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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 한국 사회의 위선을 향해 씹고, 뱉고, 쏘다!
한홍구.서해성.고경태 지음 / 한겨레출판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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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에 <직설>이 생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는 신문 오리기를 중단했다. 분명 책으로 묶여 나올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생각대로 당연히, 기어코, <직설>은 책이 되어 세상에 나왔다. 그런데 이제는 다른 걱정이 생겼다 ㅡ 판금 당할까 봐이다. 이런 걱정 자체가 걱정인 건가? 한겨레도 이젠 그렇고 그렇다는 비판(혹은 비난)이 극에 달해 있을 때 생긴 꼭지라서 그런지 처음부터 굉장히 관심이 많이 갔던 게 사실이고 또 흥미롭게 읽었었다. 물론 초반엔 '놈현 관 장사'로 한 대 얻어맞긴 했지만 일단 이만큼이라도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고 본다. 그리고 지금 나는 벌써부터 <직설> 이후를 기대한다. 한겨레 <직설> 차기 버전이 나온다면 <세치 혀>가 좋겠다. 어디서 세치 혀를 놀리느냐, 할 때 그 세치 혀. 그러면서 자꾸 세치 혀 놀리지 말라고 말 못하게 하는 꼴*들에게 발기된 페니스처럼 그 혀로 찌르는 거다 ㅡ 그 때도 책으로 나온다면 판금만 당하지 말기를. 어쨌든 고상한 척하지 않고 저잣거리 말로 풀어냈기에 직설이 완성될 수 있었고 진행될 수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직설>이라 할 수 없겠지. 목 뻣뻣한 계몽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깨에 잔뜩 힘을 준 헤게모니의 당사자들도 아니니. 뭔가 업그레이드된 난장판과도 같다. 어쩌면 『호모 레지스탕스』(해피스토리, 2011)의 구어체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걸 어떻게 리뷰란 형식을 빌려 말로 표현한단 말인가. 그 <곧은 혀>에 찔리지 않도록 조심할밖에. 기득권에 반항한다고 해서 모든 게 곧다고는 할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처럼 <그물 국가>이기에 이것은 충분히 곧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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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은 거짓말쟁이]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모든 사람은 거짓말쟁이
알베르토 망구엘 지음, 조명애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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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끝까지, 거짓말, 또 거짓말, 혹은 어쩌면 진실. 간단한 작품의 정보를 알았을 때는 누쿠이 도쿠로의 『우행록』과 비슷한 방식인 건가, 하는 생각도 했다. 물론 비슷하다. 그러나 누쿠이 도쿠로가 퍼즐을 맞추듯 하나의 구심점을 향해 돌진했다고 하면, 알베르토 망구엘의 작품은 어느 쪽도 아니다. 진실을 밝혀내는 게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모든 사람은 거짓말쟁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세상)이 지니는 필연적이고도 치명적인 절대성의 결핍이라고 본다. 그래서 독자는 진실에도 도달할 수 없으며 거짓에도 다가설 수 없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구분할 수 없는 까닭이다.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했다고 해서 거짓말쟁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듯이, 반대로 진실을 말했다고 해서 그 이후의 모든 것들이 다 진실일 수는 없다. 알베르토 망구엘은 그 평행선의 사이에 서 있다. 「아무리 증언들을 재편성해보고, 그것들을 다듬거나 뒤적여보아도, 다른 것들과 잘 맞지 않는 하나가, 정확한 버전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에 대해 넘치거나 모자라는 하나가 항상 있다.」(p.341) 그래서 『모든 사람은 거짓말쟁이』는 이 문장 하나로 압축될 수 있다. 

 

때때로 애매모호하거나 잘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는 것은, 분명 한 번 더 읽어 봐야 한다는 뜻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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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신화 펭귄클래식 14
김시습 지음, 김경미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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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금오신화』를 소설사의 첫 장을 연 것과 동시에 또한 비극 소설이라고 본다. 패배를 경험하고 불만을 지닌 작가의 작품을 통해 새로운 카타르시스를 맛볼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그 카타르시스는 각각의 주인공인 인간과 귀신이라는 존재를 통해 정서적 ․ 정신적으로나마 현실 타개를 꾀하려 했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일련의 이야기들은 범부이면서도 재야인사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의 것이지만 그들이 처한 상황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고, 주인공들은 모두 각기 재주가 있으며 아름답긴 하지만 결국 자신의 욕망을 이룬 다음에는 또 다시 홀로 된다는 점에서도 내가『금오신화』를 비극 소설이라 바라보는 시각에 부합한다. 그렇다면 김시습의 현실에의 불만의 표출이 집약된, 그리고 희비극이 뒤섞여 잘 짜인 시트콤이라 봐도 무방할는지 모르겠다. 이를테면『금오신화』의 다섯 인물들은 결말에 가서도 무엇 하나 손에 쥐고 있는 게 없는 까닭이다. 주인공이 남은 생을 어떻게 살다 떠났는지 알지 못한다든가 아니면 아예 죽음으로써 이야기가 끝나고 만다. 그러니까 그들의 욕망이 이루어지는 순간은 귀신이라는 존재를 만나고부터 시작되는 환상에 불과하다. 그 환상이 끝나고 현실로 돌아오면 어김없이 남은 구체적 산물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기껏해야 정신적 위안뿐인 거다 ― 피그말리온의 조각에 대한 사랑에 감동한 비너스가 그에게 선물을 준 것처럼 말이다. 

 

조너선 컬러는 자신의 책 『문학이론』에서 프로이트를 인용하며 동일시를 설명한다. 프로이트에게 동일시는 주체가 타자의 측면을 동화시키고, 그런 타자가 제공하는 모델에 따라 자신을 전적으로 혹은 부분적으로 변형시키는 심리적인 과정이고, 개성이나 자아는 일련의 동일시에 의해 구성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동일시와 떨어질 수 없는 ‘욕망’을 미켈 보쉬 제이콥슨의 말로 대신하고 있다. 「욕망(욕망하는 주체)은 욕망의 충족을 허용하는 동일시가 뒤따라오도록 하기 위해 먼저 오지 않는다. 먼저 오는 것은 동일시를 지향하는 경향이다. 즉 욕망을 야기하는 원초적인 경향이다……. 동일시가 욕망하는 주체를 생성시키는 것이지, 그 반대 방향으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김시습의 동일시와 욕망이, 환상으로 펼쳐지는 것이다. 

 

『금오신화』를 다시 보자. 이것은 현실과 비현실이 포개지는 순간에 탄생한 일종의 흥미로운 한 편의 연극과도 같다(어차피 소설이란 가상의 산물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지 않던가). 왜냐하면 비현실에서의 성공, 즉 현실에서 바라는 것을 작품 안의 비현실에서조차 달성하지 못한다면 이러한 가상의 비현실은 쓸모가 없어지는 것이다. 여기서『금오신화』의 특징 아닌 특징은, 독자는 김시습의 집필 의도를 꿰뚫기 위해 (적어도)안간힘을 쓸 필요가 없다는 것. 이것은 텍스트라는 것이 내포된 독자를 만나 다양한 작품으로 변할 가능성의 여지가 비교적 적다고도 볼 수 있는데, 그도 그럴 것이 김시습의 실제 삶에 대한 사전정보가 있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다만『금오신화』가 아름답고 소망하던 비현실을 끝내고 결국 현실로 돌아오긴 하지만 여기에 체념 같은 것은 보이지 않는다. 어떤 의지랄까, 인간의 의지와 인간성이란 것을 부정하고 있지 않음과 동시에 문제의식 ― 작가가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필요는 없지만 최소한의 지녀야 할 ‘문제제기’에 대한 인식 ― 이 돋보인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 아무리 생각해봐도 우매한 내 머리로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 주인공들의 이름은 각각 양생, 이생, 홍생, 박생, 한생이다. 어째서 죄다 ‘-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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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 제국의 몰락 - 70년간 세계경제를 지배한 달러의 탄생과 추락
배리 아이켄그린 지음, 김태훈 옮김 / 북하이브(타임북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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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R&B 가수 알 켈리(R. Kelly)의 노래 중에 「Money Makes The World Go Round」라는 게 있다. 말 그대로 돈이 세상을 움직인다는 말이다. 그리고 가사에는 이런 말이 등장한다. <almighty dollar>. 그렇다면 달러가 과연 전지전능한 능력을 가졌을까? 『달러 제국의 몰락』은 비단 달러의 탄생과 미래에 관해서만이 아니라 세계의 돈의 흐름을 읽게 해준다는 점에서 거시적이면서도 가시적이다.


내가 달러에 대해 알고 있는 건 미국보다 미국 밖에서 더 많이 쓰인다는 것밖엔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피상적인 생각일 뿐이었고, 무려 100달러짜리 지폐의 4분의 3 이상이 미국 밖에서 통용되고 있다는 점과 세계적으로 달러를 이용하는 외환거래의 비중이 85%에 달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대체 왜 달러라는 것이 우리의 (거의)유일한 선물일까 하는 의문에 봉착했다. 단순히 미국이 세계 패권을 쥐고 있어서?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미국의 국채시장은 세계 최고의 금융시장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달러를 대신할 만한 통화가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의 원제는 『Exorbitant Privilege(과도한 특권)』다. 바로 프랑스 전 대통령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의 미국을 겨냥한 말이다. 달러가 국제통화가 됨에 따라 미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들은 달러를 얻기 위해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재화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기 때문이다. 『달러 제국의 몰락』을 관통하는 것은 바로 이 <과도한 특권>이다 ㅡ 한 가지 덧붙이자면 <달러에게 이런 특권의 자격이 있는가> 하는 것.


내용을 일일이 말하자면 끝도 없을 것이므로 간단히 몇 자만 적어본다. 내가 가장 관심 있게 지켜보는 점은 과연 미래의 통화가 달러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신흥국들이 다른 통화로 돈을 빌리면서 겪는 <환율 변동 공포증>은 과연 사라질까 하는 것 말이다. 그러려면 먼저 미국 역시 다른 통화로 돈을 빌려야 하는 상황이 나타나야 한다(금융위기시 다른 나라들의 도움에 의존해야 한다거나). 그렇다면 <다른 나라가 미국의 운명을 좌우하게 될 수 있을까?>(p.284) 나는 모르겠다. 정말 달러가 몰락할는지 말이다. 달러가 어떻게 탄생했고 어떻게 국제금융을 지배(!)하게 되었는가 하는 것만으로도 눈을 뗄 수 없었기에 감히 국제통화의 미래에 대해 그저 추측만 해 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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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 또는 유년의 기억 펭귄클래식 110
조르주 페렉 지음, 이재룡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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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 작가 로베르토 볼라뇨는 「음경이 발기했을 때 길이가 적어도 30센티미터는 되는 사람들이 자기 얘기를 쓰는 한, 나는 자서전에 대해서는 어떤 반감도 갖지 않는다.」라고 했다. 그럼 조르주 페렉은? 

  ② 유년기에 대한 기억이 없지만 차례차례 하나씩 끄집어내는 페렉의 서술에, 우리는 거기에 조금은 낯설게 빠져든다. 그러므로 얼마간은 의심해보지 않을 수 없다. 

  ③ W에는 승패는 필요 없고 운이라는 요행이 난무하지만 실은 그것보다 곪아터진 상처만이 더쳐갈 뿐이다. 

  ④ 유년의 기억이 과연 W와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인지를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⑤ 작가가 처음 연재할 때 ‘꿈’이 가득한 소설이라고는 했지만 대체 W에 꿈이 어디 있단 말인가? 

  ⑥ 볼라뇨의 말대로 페렉이 30센티미터의 발기된 음경을 소유했건 그렇지 않건, 그의 ‘유년의 기억’은 말소된 것임에 틀림없다. 

  ⑦ 결국 W는 꿈이 존재하지 않는 디스토피아이며, 페렉 ‘개인의 W’가 아닌 ‘모두의 W(orld)’로 봐야 할 여지가 충분해 보인다. 

  ⑧ 자서전임에도 불구하고 존재하는 수많은 각주를 보라, 과연 진실일까? 

  ⑨ 아우슈비츠에서 왼쪽 팔뚝에 ‘174517’이라는 번호를 노예문신처럼 새겨야 했던 프리모 레비가 간명하고 담담하다면, 역시 같은 곳에서 어머니를 잃은 페렉은 우아하고 기괴한 ‘낯설게 하기’를 꾀함으로써 그 실타래를 촘촘히 엮는다. 

  ⑩ ⅩⅩⅦ에서 페렉은 여자아이를 벽장에 가두고서(발단이야 어쨌든) 고백하기를 거부하지만 결국 벌에 쏘이는 벌을 받는다. ‘하느님이 벌을 내린 것이다.’(p.151) 그런데 과연 누구에게? 

  ⑪ W에서는 누구나 집단으로 양육되고 자기가 나중에 살게 될 세상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모른다. 

  ⑫ 마지막의 ⅩⅩⅩⅦ는 W와 유년이 접점(이라고 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지만)을 이루지만, 거기에 해결이란 것은 없다. 

  ⑬ 페렉이 창조한 W는, 그러므로 현대 회화의 과제 ㅡ 비가시적인 것을 가시화한다 ㅡ 를 마치 마그리트처럼 ‘닮음을 통해 닮음을 파괴하는’ 형식을 취해 붕괴시키고 있다. 

  ⑭ 예컨대 ‘자서전을 창조’한다는 형태는 W를 파괴하고 딛고 일어서려는 것처럼 보인다. 

  ⑮ 자신이 아닌 자신으로 살아야 하는 W,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사는 인물, 집요하게 나열되는 그곳의 규칙. 이로써 뭐가 더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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