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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빌스 스타 ㅣ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5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5년 4월
평점 :
[스포일러 있음]
한껏 재며 고독한 척은 혼자 다 하는 해리. 알코올뿐 아니라 범죄 자체에도 중독된 해리. 그래도 끝내 소위 '오슬로 3부작'이라는 미니시리즈의 마지막 능선을 넘으며 두 개의 범죄가 마무리된다. 하나는 『데빌스 스타』만의, 또 하나는 『레드브레스트』와 『네메시스』를 이어 비로소 완결되는 내부 속의 내부의 문제. 여기서 해리가 가부좌를 겯고 앉아 보이지 않는 누군가로부터 계시라도 받으려는 듯 틀어놓은 듀크 엘링턴의 음악이 재미있다. 설명대로 영화 《컨버세이션》에서 진 해크먼이 야간 버스에 앉아있는 장면에서 흐르던 음악 말이다. 영화의 주인공은 인파가 넘치는 공원에서 특정 인물들의 대화를 엿듣는데 『데빌스 스타』에서도 많은 사람이 모이는 공원이라는 장소가 심심찮게 무대로 활용되고 있고, 심지어 소설과 영화의 주인공 이름 역시 모두 '해리'로 같기 때문이다ㅡ 그리고 양쪽 다 공원이라는 개방된 공간 속에 숨겨진 은밀한 작업이 부각된다, 영화 속 해리는 버스에 앉아 타인들과 격리된 고독을 느끼며 소설 속 해리 또한 마찬가지로 여름의 땀 속에서 자신을 황폐화시킨다. (허황한 개똥철학은 여기까지만) 그런데 실은 『데빌스 스타』의 본줄기는 아주 단순하다. 전작들에 비해 정치적이거나 심각한 정립의 문제 따위는 없고, 잘 만들어진 할리우드 영화처럼 시원시원하다ㅡ 그저 연쇄 살인범을 찾아내기만 하면 되므로. 이런 단순한 구조(構造)를 구조(救助)하기 위한 방편은 전작들에서 이어져 또 다른 비중으로 간섭하는 사건일 텐데, 바로 <해리 홀레 vs 톰 볼레르> 요소이다ㅡ 연쇄 살인범과 톰을 비교하면 어느 쪽도 결코 가볍지 않은 무게감이 있다. 물론 이쪽도 고전적 클리셰 냄새가 짙게 나지만 그 클리셰를 상쇄하기 위한 클리셰가 들어있기도 하다. 시종일관 톰은 해리로부터 사정 대상 1호라는 분위기를 자아내 독자는 어떻게든 그 빌어먹을 작자가 법의 심판대 앞에 서기를 바란다. 아니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어버리거나. 그런데 희한한 건 요리조리 빠져나가던 톰이 마지막에 가서는 악당스럽지 않은 모습을 보인다는 거다. 어찌 보면 괴물을 쫓다 스스로 괴물이 되어가는 해리(정말 그럴까?)와는 달리 이자는 진정한 악당은 되지 못할 팔자인 것만 같다. 비유가 다소 꼭 맞아떨어지지는 않지만 김기덕의 《악어》에서 이와 비슷한 느낌의 장면이 나온다. 영화 속 용패라는 인물은 물속에서 여인과 자신의 손에 수갑을 한쪽씩 차고 있고(그는 죽으려 한다), 시간이 잠시 흘러 죽음(익사)의 고통을 참지 못한 그는 수갑을 끊기 위해 발버둥 치지만 결국 그대로 죽고 만다. 추잡한 죽음이다. 이처럼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만 같던 톰 역시 끝에 가서는 어린아이처럼 흐느끼고 마는데, 이로써 배트맨과 한 쌍인 조커와 같이 일관된 믿음과 자아 드러내기를 거리끼지 않는 인물은 톰 쪽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직업처럼 예술적으로 죽음을 선택한 연쇄 살인범일지도 모른다는 가정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데빌스 스타』는 이 단일 소설만의 이야기, 동료의 죽음에 있어 비로소 끝장을 보는 해리의 이야기, 해리 자신의 정신적 부침(浮沈)의 이야기, 이 세 가지 줄기로 갈라지는데, 어딘지 모르게 앞의 소설들을 다소 힘겹게 읽었던 터라 굉장히 깔끔하고 단출하게도 느껴진다. 굳이 사족을 달자면 과연 시버첸 부인의 하숙인의 등장이 꼭 필요했을까 하는 의문점이 든다는 것과, 진심을 담아 고백하건대 시리즈의 주인공 해리보다 택시기사 외위스테인 쪽이 더 좋아지기 시작했다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