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능의 계절
바버라 킹솔버 지음, 이재경 옮김 / 비채 / 2014년 7월

 

  지난 여름에 읽었던 책인데, 다시 이 부분이 생각이 나서 책을 열어보았어요. 이 책은 원서가 2000년에 나온 책인데, 읽으면서 외국소설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지금 시기보다 아주 오래 전의 시기를 배경으로 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면이 있었어요. 세 가지 이야기 '포식자들'과 '나방의 사랑' 그리고 '옛날 밤나무' 의 세 이야기가 번갈아 나오는데, '포식자들' 에서는 산속에 혼자 살고 있는 야생동물 전문가로 코요테 추적을 하고, '나방의 사랑' 에서는 결혼과 함께 시골농장에 와서 살게된 곤충학자가 , 그리고 '옛날 밤나무'에서는 이웃에 사는 두 과수원 주인간이 보여주는 갈등이 있습니다. 연관이 없어 보이는 이 이야기들은 조금씩 풀어나가면 여러 부분에서 접점이 있다는 것을 조금씩 보여주다 결국에는 어디에서든지 다들 이어져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 사이에서 나방과 코요테, 그리고 오래전 사라졌다고 말해지는 토종 밤나무와 같은 것들은 다른 책에서 많이 나오지 않는 소재일 수 있는데도 읽다보면 재미있었습니다. 자연 그 자체가 갖는 생명력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었던 책이었습니다.

 

 

10 년 후에는 어떨까? 이건 내가 평생 꿈꿔온 농장생활이 아니야. 손에 잡힌 새는 순식간에 신비감을 잃는 법이다. 지금 그녀는 외국 농촌으로 시집온 우편 주문 신부가 된 기분이었다. 결혼식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녀는 자신이 정든 도시와 좋아하는 직업을 버리고, 농부의 아내를 기다리는 이런 답답한 두메마을로 들어올 결심을 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이렇게 콜과 싸운 지 불과 네 시간 만이었다. 5월 9일 오전 11시, 아래층에서는 빨래건조기가 탈칵대다 윙윙거리기를 반복하고, 루사는 위층 침실 창가에서 책을 읽고 있을 때였다. 이 작은 사건 하나로 그녀의 인생이 바뀌었다. 신혼의 남편이 근육질의 팔을 뻗어 꽃가지를 꺾을 때 물씬 피어오른 강렬한 향기 하나가 그녀의 인생을 되돌려 놓았다. 그동안 그녀가 알고 있던 두 사람 사이의 충만하고 정직한 애착이 다시 돌아왔다. 일순간 루사의 마음에서 말들이 모두 흩어지고 대신 새로운 종류의 감정으로 가득 찼다. 설령 그가 이대로 집에 돌아오지 못한다 해도, 가파른 땅에서 일하는 제불론 카운티 농부들을 위협하는 트랙터 사고로 그의 귀가길이 비극적으로 중단된다 해도, 멀리서 그의 존재를 전해주던 향기만큼은 그녀에게 영원히 남을 거다. 멀리서 문득 풍겨오는 향기가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단순명쾌한 방법으로 콜의 위치를 알려주고 있었다.

 

 루사는 놀란 마음으로 얼어붙은 듯 앉아 있었다. 이것이 바로 나방이 서로에게 말하는 방법이다. 나방은 냄새로 들판을 가로질러 사랑을 전한다. 입이 없으니 빗나간 말은 불가능하다. 다만 짝이 거기 있느나 없느냐, 그리고 둘이 어둠속에서 서로를 찾느냐의 문제만 존재한다.

 

 루사는 손이 책 위에 얹힌 채 꼼짝하지 않았다. 시간이 더 흘렀다. 그동안 그녀는 오직 사랑과 진실만을 전달할 수 있는 언어를 상상했다.

 

 열흘 후 루사의 결혼은 끝을 맞았다. 그 일이 닥쳤을 때 루사는 열흘 전 창가에서 그의 향기를 느꼈던 순간을 떠올리며 그 섬뜩한 선견지명에 몸을 떨었다. (페이지 90~91)

 

 

 위의 부분은 '나방의 사랑' 에서 루사가 갑자기 느꼈던 특별한 경험을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곤충학자이고, 도시에서 자라 갑자기 결혼과 함께 농장에서 살게 된 지금은 모든 것이 낯설게만 느껴지는데, 그날 느꼈던 미묘한 차이를 곤충의 방식으로 묘사합니다. 긴 내용이지만, 한 순간을 묘사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주 이른 시간이었다. 새벽이 아침이 되기 전, 아직은 바람 한 점, 냄새 한 자락 없이 완벽한 새벽이었다. 5월 19일의 아직 아무 때도 아닌 시각. 하지만 앞으로 영원히 되풀이해서 기억될 날짜와 시간이었다. 루사는 열흘 전처럼 위층 창가에 서서 안개가 목초지 가장자리에서 피어올라 산울타리를 따라 산 위로 올라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어떤 고대의 강이 귀신이 돼서 더는 지구중력에 매이지 않은 지류들을 달고 승천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 집에서 콜 없이 혼자 잠이 깨는 아침이면 루사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자유의 느낌이었다. 영혼이 된 것처럼 자유롭고 육체에서 벗어난 느낌이었다. 그녀는 뜰 한 가운데쯤에 시선을 맞웠다. 야행성 곤충들이 어둑한 곳에서 미친듯이 뒤영켜 몸무림치는 게 보였다. 나방들이 밤의 끝 자락에서 짝을 찾는 마지막 광란의 맴돌이를 벌이고 있었다.

 

 옆에 보안관 마크가 찍힌 티미 보이어의 차를 보았을 때 그녀는 순식간에 깨달았다. 콜이 다쳐서 단지 병원에 있는 거라면, 티미는 여기까지 오기 전에 저 아래 로이스나 메리 에드나에게 먼저 소식을 전했을 것이다. 이것은 그런 소식이 아니었다. 당사자의 부인에게 직접 알려야 하는 소식이었다. 루사는 이미 이유도 알고 있었다. 자세한 상황만 모를 뿐이었다. 그리고 그중 일부는 영원히 모를 수도 있다. 시신의 상태 같은 것은 누나와 매형과는 자세히 논의할 수 있지만 막상 미망인에게는 절대로 알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도 알 만큼은 알았다.

 

 기다란 흰색 세단이 진입로를 천천히 올라오는 것을 보면서 루사는 비로서 몸이 차갑게 굳기 시작했다. 차가 어찌나 천천히 움직이는지 타이어 밑으로 자갈 밟히는 소리가 하나씩 차례로 들릴 정도였다. 바로 지금, 여기서부터, 모든 것이 바뀌는 구나.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알고 보면 루사의 결정과 그녀의 남은 생이 바뀐 순간은 콜의 죽음을 알게 된 순간이 아니었다. 그보다 열흘 전, 이 창가에 서서, 콜이 틀판 너머에서 말이 아니라 향기로 보내는 메시지를 받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페이지 92~93)

 

 어떤 순간은 지나고 나서야 '그게 그런 거였구나' 하는 낯선 느낌을 줄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게 그런 의미였어, 라는 것을 알게 되면, 많은 것들이 이미 결말을 정해둘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여기에서 루사는 곤충처럼 향기로 느꼈던 그 날의 이야기를 나중에 이렇게 이해하는 것 같습니다. 이 장면을 읽으면서, 그 때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우리는 이 결말을 알고 있고 그것을 나중에 이렇게 기억했다는 것을 이렇게 표현하지 않았을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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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요일이 맞지만, 아직은 이른 이 시기는 기분상으로는 늦은 일요일 밤이네요.

 편안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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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5-03-16 14: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그럴 때가 있어요.
바뀌는구나, 그게 그런 거였구나.... 평생 남는 어떤 순간.
또는 결말이 지어주는 순간, 다시 생각해도 가슴이 아찔하고 어지럽고 징하게 울리는 순간.

서니데이님, 좋은 글 인용구예요. 요즘 종종
그랬구나 싶은 때를 되새기고 있어서 더욱 와닿았네요.

서니데이 2015-03-16 15:30   좋아요 0 | URL
네, 지나고 나서야 그게 무엇인지 알게 되는, 그 때는 그 낯선 느낌만 있을 때가 있어요. 아마도 이 부분은 그런 순간의 느낌을 정지된 것처럼 그린 것 같았어요. 그리고 이 부분과 함께 읽으면 맞을 부분이 있어요. 그게 이 장면에 대한 답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월요일이에요. 즐거운 한 주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