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전국 이야기 5 - 오월쟁패, 춘추 질서의 해체 춘추전국이야기 (역사의아침) 5
공원국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와신상담!

 

  무엇인가 목표를 이루기 위하여 고난을 견디며 자신을 끊임없이 채찍질하며 부단히 노력하는 자세를 일컫는 말이다. 과거 공부하기 싫어하는 우리들에게 선생님들은 와신상담이라는 고사성어를 형설지공만큼이나 남발하셨다. 그렇지만 그분들이 아셨는지 모르겠다. 와신상담이라는 말이 지니고 있는 폭력성과 잔인함을 말이다. 와신상담이라는 책 제목이 붙은 5권은 말그대로 폭력과 전쟁, 잔인함으로 점철되어 있는 책이다.

 

  지금까지 각 권의 제목들을 보면서 기가막히게 잘 뽑았다는 생각을 했다. 최초의 경제학자 관중(1권), 영웅의 탄생(2권), 남방의 웅략가 초장왕(3권), 정나라 자산, 진짜 정치를 보여주다(4권)! 각 권의 특징과 인물, 그리고 관점을 아주 잘 드러내고 있다. 공원국이란 작가에 대해서 책제목을 보면서 감탄을 금치 못했었다. 그런데 이번 책 제목을 보면서 감탄이 아니라 찬탄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와신상담이라는 네 글자로 책의 내용과 성격, 춘추와 전국의 상황의 변화를 모두 표현하고 있다. 거기에 달린 부제는 또 어떤가? "인간의 복수 vs 역사의 복수" 책 제목만 볼 때는 "이것이 무엇이지?"라는 의문을 품지만 책을 덮고 나서는 "아하! 그렇구나!"라고 수긍하게 된다. 그뿐 아니라 "역사는 오늘을 비춰주는 거울"이라는 의미에 대해서 다시 한번 떠올리게 된다. 지금까지 봐왔던 책 제목 중에서 단연 톱으로 뽑고 싶다.

 

  책의 내용은 대강 이렇다. 제나라로부터 시작하여 진(晉), 초(楚)라는 패권국을 거치는 동안 춘추의 역사의 무대는 점차 넓어졌다. 주나라를 정점으로 하던 중국의 편협한 사고가 점차 확장되는 과정을 거친다. 제와 진 즉 중원에서 아웅거리던 중국의 사고가 초를 통하여 남방으로 확장되었고, 오와 월을 통하여 더 남방으로 확장된다. 만약 춘추전국시대의 스타 합려, 구천, 부차가 없었다면 삼국시대의 슈퍼스타 손책 손권, 감녕같은 오나라의 인물들이 등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중국은 춘추시대를 거치면서 영토라는 물리적 세계는 물론이거니와 사고의 세계도 넓어졌다. 물론 이런 긍정적인 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춘추시대의 말기로 나아갈수록 춘추시대의 낭만도 사라지고 오로지 음모와 폭력만이 남았다. 비록 전쟁이었다고 할지라도 송양지인같은 극단적인 상황을 제외하고는 상대방의 비극을 이용하지 않는다는 것과 상대방을 멸망시켜 흡수한다는 사고는 초나라를 제외하고는 널리 받아들여지지 않던 시대였다. 그렇지만 춘추시대의 말기로 지나갈수록, 초, 오, 월로 중국의 세계관이 확장될수록 상대방의 비극은 이용해야할 약점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이젠 정말로 죽기아니면 살기라는 생존경쟁으로 돌입하게 된 것이다. 이미 5권의 시대는 춘추시대보다는 전국의 시대에 가깝다고 하겠다. 이 시대에 초와 오와 월을 둘러싼 메인 스토리, 이들을 뒷받침하는 진과 제의 서브 스토리는 5권의 이야기를 더 흥미진진하게 한다고 할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이야 책을 읽어보면 알겠고, 내가 여기서 생각하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복수 vs 역사의 복수이다.

 

  책의 부제가 인간의 복수 vs 역사의 복수이다. 복수가 이 책의 화두이다. 아버지를 죽인 초 평왕에게 복수하기 위하여 합려를 택한 오자서, 그는 일단 아버지의 복수에 성공하지만 주군 합려의 아들 부차에 의해서 자결을 강요받는다. 대쪽같았던 그의 성품으로 인해 그의 시신마저 온전하게 보존하지 못할 지경에 이른다. 백비는 어떠한가? 그 또한 여러번 배신을 해가면서 원한을 풀었고, 권력을 차지했고, 심지어는 오자서까지 죽였지만 결국 협력해던 구천에 의해서 죽임 당하지 않았는가? 아버지의 복수에 성공한 부차도, 부차에게 치욕을 갚았던 구천도 모두 쓸쓸하고도 비극적이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렸다. 오와 월이라는 나라도 이후 사라져 버리고, 다만 패배자였던 초나라만이 재기에 성공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역사의 묵직함을 발견하게 된다. 단기적인 안목으로 볼 때, 한 사람의 일생으로 볼 때 분명 초나라는 패배자이다. 초평왕에 의한 실정을 심판받는다. 그렇지만 역사라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볼 때 다른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초 평왕으로 인한 실패는 초 소왕으로 인해 만회가 된다. 초 소왕은 초 평왕의 실정을 깨끗이 인정하고 타산지석으로 삼았다. 그 힘이 인간의 심판을 받았던 초나라가 역사의 심판을 받고 뒤안길로 사라지지 않게 한 힘이다.

 

  책을 덮으면서 인간의 심판과 역사의 심판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요즘 과거사 논쟁이 한참이다. 대선판에서 앞서나가던 박근혜 한나라당 후보가 과거사 논쟁에서 발목을 잡혔다. 아니다. 발목을 잡히는 수준이 아니라 그나마 있던 이미지까지도 까먹고 있다. 최고봉은 5.18은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라는 자기 모순적인 어법이며, 민혁당 사건이다.(도대체 이런 역사인식을 가지고도 대선 후보가 될 수 있는 나라는 무엇인가?) 아무리 헷갈려도 자기 아버지가 행했던 사법살인인 인혁당을 민혁당으로 말하면서 과거사를 정리하겠다는 것은 무슨 생각인지. 러면서 항상 하는 말이 이것들은 역사의 심판에 맡기자고 한다. 역사의 심판을 운운하는 박근혜 후보의 얼굴에 오월과 부차와 구천이 오버랩되는 것은 지나친 확대해석인가?

 

  역사의 심판을 운운한다면 초소왕의 행적을 떠올려야 할 것이다. 그는 초 평왕의 일을 잊자, 역사의 심판에 맡기자고 하지 않았다. 초 소왕은 자기 부친의 실정을 인정하고 난 뒤 영정 사진을 붙들고 오열하지 않았다. 그는 철저하게 반성하고 두번다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했다. 초 소왕은 자기 부친의 실정에 대해서 한 나라의 왕으로서, 한 사람의 개인으로서 심판을 내린 것이다. 오월과 초와의 차이가 여기에 있다. 오월은 타인에게 인간의 심판은 내리지만 자신에 대해서만큼은 한없이 관대했다. 그러나 초나라는 다른 나라에 하는 것만큼 자기에 대해서도 꼬장꼬장했다. 역사의 심판이란 이런 것이다. 타인에 대해서 특별히 너그럽다거나, 자신에 대해서 특별히 너그러울 것이 아니라 한 가지의 잣대를 가지고 자신은 물론 타인까지도 반성하는 것! 이것이 역사 의식이고, 양심이고, 여기에 근거하여 바른 역사의 심판이 내려진다.

 

  누가 진정한 승자인가? 역사의 심판대 앞에서 생각해 볼 일이다. 누가 대통령이 될 것인가? 단순히 표로 밀어 붙여서 반쪽짜리 승리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말그대로 대 통합을 이끌어내는 영수인 대통령이 될 사람은 누구인가? 특별한 후보를 말하고자 함이 아니다. 박근혜 후보도, 문제인 후보도, 안철수 후보도, 이정희 후보도, 심상정 후보도 모두가 대통령이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다만 그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 지금은 꿈이지만 현실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은 역사의 심판을 두려워 할 줄 아는 사람이다. 역사의 심판 운운하면서 어영부영 넘어갈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역사의 심판을 의식하면서 자기를 반성할 줄 하는 사람이다. 역사에서 현실을 배운다는 말을 이 책을 통해서 다시한번 뼈저리게 깨닫게 된다.

 

ps. 자산의 현실 정치가 가능했던 이유에 대해서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오월과 초, 제와 진의 미묘한 관계가 자산의 현실감각과 만나자 강소국의 길을 보게 된 것이다. 미중러일 사이에 끼어서 줄타기 외교를 하고 있는 북한의 모습이 미일 동맹을 공고히하면서 중국의 반발을 사고 있는 한국보다는 자산의 강소국에 더 가깝다고 느낀다면 국보법에 걸리려나? 그냥 소설이라고 해두자.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야클 2012-11-21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권까지만 사놓고 아직 시작을 못했는데 벌써 5권까지 나왔군요. 겨울되면(벌써 겨울인가요?) 슬슬 읽어봐야겠습니다. ^^

saint236 2012-11-21 18:49   좋아요 0 | URL
이젠 읽기 시작하셔야겠군요. 벌서 겨울이니.. 전 이제 2권만 올리면 서평은 다 올립니다. 올릴 때 안올리니 밀리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