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탁환의 '책과 램프 사이'] '완월회맹연'

잊는 즐거움을 느끼다
김탁환·소설가
 
대하소설의 시대는 가버렸다고 한다. 두 권도 많고, 한 권을 내더라도 독자들 구미에 맞도록 하드커버에 경(輕) 장편으로 가라는 것이다. 나는 파란만장한 삶을 풍부하게 담는 대하소설을 쓰고 싶다. 스물여덟 살 늦가을 ‘완월회맹연(玩月會盟宴)’이란 소설을 읽은 후 굳힌 결심이다.

‘완월회맹연’은 반만년 역사를 통틀어 이 땅에 지어진 이야기 가운데 가장 긴 작품이다. 프랑스에 발자크의 ‘인간희극’이 있고 러시아에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가 있다면, 우리에겐 180권 180책의 ‘완월회맹연’이 있는 것이다. 하루에 한 권씩 독파해도 꼬박 여섯 달이 걸리고 두 번 읽으면 한 해가 저문다. 완월대에서의 혼약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그린 결 고운 연애소설이자 천상의 운명이 유장하게 펼쳐지는 역사소설이기도 하다.

‘완월회맹연’을 둘러싼 망각은 두 겹이다.

먼저 이 작품은 한국소설사에서 사라진 부분을 꼬집는다. 조선 후기에 등장하기 시작한 대하소설은 ‘완월회맹연’ 외에도 ‘임화정연’, ‘명주보월빙’, ‘윤하정삼문취록’, ‘명행정의록’ 등이 50권을 넘고, 속편이나 파생작까지 살피면 작품의 스케일과 독자의 관심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완월회맹연’을 읽는 내내 문학판 벗들에게 이 작품을 소개했지만 되돌아오는 눈빛은 차디찼다. 낯선 제목에 고개를 갸우뚱거리거나 혹시 그 작품이 중국이나 일본의 번역물이 아니냐는 물음을 던지기도 했다. 판소리계 소설이나 군담소설에만 익숙한 그들에게 웅숭깊은 조선시대 대하소설이 믿기지 않는 모양이다. 버젓이 존재하면서도 잊혀지는 것은 정말 서러운 일임을 그때 처음 알았다.

둘째, 이 작품은 소설 읽기에서 망각이 지닌 독특한 맛을 선사한다. 스물여덟 살 그 늦가을 ‘완월회맹연’을 완독한 후 짧은 논문이라도 쓰려고 줄거리를 정리했다. 우중충한 저녁에 이미 나는 소설의 상당 부분을 잊고 있었다. 등장인물과 사건은 뒤죽박죽 섞이고 100권에서 잠깐 나왔던 인물을 앞에서 찾아내느라 밤을 꼬박 새우기까지 했다. 문득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이 소설의 참다운 독법은 기억하는 고통보다 잊는 즐거움이 아닐까. 소설이 인생을 가장 많이 닮은 예술이라면, 기억과 망각이 부부처럼 어우러진대도 탓할 일이 아니다.


▲ 김탁환·소설가
서른여덟 살 늦가을, ‘완월회맹연’에 관한 논문을 심사하느라 며칠을 끙끙대고 있다. 작품분석에 사용한 장면들이 떠오르지 않아서였다. 책장 위 구석자리 먼지 앉은 소설책을 꺼내 폈다. 색색가지 밑줄과 들쑥날쑥한 메모가 10년 전 이 책을 읽으며 감(感)하고 동(動)하는 얼굴과 함께 튀어나왔다. 아, 지금의 나는 이 감동을 모두 잊은 ‘나’였다. 그리하여 나는 망각을 기억하는 책 ‘완월회맹연’을 다시 읽기로 작정했으며, 기억하는 속도보다 잊혀지는 속도가 빠른 멋진 작품도 하나 만들고 싶어졌다. 대하소설의 시대가 가버렸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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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C 세계 사상 한눈에 보여요


현대사상 지도
기다 겐 편저|김신저·심정명·윤여일 옮김|산처럼|456쪽|2만3000
이한수기자 hslee@chosun.com

대입수능시험을 잘 봤건 아니건 한숨을 돌리자. 이제 대학에 들어가면 세계와 인류의 미래에 대해 더 큰 고민을 펼쳐야 할 터. 그렇다면 먼저 지금의 세계는 어떻게 이뤄졌는지 살펴봐야 한다.

20세기 세계 지성사의 흐름을 장르별, 항목별로 묶어 88개의 핵심용어로 정리했다. 해석학, 현상학, 구조주의, 실존주의, 프랑크푸르트학파 등 어렴풋이 이름은 들어 알고 있지만 정작 내용을 잘 모르는 사상의 흐름을 한눈에 보여준다. 각 학문의 비조(鼻祖)로부터 여러 학자들로 뻗어나간 사상의 가지들을 화살표(→)로 ‘흐름도’를 그렸다. 이름만 들었던 학자의 사상이 현대 지성사의 어디쯤 자리하는지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다.

‘페미니즘’을 설명한 대목을 보자. 먼저 “페미니즘은 여성차별의 원인이나 구조를 이론적으로 해명하고 여성의 차별이나 억압에서 해방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사상이나 행동”이라고 규정한다. 그리고 자유주의적·급진적·마르크스주의·정신분석학적·포스트모던 페미니즘 등으로 나눠 짧지만 핵심적인 설명을 달았다.

이 책만 읽어서는 그야말로 ‘수박 겉 핥기’다. 더 깊은 고민을 하려는 학생들을 위해 각 장 끝에 더 읽어야 할 참고문헌 목록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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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5-11-30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논술에 유용하겠어요

stella.K 2005-11-30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한테도 유용할 것 같아서요...^^
 

“우리에게 필요한건 지식 재창조 능력”

스무 살에 선택하는 학문의 길
김용준·정운찬 외 47명 지음|아카넷|657쪽|1만6000원
김기철기자 kichul@chosun.com

선택의 순간은 늘 괴롭다. 대학의 전공 선택도 그 중 하나다. 울창한 학문의 숲에서 길을 잃고 헤매기 쉬운 젊은이들에게 나침반 역할을 해 줄 만한 책이 나왔다. 안내인들은 김용준 한국학술협의회 이사장, 정운찬 서울대 총장, 박찬모 포항공대 총장 등 우리 시대 최고의 지성인 49명. 인문학과 사회과학, 자연과학, 공학, 의학, 예술 분야를 아우른다. 이들은 각자 자신들이 그 분야 학문에 뛰어든 동기를 밝히고, 해당 분야의 연구 영역과 그 분야 연구를 위해 갖춰야 할 조건들을 일러준다.

이들이 소개하는 학문의 세계는 은유적이면서 구체적이다. 임현진 서울대 교수는 “사회학을 배우면 하늘에서 모든 것을 내려다보면서 먹이를 채가는 ‘독수리의 눈’을 가질 수 있다”고 손짓하고, 김진엽 홍익대 교수는 “미학은 이성적 능력과 상상력의 자유로운 놀이터의 유쾌한 주인공”이라고 유혹한다.

박명호 한국외대 교수는 “경제학은 제한된 조건 아래 최적의 합리적인 선택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역설하고, 이상엽 카이스트 교수는 “생명화학공학은 화학, 식품, 의약, 전자 등 거의 대부분의 분야에 적용돼 인류의 건강과 복지, 지구 환경의 보호, 그리고 궁극적으로 인류의 풍요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고 소개한다.

학문의 바다에 빠져들기 위한 남다른 각오도 주문한다. “인문·사회과학 등 다방면에 걸친 광범위한 독서와 이를 토대로 형성된 복합적인 사고력을 가져야 한다”(김호동 서울대 교수·중앙아시아사)거나 아예 “‘입산’한다는, 즉 속세를 떠나 스님이 된다는 각오를 가져야 한다”(박석재 한국천문연구원장)고 충고한다.

“자기 나름의 독자적 사고의 습관을 길러가는 것, 남이 가지 않는 길을 찾아가는 도전 정신, 끈기를 가지고 한 분야에 정진하는 열정이 있어야 한다”(오세정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는 도전은 또 어떤가.

대부분의 분야에 적용할 만한 충고는 김용준 한국학술협의회 이사장이 철학자 칼 야스퍼스의 한 구절을 인용한 대목이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지식 그 자체가 아니라 주관적 판단으로 필요한 지식을 재창조해 내는 능력이며 사실의 핵심을 파악하고 질문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인문학 분야는 이승환(철학·고려대) 이태진(한국사·서울대) 김주연(독문학·숙명여대) 배국원(종교학·침례신학대) 교수와 사회과학의 강정인(정치외교학·서강대) 양건(법학·한양대) 강명구(언론학·서울대) 문옥표(인류학·한국학중앙연구원) 이정모(심리학·성균관대) 교수 등이 나섰다. 자연과학은 최재천(생물학)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김석철 명지대 건축대학 학장과 왕규창 서울대 의대학장, 김남일 경희대 한의대 학장보 등이, 예술 분야는 김소영(영화학·한국예술종합학교) 김용철(미술·홍익대) 주성혜(음악·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등이 안내한다. 각 분야마다 대여섯 권씩 붙어있는 추천도서 목록은 그 분야를 이해하는 길잡이가 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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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2005-11-29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에 읽은 조동일 교수의 우리 학문의 길이 생각나는 책이군요.
성격은 어찌 다른 책같이 보이네요.
 
 전출처 : 로쟈 > 도스토예프스키와 바토스의 문학

 

 

 

 

<30분에 읽는 도스토예프스키>(랜덤하우스중앙, 2005)를 읽었다. 이 '30분 시리즈'에서 <니체>와 함께 지난주에 구입한 책인데, 비록 만만한 분량이긴 하나 30분은 족히 더 걸리고 아마 1시간 정도는 투자해서 읽어야 할 분량. 물론 이런 가이드북에 큰 기대를 걸어서는 곤란하지만, 책은 기대보다는 잘 짜여져 있으며 저자 로즈 밀러의 식견 또한 여간한 수준은 아니다. 그는 주로 영어권 연구서들을 참조하고 있는데, 이래저래 알려주는 정보도 요긴하다. 국내에 소개된 책으로는 모출스키의 <도스토예프스키>(책세상, 2000)와 함께 읽으면 좋을 듯하다. 공부 요령이기도 한데, 어떤 주제나 인물에 대해서 좀 두꺼운 책과 얇은 책을 나란히 읽으면 '정리'와 '부연설명'을 동시에 얻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한데, 번역 자체가 비교적 만족스러운 <니체>에 비하면 <도스토예프스키>는 몇 가지 오류가 눈에 띈다. 주로 러시아 인명과 관련된 것들인데, 직접적으로는 역자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들은 그닥 참조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어서 씁쓸하다(교정자도 안 읽었다는 얘기이고). 비근한 예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나오는 맏형 드미트리의 애칭이다. 영어 표기로는 'Mitya'가 되는데, 이걸 '미챠(미쨔)' 대신에 '미트야'로 옮긴 것. '카테리나'의 애칭 'Katya'는 마찬가지 방식으로 '카챠(까쨔)' 대신에 '카트야'가 돼 버렸는데, 좀 우스운 해프닝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친구였던 비평가 '스트라호프(Strakhov)'가 '스트라코프'로 옮겨진 것도 부주의하다. <도스토예프스키 읽기 사전>(열린책들, 2002)도 출간돼 있기 때문에 굳이 우리말 번역본을 직접 읽어보지 않더라도 고유명사 표기에서의 오류들은 피해갈 수 있었을 텐데, 그마저 참조하지 않은 것은 오만이거나 객기일 터이다.

또 그런 태도는 꼭 그 이상의 실수들을 낳게 된다. 책에서 여러 차례 인용되고 있는 연구서로 <도스토예프스키와 문학 창조과정>이 있는데, 역자는 그 저자를 '장 콕토'라고 옮겨 놓았다(86쪽 등). 터무니없는 오류인데, 'Dostoevsky and the Process of Literary Creation'란 연구서의 저자는 저자는 자크 카토(Jacques Catteau)이다. 원저는 불어이며, 저자 로즈 밀러는 영역본(캠브리지대 출판부, 1989)에서 인용하고 있다(원저는 불어권에서 나온 가장 유명한 도스토예프스키 연구서이다). 또 135쪽에서 <도스토예프스키 읽기(Reading Dostoevsky)>의 저자이자 저명한 러시아문학 연구자인 'V. 테라스(Victor Terras)'를 'V. 테릿'이라고 옮긴 것도 오류이다. 아울러 본문에서 거명된 연구문헌들의 국역본이 참고문헌란에서 많이 누락돼 있는 것은 아쉽다. 요즘처럼 정보검색이 편리한 시대에 이런 누락이 발생하는 것은 그저 성실성의 문제일 뿐이다.

이런 류의 가이드북을 읽으면서 내가 염두에 두는 것은 '만약에 내가 이런 책을 쓴다면'이다. 물론 관건은 분량이며, 얼마만큼 핵심을 압축해서 전달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물론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해서라면 훨씬 두툼한 분량의 책을 써야하겠지만(나의 장기적인 목표는 2021년이다. 작가 탄생 200주년이 되는 해). 거기에 힌트가 될 만한 사항 하나. 92쪽에서 '자크 카토'를 인용하고 있는 대목: "문학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고상한 인물들 중에서도 돈키호테는 가장 완성된 인물이다. 하지만 돈 키호테의 고상함은 그가 동시에 우스꽝스러운 인물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동시대 작가 투르게네프에게서 돈키호테가 햄릿과 함께 인물의 두 전형이었다면, 도스토예프스키에게서 돈키호테의 짝은 그리스도이다. 그는 그리스도의 '고상함'과 돈키호테의 '우스꽝스러움'을 동시에 구현하고자 했던, 세계문학사에서 아마 유례가 드문 작가이다. 물론 <백치>의 주인공 미슈킨(므이슈킨) 얘기이다. 사실,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자체가 진지함과 우스꽝스러움의 결합체이긴 하다. 그런 의미에서 도스토예프스키는 세르반테스 이래의 산문문학 전통을 계승하고 있기도 하다. 그 전통을 가까이로는 고골로부터 이어받고 있는 것이기도 하고. 나는 그러한 전통을 '파토스(pathos)의 문학'에 견주어 '바토스(bathos)의 문학'이라고 부르길 좋아한다.  

내가 '바토스'란 단어를 처음 본 건 나보코프의 <러시아문학 강의>에서였던 듯한데, 그는 고골 문학의 특이한 정서를 '바토스'란 말로 표현했다. '돈강법'이라고 옮겨지는 바토스는 "점차로 끌어올린 장중한 어조를 갑자기 익살스럽게 떨어뜨리기"란 (음악)기법을 뜻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파토스'에 상응하는 폭넓은 뜻으로 새기며, 그때 바토스는 고양된 정념과 익살의 혼종을 뜻하게 된다. 그리고 내가 경애해마지 않는 것이 세르반테스에서 고골로, 도스토예프스키로 이어져오는 바로 그러한 '바토스의 문학'이다.   

세르반테스와 같은 스페인어권에서 그러한 바토스를 가장 숭고하게 구현하고 있는 작품이 멕스코 영화의 거장 아르투로 립스테인의 <짙은 선홍색>(1996)이다(나는 지난 세기에 한 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봤는데, 이 영화가 아직 국내에 소개되지 않는 것은 상당히 미스테리한 일이다). '내 인생의 걸작' 중 한편인데, 내용을 살짝 퍼오면 이렇다.

"뚱뚱하고 볼품없는, 게다가 입에서는 심한 구취까지 나는 간호사 코랄은 두 아이를 가진 과부다. 누군가의 관심이나 호감을 끌지 못하는 코랄. 그렇지만 누구 못지 않은 열정과 낭만을 내면에 갖고 있는 욕구불만의 여자다. 잘생긴 영화배우 샤를르 브와이에를 연모하는 코랄은 어느날 잡지에 실린 사교란에 자칭 샤를르 브와이에를 닮은 남자라는 니콜라스의 광고를 보고 가슴이 부풀어 편지를 쓴다. 샤를르 브와이에처럼 우아하고 매력적인 스페인 신사 니콜라스의 방문을 받은 코랄, 그녀는 한눈에 사랑에 빠져버린다. 그러나 실상 그의 정체는 빈털터리에다가 대머리를 감추기 위해 가발을 쓰고, 엉터리 스페인 억양을 흉내내어 돈많고 홀로사는 여자들을 꼬셔 돈을 뜯어내는 삼류 제비였다."

"뚱뚱하고 못생긴데다가 재산도 없고 두 아이의 엄마인 코랄은 당연히 니콜라스의 표적이 될 수 없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갈 차비마저 없는 빈털터리인 니콜라스는 코랄과 하룻밤을 보내고는 그녀의 지갑을 훔쳐서 달아난다. 그리고는 이내 그녀에 대해서는 잊는다. 그러던 어느날, 코랄이 두 아이를 데이고 니콜라스를 찾는다. 당황한 니콜라스는 그녀의 청혼을 단호히 거절하고 코랄에게 엄마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라고 충고한다. 실망한 코랄은 니콜라스가 자신의 아이들 때문에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그길로 두 아이를 고아원 앞에 버리고 니콜라스의 집으로 돌아온다."(코랄이 엉엉 울면서 사랑을 위해 두 아이를 고아원에 버리는 장면은 압권 중의 하나이다.)

"니콜라스가 외출한 빈 집에서 코랄이 발견한 것은 자신과 똑같이 수많은 여자들에게서 온 편지와 사진, 그리고 NO가 그려진 자신의 편지였다. 코랄은 니콜라스의 과거의 의문스러운 약점을 잡아 니콜라스를 꼼짝 못하게 하고는 진심으로 사랑을 고백한다. 아이까지 버리고 자신만을 사랑한다는 코랄의 광적인 사랑에 감동받은 니콜라스는 그녀를 받아들이기로 한다. 이제 둘은 동업자가 된 것이다. 코랄은 니콜라스의 사업이 번창하도록 돕기로 하고 표적이 될 여자들을 직접 고른다. 그러나 사업이 무르익어 갈때마다 질투심에 눈이 먼 코랄은 순간적으로 살인을 저지르곤 한다. 이제 그들은 단순한 동업자가 아닌 피로 맺어진 불안하고 광적인 사랑의 동반자가 된 것이다." 결국은 형장에까지 이르게 되는 이 커플의 엽기 살인행각을 따라가는 로드무비가 <짙은 선홍색>이다. 그리고 그런 게 내가 말하는 '바토스의 영화'이다.

 

 

 

 

또 다른 사례로 가령 낭만적 동경의 상징인 '푸른 꽃'의 경우는 어떤가? 나는 그 동경의 대상을 '푸르죽죽한 꽃'으로 변형시킨 시를 써보기도 했는데, 이런 식이다.    

  푸른 꽃향기에 나는 중독 되었구나 나는 눈이 멀었구나

  그대 살을 맞댄 자리에 이렇듯 깊이 박힌 대못이여, 내 몸의 가시여, 횡재여

  어느 입에 발린 사랑이 또한 나를 놓고 통곡을 하랴, 가슴을 치며, 물 말아먹으며

  마음의 일용할 양식을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바대로 다 가져가리니

  가시를 묻은 자리에 피어나는 꽃들이여, 가시나무 꽃들이여

  너희의 다복한 일상에 어찌 찔리는 바 없지 않으랴

  우리가 서로를 아파하고 아프게 하며 이렇게 살아가는 음풍농월에 지화자,

  언젠가 햇빛 짱짱한 날에 백마 타고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에서 우리를 

  개 패듯이 패리니

  그날에 마치 짙푸른 깻잎처럼 다시 푸르게 피어날

  목숨의 향연이여, 인과(因果)의 향연이여, 푸르죽죽한 꽃향기여!

 

여기엔 물론 노발리스의 '푸른 꽃', 이육사의 '광야', 니체의 '초인'의 어구나 이미지들이 혼종돼 있으며 그러한 혼종을 통해서 의도하는 효과가 '바토스'이다. 이 바토스는 파토스를 부정하면서도 보존한다는 점에서 변증법적 지양의 한 문학적 등가물이기도 하다. 언젠가 보다 체계적인 '바토스의 시학'에 바탕을 둔 도스토예프스키론을 쓰고자 한다. 그것이 내 인생의 한 목표, 즉 '푸르죽죽한 꽃'이다...

 

05. 1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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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망치고 조직 말아먹는 '왕따 상사'가 혹시 나?

송동훈기자 dhso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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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따 상사
A상사의 핵심 임원인 ‘나홀로’ 상무가 주재하는 회의는 항상 침묵이 맴돈다. 솔직한 의견을 내보라고 아무리 독려해도 부하직원들은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다. 회식자리에서 직원들은 앞다투어 나 상무와 떨어져 앉으려고 하고, 나 상무가 나타나면 신나게 떠들던 직원 간의 대화도 뚝 끊어진다. 나 상무는 이런 상황을 ‘자신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건 착각! 사실 나 상무는 직장 내 ‘왕따 상사’다.

◆일반화되는 직장 내 왕따현상

‘왕따’는 더 이상 학생만의 고유 영역이 아니다. 이미 직장 내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취업 포털사이트 ‘사람인’이 지난 5월 직장인 3102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직장 내 왕따가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42.1%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왕따의 대상이 될까. 사람인 조사에 따르면 왕따 유형을 묻는 질문에 대답한 1307명 중 절반 가까운 48.7%(636명)가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을 ‘왕따 1순위’로 꼽았다. 성격적으로 장애가 있는 사람(20.3%), 상사에게 잘 보이려고 지나치게 아부하는 사람(19.7%), 일을 너무 못하는 사람(8.3%)도 왕따 리스트에 올랐다.

◆더 위험한 ‘상사에 대한 왕따’

그러나 정작 더 큰 문제는 ‘나홀로 상무’처럼 상사가 부하직원으로부터 왕따당하는 경우다. LG경제연구원 강승훈 선임연구원은 “의사결정의 주체인 상사가 부하직원들로부터 소외되고 따돌림당하면 의사결정의 질이 저하되고, 구성원의 이탈이 발생하며, 조직의 실행력이 저하되는 등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강 연구원은 이번주 ‘LG주간경제’를 통해 왕따당하기 쉬운 상사의 유형을 ?인(人)의 장막형 ?일벌레형 ?햄릿형 ?폭군형 ?세대착오형으로 구분하고 이를 예방할 수 있는 상사의 바른 행동 방식을 제시했다. 인의 장막형이란 ‘내 사람’이라고 믿는 부하만을 가까이 하는 상사를 뜻한다. 이 경우 몇몇 특정 부하와의 의사 소통은 유지되겠지만, 나머지 구성원과는 유리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회식자리에서까지 일 얘기만 하는 일벌레형 상사도 부하로부터 소외되기는 마찬가지. 부하에게 심한 압박감을 주기 때문이다. 분명한 지침 없이 과제를 부여하고 그 결과에 대해서는 비판만 하는 햄릿형 상사, 강압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의견이나 방식만을 최선이라고 주장하는 폭군형 상사, 젊은 부하직원의 문화를 이해하려는 노력 없이 노골적으로 그것에 반감을 표시하는 세대착오형 상사도 왕따당할 가능성이 높다.


강 연구원은 “부하직원에게 왕따당하지 않으려면 자신에 대한 쓴 소리를 달게 듣고 부하들의 고충을 진지하게 들어주는 상사, 업무에 있어서 분명하고 구체적인 지침을 내리고 덕과 이해로 조직을 이끌려는 상사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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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5-11-29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회사는 오로지 햄릿형 ㅎㅎㅎ.
처음 부터 끝까지 우리가 다 하고.. 머리통들은 딴지만 걸어요 ㅎㅎㅎ

stella.K 2005-11-29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힘들겠습니다. 저는 저의 대빵이 인의 장막형을 보이고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