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세공
고바야시 야스미 지음, 김은모 옮김 / 시공사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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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감 수리공>, <앨리스 죽이기>, <육식저택> 등의 작가 고바야시 야스미의 국내 초역작 <인수세공> 사전 서평단으로 교정지를 받아 읽었다.

(수록작 속 주요 아이템이라는 십자가도 받았는데— 호러, 그로테스크, 이야미스의 대가답게 부러진 십자가가 불길하기 그지없다…)

표제작 '인수세공(人獸細工)'과 '흡혈귀 사냥' 총 2편이 실린 가제본. 곧 있을 추석 연휴가 끝나자마자 정식 출간 예정이라고 한다. 다 읽어보니 딱 고바야시 야스미스럽다고 해야 할까… 꺼림칙함 99%에 유머 한 스푼을 넣은 느낌이랄까….

누구나 읽으면 테세우스의 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인수세공'은 고바야시 야스미라서 이런 글도 쓸 수 있다, 라는 기분이 물씬 드는 수록작으로, 인간의 장기를 돼지의 그것으로 하나씩 교체하는 스토리인데— 여기서 끝나면 고바야시 야스미가 아니겠지. 마지막 한 방이 더 있다.

두 번째 수록작 '흡혈귀 사냥'에는 여름방학 시골 오두막이 등장. 제목대로 어린아이가 흡혈귀를 죽이는 내용인데, 하지만 그게 정말 사람이 아닌 흡혈귀였을까 하고 의심을 품는 순간 이야기가 통째로 전복되어 버린다. 여기서 다시 유머러스함과 끔찍함의 양가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게 포인트.

스포일러 탓에 더 깊이 언급할 수 없어 아쉽지만 짤막한 단편들 속에서 오랜만에 출간되는 작가의 스타일을 다시금 접하게 돼 반가움이 크다. <인수세공>에는 '책'이라는 제목의 단편이 하나 더 실려있는데 이건 정식 출간 후에나 읽어볼 수 있겠다. 모쪼록 기대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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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판박이
아베 코보 지음, 곽형덕 옮김 / 현대문학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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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아베 코보 <인간 판박이>(현대문학, 2026)

"내가 걱정하는 것은 미지에 도전해 그것에 이름을 붙이는 쪽이었을 SF가 거꾸로 이름 붙여지는 쪽으로 돌아선 것이 아닌가 하는 (...) 탐험가에게만 갖춰져 있었을 그 정의하기 어려운 매력이 왠지 서커스의 사자처럼 돼버린 게 아닌가 하는 것이다."

(아베 코보)



아베 코보 하면 흔히 '가설(仮説)의 문학'이란 표현이 늘 따라다니는데— 비록 거짓의 논리라도 그 거짓만의 재미를 극한까지 파고들 것— SF보다 소위 '근대문학'이 더 특수한 것이 아닌가, SF적 발상은 그리스 이래의, 문학의 원류라고도 할 수 있다— 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모래의 여자>에서는 남의 사적 공간에 들어가고, <인간 판박이>에선 자신의 집에 이상한 남자를 들이고. 일단 비일상적 상황과 대상을 조우하면서, 동시에 '판박이'라는 것부터가 '인간이다'와 '인간은 아니지만 그와 비슷하다'를 가름하는 표현인 만큼 부조리한 코미디가 예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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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보통의 인간이 아닙니다. 화성인입니다 (...) 아무래도 지구는 화성보다 꽤 인력이 세서 우리 화성인은 바로 피곤해지니까요. 방에 가서 이야기해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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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코보의 작품을 읽다 보면 선견지명이라 해야 할까, 뭐 그런 부분들이 종종 눈에 띈다. 전화를 이용한 것도 영화 <매트릭스>에서 처음 보고 재미있는 아이디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인간 판박이>를 읽으면서 깜짝 놀랐다(지금으로부터 50년도 더 된 작품임).

사변소설이라든가 6, 70년대의 뉴웨이브를 들먹일 필요도 없이 아베 코보의 작품들— 특히 이 <인간 판박이>는 그 어느 시대에 올려 놓는다 한들 독자가 이리저리 내둘릴 수밖에 없는, 그러면서 묘하게 설득되면서도 딱히 SF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 것이 특징.

작품에서 토폴로지, 위상수학 이러쿵저러쿵하고 있지만 단순히 말해 전혀 다른 것들이 같은 성질, 같은 개념, 그러니까 결국 동일해진다는 것— 도넛과 손잡이 달린 컵은 동일한 것이다, 라는 논리를 통해 '우화(寓話) = 실화(實話)', '지구인 = 화성인', 고로 '인간 = 인간'이라는 걸 말하고 있다.

어느 날 자신이 화성인이라 주장하는 사람이 집으로 들이닥쳐 그의 말을 주의 깊게 듣던 화자가 점차 기묘한 논리에 설득당하고 만다는 것이 얼개인데, 이 길고 긴 대화가 그야말로 압권이다. 작품 전체가 시종일관 이 둘의 대화로만 이루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어서 머리가 띵할 정도.

결국 작가가 말한 가설, 이것으로 인해 일상성과 비일상성이 양립하고 겹쳐지게 되며 종국에는 동일한 것이 되어서 증명 따위는 필요 없어져 버린다. 부등호가 등호로, 이윽고 등호조차 없어지고 마는 것인데, 책을 읽어보면 위에서 언급한 이 부조리의 코미디가 처음부터 끝까지 빛을 발한다.

난해하면서도 뚜렷하고 SF적이면서도 그렇지 않은— <인간 판박이>가 지향하는, 그리고 아베 코보가 줄곧 표명했던 문학관과 인간관을 가벼운 필치로 그려냈지만 내용만큼은 가벼이 보아 넘길 수 없는 이 기이한 작품을 다 읽고 나니 후련하기가 그지없다. 모쪼록 일독을 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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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고쿠 - 망자의 터
기타자와 도 지음, 전선영 옮김 / 반타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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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미조 세이시 미스터리 & 호러 대상에서 최초로 만장일치, 3관왕을 달성한 호러 미스터리 작품… 이지만, 취향이란 독자마다 다를 것이므로 7할의 기대와 3할의 염려를 지닌 채 읽기 시작.

이야기는 상처(喪妻)한 주인공이 아내의 혼을 불러내기 위해 무녀를 찾아가는 것으로 시작되는데, 초반을 읽으며 소름이 쫙 끼쳐서 호러에 중점을 둔 작품인가 했지만 중후반에 들어서면서부터 슬그머니 미스터리로 전환된다.

대신 그만큼 호러의 느낌이 살짝 줄어들긴 함. 때문에 앞으로는 감각의 묘사보다 스토리 자체로 밀어붙여야 할 텐데 그 점이 관건이 되겠다.

그런 과정에서 망자의 혼을 먹어 치우는 괴이, 이물의 존재가 등장하고,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주인공과 괴이가 합심해(?) 아내의 혼령에 관련한 미스터리에 다가간다. 생각지도 못한 존재와 탐정/조수 혹은 버디의 스토리가 되어버림. 아, 이 아이디어는 무척 좋다고 느꼈다.

호러에서 미스터리로, 호러/미스터리의 혼재로 바뀌어가는 흐름이 매끄럽고 결말 또한 산뜻하다. 말미 약간의 신파도 있으나 억지스럽지 않아서 괜찮았음. 이 정도라면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국내 번역이 요원하지만은 않을 것 같아서 그 부분도 기대가 되고, 아무튼 이래저래 만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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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겁관 초연속 살인 사건 - 마녀는 X와 죽기로 했다
미나미 아소부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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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택과 밀실. 전형적인 클로즈드 서클인가. 아니다. 현대 미스터리에서 곧잘 사용되곤 하는 특수설정이 더해진다. 이른바 [저택×밀실×타임루프]의 교차와 믹스.

흔히 인물 이름의 국적에 따라 독자는 작품의 무대 등 전체 상(像)을 무의식적으로 한정하게 되는 경향이 있는데 <영겁관 초연속 살인 사건>은 일본 작품임에도 등장인물의 이름이 모두 서양식이다. 게다가 밀실, 평면도까지 있으니 존 딕슨 카의 소설을 읽는 것 같기도.

이 작품엔 '사망하면 발동하는 저주'에 걸린 마녀가 등장하는데, 사망 시점으로부터 하루 전으로 타임슬립을 한다는 것(회귀)… 범인을 찾기 위해 타임슬립을 하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을 데려가는 등(동반) 소위 특수설정이 있다.

니시자와 야스히코의 <일곱 번 죽은 남자>가 이 계열에서는 고전 중의 고전이라 불리고 있는데 이후 시라이 도모유키의 <엘리펀트 헤드>와 이 <영겁관 초연속 살인 사건>이 그 뒤를 잇지 않을까 짐짓 생각해 본다. (제목의 '초'연속이란 문구는 그야말로 끔찍한 희비극을 표현하기에 안성맞춤인 것)

주인공의 과거에 대한 설득력만 좀 더 갖춰졌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과 함께, "살인을 완성하기 위해 트릭을 사용하는가 vs. 트릭을 구축하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가"의 기묘한 맥놀이가 아름답게 전해지는 작품이라고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을 정도.

개인적으로 앞서 언급한 <엘리펀트 헤드> 이후로 오랜만에 접한 '끔찍하면서도(그렇기 때문에야말로) 아름다운 결말'을 보여준 작품이었다.


※ 본 도서는 출판사 '블루홀식스'에서 제공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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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리가 살인사건
아시베 다쿠 지음, 구수영 옮김 / 더블샷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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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회 일본 추리작가협회상과 제22회 본격미스터리 대상 동시 수상작.

(아시베 다쿠가 담당 편집자와 함께 일본 추리작가협회상 사무국으로부터의 결과 발표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문득 "교고쿠(京極)입니다. 결정됐습니다."라는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작가가 인터뷰에서도 밝혔듯 이 작품은 독자의 지루함에 대응해 시작부터 사건이 일어나는 타입과 달리 무대가 되는 지역의 풍속이나 그곳 사람들의 소소한 군상극이 초반에 제시되는데, 이게 전혀 지루하지가 않다. 그런 과정 속에서 인물끼리의 관계도도 머릿속에 차근차근 들어오고.

그리고 슬슬 희생자가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하면서 드디어 탐정이 등장하고— 다소 얼빠진 듯한 언행으로 점철된 이 탐정의 면모를 요모조모 뜯어보면 자연히 누군가가 떠오르게 된다. 그런데 그 '누군가'가 한 명이 아니라 두 명 이상의 모습을 버무려놓은 것 같다. (읽으면서 추리해 보시길)

동시에 이 시점부터 동서양 미스터리 클래식의 오마주가 펼쳐지는데, 반 다인의 <카나리아 살인사건>, 요코미조 세이시의 <이누가미 일족>, 우치다 야스오의 '아사미 미쓰히코' 시리즈, 교고쿠 나쓰히코의 '백귀야행' 시리즈 등 곳곳에 직간접적으로 흩뿌려져 있다. (분명 찾는 재미가 있을 것)

아무튼 <오마리가 살인사건>은 읽는 재미가 쏠쏠한, 그리고 클래식한 면모를 갖춘 작품. 사건이 일어나는 무대의 제한성이랄지 가문에 얽힌 비밀이라든지 하는 요소 때문에라도 더욱 그렇다. 요코미조 세이시나 미쓰다 신조의 작품들에서 맛볼 수 있는 그런 느낌이랄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탐정의 구현. 안락의자 탐정으로 전환되는 방식이 얼마간 급작스럽기도 하고,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캐릭터의 연장성 면에서도 한국 독자들에겐 설득력이 살짝 떨어진다. 그런 측면에서 아시베 다쿠의 작품들이 국내에 더 소개된다면 좋겠다.

'클래식'이란 단어를 앞서 사용했지만 이 작품의 매력은 역시나 폐쇄성— 작가의 표현대로라면 '저택 미스터리', '일가 일족 미스터리'를 다룬다는 것일 텐데, 무척 고전적인 스타일이고 거기에 특정 도시의 공간적 색채와 당시의 생활 구조 등이 잘 드러나 있다. (원서 표지에 상인과 사환이 그려져 있다)

<오마리가 살인사건>은 후계자의 실종, 목 매고 죽은 당주, 술통에서 발견된 거꾸로 된 시체(<이누가미 일족>과 <통>이 생각남) 등등 재미있는 요소가 가득하다. 무엇보다 소위 '가문에 얽힌 미스터리'는 근래에 좀 뜸해진 것 같은데 이 소재가 가져다주는 재미를 다시금 느끼게 됐다.


※ 본 도서는 출판사 '더블샷'에서 제공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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