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리더를 꿈꾼다면 대학.중용 Easy 고전 3
김예호 지음, 정우열 그림,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기획 / 삼성출판사 / 2006년 12월
평점 :
품절


언제부턴가 리더십에 관심을 갖고 그 분야에 관한 책을 기회있을 때마다 읽고 있다. 지금도 눈독 들이고 있는 책들이 몇권있다. 그런데 편견인지는 모르겠지만, 의외로 사람들은 리더십에 관한 책들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책도 어디까지나 취향의 문제이니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겠지만, 짐작컨대 그렇게 된데는 리더십이라고 하는 분야가 그렇게 가벼운 주제도 아니고, 또 어찌보면 처세술에 가까운 분야라고 생각하는데 기인된 것 같기도 하다. 그뿐만 아니라 정치나 기업하는 사람이 읽을 법한 한정성도 있어 보인다. 그러나 리더십이 어느 특정인만을 위한 것인가?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치인이나 기업인에 대한 안 좋은 편견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사람처럼 정치에 해박한 사람들이 또 있을까? 사람들 모인 자리에서 정치 얘기 안하면 나만 괜히 시대에 뒤떨어지는 사람 같아 보이기도 하고 그래서 열심히 정치인들 또는 그들이 내놓는 정책들에 대해 열심히 비판한다. 그런 사람 있으면 국회로 보내야 한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은 국회에 없다. 또한 그들의 상당 부분은 등 떠밀어줘도 안할 사람이 더 많다. 그들의 하나 같은 공통점은 점잖은 체면에 내가 왜 책임있는 자리에 서서 사람들로부터 욕과 질시를 받느냐는 것이다. 하던 뭐도 멍석 펴 놓으면 못한다더니, 꼭 그짝이다. 그러니 우리나라 사람들 비판은 잘해도 책임은 지지 않겠다는 것인데, 그렇다고 한다면 누가 지도자가 되겠으며, 우리나라 지도자의 위치에 선 사람들 과연 그렇게 비판할 자격이 있는가 의문스럽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의 또 다른 심리는, 내 자식 지도자의 자리에 서게 되길 바란다는 것이다. 내가 이루지 못한 꿈을 자식이 이루어주길 바라며, 자식의 입신양명에 대리만족을 바라고 있는 것이다. 모순 아닌가? 자식이 어느 한 분야의 지도자가 되는 것이 그냥 되는 것이 아닌데 노력없이 어떻게 지도자가 되길 바란단 말인가? 자신은 소시민적이면서 자식은 대시민이 되길 바란다는 것인가?  비록 자신은 리더가 못 되거나, 안 될지라도 내 자식이 리더가 되기를 바란다면 자신은 리더가 못될지라도 적어도 리더십에 관한 책은 좀 읽어줘야 하지 않을까?  

나는 지금까지 리더십에 관한 책들을 그리 많이 읽은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서양의 리더십과 동양의 리더십에 관한 저작물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그 차이는 뭐랄까? 서양의 그것은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것이라면, 동양의 리더십은 근본적이고 우주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서양은 뭔가 지배와 관리, 관계등에 치중되어 있다면, 동양은 자연과 나를 같은 선상위에 놓고, 도덕적이며 윤리적이고 포괄적인 느낌을 갖게되는 것이다. 내가 본 이 책도 역시 그랬고, 읽으면서 마음이 넓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 책은 그 어렵다던 <대학>과 <중용> 청소년의 눈높이에서 읽기 쉽게 편집이 되있어서, 청소년기를 한참 떠나 온 나 역시도 편안한 마음으로 읽을 수가 있었다. 물론 편집만 쉽게 되었다는 것이지, 이 책은 실제 <대학>과 <중용>의 맛보기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읽으면서 문득 드는 생각은, 요즘의 중,고등학교 교과서가 예전에 비해 많이 달라졌을텐데 그게 어느 정도로 달라졌을까 궁금해졌다. 과연 <대학>과 <중용>을 청소년 눈높이에서 만든만큼 그것의 가치를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을까? 200페이지도 채 안되는 얉은 책이지만 거기엔 인간의 도리와 이치에 대해서 구구절절이 옳은 말을 하고 있는데 이것을 과연 교육의 덕몫으로 삼아서 정말 잘 가르치고 있는지 묻고 싶어지는 것이다. 아마도 그럴리 없을 것이다. 이 책 뒤에 보면 부록으로 논술에 도움이 되도록 꾸며 놓은 것을 보면 역시 논술을 위한 책이란 인상을 지울수가 없다. 아, 어딜가나 논술이다. 학생들의 논리적 사고를 키워주기 위해 논술을 채택했겠지만, 논술을 위한 논술로 전락해버린 느낌이고, 이건 아예 복병이 된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논술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데 논술 쪽집게란 말도 안 되는 상술이 판을 치고 있다.  <대학>과 <중용>을 공부한다는 것이 의미가 없어져버리는 것 같다. 책도 아무리 청소년 눈높이에 맞췄다지만 꼭 이렇게 구차하게 논술 어쩌고한 의도를 숨김없이 드러내 놓고 나와야하는 것일까? 어려서부터 독서 교육을 철저하게 시킨다면 우리의 아이들은 논술을 굳이 입에 떠올리지 않아도 논리적 사고로 무장할 것이고 '논술'이라고 하는 의도성을 굳이 드러내지 않더라도 좋을 것이다.  아니할말로 학생의 해방은 이제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이런 기획물도 나쁘지는 않아 보인다. 나 같이 어중떼기 독서가가 무턱대고 동양고전에 발을 들여놨다가 큰코 다치느니 이렇게 쉬운 저작물을 통해 아하~그렇구나! 하고 도를 살짝 터 주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문체도 현대적이고 쉽게 썼다. 아무리 청소년 눈높이에 맞춘다고 해도 쉽지 않을텐데 그것을 저자는 무리없이 잘 해낸 것 같다. 그리고 우리의 청소년들 모두가 당장의 실용성만을 따져서 이 책을 보겠는가? 그들 중엔 정말 한국철학을 공부하고 싶은데 마침 이 책을 발견하고 좋아라 할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런 학생이 분명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읽다가 생각지도 않게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리더의 길에 올라서면 어쩔건가?

우린  그처럼 리더에 대한 불신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짓밟히고 착취 당하고 살아 온 것에 대한 반감 때문일까? 아니면 리더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리더에 대한 공부를 재대로 하지 못하고 리더가 되겠다고 하는 그 모순과 위선을 보았기 때문일까? 어쨌거나 우린 그러한 현실속에서 살지라도 우리의 아이들만큼은 그런 현실속에 내몰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나는 바담풍 해도 너는 바람풍 하라'는 건 또 다른 모순이 아닐까? 나는 어른이든 학생이든 리더십을 필히 공부해야 한다고 본다. 그러면 어떤 사람은 반기를 들지 모르겠다. 너도 나도 리더십 공부해서 리더가 되겠다고 하면 팔로우십이나 멤버십은 어찌되겠냐고 눙쳐버리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리더십도 재대로 배우지 못하면서 팔로우십이나 멤버십이 웬말이란 말이냐? 리더십의 부재 그로인한 도덕적 해이를 엄연히 보고 있으면서 그렇게 여유로운 말을 할 때는 아니라고 본다. 리더십은 관리도, 지배도, 책임도 아니다. 리더십의 제 1의 원칙은 '배움'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 맨끝에 나오는 <중용>의 이 말이 좋다.

배우지 않는다면 모를까, 일단 배우기로 했으면 능통하기 전에는 그만두지 않는다. 묻지 않는다면 모를까, 일단 묻기로 했으면 제대로 이해하기 전에는 그만두지 않는다. 생각하지 않는다면 모를까, 일단 생각하기로 했으면 확실히 답을 얻기 전에는 그만두지 않는다. 분별하지 않는다면 모를까, 일단 분별하기로 했으면 분명해지기 전에는 그만두지 않는다. 실천하지 않는다면 모를까, 일단 실천하기로 했으면 독실해지기 전에는 그만두지 않는다. 남이 한 번에 성공하면 나는 백 번을 하고, 남이 열 번에 성공하면 나는 천 번을 한다. 과연 이러한 방법에 능통해진다면, 아무리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지혜롭게 되며 아무리 힘없는 사람이라도 강해진다.(10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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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가 뜨거울 땐 ‘호트(Hot)’라고 말해요

영국 영어 이렇게 다르다

김현진기자 born@chosun.com
 

영국을 배경으로 하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 ‘러브 액츄얼리(Love Actually)’. 영국청년 콜린은 ‘미국에선 영국식 영어를 쓰는 사람이 인기가 있다’는 정보에 솔깃, 무작정 미국으로 여행을 떠난다. 한 술집에 당도한 그가 영국식 발음으로 ‘버드와이저’ 하나를 주문하는 순간, 갑자기 정적이 흐르고 술집 안에 있던 여성들의 시선이 그를 향해 쏟아진다. 결국 합석까지한 여성들은 이것저것 눈 앞에 놓인 물건들을 가리키며 발음해 볼 것을 요구한다. 콜린이 영국식 영어로 하나씩 발음할때 마다 미국 여성들은 탄성을 내뱉으며 쓰러진다. 다소 과장되긴 했지만 영국식 영어와 미국식 영어의 차이를 확연히 보여주는 장면이다.

영국의 표준 영어는 일반적으로 ‘Queen’s English’‘BBC English’‘Oxford English’ 라고 불린다. 정식 명칭은 ‘RP(Received Pronunciation)’. 영국에선 역사적으로 그 시대의 왕 또는 여왕이 쓰는 영어가 표준어로 대접을 받았다. 하지만 20세기 들어 상황이 변했다. 여왕의 영어가 너무 ‘이상해’ 아무도 따라 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 결국 여왕도 보통 사람들 눈높이에 맞춰가기 시작했다. 1953년 엘리자베스여왕 2세의 즉위 당시 연설과 1980년대, 1990년대, 2000년대 송년사를 비교하면 여왕의 영어가 점차 덜 ‘귀족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한눈에 알수 있다.

    • 옥스퍼드 대학교

    RP는 ‘황금 삼각지대’라 불리는 옥스퍼드·케임브리지·런던 등 잉글랜드 남동부 지역에서 쓰인다. 이 지역 인구는 영국 전체인구의 3% 정도. RP는 사용자의 사회계층과 교육수준이 높음을 나타내기 때문에 지나치게 ‘멋을 부린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영국식 영어와 미국식 영어의 가장 큰 차이는 발음. 자음을 소리대로 정확하게 발음하는 영국식 영어는 ‘t’나 ‘r’ 등의 발음을 부드럽게 굴리는 미국식보다 또렷하게 들린다. 모음의 발음 역시 차이가 난다. 영국식 영어에서 ‘a’ 는 대체적으로 ‘아’, ‘o’는 ‘오’로 발음된다. 예를들어 미국식 영어로는 ‘hot’를 ‘핫’에 가깝게 발음하지만, 영국식으로는 ‘호트’라고 한다. 단어 역시 다른 경우가 꽤 많다. 지하철도 영국에선 ‘underground’, 미국에선 ‘subway’다. 아예 단어의 철자가 다른 경우도 있다. 미국 영어의 ‘center’를 영국에선 ‘centre’로 적는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프랑스의 영향이 크다.

  • 다양한 지역 색도 영국 영어의 특징. 북부 지역으로 갈 수록 발음과 억양이 한층 강해진다. 가장 독특한 것은 스코틀랜드식 영어. 억양과 단어에 적지 않은 차이가 있어 ‘스코틀랜드 영어 번역기’까지 있을 정도다. 다만 스코틀랜드 수도인 ‘에딘버러’ 방언은 억양이 심하지 않고 발음이 부드럽다. 영화배우 ‘숀 코네리’가 에딘버러식 영어를 구사한다.

    런던에도 방언이 있다. 런던 인구의 30%는 ‘코크니(cockney accent)’란 특이한 사투리를 쓴다. ‘따발총 쏘듯’ 매우 빠른게 특징. 묵음이 아닌 첫 음절의 ‘h’ 발음을 하지 않거나 ‘에이’로 발음해야 할 부분을 ‘아이’로 발음하는 등 표준 영어와 적잖은 차이가 난다. 영화 ‘마이 페어 레이디(My Fair Lady)’엔 투박한 런던 사투리를 표준 영어로 교정하는 과정이 코믹하게 묘사된다.

    ‘cockney rhyming slang’이라 불리는 속어(俗語)도 있다. 런던 동부 이스트엔드(East End) 지역에서 불법으로 장사하던 상인들이 자신들만의 ‘암호’를 만든 데서 생겼다는 설이 있다. 아직도 일부 잔재가 남아있다. ‘apples and pears’는 ‘계단’, ‘teapots’는 ‘아이들’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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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잘코군 2007-02-03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이 다르군요. 흠. 뭐 영국거나 미국거나 모르긴 마찬가진데 전. ㅋㅋㅋ

    비로그인 2007-02-04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국 영어가 더 좋습니다만, 옆에서 조근조근 앉아 말할 때는 한없이 발랄하고 사쾌한 미국 영어도 좋아요. 그 특유의 억양만큼이나 그 억양을 내뱉는 사람이 제겐 중요한가 봐요.
     
    열정시대 - 출판인 한기호의 열정 인생
    한기호 지음 / 교양인 / 2006년 9월
    평점 :
    절판


    그 남자 팔자 한번 되게 부럽네!

    이 책 어디엔가 보면 저자 자신의 사주 이야기가 나온다. 글을 아주 많이 써야할 팔자고, 남 돈 벌어다 주는데는 운이 있는데, 자신을 위해 돈을 벌려고 하면 안 벌린다나 뭐라나. 그런데 솔직히 이거 내가 갖고 싶은 팔자다. 흔히 팔자 좋다는 말이, 돈 많이 벌어 편하게 떵떵거리며 살면 장땡인줄 알지만 그것만이 좋은 팔자겠는가? 내가 원하는 일을하고, 나 보다는 남을 성공시키는 운명이라면 평생 직장에서 짤릴 걱정 안해도 되고 어딜가든 환영 받는 사람이 될 것이다. 사람들은 가끔 자기 사업 또는 자기 일을 갖지 못해 안달 난 사람도 있지만, 좋기로는 이런 한기호 같은 사람이다. 게다가 이 남자 처복도 있다. 자기 같은 월급쟁이가 어떻게 내집을 꿈이나 꾸겠냐, 다 아내가 알뜰살뜰 살림해 준 덕분에 내집도 갖게 됐다고 자랑이다. 거기까지면 또 말도 안한다. 토끼 같은 딸래미 둘이 영특하기가 이를 때 없다고 칭찬이다. 이 사람 팔불출 아냐?

    애틋했던 80년 대.

    저자가 58년 생이니 개띠일테고, 80년 초에 대학을 다녔을 것이다. 다 알겠지만 80년 대 가방끈 긴 사람들 시국사범 아닌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 대열에 저자도 있었다. 나 개인적으로 나의 삶을 돌아 보건데, 나는 한번도 데모에 가담해 본적이 없다. 최루탄 가스 피하느라 코 막고 거리를 뛰어다닌 적은 있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난 왜 그리 인생을 소극적으로 살았는지 모르겠다. 대학 때 잠시 알았던 친구 하나 역시도 한때 잠시운동에 가담했다고 하는데, 세월이 흐르고 보니 짜식이 영웅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난 그럴 수 없었다. 우리 부모님이 내가 운동 한다고 하면 가만두지 않으셨을 거다. 그래도 80년 대, 그 시절은 암울했고, 치열했으며, 낭만이 있었고, 애틋했다. 그런데 지금은 조국에 대해 그런 것이 느껴지질 않으니, 내가 무뎌진 걸까? 아니면 시대가 그런 걸까? 아참, 그래도 하나 있다. 작년 월드컵 때 우리나라 응원석에서 집채만한 태극기 올라갔을 때 말이다. 그때 도대체 조국이 뭐길래 이토록...! 하며 가슴이 벅찼다. 비록 기대 이하의 저조한 성적이었지만... 그래도 어쨌거나 나도 80년 대를 사랑한다. 저자만큼은 아닐지라도.   

    베스트셀러는 한때 베스트셀러인가?

    이 책의 저자 한기호는 출판에 마케팅의 개념을 최초로 도입한 사람이라고 한다. 그래서 나온 책이, <소설 동의보감>, <창비 시선집>,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 등등. 그 시절, 우리가 신문 책광고란만 들쳐도 눈에 훤히 띄는 것 거의 대부분이 그에 의에 나온 책들이었다. 근데 저자가 입에 올렸던 책들 중에 나는 <소설 동의보감>외엔 뾰족하게 읽어낸 책이 없다. 에고, 어쩌자고 난 그렇게 책을 안 읽었을까?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다. 그래도 <소설 동의보감> 은 진짜 재밌게 읽었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한기호의 열정시대 때 그에 의해 나온 책들을 지금 읽으라고 그러면 안 읽을 것 같다. 물론 못 읽을 것도 없는데 마음이 가질 않는다. 정말 베스트셀러는 한때 베스트셀러인가 보다. 그렇다면 우린 지금 대한출판협회 같은데서 집계한 우리나라 베스트셀러 목록을 알고 있는가? 알고 있다면 그 책들 중 몇권이나 완독했지? 아님 몇권이나 완독할 것인가? 그런데 난 극히 몇권을 제외하고, 아직 그것들을 완독할 계획이 현재없다. 그렇다고 아쉬워 하진 않는다. 누가 알겠는가, 어쩌면 오늘 읽는 나의 책이 앞으로 베스트셀러 목록에 끼게 될런지. 그러니 베스트셀러 읽어내지 못했다고 너무 자책하진 말자.

    백세주 좀 사 줘요!

    아주 오래 전, 김정환 시인이 하는 문학학교를 다닌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임헌영 선생님과 심산 선생님께 창작을 배웠는데 그게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물론 그땐 선생과 제자 자격이었지만, 또 다른 의미에서는 저자와 독자의 만남일수도 있었다. 가르치는 입장에서야 창작을 배우겠다는 사람은 늘 있어 왔으니까 상관없을지 모르나,  나는 일개 학생이요 독자의 입장에서 사석에서 듣는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참 재미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술 없이 그분들의 입에서 맹숭맹숭 그냥 나올리 없다. 그때 나도 그나마 없는 주량 억지로 늘려놓긴 했다만, 그래도 못 마시는 거 티 안 낼려고 지금까지도 걸핏하면 아무한테나 개기듯, "백세주 좀 사 줘요!"하고 꼬리치고 다닌다. 왜냐구? 그나마 내가 유일하게 좀 마실 줄 아는 게 백세주거든.  솔직히 난 술 먹는 사람 안 좋아한다. 술 안 마시는 사람들은, 주당들이 취중에 하는 말 그거 믿어도 되는 말이냐?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나 하는 걸까? 그런 생각들 때 많다.  하지만 이 책 보면 한기호는 자신을 상당한 주당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을 때야 비로소 문인들 중에 왜 그처럼 주당들이 많은지 새삼 알 것 같다. 그것이 사람 사귀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문학과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꼭 술이 있어야 들을 수 있는 거라면 나도 이제부터 주량 좀 키워야 하지 않을까? 호연지기를 배우는 마음으로 말이다. 

    최영미의 <서른 살, 잔치는 끝났다>가 원래 제목이 그것이 아니었다며?      

    책은 저자에서 시작해서 독자로 마치는 물건이다. 그런데 나는 몰랐다. 내가 <소설 동의보감>을 읽었을 때 그것이 베스트셀러가 되기까지 한기호라는 사람이 있었다는 걸. 난 그냥 좋은 책은 독자가 알아보고 그것이 입에서 입으로 퍼져나가 회자가 되면 베스트셀러가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책제목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서 책의 운명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은 납득이 간다. 나도 그 허접한 글에 제목 뽑아 내느라고 고민하는 경우가 많은데,  책제목 다는데야 오죽 고민과 갈등이 많겠는가? 그래서 말인데, 최영미의 <서른 살, 잔치는 끝났다>가 원래 제목이 그것이 아니었다며?

    그렇다면 일주일이면 수백 권의 책이 나온다고 한다. 그중 내용은 좋은데 제목 하나 잘못 달아서 재대로 피워보지 못하고 사라지는 책은 또 얼마나 될까? 그런 책 있으면 독자들이 살려내면 안 될까? 지금도 가끔 영화는 너무 좋은데 홍보가 안되서 간판 내린 영화들 관객들의 노력으로 다시 상영되기도 한다고 한다. 그런 얘기들으면 기분이 좋다. 비록 영화 관계자는 아니지만 사장되어 묻혀버릴 수도 있는 것이 햇빛을 본다는 건 다행스러운 일이 아닌가. 그래서 말인데, 우리나라엔 정말 좋은 책인데 절판된 경우가 너무 많은 것 같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수효가 없으면 사장되는 거야 당연한 거라고는 하지만, 당연한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면 쓰나? 나도 정말 좋은 책인데 절판된 책을 알고 있다. 그리고 책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책 한 두권쯤 알고 있을 것이다. "이거 출판 해줘요!" 1인 시위라도 하면 어느 출판사가 좀 해 주려나? 요즘엔 출판이 너무 쉬워져 오죽하면, 개나 소나 책 낸다고 할까? 막상 해 보면 말처럼 쉽지 않다는 걸 알지만, 어쨌거나 그런 세상에서 절판된 책이 있다는 건 너무 안타까운 일이고, 독자들의 노력으로 작은 불씨 하나 살려내는 뭐 이런 가상한 사례가 좀 나왔으면 좋겠다.

    우리나라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 책에도 잠시 다뤘지만, 우리나라는 책을 안 읽는다고들 한다.  과연 그게 정말 그럴까? 외국에선 저자가 몇백 또는 몇천 부만 팔려도 대박 났다고 좋아라 한단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몇십만 부 혹은 그 이상 팔려야 대박났다고 하지, 1만 부만 팔려도 성공했다고 보질 않는다. 그건 왜 그럴까? 내가 모르는 뭔가의 출판구조가 있는 걸까? 어디 출판만 그러겠는가? 영화도 보면, 몇만은 고사하고 몇십 만 관객 가지고는 아예 숫자에 넣지도 않는다. 세자리 수는  되야 매스컴에서 조금 띄워준다. 그러니까 이런 숫자 놀음에 거품이 많은 거 아닌가? 오늘 신문에도 "책값"에 대해 다룬 쪽지 기사를 보았다. 책 값이 그렇게 싼데 안 사 볼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더구나 끼워팔기까지 한다지 않는가? 그래서 실제로 판매 순위 1위에 올랐다. 그것이 책 자체가 좋아서인지 끼워서 싸게 팔아서 그런 건지 나중에 따져 볼 일이지만, 어쨌든 이러저러한 것을 볼 때 우리나라 사람들 책 안 읽는다는 거 거짓말 아닌가 그런 의혹도 든다. 하지만 심리적인 것도 있는 것 같다. 하도 안 된다, 안된다 하니 정말 다 안 되는  그런 패배주의 같은 게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는 좋은 것도 1위고, 나쁜 것도 1위라지 않는가? 그렇다면 책을 뽑아내는 기술도 탑클래스일 것도 같은데 책이 안된다고 하는 건  뭐란 말인가?  

     정열의 사람 한기호.

    예전에 신문에 이 사람이 쓴 일종의 책의 이면에 관한 글을 연재한 것을 읽은 기억이 난다. 읽으면서 내가 모르는 책에 대해 신기해 한 적도 많았다. 기왕 책을 만드는 것 같으면 작가나 출판사 편집인 아니 차리리 사장님이 되실 일이지 웬 마케팅인가? 누가 알아 준다고. 솔직히 책이 잘 팔리면 일반독자의 입장에서 그책의 저자만 기억하지 시시콜콜하게 그 사이의 사람을 기억하는가? 그래도 그렇게 보이지 않게 일하는 사람이 있어서 세상은 좋고 신비스러운 것이 아닐까? 그래도 이 사람 출판사 사장님만 안했지, 해 볼 건 다해 본 사람이다. 그런 그의 정열이 가히 부러웠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거의 대부분은 자기 분야에서 아직 실력발휘를 재대로 안 한 거지, 못한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우리 옛 가요, "감격시대"만큼이나 경쾌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자서전이나 회고록이 그렇듯, 저자의 인간적인 내면을 읽을 수 있는 것도 읽는 거지만, 저자와 교분을 가졌던 당대 지식인들의 이야기도 간간히 읽을 수가 있어서 흥미로웠다. 하지만 저자는 막상 이 책을 쓰면서 많이 울었다고 한다. 특히 죽은 친구 생각이 많이나서 울었다고 썼다. 왜 안 그렇겠는가? 자신의 지난 세월을 더듬어 울지 않을 사람이 어딨겠는가? 열심히 살아 온 사람은 더 하겠지. 그래서 그런 사람은 박수 받기에 충분하다.

    인생 뭐 별거 있나? 짧고 굵게 살면 좋은 거지. 길고 굵게 사는 것도 나쁘진 않을거다. 그런데 나는 점점 가늘고 오래 살 궁리만 한다. 이제부터라도 그렇게 살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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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leinsusun 2007-03-06 0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tella님, 이 책 읽고 무지 "필" 받으셨나 보다....그죠?^^
    stella님 글에서도 "열정"이 느껴지네요.
    오늘 아침 이상하게 쳐졌었는데 stella님 서재에서 에너지를 얻고 갑니당.^^

    stella.K 2007-03-06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수선님! 수선님 밖에 없어요! 넘 고마워요. 정말 열심히 썼는데 아무도 댓글 남겨주는 분이 없어서 내심 기운이 빠졌었어요. 저는 수선님 땜에 에너지를 얻어요.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시길...!^^
     

  • 책밖으로 나온 문학과지성사
  • 전시·세미나등 복합 문화공간 ‘사이’개원
  • 김태훈기자 scoop87@chosun.com
     
    • 문학과지성사(대표 채호기)가 출판 외길을 벗어나 새로운 분야에 도전한다.

      지난 30여 년간 문학과 인문학 분야의 담론을 생성하며 한국 지성사의 한 축을 담당해 온 ‘문지’는 1일부터 문학 강좌와 인문학 워크숍, 미술 전시회, 세미나 등 다양한 문화활동을 할 수 있는 복합 문화공간인 ‘사이’를 개원한다.

      문지는 ‘사이’를 개원하면서 출판업이 아닌 서비스업으로 사업자 등록을 했고, 등록 주체도 문학과지성사가 아니라 ‘문지문화원’(공동대표 이인성·채호기)이라는 별도의 법인을 만들었다. ‘사이’는 서울 홍익대 앞의 한 건물 1개 층(80평)을 임차해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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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동대표를 맡은 채호기 시인은 “30년 전 문지의 설립 목적은 출판만이 아니라 문화의 기획과 실천이었다”며 “그동안 출판이 그 중심에 있었지만, 2000년 이후 문화는 각 분야간 혼성교배를 요구하고 있다”고 설립배경을 설명했다. 소설가 이인성씨도 “문지의 실험은 책이 아닌 다양한 방식의 문화채널로 대중과 만나겠다는 선언”이라고 말했다.

      1일 5시 ‘사이’에서 열리는 개원식은 이른바 ‘문지 2세대’가 1세대의 그늘과 아성을 벗어나 ‘21세기 문지’의 새출발을 선언하는 장이 될 전망이다. 문학평론가 김현, 김치수, 김주연과 함께 문지 1세대를 대표하다 2000년 현역에서 물러난 김병익 전 대표(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가 이날 개원식에 참석해 ‘사이’의 성공을 기원하는 축사를 한다.

      문지문화원 ‘사이’는 3월12일 아카데미 봄 학기 개강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갈 예정. ‘문학마당’, ‘고전 깊이 읽기’, ‘인문사회학교실’, ‘예술교실’ 등 고급수준의 강좌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대중교양 강좌인 ‘사이 문화카페’를 운영한다. 또 세미나실 대여, 미술전시회 개최, 토요 정기 문화기획 등의 다양한 메뉴를 준비하고 있다. ‘고전 깊이 읽기’ 강좌에서 플라톤의 ‘국가’를 깊이 읽는 시간을 가질 수 있고, ‘사이 문화카페’에서는 ‘재즈의 매혹적인 풍경들’, ‘영화와 미술’ 등 보다 대중적인 강의를 즐길 수 있다. 전문가들을 위한 워크숍도 수시로 마련된다. 3월 9일에는 ‘경계/사이 그리고 창조성’이란 주제로 개원기념 심포지엄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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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잘코군 2007-02-01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신문서 보고 냅다 가입했습니다.

    stella.K 2007-02-02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잘 하셨습니다.^^
     
    산티아고 가는 길 에세이 작가총서 96
    정민호 지음 / 에세이퍼블리싱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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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저자, 정민호 씨가 그런 말을 했다. "책을 읽는 사람 중에 나쁜 사람은 없다." 나도 그 말에 동의한다. 이 책은 일종의 여행기이다. 그것도 왕초보 여행자를 위한 여행기. 부제에도 달려있지 않은가? '보디랭귀지만 믿고 떠난 고행 800km'라고. 그런데 이 책을 선물로 받아 들고나서, 문득 내가 과연 이런 여행기를 한번이라도 제대로 읽은 적이 있는가  묻게 되었다. 대답은 "아니"다. 왜냐구? 평소 여행을 거의 안하는 내가 그런 여행기를 읽으면 이건 확실히 염장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종의 편견 같은 것이 있다. 이를테면 가끔 TV를 통해 여행 다큐멘터리를 보면 자꾸 답답해 지는 것이 느껴졌다. 분명 저 카메라 바깥에 더 넓은 세상이 존재할텐데 나는 이렇게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보여 주는 것만 볼 수 있구나, 회의가 드는 것이다. 내가 저길 가 보지 않고 이렇게 앉아서 저 세상이 넓으면 얼마나 넓은지, 좋으면 얼마나 좋은지 어떻게 알겠는가? 그래서 일부러 보질 않는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일본소설은 일본스러워서 싫고, 추리소설은 살인이 나오고, 인간의 이상심리가 묘사가 되서 싫다. 이렇게 이 책은 이래서 싫고, 저책은 저래서 싫으면 내가  정말 책을 좋아하긴 하 것인가?

    정민호 씨가 알라딘에서 한창 <정군>으로 서평활동을 하고 있었던 작년 가을무렵, 갑자기 스페인 여행을 하고 오겠다는 짧은 인사를 남기고는 훌쩍 떠나고 말았다. 아, 이런, 여행이라니... 그리고 금세 내 속의 나와 마주친 것이 있으니 그것의 이름은 질투! 였다.  쳇~! 누가 질투의 화신이 아니랄까봐... 그래. 돈 좀 있나 보지? 영어나 스페인 좀 되나 보지? 누구는 떠나는데 너는 뭐니? 그래도 내가 누군가? 떠나는 사람에게 그래도 작별인사는 해야 예의 아냐? "잘 갔다와요! 정군님!" 모르긴 해도 우아하게 이런 인사 남겼을 거다. 그리고 10월. 아직도 더위가 가시지 않는 이상 기온 속에 나는 그의 여행기록을 야금야금 읽었다. 그런데 읽다 포기했다. 그건 앞에서 밝힌 여행기에 대한 편견 때문마는 아니었다. 눈이 아파 읽을 수가 없는 거다. 확실히 웹상에서 글을 읽는다든지 쓰는 건 눈에 좋지 않은 것 같다. 그때 생각하면 정군님한테 좀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책으로 나왔으니 좋긴 좋다. 정군님께 덜 미안하다고 해야할까? 확실히 전자책이 나오더라도  종이책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확실히 아는 사람의 글이나 책을 읽는 건 남다르다. 여행서에 관한 나의 안 좋은 편견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정말 재밌게 술술 잘 읽힌다. 책을 읽는 중간중간 웃음보가 터져 "까르르" 웃었던 때가 얼마나 많은지? 그런데 이거 너무 웃는 거 아냐? 내가 정군님을 몰랐다면 이렇게까지 웃음이 나올까? 의문스럽지 않을 수 없다.그런데 놀라운 건 읽으면서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머리 아플 때는 여행서를 읽으라고 했는데 그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유익했던 건, 정군님이 여행고수 였다면 나는 아마도 꽤나 부러워하고, 역시 고수라 뭐가 달라도 다르군. 하며 그냥 읽고 넘겼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해외여행 초짜였고 읽으면서도 "어, 정말?" 하게 만드는 게 있었다. 그것은 크게 두가지 였는데, 하나는 언어가 되지 않아도 통하는 게 있었다는 것. 이를테면 보디랭귀지 + 국적불명의 언어를 사용해도 궁하면 통한다고 상대가 알아 듣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린 영어를 잘하든 못하든 지간에 떠나 보기도 전에 "언어"란 부분에서 막혀 망설이는 것일까? 또 하나, 여자가 혼자 여행을 하기엔 불리하다라는 선입견이 있는데 이 책에선 그것을 불식시켰다는 것이다. 그러니 "어, 정말?"이란 말이 나올 수 밖에. 정군님은 말한다. 산티아고에서의 여행은 안전하다고.

    이 책에서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그것은 정군님이,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을 '여행자' 또는 '여행객'으로 부르지 않고, "순례자"로 통칭했다는 것이다. 나는 처음에 정군님이 그냥 아무 생각없이 그게 좋아서 썼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읽으면서 "순례자"가 맞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여행이란 그저 좋은 경치나 보고, 맛있는 것이나 먹는 것이 여행이 아니다. 그런데 우린 그렇게 생각한다. 한국 사람이 여행을 간다면 "보신 여행" 간다고 하지 않는가? 몸에 좋은 거라면 나라 밖 여행도마다치 않는 근성이란. 그리고 어디를 가든지 콘도나 펜션이 그곳에 있느냐를 따진다. 하지만 여행의 백미는 역시 배낭여행인 듯 싶다. 모든 것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자연을 느끼고 나와 다른 인간들에서 하나됨을 느껴 보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누구인가를 재인식하고. 그렇다면 그건 정말 단순한 여행자가 아닌 "순례자"가 맞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후 얼마 안 있다 그의 취직소식을 들었다. 평소 원하던 직장을 들어간 것이다. 귀한 여행 후 원하던 일을 한다.  확실히 근사한 그림이다. 그는 인생을 제대로 살고 있는 사람 같았다. 행복도 행운도 준비하는 사람에게 온다고 하지 않는가? 이 책 어디에선가 정군님은 자신에 대해서 말하길, 그 여행 후 허둥대는 것이 없어졌고 무엇을 하든지 즐겁고 자신감이 생겼다고 했다. 여행은 바로 사람에게 이런 것을 선물하는가 보다. 나도 떠나고 싶어졌다. 어떻게 떠날까? 나는 언듯 드는 생각이, 사이판에 친구 하나 있는데  이 친구에게 전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한번 안 오겠냐고 묻는 친구다. "어, 갈게. 무슨 날 비행기 뜬다! 기다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건 여행이 아니구나 싶었다. 떠나면 있을 생각부터 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 책을 읽고 있는데 갑자기 여행에서 돌아 온 그 안온함이 느끼고 싶었다. 아무리 여행을 안 간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과거에 몇 번 안되는 여행을 했었다. 그때마다 난 무사히 도착해서 늘어지게 자는 잠을 얼마나 좋아했던지.그런데 이것도 순례자가 되기엔 결격사유가 있어 보인다. 정군님은 맨마지막 부분에서 무사히 한국에 도착했다란 말고 끝맺지 않고 있었다. 그의 글의 맺은 여행의 현재진행형이었던 것이다. 그의 그런 맺음이 좋다!  별 다섯개가 아깝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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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1-31 18: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1-31 18: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07-02-01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엥, 무슨 말씀이시온지...??

    2007-02-02 12: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2-02 12: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07-02-02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런 일이 있었군요. 그런데 그게 뭐 문제가 되나요? 이런 건 할 수도 있는건데...나나 님 같아도 하지 않겠어요? 떡돌이도 하는데...그럴수록 더 떠들어 줘야한다고 생각해요. 보란 듯이 말입니다. 안 그런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