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방살의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5
나카마치 신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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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먹을 줄 바꿈이로군, 하고 볼멘소리를 하면서도 '서술트릭'이라는 말에 덮어놓고 읽기 시작했다('빌어먹을'이라는 분개심 가득 찬 토로는, 심지어 문장 하나하나마다 행이 바뀌는 부분을 접하게 되면 절로 나오리라). 줄거리는 간단한데, 시작은 자살로 결론이 난 신인 추리소설 작가의 죽음이다. 추락사한 것으로 추측되나 실은 음독한 상태로 발견된 사카이 마사오라는 남자가 있다. '7월 7일 오후 7시의 죽음'이라는 제목의 소설을 유서처럼 남긴 채. 그리고 반대편에선 여성 편집자와 르포라이터가 움직인다. 그들은 각각 사카이 마사오의 수상쩍은 죽음을 쫓고, 둘의 시선이 각 장마다 번갈아가며 기술되어 진행된다(물론 나카다 아키코(편집자)와 쓰쿠미 신스케(르포라이터)가 직접적으로 교차되지는 않는다. 아니, 실은 교차될 수가 없을 거다). 나카마치 신이라는 작가의 이름은 처음 들어보거니와, 신인 작가라고만 여겼었는데 그러기는커녕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더욱이 『모방 살의』에 얽힌 곡절 쪽이 더 기이했다. 이미 1973년에 초판이 나왔었다는 것, 미스터리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이 작품이 '환상의 명작'이라 불린다는 것, 심지어 초판 발행 이후 40년이 지난 2012년 복간되어 반년 만에 30만 부 이상 판매되었다는 것 등등. 나카마치 신은 2009년 죽었으니, 진부하겠으나 비운의 걸작이라고밖에 할 말이 없을 정도다. 『모방 살의』는 여러 번 개작되었고(이쪽 사정도 참 기이하다) 영원히 흥미로운 접근법이 될 서술트릭의 방법을 쓰고 있는데(서술트릭은 애초부터 방향성이 다소 제한적이긴 하나 제대로 속여주기만 한다면야 불만은 없다. 다만 중요한 인물상의 미묘한 차이는 차치하고라도 직업까지 똑같다는 설정은 좀 무리가 아니었을까……), 『애크로이드 살인사건』, 『살육에 이르는 병』, 『도착의 론도』, 최근작 중으로는 누쿠이 도쿠로의 『통곡』 정도가 떠오를 만하다(후반부에는 엘러리 퀸의 도전장처럼 소위 해결편이 펼쳐지기도 한다). 물론, 그러니까 당연하게도, 40년 전의 작품이므로 애로라고 할 만한 점도 간과할 수는 없을 거다. 그만큼 사회가 변했다. 한 세대쯤은 건너뛸 것이 빤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사용하는 용어나 어투 또한 다를 수밖에 없다. 이와는 달리 더 중요한 문제, 『모방 살의』에서 나카마치 신이 사용하고 있는 방식을 이미 다른 작품들에서 익히 접해왔다는 점이 걸린다. 더군다나 이 소설엔 현재 상투적이라고 평할 수도 있는 열차나 비행기 운행 시각 알리바이와 카메라 필름 조작 등까지도 담겨 있으니 말이다(사카이 마사오가 남긴 '7월 7일 오후 7시의 죽음'이라는 소설을 둘러싼, 누가 누구를 표절했는가 하는 미묘한 다툼도 간섭한다). 그런 만큼 시간상으로는 이쪽이 먼저 쓰였으나 동시에 시간상으로 우리에게 소개된 시점이 나중이라는 게 찜찜한 뒷맛으로 남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시간차를 유념한 채로 읽는다면 어느 정도의 감가상각이랄까(표현이 이상하지만)ㅡ 그러니까 '아무리 효시격이라 하더라도 이미 알고 있는 방식이라면 소용없다 vs 시대상을 고려한다면 걸작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이 양쪽에 발을 담그고서 적절히 조절해 읽는다면 꽤 재미있는 소설이 될 수 있으리라(나카마치 신의 속칭 '살의 시리즈'의 하나인 『천계 살의』가 곧 출간된다고 하니 그 전에 이쪽을 먼저 훑어본다면 더 좋겠다). 사족 하나를 붙이자면 내가 애석하게 여기고 있는 건, 소설 속 사카이 마사오라는 작가가 죽은 뒤에야 이런저런 이유로 주목을 받게 되는 것과 같이 나카마치 신 또한 사망한 후 그의 소설이 재조명되었다는 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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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5-09-12 1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멋진 얘기입니다.재조명이라..꺼리가 확실히 되는군요.^^ 아주 안타까운!!!

아잇 2015-09-13 11:17   좋아요 1 | URL
작가가 죽기 전 재출간되었으면 더 좋았겠죠..ㅠ

[그장소] 2015-09-13 18:56   좋아요 0 | URL
그러네요..얘깃거리로..확실히 액자소설 같은..진짜 혼란스럽잖아요..^^ 시기가 너무 애매해서.. 재조명이냐..아류냐..누가 더 먼저의 문제보단..이젠 서로가 서로를 기대서 같이 회자되는 시대에 있는 거죠..이럴때 시간이 여러겹이란 생각이 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