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신 네온사인 뒤에 가린 중국의 그늘
라오웨이 지음/ 이향중 옮김/ 이가서
김태훈기자 scoop87@chosun.com
거대한 국토와 인구를 가진 중국의 발전이 눈부십니다. 해마다 10% 안팎의 고도성장을 하는 이 나라의 성장 잠재력과 장밋빛 미래를 분석하는 책들도 쏟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중국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사회 하층민들을 인터뷰하고 고도성장의 그늘에 가려진 민초들의 애환을 담았습니다. 그들의 사연을 읽으면 화려한 네온사인 뒤에 가려진, 중국의 보다 내밀한 속살을 엿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상하이(上海)나 광저우(廣州) 등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중국의 현대 도시들을 둘러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과거 동아시아의 맹주로 군림했던 중국이 짧은 낮잠을 끝내고 마침내 비상의 날개를 펼쳤다고 입을 모은다.
세계의 공장으로 지구촌 경제의 견인차로 떠오른 중국 경제의 모습과 대도시들의 눈부신 발전을 주목하고 분석하는 책들도 앞을 다퉈 나오고 있다.
이처럼 “중국을 배우자”며 쏟아지는 책들 가운데 유독 이 책은 화려한 전면을 비추는 대신 음습하고 냄새나는 뒷골목을 찾아 들어가 또 다른 중국을 보여준다.
저자가 만난 사람들은 인신 매매범, 노숙자, 노래방 도우미, 오입쟁이, 마약중독자, 도시철거민, 거리의 맹인악사 등 가난하고 소외된 중국인들이다.
여기에 곁들여 1960년대 홍위병 운동에 뛰어들었다 지금은 노동자로 살아가는 남자라든가, 한 때 장래가 촉망되던 좌파 대학생이었지만 반동 지주 계급의 여성을 사랑하게 돼 스스로 우파의 길을 택하고 몰락해 버린 지식인 등 정치적으로 소외된 식자층도 등장한다.
‘중국 저층 방담록(中國底層放談綠)’이란 제목으로 지난 2001년 중국에서 출간됐던 것을 번역한 이 책은 따라서 발전이란 이름의 음반 뒷면에 실린 어두운 변주곡이다.
저자 라오웨이(老威)는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건을 비판한 ‘대도살(大屠殺)’이란 시를 발표했다가 4년간 옥고를 치렀고, 이후에도 1970년대의 반체제 시들을 묶어 냈다가 체포된 전력이 있는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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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쓰촨(四川) 지방의 전통 공연인 천극(川劇)을 공연중인 배우. 천극을 비롯한 중국 전통 미속예술도 개방화 이후 새로운 오락거리가 범람하며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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쳰구이바오(錢貴寶)는 시골 처녀들을 유혹해 여자가 부족한 지역에 팔아먹는 인신매매범이다. 구치소에 수감된 상태에서 저자와 인터뷰에 응한 그는 자신의 일에 대해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다고 고백한다.
오히려 “내가 여자들을 속인 게 아니라 도시로 갈 핑계가 필요한 여자들에게 그 핑계를 제공했을 뿐”이라고 강변한다. “덩샤오핑(鄧小平)이 개혁개방 했지만, 현에서 수백㎞나 떨어진 산골 동네에 누가 투자를 하냐?”며 “호박이 제 발로 굴러들어오지 않는 이상 자기가 직접 나가서 개혁개방을 할 수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쳰의 개혁개방은 부녀자 매매다.
쓰촨성 청두시의 40대 노숙자 자오얼(趙二)은 경제성장의 철저한 주변인이다. 시골 출신인 그는 국유광산 옆에 땅굴을 몰래 파고 목숨을 담보로 기어들어가 석탄을 훔치는 일을 7년간 하다가 도시로 흘러 들어왔다.
“80년대에는 그래도 입에 풀칠은 했는데 경제가 발전한 90년대에는 훔친 석탄으로 생계를 꾸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생기는 대로 자식을 낳고 감당을 못해 홀로 도망친 그는 국가의 산아제한 정책을 이렇게 조롱한다.
“가족계획 담당관이 들이닥치데. 딸내미 하나는 엄마 젖 먹고 있지, 나머지 둘은 이모 붙잡고 사탕 달라고 조르면서 울지. 이걸 보고 가더니 다음부터는 아예 찾아오지도 않아.”
‘자녀 하나만 낳기’ 운동 덕에 금지옥엽으로 자란 중국의 10대들은 신세대도 아닌 신신(新新)세대이다. 중학교 1학년을 중퇴한 ‘미스 웨이’는 대중가요 스타에 열광하던 열다섯 살에 남자친구와 첫 동침을 할 때도 이어폰을 귀에 꽂고 노래를 흥얼거렸다고 고백한다.
1980년대에는 저자의 문우였던 탕둥성(唐東升)은 90년대 서적상으로 돈을 번 후 오입에 빠져든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아내밖에 모르던 내 미덕이 졸지에 웃음거리가 됐고, 술집에서 아가씨를 고를 때 ‘사람이 물건이냐’고 했더니 친구는 물론이고 아가씨마저 까르르 웃더라.” 시골중학교 교사였던 황즈위안(黃志遠)은 나이트클럽 사장이 된 옛 제자를 만났다.
제자는 “은사에게 보답하겠다”더니 아가씨 둘을 붙여주고는 “오늘 선생님 연배 분들 세계관을 한번 확 바꿔보시라”고 큰소리쳤다. 황 노인은 제자의 말에 수치심으로 얼굴이 붉어졌다고 한다.
문화대혁명이 끝난 뒤 중국에서는 전문성과 지식이 강조되며 대학졸업증명서 붐이 일었다. 이 때문에 가짜 졸업증명서가 나돌며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노래방 도우미 ‘미스 린’ 또한 돈을 주고 산 전문대 졸업장 갖고 있다.
그녀는 인터뷰에서 “고상한 척하는 손님 상대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하며 “요즘 세상에 진짜가 어딨냐?”고 반문했다.
학자의 담론과 분석이 아닌 현장 사람의 경험으로 듣는 문혁(文革) 이야기도 생생하다. 철거민 할머니 뤄웨샤(羅月霞)는 마오쩌둥(毛澤東) 통치 하에 사분오열됐던 가족 이야기를 했다.
뤄 할머니의 가족은 7식구였지만 마오가 일으킨 대약진운동 때 두 명이 굶어죽었다. 이어 문화대혁명이 시작되자 남은 다섯 식구가 조반파니 보황파니 관망파니 홍위병이니 하며 갈갈이 찢어졌다.
할머니는 동생과 함께 정치적 입장을 달리한 남편을 한때 쫓아내기까지 했다고 고백했다. 하방(下放)을 당해 지방으로 쫓겨가 노동을 강요당했던 지식인들은 그 당시의 치욕을 떠올리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도시의 공중변소 관리자인 저우밍구이(周明貴) 할아버지는 교수들 앞에서 청소시범을 보였던 것을 무용담처럼 자랑하며 지식인을 “잡놈”이라고 조롱한다.
부실기업에서 일하는 늙은 노동자 류웨이둥(劉衛東)도 홍위병으로 활약했던 문혁 시절을 그리며 언제 잘릴지 모르는 최근의 불안한 나날을 버티고 있다.
그는 “문혁은 학생이 선생을 때리고 대중이 지도자를 때리는 운동”이었다며 “어린 중들이 절에서 방장과 주지를 끌어낸 것이 가장 신선한 충격”이었다는 말로 잘 나갔던 한 때를 회상했다.
인터뷰에 등장하는 중국 하류층들의 이야기는 너무 생생해 중국의 역사와 현지 사정을 모르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간혹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수많은 팁(tip)과 주석을 곁들인 점이라든가, 중국인의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사진가를 대동하고 현지에 들어가 그들의 사진을 직접 찍어온 역자의 창조적인 노력 또한 이 책을 돋보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