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류화선yukineco@gmail.com
한국의 대표작가 신경숙, 공지영, 김훈과 만나는 지리산 문학캠프가 2006년 8월 24일에서 26일까지 지리산에서 있었다. 지리산 문학캠프는 YES24가 주최한 ‘네티즌 추천 한국의 대표작가 - 노벨문학상 후보를 추천하세요’의 후속 행사로, 2004년에서 2006년까지 ‘차세대 노벨문학상 후보’ 1위로 뽑힌 김훈(1회), 공지영(2회), 신경숙(3회)과 독자들이 만나는 자리였다. 낮에는 지리산 주변을 관광하고, 밤에는 작가를 만나 문학과 인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우리들의 행복한 2박 3일이었다.

섬진강은 지리산을 안고 흘러간다

버스는 섬진강변을 달리고 있었다. 차 재배지에 걸맞게 섬진강 주변 지역은 해가 쨍하게 빛나다가도 갑자기 안개가 사위를 감싸고, 구름이 낮게 깔리면서 비를 뿌려댔다. 강은 천천히 제 갈 길을 가고, 산은 뭉글뭉글 구름을 피어 올린다. 쌍계사에 도착할 즈음 소나기가 한차례 내렸다 그쳤지만 여전히 날씨는 후덥지근했다.

쌍계사는 절 양편으로 계곡이 흐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신기하게도 아무리 비가 많이 와 물이 불어도 절 쪽으로 물이 넘치지 않는다고 했다. 그곳 출신인 문화재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절 구석구석을 구경했다. 대웅전이 공사 중인 점이 아쉬웠지만, 미소 지은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운 마애불과 꽃담의 소박한 아름다움이 각별했다.

대웅전 앞에는 진감선사대공탑비(국보 47호)가 서 있다. 최치원이 글을 짓고 쓴 것으로 유명한 비석이지만, 이 고장 사람에게는 6.25와 지리산 빨치산으로 기억되는 비석이다. 폭탄을 맞아 여기저기 갈라졌고, 표면에는 총알 자국이 아직도 선명했다. 빨치산이 가져간 재봉틀을 가져오기 위해 쌀을 이고 갔다는 할머니, 가족들 중 죽지 않은 자가 없었던, 그 두려웠던 시절에 대한 기억, 불과 10여년 전만해도 타지 사람들이 이곳 사람들과 혼인을 하려 하지 않았다는 말이 가지는 한스러운 여운까지. 지리산이 품은 슬픈 역사는 여전히 그 그림자를 드리워놓고 있었다.

 

 
첫날밤, 신경숙 작가와의 만남

뚫어져라 쳐다보는 독자들의 시선이 다소 부담스러웠나 보다. 수줍은 표정으로 마이크 앞에 앉은 작가는 무지개 이야기로 운을 떼었다. “여기에 오는 길에 오랜만에 무지개를 봤어요. 사진기가 없어서 눈에 담았습니다.” 시간은 어떻게 보내든지 흘러간다, 시간을 잘 보내는 것은 기쁘게 보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그러니 문학캠프에 모인 모든 분들이 마음을 열고 함께 하는 시간을 충만히 보냈으면 좋겠다는 말로 인사말을 마무리한 후, 나직한 목소리로 그녀의 작품 『종소리』를 낭독하기 시작했다.

「당신은 돌아온 새 같다. 이젠 어디에나 깃들일 수 있는 새 같다. 낯선 새 한 마리가 세면장 창틀에 집을 짓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 건 당신이었다.」로 시작되는 단편 소설 『종소리』는 가장 가깝게 있으면서도 진정 하고 싶은 이야기는 하지 못하고, 진정 들어야 하는 이야기를 듣지 못하는 부부의 이야기다. 소설을 읽다가 중간 중간 쉬면서, 각 부분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편하게 털어놓았다. 언제 작품을 썼는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 작품을 쓰면서 있었던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무엇이었는지, 조곤조곤 이야기를 해주었다.

작가의 목소리가 작품과 꼭 어울리라는 법은 없지만, 신경숙 씨의 목소리와 그녀의 소설은 썩 잘 어울렸다. 귀 기울여 듣지 않으면 놓쳐버리는 섬세한 문장들을 그녀의 나직한 목소리로 듣는 것은 색다르고도 소중한 경험이었다.

『종소리』는 우연히 들은 이야기가 소설이 되었다. “찻집에서 있다가 보면 옆 사람이 하는 이야기가 들릴 때가 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나의 감정선을 건드리는 이야기가 있죠. 그런 것들을 소설로 써요. 『종소리』도 옛 직장을 찾아오는 회사원이 있다는 이야기를 우연히 듣고 쓴 것입니다. 그 한마디를 듣는 순간, 인간의 이러저러한 면이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갔어요. 사무실에 갇힌 남자, 그 반대편에 있는 여자, 그 위에서 굽어보고 있는 새. 그리고 그 새를 통해 자유를 얻어가는 과정이 떠올랐어요.”

남편은 크론키드카나다라는 희귀한 병을 앓는다. 그런데 이 병에 걸린 후, 부부관계는 오히려 회복될 기미를 보인다. “불행이 온 후, 그 불행 앞에 서면서 자기 삶을 돌아보고 잃어버린 것을 되찾게 되는 거예요. 살다가 보면 나도 나를 용서할 수 없는 순간이 있어요. 저는 그 순간에 문학이 있는 것이 아닐까, 그 지점을 넘어설 수 있는 것이 인간의 위대함이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신경숙 작가에게 궁금한 것 몇 가지

『종소리』를 읽고 나서 독자들의 질문에 작가가 대답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작가도 독자도 처음엔 수줍어했지만 금방 여기저기서 손이 올라갔다. 왜 작가가 되었는지, 작품을 쓸 때 혹시 독자들이 이해하지 못할까 두렵진 않았는지, 작가 말고 하고 싶은 일은 없었는지, 소설을 쓸 때 특별한 습관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지리산 문학캠프에서 만난 작가 신경숙
“저는 책을 읽으면서 자랐고, 책을 쓴 사람에 대한 외경심 때문에 작가가 되었어요. 지금도 과정에 있는 사람이고, 누군가가 쓴 작품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미래에 있다’고 대답합니다. 작품을 쓸 때는 쓰는 것만으로 벅차 읽어줄 사람은 생각할 여유가 없어요. 여러분과 나 사이에 소설이 있다, 독자에 대해선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녀를 문학 독자에게 널리 알린 첫 번째 작품집 『풍금이 있던 자리』는 ‘뜻밖의 성공’을 거둬 다음 소설을 쓸 수 있는 여유와 소원이었던 넓은 책상을 선사했다.

“서른이 되기 전에는 다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마음이 들떠 있잖아요. 저도 서른이 되기 전, 충분히 시간을 들여서 문학에 대해 고민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여동생에게 1년 동안 보살펴 달라고 부탁하고, 1년 동안 단편소설 여섯 편을 썼어요. 그 단편 소설들이 『풍금이 있던 자리』에 실린 작품들입니다. 일년 동안 실컷 작품을 썼으니 직장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는 와중에 출판사에서 책을 더 찍어야겠다고 연락이 왔어요. 책을 낸지 일주일 만이었어요. 그 책이 잘 팔려서 저는 직장으로 돌아가지 않고, 계속 소설을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웃음).”

신경숙 작가는 작품을 쓰려고 책상으로 가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렇지만 일단 리듬을 타기 시작하면 끝을 낼 때까지 기본적인 생활만 해결하면서 글쓰기에 몰두한다. “그래서 많은 인간관계들이 끊기고 연애도 충분히 못해봤어요. 글 쓸 때 버릇이라면, 청소를 하고 깨끗한 상태에서 글쓰기를 시작합니다. 글을 쓸 때는 약속도 안 만들고, 글쓰기와 상관없는 일은 하지 않아요. 아, 그리고 틈만 나면 손을 씻는 버릇이 있어요. 머리는 절대 안 감으면서.(웃음)” 그러면서 글쓰기에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이 자기 자신일 때가 많다고 덧붙였다.

문학을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독자에게 싸인하는 신경숙. 손톱에 들인 봉숭아꽃물이 곱다
문학캠프에 참가한 사람들은 대부분 80년 이후에 태어난 젊은 사람들. 문학에 진지하게 도전하고자 마음먹은 사람도 있을 터였다. 그런 예비 작가에게 신경숙 씨는 몇 가지 소중한 충고를 했다. 작품을 시작하면 무조건 완성시켜라, 그리고 좋은 작품을 많이 읽어라가 바로 그것이다.

“작품을 쓰기 시작하면 말이 되든 안 되든 일단 끝을 내야 합니다. 중단하고 포기하면 계속 중단하고 포기하게 되니까요. 자꾸 쓰다보면 ‘이것이 소설인가 보다’는 느낌이 옵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작품을 읽어야 해요. 소설가 지망생들의 원고를 읽을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제가 받은 느낌은 책을 별로 읽지 않았구나, 하는 것이었어요. 좋은 작품을 많이 읽어야 하는 것이 작가의 세 번째 덕목쯤은 된다고 생각해요. 독서는 인간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하니까요.”

그녀 역시 작품을 쓰지 않을 때는 항상 책을 읽고 있다고 했다. 머리가 왠지 느슨해졌다고 생각하면 어렵고 잘 안 읽히는 책에 도전한다. 그림책과 시집은 항상 뒤적거리고 있다. “대학생이라면, 계절별로 독서계획을 세우는 것도 좋을 겁니다. 한 계절 동안 관심 있는 주제의 책을 샅샅이 찾아서 읽어보는 시간을 가지는 거죠. 그런 것이 쌓이면 책을 고르는 안목이 생겨요. 한 작가의 작품을 죄다 찾아서 읽어보는 것도 권할 만 해요. 모든 작품을 읽다보면, 그 작가가 표현하려고 했던 세계를 자기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됩니다.” 그녀 역시 문학을 공부하던 시절, 이청준, 조세희, 최인훈 등 선배 작가들의 작품을 모두 찾아 7~8번씩 되풀이해서 읽고, 노트에 옮겨 적기도 했다.

책의 미래, 독서의 미래가 어둡게 점쳐지는 오늘, 그녀는 독서의 가치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영화와 같은 영상물은 그 자리에 그냥 있기만 하면 되요. 영화관에 가서 2시간만 앉아 있으면 영화를 다 보게 되죠. 책은 그렇게 할 수 없어요. 한 줄을 이해하지 못하면 다음 줄로 넘어갈 수 없고, 한 페이지를 이해하지 못하면 다음 페이지로 넘어갈 수 없으니까요. 책 한 권을 다 읽는다는 것은 그래서 영화 한 편을 다 본 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인 거예요. 자기 눈으로 짚어가며 한 줄 한 줄 겪어나간 경험의 총합이 독서니까요.”

노고단에 올라 구름과 함께 밥을 먹다

지리산 문학캠프의 하이라이트라고 할만한 노고단 산행이 있는 둘째 날이다.

버스는 먼저 화엄사로 향했다. 화엄사는 산악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 도전하고 싶어 하는 지리산 정통종주코스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일주문, 사천왕문, 불이문, 탑을 지나 법당에 이르는 과정은 세속의 번뇌를 씻고 부처님의 세계로 들어가는 과정이다, 대부분의 절은 일주문에서 대웅전까지가 일직선으로 이어져 있지만, 화엄사는 특이하게도 일주문에서 비스듬한 위치에 대웅전이 있는, 태극 문양을 닮은 배치를 하고 있다는, 가이드분의 설명을 들으며 경내에 들어섰다.

시간의 흐름에 저항하지 않는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일주문에 들어서는 순간 저 멀리 웅장한 대웅전이 한 눈에 보이면서 찾아온 이를 압도하는 절들과는 다르게, 화엄사는 한걸음, 한걸음 다가갈 때마다 제 모습을 하나씩 보여준다. 조용히 나이를 먹어가는 절, 빛바랜 단청은 소박한 나무빛깔에 가까워져 간다. 어느 것 하나 들떠있는 구석이 없이 새벽처럼 맑은 기운을 뿜어낸다. 절을 감싸고 있는 계곡에서 흐르는 물소리가 유난히 시원했다. 절구경은 접어두고 계곡에 앉아 발이라도 담그고 싶을 만큼.

각황전 뒤쪽으로 난 산길을 따라 올라가면 사사자삼층석탑이 있다. 이름대로 사자 네 마리가 위층 기단에 기둥처럼 서 있다. 왜 사자인지 궁금해 절에 계시는 보살님에게 여쭈어 보았다. “사자후라는 말이 있잖아요.” 사자는 부처님을, 지혜를 상징하는 동물이란다. 사자를 탑 사방에 세워둔 것은 부처님의 진리가 사방에 넘침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신다.

성삼재 휴게소에 도착해 도시락과 얼린 물, 비옷을 나눠받고 노고단을 향해 올라가기 시작했다. “중간에 쉬지 말고, 속도도 늦추지 말고, 무리하지 않으면 누구나 다 올라간다”고 가이드는 호언장담했지만, 산행은 만만치 않았다.

가장 힘들었던 코스는 노고단 대피소에서 노고단까지 오르는 오르막길. 가이드가 ‘노고단 대피소’가 보이면 절반 온 것이라고 한 것은 단순히 거리의 절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올라가면서 알게 되었다. 약 350m 정도 밖에 되지 않는 거리지만, 시종 완만한 오르막과 평지가 이어지다가 막판에 등장하는 오르막은 지친 사람의 기를 꺾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체력이 없다면 오기로, 다들 기어서 올라가든 끌려서 올라가든 노고단에 도착했다.

그리고 만난 노고단. ‘진짜’ 노고단은 개방 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어 올라가지 못했지만 구름에 싸여있는 지리산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산행을 마치고, 피아골의 한 야영장에서 퀴즈 이벤트를 가졌다.

 

둘째 날 밤, 김훈 공지영 작가와의 만남

단상에 나란히 앉은 두 작가는 간단하게 인사말을 했다. 김훈 작가는 다소 무뚝뚝한 목소리로, “작가는 혼자서 글 쓰는 사람인데, 여러 사람 앞에서 말을 하려니까 두려운 마음이 듭니다.”라고 하며, 앞으로 글을 정말 똑바로 써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김훈 작가의 뒤를 이어, 공지영 작가는 “생애 네 번째 등산을 오늘 여러분과 했습니다. 세 번째는 작년 문학캠프의 금강산이었지요.” 라고 이야기하면서, 즐거운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라는 말로 인사를 맺었다.

첫날밤과 마찬가지로 먼저 작가의 작품 낭독이 있었다. 공지영 작가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의 두 번째 장을 낭독했고, 김훈 작가는『강산무진』에 실린 ‘화장’이라는 단편 소설을 조금 낭독했다.

작품 낭독이 끝난 후, 각각 읽은 부분에 대해 짧은 이야기를 덧붙였다. 먼저 공지영 작가. “제가 읽은 부분은 유정이 모니카 고모의 임종이 가까워졌다는 소식을 듣고 차를 운전하여 가는 장면입니다. 저는 소설의 첫 부분에 상징적인 것을 넣으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이 부분의 경우, 하늘과 땅의 경계, 어둠과 빛에 관한 이야기, 어떤 것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통해 어떤 만남이 진정한 사랑을 통한 것이었다면 거기엔 신과 영혼이 존재한다는 것을 첫 부분에 암시하고 싶었어요.”

작품의 한 장을 다 읽은 공지영 작가와 달리 김훈 작가는 「당신의 이름은 추은주(秋殷周). 제가 당신의 이름으로 당신을 부를 때, 당신은 당신의 이름으로 불린 그 사람인가요.」로 시작되는 장의 두어 단락쯤 읽다가 “이쯤 읽고 말지요.”라고 낭독을 마치고는 “‘화장’은 이른바 사랑이라는 것의 아득함에 대해 쓴 글입니다. 그 아득하고, 부옇고, 손으로 만질 수 없는 것은 우리를 절망케 합니다. 손으로 만질 수 없기에 우리는 이름을 부릅니다. 그러나 말이라는 것은 얼마나 불완전한가요. 사랑이라는 것은 3인칭을 2인칭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지만, 그것이 얼마나 아득한 일인가요. 절망적이기까지 한 일이지요.”라고 작품을 설명했다.


독자와 김훈 공지영 작가와의 만남



활짝 웃고 있는 김훈 공지영 작가


소설 쓰기, 밥벌이의 지겨움

낭독이 끝난 후 독자의 질문이 이어졌다. 첫 질문 ‘왜 작가가 되었는가’에 대해 두 작가는 같은 답을 했다. ‘밥벌이’를 위해서 소설을 쓴다는 것. 먼저 김훈 작가의 대답. “소설은 나에게 밥벌이의 노동입니다. 매우 힘들고 고달픈 노동이지요. 소설로 밥을 먹을 수 없다면 쓰지 않습니다. 다른 일을 찾아보겠지요. 저의 경우 27년 동안 다른 일을 해서 밥을 먹었습니다. 지금까지 ‘이게 아닌데’ 하면서 글을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는 제가 쓴 글이 제가 쓰려고 했던 글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압니다. 그러면서도 출판사에 넘겨야 합니다. 그런 불완전 속에서 살아갑니다. 말할 수 없이 비통하죠. 그것을 견디며 밥벌이의 노동을 합니다.”

공지영 작가도 ‘생계를 위해서 글을 쓴다’고 이야기했다. “저는 식솔들이 많이 딸려서 생계를 위해 글을 써야 합니다. 두 번째 이유는 이것밖에 할 줄 아는 것이 없기 때문이죠. 책 읽고 쓰는 것 외에는 할 줄 아는 것이 없어서, 할 수 있는 글을 좀더 잘 써 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작가라면 자유롭게 살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엄격하게 관리하지 않으면 망할 수밖에 없다. 공지영 작가는 아침에 출근해, 저녁이면 퇴근한다는 생각으로 글을 쓴다. 글을 쓰지 않는 시간이면 책을 읽는다. 슬럼프도 크게 겪은 기억이 없다.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도 그냥 쓴다. 그렇게 쓰다보면 신기하게도 슬럼프가 지나간다고. 특별히 글을 쓰면서 구애받는 것은 없지만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이 나오지 않으면 글을 쓰지 못한다고 털어놓았다. “그리고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70% 완성된 상태에서 글쓰기를 시작하는 버릇이 있어요.”

매일매일 꾸준히 쓴다는 것은 김훈 작가도 똑같았지만, 그 방법은 조금 달랐다. “작가가 자기 통제를 못하면 건달밖에 될 것이 없습니다. 전, 아침에 일어나 연필을 깎으면 예감이 옵니다. 오늘은 두 장 정도 쓰겠구나, 그러면 정말 하루가 끝날 때까지 아무리 애를 써도 두 장 밖에 채우지 못합니다. 안되겠구나 싶은 날도 있죠. 그런 날은 그냥 나가서 놉니다.(웃음)”

대부분의 작가가 컴퓨터를 이용해 원고를 작성하는 요즘, 김훈 작가는 아직도 연필과 원고지를 고집한다. “연필로만 글을 쓰는 것이 저의 못된 버릇인데요. 컴퓨터로 쓰려고 해봐도, 컴퓨터를 만지면 꼭 고장이 나요. 연필로 글을 쓰기 때문에 저는 글이 잘 안 써지면 연필 탓을 합니다. 그리고 나가서 딴 연필을 사옵니다만, 그런다고 글이 잘 써지겠어요.(웃음)”


독자들의 질문에 답변하는 공지영 작가



독자들과 대화하던 중 웃음을 터뜨린 김훈 작가


소설가로 내가 매달리는 테마는 생로병사

한국을 대표하는 두 작가의 학창생활은 어땠을까? 공지영 씨는 중고등학교 때 새침한 학생이었고, 대학교 때는 동기 120명 중 끝에서 세 번째를 할 만큼 공부를 안했다. 김훈 씨는 학교에 대한 좋은 기억이 없다. “지금도 크게 달라진 것이 없겠지만 대학이라는 곳이 사회인이 되기 전에 학생들을 몰아둔 포로수용소 같은 곳이잖아요. 제가 학교 다닐 때는 1년 내내 데모를 하고, 수업은 휴강이고, 학교 문을 닫아 놓고, 최루탄을 쏘고 그랬습니다.”

그는 대학에서 공부가 하고 싶었지만 학교는 도저히 공부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래서 학교를 그만두고 혼자 공부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때 동기들과 선배들이 공부를 포기하고 데모를 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대학을 중퇴했지만 대학을 안나왔다는 것에 대해 아무런 자격지심이 없다. 27년 동안 기자 생활을 했고, 지금은 소설가로 글을 쓰고 있다. 소설가로 그가 매달리는 테마는 ‘생로병사’다.

“나는 인생에 생로병사 외에는 다른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랑’은 병에 속하는 것이 아닐까요.(웃음) 생로병사는 인간의 문제이고, 그것은 합쳐진 것, 한 덩어리일 수밖에 없습니다. 살아감과 죽어감이 완전히 똑같은 것이 아닐까, 깨닫고 있죠. 저의 문학은 더럽고 억압적이고 가엾은 중생들의 세계에 머물고 있습니다.”

기자로서 그는 언론에 대한 검열과 통제 때문에 쓰고 싶은 것을 쓸 수 없는, 그의 표현대로라면 ‘기자로서 자신의 직업적 정신이 썩어문드러진’ 어두운 시절을 보냈다. “저항도 분명 있었지만 모두 다 실패했습니다. 기자로서 전 정당한 기사를 쓸 수 없었습니다. 그런 시대의 문제를 우리가 정리하지 못하고 좌절한 채로 다음 세대-공지영 작가의 세대-로 넘겨 버렸죠.”

데뷔할 때부터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공지영 작가가 말을 이어갔다. “저는 1980년대에 제 문학관이 성립되었습니다. 사회문제를 예리하게 파헤치는 작가가 되자, 그렇게 결심했지요. 그리고 요즘에 와서 세월이 그렇게 흘렀는데 나의 문학관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는가를 고민해 봤어요. 그러면서 사회적으로 의식 있는 작가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최근 사회운동 노동운동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노동운동이나 사회운동은 항상 현시대에 맞추어 바라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무언가를 창조하지 않으면 안 되죠. 살아있는 모든 것은 환경에 맞춰 살아나가지 않으면 죽게 됩니다. 노동운동이나 진보운동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제일 안타까운 점은 새로운 시도가 없어 보인다는 점이죠. 시위문화만 봐도, 정권은 진보적으로 변하고 있는데, 시위하시는 분들은 별로 변한 것이 없잖아요. 그래서 결국 소외되어 버리는 것이 안타까워요.”

한 독자는 김훈 작가에게 ‘나이가 들수록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는지’를 물었다. 거기에 대해 그는 ‘대답할 수 없다’고 말했다. “내년에 제가 60살입니다. 앞으로 서너 편만 쓰고 가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내 속에 소설로 씌어질 이야기가 쌓여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서너 편은 기어코 쓰고 가려고요.” 그러면서 후세가 자신을 작가로 기억할지 아닐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고 이야기했다.

김훈, 공지영이 생각하는 좋은 문장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제한적이다. 언어로 할 수 없는 것이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다. 체험 중에 인간이 묘사할 수 있는 것은 극히 일부분이다. “언어의 한계가 눈에 보이니까, 소설을 쓰는 것도 그렇게 자유로운 것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한국어가 불편해요. 조사 때문에요. 한국어는 조사가 없으면 문장의 의미를 알 수가 없죠. 그런데 이 조사가 몇 개 안되잖아요. 한 움큼도 안 되는 조사를 가지고 살림을 살아야 하니 옹색해요. 조사가 없는 나라에서 살고 싶어요.” 그가 생각할 때 좋은 문장은 조사가 돌출하지 않는 문장이다. “그런 문장을 쓰는 건 아주 힘든 일이죠.”

그에 비해, 공지영 작가는 괴테의 ‘모든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리라’ 같은 문장을 좋은 문장이라고 생각했다. “제가 글을 쓰기 시작할 때는 여성작가가 대거 등장하고, 여성적인 글쓰기가 씌어지던 시기였습니다. 저는 나름대로 문장에 대해 공을 들이는데, 문장에 대해 이런저런 시비가 있었어요. 그런데 언제쯤부터는 사람들이 좋다고 생각하는 문장과 제가 좋다고 생각하는 문장 사이에 간격이 넓다는 것을 알게 됐죠.” 그녀가 좋다고 생각하는 문장은 인생 전체가 ‘찰칵’하고 잡히는 문장이며, 순간적이고 섬광적인 생각을 잡아내는 문장이다. 그녀가 쓰고 싶은 문장은 그렇게 인생 자체를 순간적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는 그런 문장이다.

질문은 독서는 왜 해야 하는지, 문학의 매력이 무엇인지로 이어졌다. 공지영 작가는 ‘오픈북 오픈마인드’라는 말을 하면서, 책을 읽는 것은 나보다 더 나은 사람에게 나를 열어주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김훈 작가는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했다.

“저는 책만 본 세대입니다. 이것은 자랑이 아니라 나의 낙후성을 나타내는 이야깁니다. 흔히들, 책 속에 길이 있다, 이런 말을 많이 하는데, 책 속에 길이 있나요? 책 속엔 글자가 있죠.(웃음) 사실 전 책 속에 길이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설사 책 속에 길이 있다고 해도 그 길이 세상의 길과 연결되지 않는다면 책 속의 길은 있어도 없는 것과 다름없다고, 이 세상과는 상관없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이 세상을 바꾸기가 쉬울까요, 폭탄이 세상을 바꾸기가 쉬울까요? 폭탄이 바꾸기가 쉽습니다. 그렇지만 폭탄이 바꾼 세상은 아무 희망이 없습니다. 책이 세상을 바꾸는 길은 멀고도 아득한 길이지만, 이 길에는 희망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책을 읽는 일은 눈물겹게도 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소한 일에 감동하는 아름다운 사람이 되길

두 작가는 독자들에게 덕담을 하면서 시종일관 웃음으로 가득했던 독자와의 만남을 끝맺었다.

“어떤 사람이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한 스님에게 했답니다. 그러자 스님이 ‘앉아 있을 때 앉아 있고, 걸어갈 때 걸어가는 것이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이 ‘저는 이미 그렇게 하고 있는데요’라고 반문했죠. 그러자 스님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너는 일어서면서 걸어갈 생각을 하지 않느냐’라고요. 사실 저도 지금 이 시간 끝나고 술 마실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만(웃음) 순간순간을 명징하고 열렬하게 살아가세요.(공지영)”

“사소한 일에 감동할 줄 아는 사람, 말할 줄 아는 사람보단 들을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테레사 수녀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는 인류는 잘 모른다. 나는 다만 쓰레기통에 버려진 갓난아이를 사랑한 것이다’ 그 말처럼 개별적인 인간을 사랑하고 보듬어 안았으면 좋겠습니다. 작은 것의 의미를 되새기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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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인생. 2006-09-01 1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이렇게 자세한 글을 처음이예요... ^^
글 잘보고 가요... ^^ 나도 갈껄. ㅠㅠ

stella.K 2006-09-01 1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글 읽고 후회하고 있었습니다요. 나도 갈껄. ㅠ.ㅠ

세실 2006-09-01 2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참으로 멋진 만남이군요. 아 저도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좋은 글 퍼갑니다^*^

stella.K 2006-09-01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한국 소설의 위기] 예전만 못하지만 '소설의 시대'는 계속 된다
1970~1980년대 사회 모순 고발·대하 역사물 '선풍적 인기'
2000년대 더욱 젊어지고 다채로워져 … 개인 이야기가 주류

‘머나먼 쏭바강’은 1970년대의 대미를 장식한 베스트셀러였다. 1978년 계간 ‘세계의 문학’이 주관하는 제2회 ‘오늘의 작가상’을 받은 박영한의 이 장편은 한국군도 참전하여 남의 전쟁 같지 않은 베트남전을 배경으로 한 휴머니즘 소설이다. 실제 체험을 바탕으로 이 소설을 썼던 박영한은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자 전쟁의 고통도 잠시 잊을 수 있었다고 했다. 간행한 출판사(민음사)에 갈 때마다 인세라면서 돈을 주더라는 것이다. 그는 화수분처럼 그런 일이 계속될 것으로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경제적으로 산업화 시대였던 1970년대는 소설적으로도 산업화 시대에 값했다. 1960년대까지는 수천 부만 팔려도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올랐는데, 1970년대에는 5만부 이상으로 그 기준이 올라갔다. 그때의 베스트셀러가 최인호의 ‘별들의 고향’(1973), ‘도시의 사냥꾼’(1977), 조선작의 ‘영자의 전성시대’(1974), 조해일의 ‘겨울 여자’(1977) 등 이른바 호스티스 소설에 국한된 현상이었다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 황석영의 ‘객지’(1974),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1976),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1978), 한수산의 ‘부초’(1977), 박완서의 ‘휘청거리는 오후’(1977), 이병주의 ‘낙엽’(1978), 이청준의 ‘잔인한 도시’(1979)와 같이 사회의 구조적 모순이나 산업사회의 문제적 국면을 예리한 산문정신으로 파고들었던 다수의 뛰어난 작품들이 베스트셀러가 되었기 때문이다.

▲ '한국 문학의 산실'이라 불리는 출판사 '문학동네'가 펴낸 소설 작품들

이 목록에는 황순원의 ‘움직이는 성’(1973), 이청준의 ‘소문의 벽’(1973), 최인훈의 ‘광장’(개정판·1973), 이제하의 ‘초식’(1974), 윤흥길의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1977), 이병주의 ‘지리산’(1978), 홍성원의 ‘광대의 꿈’(1978),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1979), 김성동의 ‘만다라’(1979) 등등 우리 소설사를 빛낸 다수의 작품도 추가될 수 있다.

정치적 억압과 자유, 경제적 질곡과 평등, 분단 상황과 초극, 거친 실존적 조건과 불안, 여성성 등 당대의 중심 가치들을 산문정신이 가로지르며, 시대를 고뇌하고 인간다운 삶을 고민하는 독자들과 더불어 의미 있는 소통을 하면서 당당하게 ‘소설의 시대’를 열었던 것이 1970년대의 풍경이었다.

‘시(詩)의 시대’로 출발한 1980년대에도 ‘소설의 시대’는 그치지 않았다. 역사와 현실과 문화에 대한 폭넓고 깊은 성찰의 이야기들이 줄곧 그 시대의 이야깃거리로 관심을 끌었고 문화적으로 의미있는 화두가 되었다. 1970년대 말에 나온 ‘지리산’ ‘만다라’ ‘사람의 아들’이 줄곧 베스트셀러를 이어갔고 ‘젊은 날의 초상’(1982), ‘영웅시대’(1985),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1987) 등 일련의 이문열 소설들이 독자의 폭넓은 사랑을 받았다.

1980년대 초반에는 어두운 시대 상황과 관련하여 황석영의 ‘어둠의 자식들’(1981), 이동철의 ‘꼬방동네 사람들’(1981), 김홍신의 ‘인간시장’(1981), 김신의 ‘대학별곡’(1983) 등이 관심을 끌었다.

대하소설이나 역사소설에 대한 독자의 폭넓은 지지 또한 1980년대의 풍경이었다. ‘남과 북’(홍성원), ‘불의 제전’(김원일), ‘겨울 골짜기’(김원일), ‘태백산맥’(조정래), ‘영웅시대’(이문열) 등 분단소설과 ‘토지’(박경리), ‘장길산’(황석영), ‘객주’(김주영), ‘타오르는 강’(문순태) 등의 대하 역사소설이 1980년대의 밤을 밝힌 목록들이다.

그런가 하면 한국 사회에서 여성성의 문제를 매우 섬세한 문체와 특징적 어조로 다룬 ‘유년의 뜰’(1981)과 ‘바람의 넋’(1986) 등 오정희 소설을 비롯하여 양귀자, 최윤, 신경숙 등 여성 작가들의 소설이 새로운 서사 지형을 예고했다. 신(新)중산층의 속물 근성을 집요하게 파헤친 ‘짐승의 시간’(1986)을 비롯한 김원우의 소설들과 분단 상황과 현실 문제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 임철우의 ‘아버지의 땅’(1984)이나 이창동의 ‘소지’(1987)도 문제작이었다. ‘마음의 우주’의 풍경을 자유자재로 보여준 박상륭의 실험소설 ‘죽음의 한 연구’(1986), 현실에 대한 타자의 형식으로 실험적인 서사 궤적을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구축한 이인성의 ‘낯선 시간 속으로’(1983)를 비롯하여 최수철의 ‘공중누각’(1985), ‘화두, 기록, 화석’(1987) 등도 1980년대 소설사를 빛낸 실험소설이었다.

전체적으로 1980년대는 10년 내내 지속된 ‘이문열 현상’ 이외에도 매우 다양한 방식의 소설이 독자와 소통하면서 한국 문학의 자산을 튼실하게 다졌던 시대였다. 역사와 분단 상황에 대한 새로운 인식도 새로운 방식으로 폭넓게 모색했고, 노동 해방과 민족 해방에 대한 서사적 염원도 어지간했으며, 중산층이나 여성성에 대한 탐문과 소설의 실험성에 대한 도전도 소설의 시대를 지속시킨 중요한 원동력이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각 방면에서 큰 변화가 있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후기 산업사회 혹은 포스트모더니즘의 도래와 소련의 해체와 동구권 변화 등 세계사적 지각변동 등과 더불어 1990년대는 전혀 다른 시대를 예고하는 듯했다. 특히 포스트모더니즘 경향을 목도하면서 이제 소설에서 ‘영웅시대’는 가고 ‘군웅할거 시대’가 도래하는 것이 아니냐는 예측도 1990년대 초반에 있었다.

과연 그랬다. 문학적으로 일부 주요 작가들에 의해 시대정신과 문학정신이 추동되던 시대는 가고 다수의 작가들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다른 문학을 전개하기 시작한 것이 1990년대의 풍경이었다. 특히 박완서, 오정희, 양귀자, 최윤, 김형경, 신경숙, 공지영, 은희경 등 많은 여성 작가의 작품이 각광을 받아 본격적인 여성소설의 시대를 연 것도 이 시대의 특징이다.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박완서),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양귀자),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고등어’(공지영), ‘깊은 슬픔’(신경숙), ‘새의 선물’(은희경) 등이 장안의 지가를 올렸다. 이청준의 ‘서편제’, 조정래의 ‘아리랑’, 안정효의 ‘할리우드 키드의 생애’, 이인화의 ‘영원한 제국’도 1990년대 독자들의 애호를 받았다. 그런가 하면 문단의 논의와는 별개로 ‘소설 동의보감’(이은성), ‘소설 목민심서’(황인경), ‘소설 토정비결’(이재운),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김진명), ‘베니스의 개성상인’(오세영), ‘아버지’(김정현) 등은 대형 밀리언셀러로 사회학적 사건이 되기도 했다.

요란한 밀레니엄 시기를 거쳐 2000년대가 되었다. 한국 소설은 더욱 젊어졌고 다채로워졌다. 시대정신과 더불어 호흡하던 1970~1980년대와는 달리 개인의 작은 이야기들이 많아졌다. 그야말로 ‘소설’이 되었다.

후기 산업시대, 정보화 시대의 환경과 매체 변화 및 문화 상황의 변화 등 여러 요인이 작은 이야기로서의 ‘소설’의 시대를 부추겼다. 레퍼토리는 다양해졌지만 작은 이야기들은 넓고 깊은 공감대를 확보하기 어렵게 되었다. 독자들의 선호나 독서 태도도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2004년에 젊은 작가 김영하는 문단이 인정하는 유력 문학상 세 개를 한꺼번에 수상하는 영광을 누렸다. 그러나 그는 1970년대 말 박영한 같은 다른 즐거움을 누릴 수는 없었다. 아무리 상을 많이 받고 비평적인 조망을 많이 받아도 그는 ‘2만부 작가’였다. 그러니 출판사에 갈 때마다 인세를 받을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김영하가 “예전에는 소설의 시대가 있었다네”라며 자조적으로 읊조리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그는 즐겁게 소설을 쓴다. 그러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소설의 시대는 계속될 것이다.


우찬제 문학비평가·서강대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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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인생. 2006-08-31 2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외국소설보다 한국소설이 많이 팔려서 우리나라 작가들의 어깨에 힘이
들어갔음 좋겠어요.. ^^ 한국소설 좋아요..~

stella.K 2006-09-01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외국소설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작가들 잘 쓰는 사람은 아주 잘 쓰더라구요. 우리나라 소설도 많이 읽어주긴 해야할 것 같습니다.^^
 

[한국 소설의 위기] "한국 소설 '상상의 날개' 맘껏 펼쳐라"
개인의 일상 ·내면세계 좁히는 작은 이야기만으론 한계

▲ 한 대형서점에서 소설책을 읽고 있는 여성
허황하지 않은 미래 예측이 있을까? 미래 예측은 그것이 현실화하지 못해 허황해지기도 하지만, 당시 통념과는 너무 거리가 멀어 허황한 것으로 취급 당하기도 한다. 소설에 대한 예측 또한 미래 예측의 일반적인 운명을 벗어날 수는 없어 보인다.

그래도 예측이란 것을 해봐야 한다면, 나는 우리 한국 소설이라고 해서 ‘우리 한국’의 관점과 배경에서만 그 앞날을 예측하려는 것은 착오라는 점을 먼저 강조해야겠다. 1980년대 한국 소설, 혹은 1990년대 한국 소설을 전망하는 자리라면 또 모른다. 지금은 서사(이야기) 장르의 변화 과정 가운데서 소설의 앞날을 내다봐야 할 때가 아닌가? 우리 인간이 경험하는 세상을 재현하는 문화 양식이 이야기이고, 이야기 욕망이 인류에게서 소멸될 수 있는 것은 분명 아니다. 그렇지만 소설이 변함없이 인류에게 필요하며 또 영광을 누리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 역할과 영광을 다른 이야기 장르가 맡고 누릴 수도 있으니 말이다.

서사 장르의 역사에서 소설은 근대사회를 배경으로 하여 인쇄술의 도움을 받아 탄생했다. 사회의 보편적 가치 질서를 부정하는 문제적 주인공을 내세워 진정한 가치의 부재를 고발하고 은연중 그것을 희구하게 한다는 점에서 시대와 불화하는 장르라는 인식이 깊다. 하지만 소설이 근대사회로부터 온갖 후원을 받아 영광을 누렸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중세의 로망스(용에게 납치된 공주를 구하는 식의 기사 연애담)와는 달리 구체적 일상세계와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그리는 대중적 문학형식으로 출발해 19세기에는 사회학, 또 20세기에는 심리학을 통해 폭을 넓히고 깊이를 더해 왔으며, 그러는 중에 소설은 고급문학이 되지 않았는가.

그런 어느 순간이었던가? 다른 이야기 장르가 등장해 대중의 눈과 귀를 사로잡기 시작했는데, 영상으로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새로우면서도 어느새 익숙해진 장르로부터 소설이 대중을 되찾아오기는 힘들 것이다. 대중의 마음을 돌리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시도되고 그래서 밀리언셀러가 다시 나오거나 우리 사회에 영향력 있는 발언권을 가진 작가가 문득 나오기도 하겠지만, 대중은 대중이어서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에 좀더 적합한 쪽을 선택하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근원적인 역전은 불가능하다고 단정적으로 말해도 좋다.

아마도 서사 장르의 역사는 영상(현재 시청각)을 중심으로 한 재현을 넘어서서 오감(五感) 전체를 재현해내는 가상현실(시뮬레이션) 같은 쪽으로 펼쳐질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서사 장르의 중심이 옮겨가는데도 소설이 이야기 장르로서 계속 생산·유통될 수 있을까? 소설을 읽고 쓰고 함으로써 형성되는 ‘소설 공동체’가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는 이런저런 문학상을 비롯하여 다양한 형식의 보조 혹은 지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까? 자칫하면 현재의 지원 방식이 소설을 간신히 연명하는 이야기 장르로 만들고 결국에는 박물관에 밀어 넣게 될지 모른다. 활로를 모색하는 동안 외부의 지원도 필요하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우리 삶의 무대가 전지구화하고 테크놀러지의 위력이 날로 더해지는 상황에 대응할 만한 상상력의 개발은 포기하고 안주하도록, 혹은 이즈음 만연한 개인의 일상과 내면세계로 좁혀 들어가는 작은 이야기만이 그래도 살 길이라고 하는 퇴행적 의식을 강화하는 쪽으로 작용해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한 사람의 작가로서 나는 한때 영광을 주었으나 이제는 치욕을 주고 있는 ‘대량생산·대량소비 체제’에 소설이 투정부리는 식이 아니라, 제대로 도전하면서 새로운 대중을 출현시키고 그들과 연대할 수 있는 가능성을 생각해본다. 더불어 그 동안 소설이 근대사회와 한몸이 되어 배척했던 것들에 화해의 손을 내밀면 원군이 되어 주리라는 기대도 하면서.


구광본 문학평론가· ‘소설의 미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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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약국 - 사랑의 상처를 치유하는 언어학자의 51가지 처방전
박현주 지음, 노석미 그림 / 마음산책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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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약국을 읽었다. 그런데 좀 미안한 얘기지만 생각보다 그다지 재미있거나 신선하지는 않아 보인다. 왜 그럴까? 이 나이 먹어서 로맨스는 뭐...하는 시큰둥함일까? 아님 저자가 말하려 하는 게 그다지 가슴까지 안 와닿아서일까? 여하튼 난 좀 지루했다.

하지만 이 나이 먹어서 로맨스 어쩌구 하는 게 우습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불륜만 아니라면) 로맨스는 어느 나이대를 막론하고 다 있을 수 있으며 다만 그 나이대마다 양상을 달리하는 것뿐이이지 않는가? 인생 어느 때고 사랑이 중요하지 않은 때가 어디있단 말인가. 

이 책을 읽고나니, 어느 노래가 생각이 난다. 사랑은 원한다고 해서 오는 것이 아니며, 잡는다고 해서 떠나가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조금은 처량맞은  가사의 노래가.

확실히 이 책은 현재 사랑하고 있는 연인들을 위한 책은 아니고, 사랑을 잃은 사람을 위한 책인 것 같다. 사랑하고 있을 땐 몰랐는데, 사랑이 지나고나니 이런 것이었어 하며 자조도 하고 스스로 위로하기 위함은 아닐까?

근데 책은 51가지 처방전을 제시한다고는 하지만, 진단은 있으나 왠지 처방전까지는 말하고 있는 것 같아보이진 않는다. 그냥 이거는 이런 거야, 라는 식의 진단과 약간의 조언 정도? 하지만 51가지나 된다니, 왠지 사랑이 더 이상 신비스럽지 않아 보인다.

몇가지로든 얘기되어 질 수 있는 있다고는 하지만, 사건마다 양상마다 사랑을 전부 다 아는 것이 아닐텐데 그렇게 다 알 것만 같으면 사랑도 흥미없을 것 같아보인다. 사랑은 언제나 하면 할수록 새로운 의미가 부여된다. 그러므로 몇가지로 얘기되어질 수 있다고 해도 그 체험은 무궁무진 할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인간의 언어로 얘기하려고 한다는 게 좀 우습지 않나? 단지 우습지 않으려면, 51개든 몇가지로 나눠볼 수 있는 것을 자신이 일일이 체험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웃을 수 없는 거겠지. 그렇다고 그것을 체험해 보려고 51번 사랑을 할 수는 없지 않는가?

그래도 이 책 어느 부분은 상당히 공감이 가고 일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것도 있기는 하다. 사람은 누구나 거절에 대한 두려움은 다 있다. 내가 그대를 사랑하고 있는데, 그대가 나를 싫어한다고 하면 어쩌나? 그래서 "우리 사귈래?"라고 말하기는 얼마나 용기가 필요한가? 그런데 책은 제일 첫번에 이 얘기를 하라고 권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에 지나친 의미와 신비감을 부여하려 한다. 진정한 사랑은 인간의 좁은 언어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거야라며 비장미까지 더 하려 하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러다보면 '자폐'가 되버리지는 않을까? 그리고 짝사랑이 되어버리는 건 아닐까? 사랑은 말해져야 한다. 그리고 표현되어져야 한다. 그래야 그 사랑은 풍성해지고 메아리가 되어 나에게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나도 사랑의 순간은 있었다. 하지만 말 못하고 흘려보낸 사랑이 또 얼마랴? 그리고 안타까운 사랑만 되네이고 있는 건 또 얼마나 미련스러운 것인가.

그러고 보니 스무살을 갓 넘겼을 그 시절에 나를 사귀어 보겠다고 초콜릿까지 준비했던 어떤 사내가 생각이 난다. 그땐 난 솔직히 당혹스러웠고, 초콜릿까지 준비할 줄 아는 센스라면 많이 해 본 솜씨라고 생각해 외면했었다. 결국 나는 그의 초콜릿을 받지 않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난, 그가 참 용기 있었다고 생각한다. 시작할 수 있는 사람은 끝낼 수 있으며, 다시 시작할 수 있기 때문에 훨씬 보기가 좋다. 그래서 "우리 사귈까?"하는 자기 선언이 필요한 것이겠지.

하지만 시작도 모호한 사람은 끝도 모호하며,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 또한 모른다. 첫사랑은 그럴 수 있다고 해도, 나이 들어서도 그러면 미숙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지 않은가? 먼저 말하라. 상대가 말해주길 기다리지 말고. 자발적인 사람이 긍정적인 사랑을 할 수 있으며, 비록 헤어지게 되더라도 미련이 훨씬 덜남는다고 생각한다.

이 책이 좀 독특하긴 하다. 그냥 연애를 잘 하기위한 전략지침서는 아닌 것 같고, 언어를 통한 연애진단서쯤 될 것 같긴한데 그런데 뭔가 모를 모호함이 있다. 작가가 좀 더 깊이있게 풀어주면 좋겠는데 아직은 필력이 좀 아쉽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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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08-31 1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하면 로맨스, 남이하면 불륜...

야클 2006-09-01 0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도 가끔 초콜렛 그 남자가 생각나나요? ^^

stella.K 2006-09-01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담뽀뽀님/내가 한다고 불륜이 어디가겠습니까? 아예 꿈도 꾸지 마시쇼!^^

야클님/생각 안 났었는데 이 책 읽다보니 생각났어요. 제 타입 아니었죠. 흐흐.
 

 

1800여년 전 ‘도미 부인’을 누가 탐했나


“백제 사람 도미는 민간의 작은 백성이지만 그 아내는 용모가 아름답고 절개를 지키기로 이름 높았다. 왕이 그 아내를 취하려 하자, 그녀는 계집종을 단장시켜 대신 왕을 모시게 했다. 노한 왕이 도미의 두 눈을 멀게 하고 작은 배에 태워 강물에 띄워 보냈다. 아내가 강으로 달아나 통곡하고 있을 때 작은 배 한 척이 뭍에 닿았다. 천성도(泉城島)에 이르러 남편을 만나 고구려로 가 궁핍 속에서도 죽을 때까지 함께 살았다.”

초기 삼국시대의 사화(史話) 중에서 ‘도미 이야기’처럼 부부 사이의 애틋한 정과 신의를 담은 이야기도 드물 것이다. 1937년 월탄 박종화의 단편소설 ‘아랑의 정조’, 2002년 최인호의 소설 ‘몽유도원도’와 이를 바탕으로 한 뮤지컬…. 숱하게 재창조됐던 이 이야기의 원전은 전설집이 아니라 정식 역사서인 ‘삼국사기’ 도미열전(都彌列傳)이다. 소장 고대사학자인 박대재(朴大在) 박사(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사)는 최근 신라사학회 발표문 ‘삼국사기 도미열전의 세계’를 통해 이 ‘실제 이야기’에 담긴 세 가지 미스터리를 분석했다.


도미 이야기의 ‘왕’은 흔히 고구려 장수왕의 침공으로 한강 유역을 빼앗기고 사로잡혀 죽음을 당했던 백제 21대 개로왕(蓋鹵王·재위 455~475년)으로 여겨졌다. 열전에 잔학무도하게 묘사된 모습이 역사상의 실정(失政)과 들어맞기 때문. 그러나 박 박사는 “원문에 개루왕(蓋婁王)이라고 기록된 것을 뒤집을 근거는 없다”고 말한다. 백제 제4대 왕인 개루왕(재위 128~166년)은 ‘삼국사기’ 본기에 “성품이 공손하고 행동이 단정했다”고 기록돼 있어 도미열전의 ‘왕’과는 다른 인물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절대 권력자로서의 이성적인 왕’과 ‘한 여자를 얻기 위해 집요함을 보이는 감정적인 왕’은 같은 인물일 수 있다는 것이다.


도미와 그 아내가 배를 타고 달아난 곳은 어디일까? 현재 도미와 관련된 전설이 전해지는 곳은 서울 광진구·강동구, 경기 하남, 충남 보령, 경남 진해 등 전국 여러 지점으로 일부 지역에선 행사까지 열리고 있다. 하지만 서울 송파구 풍납토성이 초기 백제의 왕성으로 유력해진 지금, 우선 보령과 진해는 지리적으로 맞지 않는다. 도미 부부가 상봉한 ‘천성도’는 임진강이나 예성강 하류의 섬이라는 것이 정설이니 이들 부부가 탄 배는 한강 하류로 향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왕성을 황급히 빠져나온 도미의 아내가 배를 탄 곳은 풍납토성 서남쪽, 지금의 송파구 잠실 부근 한강변 어느 곳이라 보아야 한다.


과연 도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기록에 ‘호적에 편제된 작은 백성(편호소민·編戶小民)’이라 돼 있어 그 신분은 ‘양인(良人) 농민’ 정도로 생각돼 왔다. 그러나 과연 일반 농민이 계집종(婢子)을 거느릴 수 있었을까? 박 박사는 “신분상으로는 소민(小民)이라 해도 상당한 경제력을 갖춘 계층일 것”이라 말한다. 배를 타고 바다 쪽으로 달아난 것도 예사롭지 않다. ‘삼국지’ 동이전에 나오는 마한의 하호(下戶)는 중국 군현과의 교역에 종사하던 상인 계층으로 생각되는데, 도미는 바로 이들의 일원일 수 있다는 것이다.

유석재기자 karm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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