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얼굴을 한 시장 경제, 공정 무역
마일즈 리트비노프.존 메딜레이 지음, 김병순 옮김 / 모티브북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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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등학생 때 정말 재미있게 했던 게임이 있었다. 아직까지도 하고 싶은 욕구가 드는 게임이다. 코에이에서 나온 "대항해 시대2"라는 게임이다. 만일 XP에서 이 게임이 무난하게 돌아간다면 아직까지도 하고 싶은 게임이다. 이 게임의 룰은 간단하다. 주인공이 드 넓은 바다를 중심으로 모험을 하면서 무역을 하고, 맘에 안들면 해적질도 하면서 많은 돈을 모으고, 모든 퀘스트를 클리어 하며 성공하는 게임이다. 어린 나이에 참 재미있게 했던 게임이지만 나이가 들어 생각해 보니 너무 섬뜩한 게임이다.

  아직도 생각나는 게임의 꼼수가 있다. 모든 게임이 마찬가지이겠지만 돈이 많으면 한결 게임이 수월해 진다. 그래서 도박을 해보기도 하고 나름 무역을 하기도 하는데 무역을 하다가 발견한 무역 코스가 유럽과 아프리카와 신대륙을 잇는 것이다. 나름 이 항로를 발견했을 때의 기쁨은 마치 세상을 가진 것 같았지만 실제 이 항로가 노예를 실어 나르던 노예 무역 항로라는 것을 알 았을 때 마치 내가 노예 상인이 된 듯 씁쓸한 기분이었다. 무역만으로는 돈을 쉽게 벌 수 없다. 한가지 방법을 더 사용해야 하는데 이 방법을 병행하면 백발 백중 부자가 될 수 있다. 도깨비 방망이 같은 방법은 물가 조작이다. 물가를 조작하여 최대한 싼 가격에 사서 최대한 비싼 가격에 판다. 이 게임을 하면서 자랐기에 지금 내 입장에서 최소의 투자로 최대의 효과라는 시장 논리는 너무나 당연하게 느껴진다. 이 책을 보기까지는.

  이 책을 보면서 예전 게임이 떠 오른 것은 큰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조심한다고 했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어느새 자본의 논리, 시장의 논리에 빠져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대학원까지 나왔고 대학원에서 윤리를 전공한 사람인데 왜 이러한 생각을 못했을까? 최소의 투자가 다른 사람에게는 생명의 위협으로 다가올 수도 있음을 왜 미처 깨닫지 못했을까? 그렇게 신자유주의를 비판하고, 대처리즘을 비난하면서도, 이명박씨의 실용정부를 비판하면서도 왜 나는 내 소비가 윤리적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다른 이에게 생명을 이어갈 수 있는 아주 소중한 도움의 손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을까? 이 사실을 아는 순간 내가 참 부끄럽더라. 매일매일 사용하는 물건들이, 그리고 내가 그렇게 즐기는 스타벅스 커피들이 얼마만큼 제3세계 빈농들을 쥐어자서 만들어낸 것들이었는지를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에 얼굴이 뜨거워지더라. 스타벅스 커리 한잔, 내가 주로 마시는 것이 아메리카노인데 그란데 사이즈면 3800원이니 이 가운데에 생산자들 손에 쥐어지는 돈은 멀마나 될까? 우리의 상식으로는 최소한 20%에서 30%는 되어야 한다. 이것도 엄청나게 불합리한 가격이다. 커피를 위해 지불하는 돈 가운데에 최소 700~1000원은 커피 생산자들에게 돌아가야 한다. 이것은 경제의 차원을 떠나서 단순 계산으로도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실제로 커피 농민들에게 주어지는 돈은 1%인 38원이란다. 이보다 더 낮을 수 있다더라. 순간 화가 나더라. 나같으면 안짓는다. 차라리 굶어죽지. 그러나 그들은 빚을 지면서 농사를 짓는다. 38원을 얻기 위해서. 내가 지불하는 커피값의 3762원은 어디로 가는가?

  커피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이 외에 여러가지 물품들, 코코아, 옷, 가구, 열대 과일, 바나나 등 온갖 종류의 농산물들과 생산품들이 턱없이 낮은 가격에 팔려간다. 그러나 그것을 사는 사람들은 결코 낮은 가격이 아닌 꽤 많은 돈을 주고 그것들을 구입한다. 그렇다면 구입가와 판매가 사이의 괴리에 존재하는 수없이 많은 돈들은 어디로 가는가? 단순히 중간에서 물건을 운반하는,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해 주는 중간 상인이 먹는거다. 불로소득도 이런 불로소득이 없으며 날강도가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이리라. 단순히 중간에 끼어서 70%이상이 되는 돈을 갖는 것이다. 이게 네슬레고, 이게 스타벅스고, 이게 다국적 기업의 진실이가. 우리가 매일 접하는 물건들의 진실이다.

  우리가 아무 생각없이 사용하는 것들은 자유경제, 시장경제라는 그럴듯한 가치관을 가지고 사람들을 쥐어짜는 구조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도록 교육받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이것을 고발하고 있다.

  인수위의 정책들이 발표되었다. 선심성 정책들은 역시나 하나둘씩 자취를 감추고 있다. 공약(公約)은 공약(空約)으로 끝나버렸다. 그리고 계속되는 정책들은 이 땅에 다시한번 박정희식의 발전과 그것을 위한 민초들의 무한 희생을 강요할 것을 천명하고 있다. MB의 성공을 지켜본 SH는 동대문 구장을 헐었다. 그럴듯한 건물 하나 지어 무한경쟁을 다시 강화하고 이것을 통하여 청와대 입성을 노리고 있는 것이다. 이제 한국 사회는 치열한 제로섬 게임이 시작될 것이다. 한미FTA, 한유FTA는 이것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그러나 왜 모르는 것일까? 시장의 논리에 충실하는 나라는 개도국뿐이라는 것을. 시장 논리를 전하는 미국조차도 이미 시장 논리를 반대하는 여러가지 정책들을 가지고 있음을. 이름뿐인 시장경제를 따르고 있음을 왜 모를까? 시장 경제에 충실하다보면 시장 자체가 붕괴되어 버릴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모른다. 왜냐 한국에서 자본주의=민주주의 혹은 자유주의로 통하기 때문이다. 이 교묘하지만 말도 안되는 논리로 제로섬게임이 시작되었다. 이제 함께 개미지옥에 떨어질 일만 남았다.

  이를 뒤집을 방법은 하나뿐이다. 싼게 좋은 것이 아니라 정당한 값을 주고 소비하는 윤리적인자세를 갖자는 말이다. 우리의 소비는 사회를 바꿀 힘이 될 것이다. 이러한 우리에게 공정무역은 한가지 화두와 해결책을 던져주고 있는 것이다. 소비는 힘이다. 세상을 바꾸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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