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듭의 끝
정해연 지음 / 현대문학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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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미스터리의 '도서(倒敍)'는 도치 서술을 줄인 것인데 말 그대로 차례나 위치 등을 바꾸었다는 의미다. (심지어 '세계 3대 도서 미스터리'라는 것도 있다) 이것이 추리/미스터리에 적용되면 재미있는 현상이 나타나는데….

바로 초반에 범인이 공개된 뒤 탐정이나 형사가 그/그들을 어떻게 잡을 것인지가 관건이 되는 셈으로, <매듭의 끝>이 이 형태를 취하고 있다. 그 발단은 모성애. 소설은 아들의 살인 고백 후 그의 어머니가 시체 처리를 도맡으며 시작되는데, 아들을 지켜내겠다는 모성의 발로에서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라서, 이야기를 끝까지 읽어 나가면 놀랄 만한 반전이 나타난다. 제목처럼 내용도 배배 꼬인 매듭이 지어져 있는 까닭. 도서 미스터리는 이미 범인이 특정되었다는 건데 <매듭의 끝>에서는 그것이 한 번 더 꼬아져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주인공인 형사의 삶에도 달갑지 않은 매듭이 있다(이쪽도 모성애가 간섭). 물론 결말에 가서는 모두 풀리긴 하지만…. 따라서 제목의 매듭은 등장 인물들에게 얽혀 있는 것이면서 동시에 독자의 입장에서도 풀어내야 할 과제인 것.

문득 히가시노 게이고의 <악의>와 <붉은 손가락>이 떠오르는 건, 어쩐지 <매듭의 끝>과 비슷한 구조여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범인 제시, 그리고 형사의 의심. 양쪽 다 범인의 거짓 행적을 추적하는 형사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저쪽이나 이쪽이나 재미있다는 것도 매한가지고.

p.s. …그래서 말이지만 이따금 삶의 끈이 돌돌 말아지고 뒤엉키곤 하는 거기 계신 독자님들, 올해 분기점인 6월이 가기 전 잔뜩 꼬인 매듭을 풀러 가지 않으시렵니까. 여기 분홍빛 매듭도 있고 재미있는 미스터리도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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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X수학 - 야구로 배우는 재미있는 수학 공부
류선규.홍석만 지음 / 페이스메이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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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의 스포츠. 숫자로 시작해서 숫자로 끝나는 스포츠. 이것이 야구에 대한 보통의 설명이고, 관련 책들은 대개 그 규칙이나 에피소드 위주의 내용이 흔하다.

이 책은 야구 룰은 물론이거니와 야구라는 스포츠 전반에 대한 지식이 어느 정도 있어야 쉬 읽을 수 있다. 그리고 그만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꽤 재미있게 읽힐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다시 말해 야구 기초를 모른다면 쓸모없는 책일 뿐.

그간 룰 관련 책은 두어 권 읽어봤으니 다소 깊이감 있게 들어가는 책을 접하고 싶었는데 마침맞게 이 책이 나와주었다. 세이버메트릭스뿐 아니라 각종 스탯, 선수들의 연봉 산정, 샐러리캡, FA계약, 코칭, 올해 들어 새로이 도입된 피치클락과 ABS(자동 투구 판정 시스템)까지.

정말이지 야구와 숫자(수학)는 뗄 수 없는 관계다. 동시에 약 7, 8개월간 프로게임이 치러지며 매 경기 하나도 빠짐없이 생중계되는 이 스포츠를 더 재미있게 즐기려면, 기록과 통계라는 측면에서 볼 때 수, 숫자를 제외할 수는 없다.

내용을 모조리 옮겨 야구와 수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의 진가를 전하고도 싶지만, 관심 있는 독자라면 목차만 읽고도 충분히 군침을 흘릴 수 있지 않을까. 자신이 재미를 느끼고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책이 있는데, 어떻게 독서의 유혹을 뿌리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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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의 수명 - 진실한 글을 향한 예술과 원칙의 대결
존 다가타.짐 핑걸 지음, 서정아 옮김 / 글항아리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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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콩트인가, 만담인가. 에세이 하나를 두고 인턴 편집자가 받은 상사의 지시는 해당 글에 대해 '뭐든' 팩트체크를 하라는 것. 그래서 그는 한다. 문단 한 개, 문장 한 개, 단어 한 개까지, 사사건건. 그리고 작가는 반발한다, 미주알고주알.

"아니 상식적으로…… 아이고." 편집자의 지적에 저항하고 낙담하는 작가처럼, 독자도 책을 두세 쪽만 읽으면 정확히 이런 상태가 되며, 진이 빠져 기진맥진해져서는 헛웃음이 나오고 만다. 신랄하던 편집자도 물론 칭찬을 하기는 한다. 다만 너무 사무적이어서 그저 우스갯말처럼 들릴 뿐.

"존 선생은 언론인이 아니다. 또한 논픽션 작가도 아니다. 하지만 그는 반드시 픽션이라곤 할 수 없는 기사 비슷한 텍스트를 쓰는 작가다." 담당 편집자 짐이 작성한 메모다. "제발 부탁인데요, 작작 좀 하시죠." 그리고 작가 존의 볼멘소리. 어쩌면 이 둘은 멋진 아삼륙이 아닐까?

책을 내리 읽다 보면, 문장과 단어 하나하나의 새로고침 작업에서 이 팩트체크가 픽션과 논픽션의 규정, 예술로서의 글쓰기 영역과 사실 관계의 충돌 등으로 뻗어나가 확장하는 걸 보게 된다. 하지만 여기서 '글 쓰다'가 온전한 자동사로서 동작할 수 있을는지는 다른 문제다.

다행스러운 점은 여기서 (롤랑 바르트가 '스크립투리레scripturire'라 불렀던)'글쓰기-의지'는 포기되지 않는다는 거다. 생산성이야 독자가 읽는 바에 따라 다양하게 정의되니 걱정 없을 테고, 글의 임무와 자유, 다듬기와 날조의 측면에서 봐도 일단 존은 썩 괜찮은 글을 완성했으니까.

물론 창조의 권리만큼 비평의 권리 또한 중요하지만 비평을 하려면 우선 창조가 전제되어야 하는데, 이걸 문학의 발전과 도태의 관념에서 볼 게 아니라 '예술과 윤리'의 잣대를 들이밀어야 하는 상황이니 어지러운 것일 뿐. 그렇다면 논픽션의 본질은 뭘까? 이 책에 그 해답 비슷한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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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베토벤인가
노먼 레브레히트 지음, 장호연 옮김 / 에포크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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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베토벤?'이라고 할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다시 베토벤'이며, '여전히 베토벤'이다. 사실 그에 대한 책이 색다른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왜 베토벤인지는 한 입씩 먹어보면 알 수 있겠지.

일단 구성이 좋다. 적게는 한두 페이지, 길어도 네다섯 페이지로 끊어서 100개의 챕터를 만들어놓았다. 클래식에 전혀 관심이 없는 독자라면 다소 힘에 부칠 수도 있을 거라 염려가 되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찬찬히 따라가다 보면 어렴풋하게나마 머릿속으로 가닥을 잡을 수 있다고 본다.

베토벤이 작곡한 작품들 중 일종의 분수령이 되는 건 역시 교향곡 3번 '영웅(eroica)'이 아닐까 싶다. 과거 어디선가 베토벤의 교향곡 3번과 브루크너 교향곡 8번 중 어느 쪽이 더 위대한가 라는 논쟁이 있었다는 농담 같은 일화가 떠오르는데, 깜찍하고 귀여운 이야기다.

'영웅'은 꽝, 꽝 하며 타격 같은 연주로 시작한다. 이에 대해 지휘자별 특성을 써놓은 레브레히트의 묘사가 재미있다. 누군가는 곤봉으로 사람을 패 죽이고, 누군가는 장거리 대포를 발사하고, 누군가는 갱스터처럼 칼로 찌른다……. (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나는 카를 뵘의 지휘가 마음에 든다)

나폴레옹과 연관이 있는 까닭에 이 교향곡은 한층 이야깃거리로서도 흔히 회자된다. 물론 레브레히트는 이뿐 아니라 '엘리제(혹은 테레제)를 위하여', 도입의 4마디만으로도 한국인에게 너무나도 유명한 '그대를 사랑해(이히리베디히, Ich liebe Dich)' 등도 빼놓지 않았다.

그에 의하면 '베토벤은 바위고 나머지는 먼지다. 그를 지우면 집이 무너진다.' ……따라서 왜 베토벤일까, 하는 물음에는 영속성이라 답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저자 말마따나 베토벤은 몽블랑산처럼 늘 그 자리에, 어떤 것에도 휘둘리지 않으면서 언제라도 닿을 수 있는 존재로 있는 까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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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용의자
찬호께이 지음, 허유영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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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막 살인_범죄·미스터리 소설에선 흔하다. 토막 난 시신이 담긴 유리병 속 보존액_끔찍한 영화 속에 종종 등장한다. 관건은 이다음이라는 걸 독자도 알고 있고 작가 본인은 더욱 더 자각하고 있을 터다. 그리고 찬호께이는 멋지게 연착륙했다.

사건은 이미 벌어졌고 남은 것은 이야기를 어떻게 직조하느냐에 달려 있던 작품. 결국 이렇게 흘러가는구나 했다가 한 번 속았고, 뒤이어 또 한 번 속았다. 그리고 훌륭한 마무리와 함께 오는 것은 영 좋지 않은 뒷맛. '용의자' 앞에 어째서 '고독한'이라는 형용사를 붙여놓았는지 납득이 간다.

은둔형 외톨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고 그의 옷장에서 사람의 팔다리와 장기가 담긴 유리병이 스무 개 넘게 발견된다. 이웃인 남자는 사망자의 학창 시절 친구이자 추리소설 작가. 그는 경찰에 자신의 추리를 설파하는데, 경찰이 듣기에 또 독자의 입장에서 생각하기에도 꽤 납득이 가는 부분이 많다.

(그래서 당초에는 경찰과 민간인 콤비를 주인공으로 한 시리즈물의 탄생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자살한 남자는 왜 '고독'을 선택한 것일까. 훼손된 시신 일부로 판명된 피해자들은 왜 작디작은 병 속에 들어가 있는 것일까. 이 '왜?'라는 물음에 대한 답은 뭘까.

타인의 얼굴을 궁금해하지 않는 풍조. 뭐든 이루어질 것만 같은 온라인 세계. 20년 동안이나 외출하지 않아 밀실과 같은 고독한 용의자의 방. 바깥출입이 전무한 자가 어떻게 살인을 저질렀는가, 이 핵심을 잡으려하는 경찰과 소설가.

콩나물 시루처럼 빽빽한 홍콩의 건물들과 끈적이는 습한 기후, 언제 어느 곳에서건 범죄가 일어나도 전혀 이상할 것 없는 것처럼 굳어버린 매체에서의 이미지와 더불어, 제목에서와 같이 고독하고 단절된 '자기만의 방'에 갇힌 사람들의 이야기다. 아쉽고, 허망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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