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리더를 꿈꾼다면 대학.중용 Easy 고전 3
김예호 지음, 정우열 그림,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기획 / 삼성출판사 / 2006년 12월
평점 :
품절


언제부턴가 리더십에 관심을 갖고 그 분야에 관한 책을 기회있을 때마다 읽고 있다. 지금도 눈독 들이고 있는 책들이 몇권있다. 그런데 편견인지는 모르겠지만, 의외로 사람들은 리더십에 관한 책들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책도 어디까지나 취향의 문제이니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겠지만, 짐작컨대 그렇게 된데는 리더십이라고 하는 분야가 그렇게 가벼운 주제도 아니고, 또 어찌보면 처세술에 가까운 분야라고 생각하는데 기인된 것 같기도 하다. 그뿐만 아니라 정치나 기업하는 사람이 읽을 법한 한정성도 있어 보인다. 그러나 리더십이 어느 특정인만을 위한 것인가?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치인이나 기업인에 대한 안 좋은 편견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사람처럼 정치에 해박한 사람들이 또 있을까? 사람들 모인 자리에서 정치 얘기 안하면 나만 괜히 시대에 뒤떨어지는 사람 같아 보이기도 하고 그래서 열심히 정치인들 또는 그들이 내놓는 정책들에 대해 열심히 비판한다. 그런 사람 있으면 국회로 보내야 한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은 국회에 없다. 또한 그들의 상당 부분은 등 떠밀어줘도 안할 사람이 더 많다. 그들의 하나 같은 공통점은 점잖은 체면에 내가 왜 책임있는 자리에 서서 사람들로부터 욕과 질시를 받느냐는 것이다. 하던 뭐도 멍석 펴 놓으면 못한다더니, 꼭 그짝이다. 그러니 우리나라 사람들 비판은 잘해도 책임은 지지 않겠다는 것인데, 그렇다고 한다면 누가 지도자가 되겠으며, 우리나라 지도자의 위치에 선 사람들 과연 그렇게 비판할 자격이 있는가 의문스럽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의 또 다른 심리는, 내 자식 지도자의 자리에 서게 되길 바란다는 것이다. 내가 이루지 못한 꿈을 자식이 이루어주길 바라며, 자식의 입신양명에 대리만족을 바라고 있는 것이다. 모순 아닌가? 자식이 어느 한 분야의 지도자가 되는 것이 그냥 되는 것이 아닌데 노력없이 어떻게 지도자가 되길 바란단 말인가? 자신은 소시민적이면서 자식은 대시민이 되길 바란다는 것인가?  비록 자신은 리더가 못 되거나, 안 될지라도 내 자식이 리더가 되기를 바란다면 자신은 리더가 못될지라도 적어도 리더십에 관한 책은 좀 읽어줘야 하지 않을까?  

나는 지금까지 리더십에 관한 책들을 그리 많이 읽은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서양의 리더십과 동양의 리더십에 관한 저작물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그 차이는 뭐랄까? 서양의 그것은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것이라면, 동양의 리더십은 근본적이고 우주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서양은 뭔가 지배와 관리, 관계등에 치중되어 있다면, 동양은 자연과 나를 같은 선상위에 놓고, 도덕적이며 윤리적이고 포괄적인 느낌을 갖게되는 것이다. 내가 본 이 책도 역시 그랬고, 읽으면서 마음이 넓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 책은 그 어렵다던 <대학>과 <중용> 청소년의 눈높이에서 읽기 쉽게 편집이 되있어서, 청소년기를 한참 떠나 온 나 역시도 편안한 마음으로 읽을 수가 있었다. 물론 편집만 쉽게 되었다는 것이지, 이 책은 실제 <대학>과 <중용>의 맛보기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읽으면서 문득 드는 생각은, 요즘의 중,고등학교 교과서가 예전에 비해 많이 달라졌을텐데 그게 어느 정도로 달라졌을까 궁금해졌다. 과연 <대학>과 <중용>을 청소년 눈높이에서 만든만큼 그것의 가치를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을까? 200페이지도 채 안되는 얉은 책이지만 거기엔 인간의 도리와 이치에 대해서 구구절절이 옳은 말을 하고 있는데 이것을 과연 교육의 덕몫으로 삼아서 정말 잘 가르치고 있는지 묻고 싶어지는 것이다. 아마도 그럴리 없을 것이다. 이 책 뒤에 보면 부록으로 논술에 도움이 되도록 꾸며 놓은 것을 보면 역시 논술을 위한 책이란 인상을 지울수가 없다. 아, 어딜가나 논술이다. 학생들의 논리적 사고를 키워주기 위해 논술을 채택했겠지만, 논술을 위한 논술로 전락해버린 느낌이고, 이건 아예 복병이 된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논술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데 논술 쪽집게란 말도 안 되는 상술이 판을 치고 있다.  <대학>과 <중용>을 공부한다는 것이 의미가 없어져버리는 것 같다. 책도 아무리 청소년 눈높이에 맞췄다지만 꼭 이렇게 구차하게 논술 어쩌고한 의도를 숨김없이 드러내 놓고 나와야하는 것일까? 어려서부터 독서 교육을 철저하게 시킨다면 우리의 아이들은 논술을 굳이 입에 떠올리지 않아도 논리적 사고로 무장할 것이고 '논술'이라고 하는 의도성을 굳이 드러내지 않더라도 좋을 것이다.  아니할말로 학생의 해방은 이제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이런 기획물도 나쁘지는 않아 보인다. 나 같이 어중떼기 독서가가 무턱대고 동양고전에 발을 들여놨다가 큰코 다치느니 이렇게 쉬운 저작물을 통해 아하~그렇구나! 하고 도를 살짝 터 주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문체도 현대적이고 쉽게 썼다. 아무리 청소년 눈높이에 맞춘다고 해도 쉽지 않을텐데 그것을 저자는 무리없이 잘 해낸 것 같다. 그리고 우리의 청소년들 모두가 당장의 실용성만을 따져서 이 책을 보겠는가? 그들 중엔 정말 한국철학을 공부하고 싶은데 마침 이 책을 발견하고 좋아라 할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런 학생이 분명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읽다가 생각지도 않게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리더의 길에 올라서면 어쩔건가?

우린  그처럼 리더에 대한 불신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짓밟히고 착취 당하고 살아 온 것에 대한 반감 때문일까? 아니면 리더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리더에 대한 공부를 재대로 하지 못하고 리더가 되겠다고 하는 그 모순과 위선을 보았기 때문일까? 어쨌거나 우린 그러한 현실속에서 살지라도 우리의 아이들만큼은 그런 현실속에 내몰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나는 바담풍 해도 너는 바람풍 하라'는 건 또 다른 모순이 아닐까? 나는 어른이든 학생이든 리더십을 필히 공부해야 한다고 본다. 그러면 어떤 사람은 반기를 들지 모르겠다. 너도 나도 리더십 공부해서 리더가 되겠다고 하면 팔로우십이나 멤버십은 어찌되겠냐고 눙쳐버리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리더십도 재대로 배우지 못하면서 팔로우십이나 멤버십이 웬말이란 말이냐? 리더십의 부재 그로인한 도덕적 해이를 엄연히 보고 있으면서 그렇게 여유로운 말을 할 때는 아니라고 본다. 리더십은 관리도, 지배도, 책임도 아니다. 리더십의 제 1의 원칙은 '배움'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 맨끝에 나오는 <중용>의 이 말이 좋다.

배우지 않는다면 모를까, 일단 배우기로 했으면 능통하기 전에는 그만두지 않는다. 묻지 않는다면 모를까, 일단 묻기로 했으면 제대로 이해하기 전에는 그만두지 않는다. 생각하지 않는다면 모를까, 일단 생각하기로 했으면 확실히 답을 얻기 전에는 그만두지 않는다. 분별하지 않는다면 모를까, 일단 분별하기로 했으면 분명해지기 전에는 그만두지 않는다. 실천하지 않는다면 모를까, 일단 실천하기로 했으면 독실해지기 전에는 그만두지 않는다. 남이 한 번에 성공하면 나는 백 번을 하고, 남이 열 번에 성공하면 나는 천 번을 한다. 과연 이러한 방법에 능통해진다면, 아무리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지혜롭게 되며 아무리 힘없는 사람이라도 강해진다.(10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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