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
마이클 셔머 지음, 류운 옮김 / 바다출판사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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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

  이 책은 왜로 시작하여 왜로 끝나는 책이다.  인가이 살아가면서 가지고 있는 호기심이라는 것은 참 대단하다. 그 왕성한 호기심은 그 어던 종에서도 발견하기 힘들 정도로 특이한 것이다. 인간이 오늘날이 발전을 이룰 수 있고, 문화를 이룰 수 있었던 이유는 호기심일 것이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이야기하는 판도라의 상자는 바로 이 호기심에 관한 이야기이다. 참을 수 없는 호기심에 이끌여서 사람들은 금기를 넘어 왔다. 지금가지 인류의 역사란 호기심의 역사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호기심에서부터 시작하여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호기심은 그냥 호기심이 아니다. 호기심은 단순한 호기심 자체의 문제가 아니다. 그 호기심의 저변에는 희망이 깔려 있는 것이다. 마지막가지 뛰쳐나오지 못했던 상자안의 희망이라는 녀석은 아마도 이런 호기심의 가장 밑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 희망임을 말하는 것이리라. 지금갖지 못한 것들에 대하여, 되지 못한 것들에 대하여, 다가올 내일에 대하여 희망을 품기에 우리는 호기심을 가지고 "만약"이라는 단서를 달 수 있는 것이겠지?

  이 책은 여기에 충실하다. 희망을 바탕으로 한 호기심에 충실하다. 그러나 희망을 부질없는 것과 바람직한 것으로 양분한다. 그리고 그 양분하는 기준은 과학이나, 과학적인 검증방법인 실험이다. 실험이나 과학적인 검증방법을 통하여 증명 가능한 것은 바람직한 희망이요, 인류ㅏ 잡아야할 희망이지만 그렇지 않은 것은 포기해야할 이상한 믿음들이다.

  그리고 작가는 이 희망을 붙잡는 가장 좋은 방법을 끊임업이 의심하는 방법, 회의주의라고 말했다. 그러나 내가 느기기에 "의심하라. 무엇하나 믿지마라."는 작가의 사유방식은 안티를 위한 안티로 느껴지는 것은 왠 일일까? 혹자들은 기독교인인 나이기에 이미 이러한 사고에 대하여 반감을 가지고 들어가기 때문이라 말할 것이다. 물론 어느정도 일리 있는 말이다. 조지 오웰식의 사고(서로 모순되는 개념을 받아들이도록 교육받아 그것을 인정하는 사고방식)에 익숙하기 때문이라 말한다. 그런데 그것이 진실일가? 단순히 그것만이 아닐 것이다. 아무것도 믿을 것이 없는 불확실성의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 생각하고 끊임없이 의심하고 돌다리를 두들겨 보고 건너는 식의 삶의 자세를 유지하라는 그의 말이 너무나 비관적으로 느껴지고, 작가가 그렇게도 피하려고 하는 컬트가 되어버린 느낌이기 때문이다.

  비판에 대하여 열려있다, 비판하려면 비판하라는 작가의 자신감이 하나의 교리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책을 읽고난 이후의 나의 느김일가? 많은 이들이 이 책을 보고 무엇을 말할까? 그의 생각을 받아들여 계속 의심한다면? 아니면 반대로 그가 그렇게도 싫어하고 구원하려는 무지몽매에서 탈출하지 못한다면? 자기들의 방법에 대한 회의마저 용납하면서 계속 회의를 한다면? 왠지의 그의 말이 회의를 위한 회의라고 받아들여진다. 안티를 위한 안티로 받아들여진다. 왠지 그의 이야기가 오메가 포인트 이론을 비판하면서 그 이론의 오류로 지적한 사유 방식과 비슷하게 느겨진다. "저것은 문제가 있다. 저것은 사실이 아닐 것이다.(왜냐? 과학적으로 검증이 안되니까?) 그래서 나는 저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저것이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미신이라 말할 것이다. 모든 자료를 동우너하여 반박할 것이다. 그러다 보니 검증되지 않고 무식한 것들이 너무 많다. 어찌 사람들이 이런 것을 믿지? 이것은 사실이 아니야."라는 식의 결론에서부터 역으로 올라오는 검증방법이 사용되었다 느껴지는데...분명 작가는 아니라고 하겠지만...

  과학이 종교가 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과학은 신이고, 인류를 더 좋은 단계로, 진화이 단계로 이글 것이다. 그리고 과학자들은 선지자들이 될 것이다. 그 선지자들 가운데에는 거짓 예언자들도 있다. 이들을 제거하면서 우리는 무지몽매한 대중을 이성의 자리로 끌어 올려야 한다. 그러나 누가 이성이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완전한 요소라 말할 것인가? 기억이 재구성 되어 불완전하듯이, 이성이라는 것 도한 불완전한 것임에도 완전한 것이라 받아들여지고 있는 잘못된 믿음이라면? 그 어던 전제 하나만 어그러져도 "회의"라는 결론은 성립되지 않는다. 이성이란 종종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연구하는 오류를 범하는 모습을 자자 부여 왔기에.

  이성, 물질, 논리, 과학, 눈에 보이는 것들을 믿는 모습, 신앙은 필요없다는 모습들이 우리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오만함뿐이다. 전형적인 과학자들의 오만함이다. 인종 차별이 아니라 직업차별이요, 과학자를 정점으로 하는 진화론의 양태이다.

  저자는 말한다. Cogita tute(스스로 생각하라.) 의심하라. 무엇하나 믿지 마라.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근거로 스스로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 나는 아직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는 무지몽매한 사람, 그래서 기독교 신앙이라는 잘못된 삶에 빠져있는 사람인가? 한 때 거듭났던 기독교인이었다 주장하는 저자에게 묻는다. 무엇을 근거로 거듭났었다 말하는가? 과학적으로 증명 가능한가? 당신의 이성과 영혼과 육체가 거듭났는가?(아니다 영혼이란 과학적 검증이 불가능하니 논의 대상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성은? 뉴런 신경계의 화학작용에 불과할 뿐인 이성은 그리 신뢰할 수 있을까?) 작가는 첨단 과학의 시대를 살고 있는 고대 그리스인인가보다.

  이 책을 읽고난 결론은 이것이다. "사람들은 왜 이상한 책을 읽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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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리 2020-03-02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기나 하셨나요?

saint236 2020-03-02 14:17   좋아요 0 | URL
읽었으니까 썼지요. 모든 사람들의 생각이 나와 같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