

 

 수능 성적이 원하는 대로 나오지 않거나 취업의 문 앞에서 자꾸 좌절돼 인생의 쓴 맛을 맛보게 되었다면 그 쓴맛은 음미하는 게 중요하다. 수능 한 문제 더 맞고 덜 맞음에 따라 웃고 울고 할 필요가 없다. 수능이 끝났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지 이미 치른 시험을 두고 안타까워할 필요는 없다. 아무리 원하지 않는 결과가 나왔다 할지라도 긍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입사 시험에 번번히 낙방하는 경우다 마찬가지다. 부모를 떠나 자기만의 인생을 시작하려고 하는 이는 대부분 실패의 쓴맛부터 먼저 보게 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게 중요하다. 오히려 그 쓴맛을 깊게 음미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래야 나중에 단맛을 보게 될 때 단맛의 깊이를 더 깊이 알게된다.

 

 인생에는 실패가 없다. 실패라고 생각하는 것은 모두 과정일 뿐이다. 과정을 실패라고 생각하는 오류를 범할 뿐이다. 작은 실패의 냇물이 모여 큰 성공의 강물이 흐른다. 따라서 아무리 쓴맛을 맛보더라도 참고 견딜 줄 알야야 한다.

 

 꽃은 왜 아름다울까. 그것은 겨울이라는 고통을 견뎌내었기 때문이다. 오늘의 청년 세대가 한 송이 아름다운 꽃이라면 지금은 묵묵히 고통을 견뎌내어야 할 때다. 나이 든 중년 세대의 인생은 짧지만 젊은 청년 세대의 인생은 길다. 인생은 일회적인 것이지만 수능이나 입사시험은 일회적인 게 아니다. 수능이나 입사 시험에 실패했다고 해서 인생전체를 실패한 것은 아니다.

 

 지금 먼 들판을 달리기 위해 말을 훌쩍 올라탄다고 생각해 보자. 이때 말을 제대로 올라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가. 그것은 바로 노둣돌이다. 말을 타거나 내릴 때 발돋움으로 쓰는 노둣돌이 없다면 말을 탈 대 얼마나 힘들겠는가. 인생의 쓴 맛이라는 고통은 바로 이 노둣돌과 같다. 노둣돌이 있음으로써 보다 쉽고 안전하게 말에 올라타 달릴 수 있다.

 

(중략)

 

 인간은 오직 일등에게 관심을 갖지만 신은 자신을 견디고 극복한 사람에게만 관심을 갖는다고 한다. 또 신은 가끔 인간에게 빵 대신 돌멩이를 던진다고 한다. 그런데 어떤 이는 그 돌을 원망하며 걷어차 버리다가 발가락이 부러지고, 또 어떤 이는 그 돌을 주춧돌로 삼아 집을 짓는다고 한다.

 

 나는 신이 관심을 갖는 인간이 되고 싶다. 신이 던진 돌멩이로 빵을 만들어먹는 인간이 되고 싶다. 쓴맛을 맛보지 못한 사람은 설탕맛을 모르므로 오늘의 쓴맛을 내일의 단맛으로 만들고 싶다.

- <쓴 맛을 보지 못하면 단맛을 보지 못한다>,  페이지 126~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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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 그게 뭐 별거냐, 그게 없으면 내가 죽기라도 하냐,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 나을 때가 있었어요. 그게 정말 중요한 거고, 그것 외에는 대안이 없는 것처럼 강조하고 강요당하면 할 수록 크게 부풀어올라서, 내가 저걸 할 수 있을까 싶은 마음에 다른 이유 대면서 어디로 도망치고 싶을 때도 없지 않았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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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가에서는 나의 삶을 놓아버리면 좀더 충실하게 나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한다. 소유와 집착과 탐욕 그 자체가 나를 괴롭히기 때문에 놓아버리라고 한다. 결국 자아를 버려야 진정한 자아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내게 이루고 싶은 어떤 목표가 있다면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애를 서야 하지만 동시에 그 목표를 놓아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가톨릭 에서도 '십자가 성 요한' 성인은 "모든 것을 얻기에 다다르려면 아무것도 얻으려고 하지 말라. 모든 것이 되기에 다다르려면 아무 것도 되려고 하지 말라" 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목적에 다다르는 길은 수없이 많지만 목적을 버림으로써 목적에 다다르는 길이 바로 진정한 길이라는 것이다.

 

 어떤 목적을 향해 나아갈 때 그 목적을 자꾸 생각하면 조급해지고 힘들어진다. 의욕이 앞서 자칫 과욕을 불러올 수 있다. 과욕은 목적으로 가는 길을 힘들게 만든다. 등산할 때 왜 위를 올려다보며 걷지 말라고 하는 것일까. 정상에 오른다고 생각하면 산을 오르기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어서 정상에 올라가야지'하는 급한 마음을 가지면 그 순간부터 산행이 힘들어진다.

 

 그것은 과정의 소중함보다 목적에 대한 욕심과 욕망이 앞섰기 때문이다. 욕심은 고정을 힘들게 하거나 파괴시킨다. 목적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과정을 중요시해야 하는데 그 과정을 무시면 목적에 다다를  수 없다. 위를 보지 않고 묵묵히 앞을 보며 한 걸음 한 걸음 떼어놓다 보면 어느새 정상에 다다를 수 있다.

 

 목적보다 과정이 중요하다 (중략) 그러나 대부분 과정보다 결과를 더 중요시한다. 과정도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이는 결과가 좋지 않을때 건네는 위로의 한 방편일 때가 많다. 결과가 중요할수록 결과에 매달리지 않아야 한다. 결과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과정에서 성실과 최선을 다할 때 비로소 그 결과가 좋아짆다.

 

 누구나 성공을 바라지만 성공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성공 자체가 인생의 목적이 아니다. 성공을 목적으로 삼으면 인생이 공허해진다. 성공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인생이라는 인간으로서의 소중한 임무를 다하기 위한 하나의 디딤돌이다.

 

(중략)

 

 이렇게 인생은 목적보다 과정을 어떻게 생각하는냐에 따라 달라진다. '좀더 잘했더라면'에 초점이 맞춰지면 인생은 기쁨을 잃게 되고, 이정도라도 했으니 다행'에 초점이 맞춰지면 인생은 기쁨을 잃지 않게 된다.

 

 인간은 목적을 달성한 이에게 관심을 갖지만, 신은 열심히 노력하는 이의 과저을 소중히 여긴다고 한다. 목적은 결과일 뿐, 목적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목적이 중요할수록 과정에 집중해야 한다. 목적에 몰두하되 집착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목적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그 목적에 다다른다.

- <목적을 버려야 목적에 다다른다> , 페이지 223~225

 

 

  이 책 읽으면서 느낀 건데요. 처음에는 많이 가깝게 다가오지는 않았어요. 특히 잘 알려진 분들, 김수환추기경, 성철스님, 최인호, 정채봉작가, 김용택시인 같은 분들에 대한 이야기는, 제게는 어딘가에서 들을 수는 있겠지만 만날 수는 없을, 조금 먼 이야기였거든요. 하지만 그 이야기를 지나서 가족에 대한 이야기와 소망을 담은 글을 읽다 보면, 저의 예전 기억도 한 번쯤 살아나곤 했어요. 살아온 나이, 시대 다 다른데도,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하는 마음이 드는 글도 만날 수 있었어요. 그러니 어디쯤 부터인지는 모르겠어요. 조금씩 남은 책장이 줄어들 수록, 저도 조금씩 이 책에 마음을 가까워져 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이 되는 '새해의 눈길을 걸으며'를 다 읽고 나서는, 이 책 읽기를 잘 했다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특히 마지막에 소개한 스필버그 감독의 말은 올해 제가 세운 신년 목표와 많이 비슷해서, 이렇게 살면 앞으로는 괜찮은 일생을 살 수 있겠군, 하는 좋은 기분도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생각나면 읽어보려구요. 지금은 들었지만 아직 잘 이해하지 못하는 듯 해요. 그러니 매일이나 자주는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나중에, 내가 그 때 이만큼 힘들었지, 하지만 그 때는 잘 몰랐어도 지금 보면 그 때 괜찮았어, 하는 그런 날이 언젠가는 왔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지금은, 나중에 잘 되면 이만큼 좋을 거야, 그러니... 보다, 지금 이만큼 잘 하고 있으니 괜찮아, 하는 마음으로 지내고 싶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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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도 좋은 하루 만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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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5-03-17 0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에는 이 책의 마지막 이야기를 적고 싶었지만, 그러면 이 책을 읽게될 다른 분들께 읽기전에 결말을 말해버리는 것만 같아서요.^^

하늘바람 2015-03-17 08: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포긋한 하루 되셔요.

서니데이 2015-03-17 08:47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오늘도 날이 기온 높으려나봐요,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하늘바람 2015-03-17 08: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서니데이님두요.
^^♡

해피북 2015-03-17 10: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참 글이라는게 오묘한거 같아요
평소에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글귀로 만나면 더 깊이 다가오는 느낌
또 제맛을 모르다가도 어느날 문득
글 귀의 강렬함이 느껴져 소름돋던날들도 있고 말이죠 ㅎ 서니데이님 오늘 하루도 화이팅 하세요^~^

서니데이 2015-03-18 00:29   좋아요 1 | URL
네, 가끔 그런 느낌 들때 있나봐요.
읽을 때는 잘 모르는데, 다시 손으로 써보면, 느낌이 또 다를 때도 있어요. 때로는 읽으면서 그 순간 `반짝` 하는 때도 있는데, 때로는 한참 더 읽고 나서 라거나, 아니면 시간이 지난 다음에, 아 그 때 그 부분 하면서, 다시 뒤적여 찾는데, 못찾을 때도 있어요.^^;
해피북님, 좋은 하루 되세요.

icaru 2015-03-17 11: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마지막에 소개했다는 스필버그의 말이 너무 궁금하네요~~ ㅎㅎㅎ
서니데이 님 같은 따뜻한 하루~~ 오늘도 보내세요 ^__^

서니데이 2015-03-18 00:32   좋아요 1 | URL
많이 궁금하신가요, icaru님^^;
같은 이야기라도 스필버그 라는 사람이 말했다고 하면, 오! 하고 관심이 달라지더라구요. 음... 미리 말해드리면 약간 아쉬울 것 같은데요.^^
icaru님도 따뜻하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후애(厚愛) 2015-03-17 12: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제 봄날씨에요.^^
즐겁고 행복한 오후되세요~

서니데이 2015-03-18 00:33   좋아요 1 | URL
어제 오늘 날이 많이 따듯하대요.
후애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나현철 2015-03-25 17: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좋아하는 시인인데...

서니데이 2015-03-25 17:34   좋아요 1 | URL
제가 좋아하시는 시인의 책을 골라서 잘 되었네요, 좋은 시가 많다고 들었어요,
이 책은 에세이인데도 시인이 쓰신 거라서 그런지 조금 다른 것 같기도 했습니다, 유리가면님, 좋은하루되세요
 

 

 본능의 계절
바버라 킹솔버 지음, 이재경 옮김 / 비채 / 2014년 7월

 

  지난 여름에 읽었던 책인데, 다시 이 부분이 생각이 나서 책을 열어보았어요. 이 책은 원서가 2000년에 나온 책인데, 읽으면서 외국소설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지금 시기보다 아주 오래 전의 시기를 배경으로 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면이 있었어요. 세 가지 이야기 '포식자들'과 '나방의 사랑' 그리고 '옛날 밤나무' 의 세 이야기가 번갈아 나오는데, '포식자들' 에서는 산속에 혼자 살고 있는 야생동물 전문가로 코요테 추적을 하고, '나방의 사랑' 에서는 결혼과 함께 시골농장에 와서 살게된 곤충학자가 , 그리고 '옛날 밤나무'에서는 이웃에 사는 두 과수원 주인간이 보여주는 갈등이 있습니다. 연관이 없어 보이는 이 이야기들은 조금씩 풀어나가면 여러 부분에서 접점이 있다는 것을 조금씩 보여주다 결국에는 어디에서든지 다들 이어져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 사이에서 나방과 코요테, 그리고 오래전 사라졌다고 말해지는 토종 밤나무와 같은 것들은 다른 책에서 많이 나오지 않는 소재일 수 있는데도 읽다보면 재미있었습니다. 자연 그 자체가 갖는 생명력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었던 책이었습니다.

 

 

10 년 후에는 어떨까? 이건 내가 평생 꿈꿔온 농장생활이 아니야. 손에 잡힌 새는 순식간에 신비감을 잃는 법이다. 지금 그녀는 외국 농촌으로 시집온 우편 주문 신부가 된 기분이었다. 결혼식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녀는 자신이 정든 도시와 좋아하는 직업을 버리고, 농부의 아내를 기다리는 이런 답답한 두메마을로 들어올 결심을 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이렇게 콜과 싸운 지 불과 네 시간 만이었다. 5월 9일 오전 11시, 아래층에서는 빨래건조기가 탈칵대다 윙윙거리기를 반복하고, 루사는 위층 침실 창가에서 책을 읽고 있을 때였다. 이 작은 사건 하나로 그녀의 인생이 바뀌었다. 신혼의 남편이 근육질의 팔을 뻗어 꽃가지를 꺾을 때 물씬 피어오른 강렬한 향기 하나가 그녀의 인생을 되돌려 놓았다. 그동안 그녀가 알고 있던 두 사람 사이의 충만하고 정직한 애착이 다시 돌아왔다. 일순간 루사의 마음에서 말들이 모두 흩어지고 대신 새로운 종류의 감정으로 가득 찼다. 설령 그가 이대로 집에 돌아오지 못한다 해도, 가파른 땅에서 일하는 제불론 카운티 농부들을 위협하는 트랙터 사고로 그의 귀가길이 비극적으로 중단된다 해도, 멀리서 그의 존재를 전해주던 향기만큼은 그녀에게 영원히 남을 거다. 멀리서 문득 풍겨오는 향기가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단순명쾌한 방법으로 콜의 위치를 알려주고 있었다.

 

 루사는 놀란 마음으로 얼어붙은 듯 앉아 있었다. 이것이 바로 나방이 서로에게 말하는 방법이다. 나방은 냄새로 들판을 가로질러 사랑을 전한다. 입이 없으니 빗나간 말은 불가능하다. 다만 짝이 거기 있느나 없느냐, 그리고 둘이 어둠속에서 서로를 찾느냐의 문제만 존재한다.

 

 루사는 손이 책 위에 얹힌 채 꼼짝하지 않았다. 시간이 더 흘렀다. 그동안 그녀는 오직 사랑과 진실만을 전달할 수 있는 언어를 상상했다.

 

 열흘 후 루사의 결혼은 끝을 맞았다. 그 일이 닥쳤을 때 루사는 열흘 전 창가에서 그의 향기를 느꼈던 순간을 떠올리며 그 섬뜩한 선견지명에 몸을 떨었다. (페이지 90~91)

 

 

 위의 부분은 '나방의 사랑' 에서 루사가 갑자기 느꼈던 특별한 경험을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곤충학자이고, 도시에서 자라 갑자기 결혼과 함께 농장에서 살게 된 지금은 모든 것이 낯설게만 느껴지는데, 그날 느꼈던 미묘한 차이를 곤충의 방식으로 묘사합니다. 긴 내용이지만, 한 순간을 묘사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주 이른 시간이었다. 새벽이 아침이 되기 전, 아직은 바람 한 점, 냄새 한 자락 없이 완벽한 새벽이었다. 5월 19일의 아직 아무 때도 아닌 시각. 하지만 앞으로 영원히 되풀이해서 기억될 날짜와 시간이었다. 루사는 열흘 전처럼 위층 창가에 서서 안개가 목초지 가장자리에서 피어올라 산울타리를 따라 산 위로 올라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어떤 고대의 강이 귀신이 돼서 더는 지구중력에 매이지 않은 지류들을 달고 승천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 집에서 콜 없이 혼자 잠이 깨는 아침이면 루사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자유의 느낌이었다. 영혼이 된 것처럼 자유롭고 육체에서 벗어난 느낌이었다. 그녀는 뜰 한 가운데쯤에 시선을 맞웠다. 야행성 곤충들이 어둑한 곳에서 미친듯이 뒤영켜 몸무림치는 게 보였다. 나방들이 밤의 끝 자락에서 짝을 찾는 마지막 광란의 맴돌이를 벌이고 있었다.

 

 옆에 보안관 마크가 찍힌 티미 보이어의 차를 보았을 때 그녀는 순식간에 깨달았다. 콜이 다쳐서 단지 병원에 있는 거라면, 티미는 여기까지 오기 전에 저 아래 로이스나 메리 에드나에게 먼저 소식을 전했을 것이다. 이것은 그런 소식이 아니었다. 당사자의 부인에게 직접 알려야 하는 소식이었다. 루사는 이미 이유도 알고 있었다. 자세한 상황만 모를 뿐이었다. 그리고 그중 일부는 영원히 모를 수도 있다. 시신의 상태 같은 것은 누나와 매형과는 자세히 논의할 수 있지만 막상 미망인에게는 절대로 알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도 알 만큼은 알았다.

 

 기다란 흰색 세단이 진입로를 천천히 올라오는 것을 보면서 루사는 비로서 몸이 차갑게 굳기 시작했다. 차가 어찌나 천천히 움직이는지 타이어 밑으로 자갈 밟히는 소리가 하나씩 차례로 들릴 정도였다. 바로 지금, 여기서부터, 모든 것이 바뀌는 구나.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알고 보면 루사의 결정과 그녀의 남은 생이 바뀐 순간은 콜의 죽음을 알게 된 순간이 아니었다. 그보다 열흘 전, 이 창가에 서서, 콜이 틀판 너머에서 말이 아니라 향기로 보내는 메시지를 받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페이지 92~93)

 

 어떤 순간은 지나고 나서야 '그게 그런 거였구나' 하는 낯선 느낌을 줄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게 그런 의미였어, 라는 것을 알게 되면, 많은 것들이 이미 결말을 정해둘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여기에서 루사는 곤충처럼 향기로 느꼈던 그 날의 이야기를 나중에 이렇게 이해하는 것 같습니다. 이 장면을 읽으면서, 그 때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우리는 이 결말을 알고 있고 그것을 나중에 이렇게 기억했다는 것을 이렇게 표현하지 않았을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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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요일이 맞지만, 아직은 이른 이 시기는 기분상으로는 늦은 일요일 밤이네요.

 편안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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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5-03-16 14: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그럴 때가 있어요.
바뀌는구나, 그게 그런 거였구나.... 평생 남는 어떤 순간.
또는 결말이 지어주는 순간, 다시 생각해도 가슴이 아찔하고 어지럽고 징하게 울리는 순간.

서니데이님, 좋은 글 인용구예요. 요즘 종종
그랬구나 싶은 때를 되새기고 있어서 더욱 와닿았네요.

서니데이 2015-03-16 15:30   좋아요 0 | URL
네, 지나고 나서야 그게 무엇인지 알게 되는, 그 때는 그 낯선 느낌만 있을 때가 있어요. 아마도 이 부분은 그런 순간의 느낌을 정지된 것처럼 그린 것 같았어요. 그리고 이 부분과 함께 읽으면 맞을 부분이 있어요. 그게 이 장면에 대한 답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월요일이에요. 즐거운 한 주 되세요.
 

 전에 읽다가 메모를 해 둔 부분인데, 도무지 찾을 수 없어서 다시 뒤적여보았습니다.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뗄 수 있는가?
강신주 지음 / 동녘 / 2014년 6월

 

 강신주의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뗄 수 있는가?> 라는 책은 <무문관>의 48칙을 원문과 함께 해석을 실었고, 그리고 저자의 설명을 더한 책입니다. <무문관>은 불교경전이라서 낯설지만, 여기 실린 고사는 전에 들어본 것처럼 낯설지 않은 내용도 적지 않습니다.

 

 

 얼마전부터 이부분이 생각나서 며칠 미루다 찾으려고 책을 뒤적였습니다.

 

 

 자, 생각해보세요. 학생은 시험을 보아야 하는 입장입니다.  스승이 원하는 정답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바로 학생이니까요. 반면 우리는 졸업을 했다면 시험을 볼 필요가 없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상좌스님은 충실하게 시험을 치렀고 모범 답안을 내 놓았습니다. 그런데 위산 스님은 시험 자체를 거부합니다. 위산 스님이 물병을 걷어차고 자리를 떠 버린 것은 자신은 더이상 당신의 제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 겁니다. 그러니까 이미 자신은 당신에게 더 배울 것이 없다는 겁니다. 하긴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에게 누군가 초등학교 중간 시험 문제지를 주면 그는 당연히 그 문제지를 박박 찢어 버릴 겁니다. 당연히 찢어야지요. 만일 문제지가 주어졌다고 해서 정답을 찾으려고 고심한다면, 박사 학위를 받은 그 사람은 정말 문제가 있는 사람 아닐까요? 물론 장난으로 문제지를 풀 수도 있지만, 그것은 글자 그대로 진지한 시험이 아니라 장난일 뿐일 겁니다.

 

 시험을 볼 필요가 없다면 이미 졸업을 한 것입니다. 이미 학생이 아닌 것입니다. 이제 백장 문하를 떠나도 된다는 겁니다. 학생이 졸업을 했다면 무엇을 하든지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것 아닐까요. 반대로 모범 답안을 마련한 상좌 스님을 대위산 주인으로 보냈다고 해 보세요. 상좌 스님은 위기 상황에 스스로 대처하지 못하고, 자신이 생각한 것이 모범 답안인지 확인하러 계속 스승 백장을 찾아올 겁니다. 어떻게 이런 사람을 한 사찰의 주지로, 여러 스님들을 주인으로 이끌 스승으로 보낼 수 있겠습니까? 삶의 주인공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스스로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개척해야 합니다. 계속 선생님을 찾거나 부모님을 찾아서 자문을 구하는 사람이 어떻게 자신의 삶을 주인으로 영위할 수 있겠습니까? 위산 스님이 물병을 거침없이 치는 순간은 선종 오가 중 하나인 위앙종이 탄생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백장의 기대대로 위산은 그의 제자 앙산과 함께 하나의 뚜렷한 개성을 가진 종파를 만들기 때문입니다. - 페이지 238~239

 

 이 앞에 나오는, 무문관 원문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위산 회상이 백장 문하에서 공양주[典座]의 일을 맡고 있을 때였다. 백장은 대위산의 주인을 선출하려고 위한에게 수좌와 함께 여러 스님들에게 자신의 경지를 말하도록 했다. "빼어난 사람이 대위산의 주인으로 가는 것이다." 백장은 물병을 들어 바닥에 놓고 말했다. "물병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너희 둘은 무엇이라고 부르겠는가!" 수좌가 먼저 말했다. "나무토막이라고 불러서는 안 됩니다." 백장은 이어 위산에게 물었다. 그러자 위산은 물병을 걷어차 넘어뜨리고 나가 버렸다. "수좌는 위산에게 졌구나!" 라고 웃으면서 마침내 위한을 대위산의 주인으로 임명했다.  

- <무문관> 40칙, '적도정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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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말에 날씨가 좋다고 하는데, 점점 봄에 가까워지는 중일거예요.

 휴식과 재충전의 시간 되셨으면 좋겠어요.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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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5-03-16 14: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ㅠㅠㅠ, 인용해주신 이 글이 말이죠, 제가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뗄 수 있는가˝를 절반 읽고서 처박아 놓은 이유랍니다. 강신주 작가가 상세하게 풀이글을 달아주시긴 하지만, 무문관 원문이 영 선문답같이 사람 위에서 쥐락펴락 하는 것 같은 느낌에, 걷어차 버렸어요. 그런데 제가 시험을 보지 않을 정도로 득도한 사람은 아닌 듯 하고, 성격이 지랄맞나 봐요. 제 친구인 양철나무꾼님이나 많은 분들이 강신주님 책에 열광하는 사실을 본다면 말이죠. 에긍. ^^

서니데이 2015-03-17 00:23   좋아요 1 | URL
저도 실은 이 책 다 이해하지는 못해요. <무문관>이라는 책 자체도 읽으면서 알기쉬운 책이 아니지만, 그 책을 설명하는 강신주 저자의 글 역시 그대로 읽는 것만으로 답이 되는 것 같지도 않았어요. 그 설명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이 책의 의미와 맞지 않을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책에서 나중에 이 부분이 기억에 남아서, 다시 한 번 찾아봤어요. 무문관이 문이 없는 관문이라는 의미라면, 이 부분과 해제가 어느 정도 이 책에서 말하는 의미를 전달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저는 강신주 박사의 저서를 아직 몇 권 읽지 않아서, 다른 분들이 좋아하시는 만큼 잘 알지는 못해요. 좋아하시는 분들은 조금 더 읽고 익숙해진 만큼, 보다 가까이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DYDADDY 2023-03-16 0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남이 정해주는대로 따르지 말고 너 스스로 주인이 되라는 의미로 풀었습니다. 누군가 고액연봉을 받는 대기업에 취업할래 아니면 전문직이 될래 라고 한다면 그 선택을 넘어선 정말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한다 라구요. 자본주의는 우리에게 선택을 강요하지만 스스로의 주인이 된 사람은 그 선택지 중 어떤 것도 선택하지 않겠죠.
심심할 때 어떤 분이 마니아로 등재되셨는지 봤는데 인문학 분야에 서니데이님이 마니아로 있어서 살짝 놀랐습니다. 전에는 이런 책도 읽으셨구나 싶어서요. 그 사이에 어떤 일이 있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음 고생을 많이 하셨나보다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은 힘드신 일이 많이 해결되어 마음이 편해지셨기를 바라요.
 

이웃 서재의 새 글과 댓글을 북플로 자주 읽을 수 있어서 좋습니다. 조금 긴 글을 쓰는데에는 알라딘 기존 서재를 자주 이용합니다만, 댓글을 간단히 쓴다거나, 댓글에 좋아요,를 하는데에는 북플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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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하는 일 없이, 정신없고, 산만하고 조금 피곤한 날이 계속중이에요.

 빨리 삼시세끼나 봤으면 좋겠어요.

 이번주는 더 금방 가는 것 같아요. 에휴

 

 

 

 금요일 저녁입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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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북 2015-03-14 0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시세끼 막방이라 아쉬웠어요 ㅎ 그리고 해산물피자 정말 맛있게 보이더라구요^~^서니데이님두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서니데이 2015-03-14 15:24   좋아요 0 | URL
어제 결국 못봐서 재방송이라도 보려구요, 많이 못봐서 아쉬웠는데, 벌써 끝나네요,^^
해피북님, 편안한 주말 보내세요^^

단발머리 2015-03-14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왕~~ 귀여워라*^^*
이 귀여운 하트들의 정체가 무언가요?
벌써 토요일 아침이예요. 점심인가요? ㅋㅎㅎ
서니데이님, 즐거운 주말되세요^^

서니데이 2015-03-14 15:26   좋아요 0 | URL
저 하트들은 만들어졌지만 아직 무엇이 되지는 않아서 저도 아직 모릅니다^^ 아마 지금 쯤이면 오후 간식이 슬슬 먹고싶어지는 시간일 거예요, 단발머리님, 편안한 주말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