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오의 밀실
시라카와 나오후미 지음, 최고은 옮김, 곽민수 감수 / 북다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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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라미드를 밀실로 활용한, 제22회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대상 수상작이자 작가의 데뷔작. 저승에서 돌아온 미라 탐정과 타임 리미트 설정이 어우러지는 본격×서스펜스.

왕묘 붕괴 사고와 가슴에 박힌 단검으로 저승에 간 신전 서기 세티. 진실의 신 마아트가 망자의 갈 곳을 정하기 위해 세티의 심장과 마아트의 깃털을 저울에 올리려는 찰나, 심장의 일부가 부족하니 이승으로 돌아가 이브(심장)의 조각을 찾아와야 한다고 말한다. 시간은 사흘뿐.

작가 인터뷰에 따르면 샤센도 유키의 <낙원은 탐정의 부재>의 세계관과 설정에 영향을 받은 한편 소재로도 블루오션의 개척에 포인트를 두었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라면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겠지. 나로서도 파라오×밀실×본격이라는 조합은 본 적이 없었으니….

고대 이집트인들의 죽음에 대한 집착, 사후 세계, 무덤, 부장품 등으로 생각이 뻗어 <파라오의 밀실>을 썼다고 하는데, 한번 죽은 사람이 '다시 죽기 위해' 자신의 죽음에 얽힌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과정이 흥미롭다. 게다가 '미라 탐정'이라는 건 상상해보지도 못한 아이디어라서 더더욱.

망자가 된 주인공이 진실의 신 앞에 섰지만 심장의 일부가 없으니 다시 이승으로 가 모자란 심장을 되찾아와야 한다— 즉, 이 미라 탐정은 자신을 죽인 자와 심장 조각을 훔친 자를 찾아내야 하고, 또 그 과정에서 왕묘에 갇힌 뒤 탈출도 해야 하는데, 이 모든 일을 사흘 안에 마쳐야만 한다.

여기에 물리적인 미스터리가 가미되는데, 트릭만 놓고 보면 새로울 건 없으나 고대 이집트라는 무대와 미라를 만드는 장인의 모종의 조치 그리고 죽은 이를 되살리는 주술이 한데 섞여 신비스런 분위기를 자아낸다.

아쉬운 점이라면, 작중 등장하는 노예 소녀와 말미에 드러나는 주인공에 관련한 비밀 등의 개연성이 다소 부족해 이 부분에서 고개를 갸우뚱하는 독자가 있으리라는 것. 개인의 행복이라는 개념이 없던 시대에 현대의 가치관을 끌어들인다… 이것이 썩 설득력 있게 구현된 것 같지는 않다.

올곧이 미스터리에만 집중하든지 아니면 분량을 늘려서 독자를 설득하는 데에 좀 더 힘을 쏟는 편이 좋았을 듯싶다. 하지만 데뷔작이라는 걸 감안한다면 칭찬해 줄 만한 장점이 뚜렷한 작품. (탐정 역할을 미라에게 맡기다니!)

덧붙여 작가의 신작 <후궁의 주술비>가 올해 출간됐는데 이쪽이 더 재미있다는 평도 있었다. 데뷔작에선 미라였는데 여기서는 강시가 등장… 시라카와 나오후미라는 작가는 정말이지 여러모로 놀라게 하는 재주가 있다. 이 작품도 서둘러 번역되길.

※ 본 도서는 출판사 '북다'에서 제공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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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수세공
고바야시 야스미 지음, 김은모 옮김 / 시공사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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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감 수리공>, <앨리스 죽이기>, <육식저택> 등의 작가 고바야시 야스미의 국내 초역작 <인수세공> 사전 서평단으로 교정지를 받아 읽었다.

(수록작 속 주요 아이템이라는 십자가도 받았는데— 호러, 그로테스크, 이야미스의 대가답게 부러진 십자가가 불길하기 그지없다…)

표제작 '인수세공(人獸細工)'과 '흡혈귀 사냥' 총 2편이 실린 가제본. 곧 있을 추석 연휴가 끝나자마자 정식 출간 예정이라고 한다. 다 읽어보니 딱 고바야시 야스미스럽다고 해야 할까… 꺼림칙함 99%에 유머 한 스푼을 넣은 느낌이랄까….

누구나 읽으면 테세우스의 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인수세공'은 고바야시 야스미라서 이런 글도 쓸 수 있다, 라는 기분이 물씬 드는 수록작으로, 인간의 장기를 돼지의 그것으로 하나씩 교체하는 스토리인데— 여기서 끝나면 고바야시 야스미가 아니겠지. 마지막 한 방이 더 있다.

두 번째 수록작 '흡혈귀 사냥'에는 여름방학 시골 오두막이 등장. 제목대로 어린아이가 흡혈귀를 죽이는 내용인데, 하지만 그게 정말 사람이 아닌 흡혈귀였을까 하고 의심을 품는 순간 이야기가 통째로 전복되어 버린다. 여기서 다시 유머러스함과 끔찍함의 양가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게 포인트.

스포일러 탓에 더 깊이 언급할 수 없어 아쉽지만 짤막한 단편들 속에서 오랜만에 출간되는 작가의 스타일을 다시금 접하게 돼 반가움이 크다. <인수세공>에는 '책'이라는 제목의 단편이 하나 더 실려있는데 이건 정식 출간 후에나 읽어볼 수 있겠다. 모쪼록 기대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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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판박이
아베 코보 지음, 곽형덕 옮김 / 현대문학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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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아베 코보 <인간 판박이>(현대문학, 2026)

"내가 걱정하는 것은 미지에 도전해 그것에 이름을 붙이는 쪽이었을 SF가 거꾸로 이름 붙여지는 쪽으로 돌아선 것이 아닌가 하는 (...) 탐험가에게만 갖춰져 있었을 그 정의하기 어려운 매력이 왠지 서커스의 사자처럼 돼버린 게 아닌가 하는 것이다."

(아베 코보)



아베 코보 하면 흔히 '가설(仮説)의 문학'이란 표현이 늘 따라다니는데— 비록 거짓의 논리라도 그 거짓만의 재미를 극한까지 파고들 것— SF보다 소위 '근대문학'이 더 특수한 것이 아닌가, SF적 발상은 그리스 이래의, 문학의 원류라고도 할 수 있다— 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모래의 여자>에서는 남의 사적 공간에 들어가고, <인간 판박이>에선 자신의 집에 이상한 남자를 들이고. 일단 비일상적 상황과 대상을 조우하면서, 동시에 '판박이'라는 것부터가 '인간이다'와 '인간은 아니지만 그와 비슷하다'를 가름하는 표현인 만큼 부조리한 코미디가 예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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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보통의 인간이 아닙니다. 화성인입니다 (...) 아무래도 지구는 화성보다 꽤 인력이 세서 우리 화성인은 바로 피곤해지니까요. 방에 가서 이야기해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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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코보의 작품을 읽다 보면 선견지명이라 해야 할까, 뭐 그런 부분들이 종종 눈에 띈다. 전화를 이용한 것도 영화 <매트릭스>에서 처음 보고 재미있는 아이디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인간 판박이>를 읽으면서 깜짝 놀랐다(지금으로부터 50년도 더 된 작품임).

사변소설이라든가 6, 70년대의 뉴웨이브를 들먹일 필요도 없이 아베 코보의 작품들— 특히 이 <인간 판박이>는 그 어느 시대에 올려 놓는다 한들 독자가 이리저리 내둘릴 수밖에 없는, 그러면서 묘하게 설득되면서도 딱히 SF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 것이 특징.

작품에서 토폴로지, 위상수학 이러쿵저러쿵하고 있지만 단순히 말해 전혀 다른 것들이 같은 성질, 같은 개념, 그러니까 결국 동일해진다는 것— 도넛과 손잡이 달린 컵은 동일한 것이다, 라는 논리를 통해 '우화(寓話) = 실화(實話)', '지구인 = 화성인', 고로 '인간 = 인간'이라는 걸 말하고 있다.

어느 날 자신이 화성인이라 주장하는 사람이 집으로 들이닥쳐 그의 말을 주의 깊게 듣던 화자가 점차 기묘한 논리에 설득당하고 만다는 것이 얼개인데, 이 길고 긴 대화가 그야말로 압권이다. 작품 전체가 시종일관 이 둘의 대화로만 이루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어서 머리가 띵할 정도.

결국 작가가 말한 가설, 이것으로 인해 일상성과 비일상성이 양립하고 겹쳐지게 되며 종국에는 동일한 것이 되어서 증명 따위는 필요 없어져 버린다. 부등호가 등호로, 이윽고 등호조차 없어지고 마는 것인데, 책을 읽어보면 위에서 언급한 이 부조리의 코미디가 처음부터 끝까지 빛을 발한다.

난해하면서도 뚜렷하고 SF적이면서도 그렇지 않은— <인간 판박이>가 지향하는, 그리고 아베 코보가 줄곧 표명했던 문학관과 인간관을 가벼운 필치로 그려냈지만 내용만큼은 가벼이 보아 넘길 수 없는 이 기이한 작품을 다 읽고 나니 후련하기가 그지없다. 모쪼록 일독을 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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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고쿠 - 망자의 터
기타자와 도 지음, 전선영 옮김 / 반타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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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미조 세이시 미스터리 & 호러 대상에서 최초로 만장일치, 3관왕을 달성한 호러 미스터리 작품… 이지만, 취향이란 독자마다 다를 것이므로 7할의 기대와 3할의 염려를 지닌 채 읽기 시작.

이야기는 상처(喪妻)한 주인공이 아내의 혼을 불러내기 위해 무녀를 찾아가는 것으로 시작되는데, 초반을 읽으며 소름이 쫙 끼쳐서 호러에 중점을 둔 작품인가 했지만 중후반에 들어서면서부터 슬그머니 미스터리로 전환된다.

대신 그만큼 호러의 느낌이 살짝 줄어들긴 함. 때문에 앞으로는 감각의 묘사보다 스토리 자체로 밀어붙여야 할 텐데 그 점이 관건이 되겠다.

그런 과정에서 망자의 혼을 먹어 치우는 괴이, 이물의 존재가 등장하고,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주인공과 괴이가 합심해(?) 아내의 혼령에 관련한 미스터리에 다가간다. 생각지도 못한 존재와 탐정/조수 혹은 버디의 스토리가 되어버림. 아, 이 아이디어는 무척 좋다고 느꼈다.

호러에서 미스터리로, 호러/미스터리의 혼재로 바뀌어가는 흐름이 매끄럽고 결말 또한 산뜻하다. 말미 약간의 신파도 있으나 억지스럽지 않아서 괜찮았음. 이 정도라면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국내 번역이 요원하지만은 않을 것 같아서 그 부분도 기대가 되고, 아무튼 이래저래 만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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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겁관 초연속 살인 사건 - 마녀는 X와 죽기로 했다
미나미 아소부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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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택과 밀실. 전형적인 클로즈드 서클인가. 아니다. 현대 미스터리에서 곧잘 사용되곤 하는 특수설정이 더해진다. 이른바 [저택×밀실×타임루프]의 교차와 믹스.

흔히 인물 이름의 국적에 따라 독자는 작품의 무대 등 전체 상(像)을 무의식적으로 한정하게 되는 경향이 있는데 <영겁관 초연속 살인 사건>은 일본 작품임에도 등장인물의 이름이 모두 서양식이다. 게다가 밀실, 평면도까지 있으니 존 딕슨 카의 소설을 읽는 것 같기도.

이 작품엔 '사망하면 발동하는 저주'에 걸린 마녀가 등장하는데, 사망 시점으로부터 하루 전으로 타임슬립을 한다는 것(회귀)… 범인을 찾기 위해 타임슬립을 하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을 데려가는 등(동반) 소위 특수설정이 있다.

니시자와 야스히코의 <일곱 번 죽은 남자>가 이 계열에서는 고전 중의 고전이라 불리고 있는데 이후 시라이 도모유키의 <엘리펀트 헤드>와 이 <영겁관 초연속 살인 사건>이 그 뒤를 잇지 않을까 짐짓 생각해 본다. (제목의 '초'연속이란 문구는 그야말로 끔찍한 희비극을 표현하기에 안성맞춤인 것)

주인공의 과거에 대한 설득력만 좀 더 갖춰졌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과 함께, "살인을 완성하기 위해 트릭을 사용하는가 vs. 트릭을 구축하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가"의 기묘한 맥놀이가 아름답게 전해지는 작품이라고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을 정도.

개인적으로 앞서 언급한 <엘리펀트 헤드> 이후로 오랜만에 접한 '끔찍하면서도(그렇기 때문에야말로) 아름다운 결말'을 보여준 작품이었다.


※ 본 도서는 출판사 '블루홀식스'에서 제공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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