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탁환의 '책과 램프 사이'] '완월회맹연'

잊는 즐거움을 느끼다
김탁환·소설가
 
대하소설의 시대는 가버렸다고 한다. 두 권도 많고, 한 권을 내더라도 독자들 구미에 맞도록 하드커버에 경(輕) 장편으로 가라는 것이다. 나는 파란만장한 삶을 풍부하게 담는 대하소설을 쓰고 싶다. 스물여덟 살 늦가을 ‘완월회맹연(玩月會盟宴)’이란 소설을 읽은 후 굳힌 결심이다.

‘완월회맹연’은 반만년 역사를 통틀어 이 땅에 지어진 이야기 가운데 가장 긴 작품이다. 프랑스에 발자크의 ‘인간희극’이 있고 러시아에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가 있다면, 우리에겐 180권 180책의 ‘완월회맹연’이 있는 것이다. 하루에 한 권씩 독파해도 꼬박 여섯 달이 걸리고 두 번 읽으면 한 해가 저문다. 완월대에서의 혼약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그린 결 고운 연애소설이자 천상의 운명이 유장하게 펼쳐지는 역사소설이기도 하다.

‘완월회맹연’을 둘러싼 망각은 두 겹이다.

먼저 이 작품은 한국소설사에서 사라진 부분을 꼬집는다. 조선 후기에 등장하기 시작한 대하소설은 ‘완월회맹연’ 외에도 ‘임화정연’, ‘명주보월빙’, ‘윤하정삼문취록’, ‘명행정의록’ 등이 50권을 넘고, 속편이나 파생작까지 살피면 작품의 스케일과 독자의 관심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완월회맹연’을 읽는 내내 문학판 벗들에게 이 작품을 소개했지만 되돌아오는 눈빛은 차디찼다. 낯선 제목에 고개를 갸우뚱거리거나 혹시 그 작품이 중국이나 일본의 번역물이 아니냐는 물음을 던지기도 했다. 판소리계 소설이나 군담소설에만 익숙한 그들에게 웅숭깊은 조선시대 대하소설이 믿기지 않는 모양이다. 버젓이 존재하면서도 잊혀지는 것은 정말 서러운 일임을 그때 처음 알았다.

둘째, 이 작품은 소설 읽기에서 망각이 지닌 독특한 맛을 선사한다. 스물여덟 살 그 늦가을 ‘완월회맹연’을 완독한 후 짧은 논문이라도 쓰려고 줄거리를 정리했다. 우중충한 저녁에 이미 나는 소설의 상당 부분을 잊고 있었다. 등장인물과 사건은 뒤죽박죽 섞이고 100권에서 잠깐 나왔던 인물을 앞에서 찾아내느라 밤을 꼬박 새우기까지 했다. 문득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이 소설의 참다운 독법은 기억하는 고통보다 잊는 즐거움이 아닐까. 소설이 인생을 가장 많이 닮은 예술이라면, 기억과 망각이 부부처럼 어우러진대도 탓할 일이 아니다.


▲ 김탁환·소설가
서른여덟 살 늦가을, ‘완월회맹연’에 관한 논문을 심사하느라 며칠을 끙끙대고 있다. 작품분석에 사용한 장면들이 떠오르지 않아서였다. 책장 위 구석자리 먼지 앉은 소설책을 꺼내 폈다. 색색가지 밑줄과 들쑥날쑥한 메모가 10년 전 이 책을 읽으며 감(感)하고 동(動)하는 얼굴과 함께 튀어나왔다. 아, 지금의 나는 이 감동을 모두 잊은 ‘나’였다. 그리하여 나는 망각을 기억하는 책 ‘완월회맹연’을 다시 읽기로 작정했으며, 기억하는 속도보다 잊혀지는 속도가 빠른 멋진 작품도 하나 만들고 싶어졌다. 대하소설의 시대가 가버렸대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