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수·염상섭·이상…근대문학속 사랑의‘해괴한 말법’
서영채 지음/ 민음사
이경훈 연세대교수·국문학
이 책의 제목은 소설의 한 장면을 상기시킨다. “요새 계집애들은 걸핏하면 사랑 사랑 하니 모두들 기생이 되었단 말이냐, 갈보가 되었단 말이냐? 원 그런 해괴한 말법이 어디 있어?”(이광수·‘그 여자의 일생’)가 그것이다. “그때에는 정동 근방에 있는 예수교 청년들을 제하고는 아직도 서양 냄새나는 ‘러브’라고 일컬을 만한 연애는 조선 청년 중에는 없었다”(이광수·‘처’)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사랑’은 일종의 박래품(舶來品)이었으며 신문명과 더불어 학습되고 실천되어야 할 것이었다.
따라서 이 책은 보편적인 감정이 아니라 ‘특수한 사회적 코드로서의 사랑’을 다룸으로써 사랑을 역사적 맥락에 놓는다. 또 저자는 사랑이 소설 속에서 포착되고 표현되는 방식을 통해 근대소설과 근대 주체를 유형화하려 한다. 이때 저자가 다루는 대상은 이광수·염상섭·이상의 작품이다. 이 세 작가의 문학사적 위치, 즉 이들이 구사한 ‘말법’의 ‘해괴’함으로 볼 때, 이는 필연적인 선택일 것이다.
저자는 이광수가 그린 사랑의 서사가 “열정의 발견에서 열정의 배제로, 사랑의 발견에서 사랑의 금지로 나아간다”고 논한다. 그것은 공동체와 계몽의 이상을 위해 애써 사랑을 길들이고자 한다. 유부남을 사랑하다 자살하는 ‘개척자’의 김성순이나 ‘유정’의 ‘에로 교장 최석’에게서 볼 수 있듯이, 사랑은 맹목적이고 위험하며 파괴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광수는 ‘사랑’에 이르러 완전히 ‘탈성화(脫性化)’된 사랑을 제시한다. 결국 사랑은 종교적인 금욕과 민족에 도달하는 계기가 된다. 저자는 이러한 사랑의 주체를 ‘지사’라고 부른다.
염상섭 소설의 사랑은 ‘열정의 배제’와 ‘환멸’에 기초한다. 그것은 ‘진정성’의 추구를 꾀하므로, 인물들은 비장한 독백 대신 일상적 대화가 오가는 ‘다양한 교제의 공간’에서 인간과 사물을 냉정하게 관찰한다. 이는 염상섭의 사랑이 ‘체념’을 전제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조건 속에서만 존재함”을 의미한다. ‘해바라기’의 여주인공이 죽은 애인의 묘지로 신혼여행을 가는 것, ‘만세전’의 이인화가 “사랑이니 무어니 머릿살 아프다”고 말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를 일러 저자는 이광수의 ‘뜨거운 낭만주의’에 대비되는 ‘차가운 낭만주의’라고 부르거니와, 이는 “현실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현실 속으로의 도피”를 수행하는 리얼리즘을 낳는다. 이러한 서사와 함께 탄생한 주체는 ‘장인’이다.
이상의 사랑은 ‘대결의 문법’과 ‘자기 은폐의 수사학’을 특징으로 하며, “태도의 진지함을 부정한다”는 점에서 앞의 두 경우와 구분된다. ‘속이는 여자/속는 남자’의 틀로 이루어진 이상의 작품은 ‘연애의 실패’를 묘사한다. ‘날개’나 ‘종생기’가 보여주듯이, 여자는 남자에게 시련을 부과할 뿐이며, 그 점에서 이상의 사랑은 “중세적인 궁정적 사랑의 형태”라는 것이 저자의 입장이다. 여성은 결핍과 부재로 존재하며, 따라서 이를 반복해 확인하는 텍스트는 “죽음 앞에서 벌이는 필사적인 유희”이다. 이때 주체는 스스로 고립과 패배를 선택함으로써 고립과 패배에 맞서며, 이는 분열된 주체의 “자기 목적적인” 글쓰기와 더불어 실천된다. 이로써 “심미적 목표를 위해 다른 모든 것을 동원하는 미적 주체, 탕아로서의 예술가”가 탄생하는 것이다.
이렇게 ‘사랑의 문법’은 근대문학을 비추어내는 사랑의 창틀을 독자에게 제시한다. 이 책은 사랑이야말로 근대인을 형성한 ‘말법’이자 근대성을 발현시킨 중요한 ‘몸법’이었음을 알려준다. 사랑은 근대적 관계를 심오하게 육체화했던 것이다. 한편 우리는 지사·장인·예술가의 사랑과는 또 다른 사랑, 즉 혁명가·사기꾼·악한·농민·상인·노동자·여성의 사랑 등을 상상할 수 있다. 근대문학은 이 여러 사랑을 그야말로 ‘사랑’하여 종종 묘사해 왔다. 그리고 이 모든 역사적 유형들을 천착할 때, 우리는 오히려 근대를 넘어서는 어떤 보편적 감각을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물론 이는 이 책이 시도하는 바가 아니다. 왜냐하면 이 책은 근대문학으로 구현된 ‘해괴한 말법’, 아니 ‘근대문학이라는 해괴한 말법’을 탐구한 책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