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빈 설교 꽉찬 설교 정용섭의 설교비평 1
정용섭 지음 / 대한기독교서회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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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에 가시가 걸렸나 보다.

  분명히 실체는 있다. 비평이 필요하다. 모든 사람들의 설교가 100% 옳을 수는 없다. 아니 옳다고 믿는 것은 교만이다. 그러나 비평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선을 먹다가 목에 가시가 걸린드 답답하다. 껄끄럽다. 왠지 책장이 잘 넘어가지 않는다. "김기동, 김기석, 김남준, 김동호, 김진홍, 박영선, 박옥수, 박종화, 윤석전, 이수영, 이재철, 임영수, 조용기, 하용조" 이렇게 14명의 목사들의 설교를 비평한다. 한국 교회에서 정통이든 이단이든 모든 것을 떠나서 막강한 영향력을 주고 있는 사람들이다. 아니 좀더 정확한 표현에 의하면 영향력을 주는 것이 아니라 권력을 휘두르며 한국 교계를 좌지우지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거물들에게 대하여 필자는 일어나서 당당하게 돌을 던지고 있다. 비평이 필요할 것이며 본인의 비평을 통하여 한국 교회가 더 발전하기를, 개혁되기를 원한다며 거침없이 비평을 한다.

  그러나 책을 읽어가면 읽어갈 수록 비평은 사라지고 비판만이 남은 기분이다. 아니 어느 부분에서는 비판이 아니라 비난이 존재할 뿐이다. 설교가들의 잘못을 지적하는 면이 날카롭게 들린다. 그러나 그 날카로움이 비꼼의 모습을 입고 등장할 때에는 목에 가시가 걸린듯이 답답하다. 이렇게까지 해야하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단순히 누워서 침뱉기의 모습이 아니라 신학자의 교만은 아닐런지 생각해보게 된다. 비평은 좋지만 비꼼이 개입되는 순간(내가 잘못보았으면 정확한 지적을 바란다. 내가 잘못 보았기를 원한다 등등) 그의 날카로운 비평은 사라져버린다. 이 책이 잘 읽히지 않는 이유가 이것일 것이다.

  본인은 설교가들이 자기의 비평에 대하여 열린 마음을 갖고 귀를 기울이기를 원한다고 했다. 그러나 내가 판단하는 견지에서 그것은 열린 마음이 아니라 무던히 낮아지는 마음, 모든 사람들을 포용하려는 마음,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서 모든 것에서부터 초월하는 마음을 가져야 비로서 가능한 것이리라. 그러나 거론된 목사들은 예수가 아니다. 고로 설교 비평을 가장한 비난이 마음에 계속 짐이 되고 불편함이 될 것이다.

  "속 빈 설교 꽉찬 설교"라는 제목을 통해서 설교가들의 교만을 필자는 지적한다. 설교에 하나님의 말씀은 사라지고, 성령의 역사는 없으며 오로지 자신들의 이야기와 인문학적인 소양만이 남아 있다 비판한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니므이 영에만 너무 매달려 있어서 인문학적인 소양이 없는 모습을 비판하기도 한다. 도대체 어느 장단에 춤을 추라는 것인지? "개개의 사실이 옳다고 해서 설교가 바른것은 아니다."라는 필자의 말대로 개개의 글이 논리적인 기준을 가지고 적절하게 비평을 한다고 해서 책 전체가 논리적이고 적절한 것은 아니다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시가 목에 걸린 듯한 느낌을 받은 이유가 무엇인지 확실해 졌다. 설교비평이라는 전가의 보도를 가지고 많은 설교가들 설교를 비판하고 나아가 비난하고 비꼬는 모습이 나에게 돌아오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함 때문일 것이다. 물론 나는 필자의 관심에 오르지 못할 겅도로 피라미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른 누군가가 나의 설교를 이렇게 비난한다면 어떻게 할까 하는 노파심에서이다. 안티를 위한 안티? 이것이 이 책의 정확한 판단일 것이다.

  필자의 말대로 설교는 text를 context에서 해석하고 적용하는 것이라면 과연 설문을 읽고 설교만 보고 그것을 비평하는 것이 옳은가하는 의문을 품게 된다. 이것이 가능하다면 솔직한 심정으로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역사를 구하는 설교를 비평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연설문을, 설교문을 비평하는 인문학적인 작업일 뿐이다. 이러한 인문학적인 과정을 통하여 성령의 역사를 재단하고 운운하는 것은 오만이 아닐까? 본인도 설교를 들을 때에 비평하고 비판은 한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가 없다, 하나님의 임재가 없는 설교다라는 교만하고 자기 중심적인 말이 아니라 본인과 설교자가 갖는 생각의 차이는 이것이구나하는 정도일 뿐이다. 그리고 성령의 역사를 제약한다는 생각이 들정도라면 침묵하거나 피할따름이다.

  필자의 설교비평이 왠지 안티를 위한 안티요, 신학자 특유의 오만으로 느껴지는 것은 2권을 읽고 1권을 읽은 지금에도 변하지 않는 생각이다. 오직 세상에 자신이 옳고 다른 사람은 다 틀렸다는 생각, 이러한 신학자의 오만이 책의 곳곳에 숨어 있다. 긍정이 20%이라면 부정과 지적은 70%요 이꼼과 비난이 10%이다. 이것이 내가 바라 본 정용섭 설교비평의 모습이다. 또한 곳곳에 사용된 언어들이 필자가 그렇게도 싫어하는 서양학문을 배운 인문학자들의 오만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음이 안타깝다. 충분히 한국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어를 섞어 쓰는 모습은, 철학적인 용어를 씹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는 모습은 신학을 전공한 본인에게도 낯선 것이며 피하고 싶은 것이다. 좀더 지혜롭고, 좀더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책이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이제 그만해야겠다. 더 적어봐야 나도 똑같은 입장에 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 나의 서평을 보고 똑같은 말을 할테니 말이다. 책을 읽으며 겸손함도 같이 배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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